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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의 경계 위에서] 부치가 마주하는 장례문화

※ [젠더의 경계 위에서] 시리즈에선 확고한 듯 보이는 ‘여성’과 ‘남성’이라는 성별 이분법에서 벗어난 다양한 경험과, ‘여성성’과 ‘남성성’의 경계를 넘나드는 도전과 생각을 나눕니다. 일다 

 

 열두 가지 재밌는 집 이야기 『네가 좋은 집에 살면 좋겠

 

네가 좋은 집에 살면 좋겠어

제 삶을 따뜻하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여성 열두 명이 밀도 있게 들려주는 주거생애사이자, 물려받은 자산 없이는 나다움을 지키면서 살아갈 곳을 찾기 어려워 고개를 떨구는 독자들에게 조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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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초등학교라고 불리지만, 내가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보통 여자아이들에게 하얀색 타이츠와 치마를 입혔다. 그 타이츠를 입는 것이 너무도 싫었기 때문에 아침마다 할머니는 “이쁘다 입어봐라”, 나는 “안 이뻐 입기 싫어~” 옥신각신 실랑이를 벌였다. 결국 울면서 그 옷을 입고 학교에 갔다. 중, 고등학교 때는 치마 교복을 입어야 했다. 치마 입은 모습을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 학교에 일찍 가서 체육복 바지로 얼른 갈아입곤 했다. 20대 후반에 입사한 회사에는 여직원만 입어야 하는 하늘색 정장 스타일의 치마 유니폼이 정해져 있었다. 나는 돈벌이고 뭐고, 견딜 수가 없어 직장도 박차고 나와 버렸다.

 

한참 후에야 스스로 성 정체성을 깨닫고서 동성애자 커뮤니티에 들어오니, 나 같은 사람을 부치(Butch)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치에 대해 남성을 모방하는 사람, 남성을 동경해서 흉내 내는 사람, 여성적이지 못한 뭔가 부족한 사람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는 걸 알지만, 나는 부치 타이틀이 이성애 사회에서 규정하지 못한 나의 모습을 인정받는 거 같아서 좋았다. 묘한 안도감과 소속감도 느꼈다.

 

하지만 사회에선 여전히 여성스럽지 않은 여성에 대한 편견이 많아서, 나는 일상에서 수시로 복장이나 머리 스타일, 외모로 인해 곤란함을 겪곤 했다. 그중 장례식에서의 경험은 더 복잡한 심경을 느끼게 한다.

 

조문객의 고민, 어떤 옷을 입고 장례식에 갈까

 

흔히 “나이가 들수록 결혼식장 가는 일보다 장례식장에 가는 일이 많아진다”라고 한다. 마흔다섯 살쯤 되니 이런 말의 뜻을 알 거 같다. 하지만 퀴어로선 다른 면도 있다. 내가 가게 된 많은 장례식장은 부모상이 아니라 본인상이 더 많았으니까. 성소수자 차별이 만연한 사회에서 성소수자 활동가로 살면서, 당연히 감당하거나 목도해야 하는 일로 여겨지는 경험이다. 처음에는 낯설고 오싹할 만큼 무서웠지만, 오히려 이제는 익숙해질까 두렵다. 작년에만 장례식장을 여덟 번 갔다. 친한 친구, 함께 일하던 동료, 변희수 하사의 죽음까지….

 

▲ 작년 초 연이은 트렌스젠더들의 죽음이 있었다. 그들의 장례식장에 가면서 트렌스젠더 플래그 뱃지를 달았다.   ©홀릭

 

처음 장례식장에 갔을 때는, 사전에 문상의 예절과 순서를 검색하고 기억하려고 애를 썼다. 혹여나 문상예절에 어긋나 고인과 가족에게 누가 될까 싶었기 때문이다. 문상예절을 인터넷에 찾아보면서 참으로 이상했던 것은, 여성과 남성의 절하는 모습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여성은 평절로 왼손이 오른손 위에 와야 하며, 남성은 큰절로 오른손이 위에 와야 한다. 더더욱 내 눈을 의심케 한 것은 남성은 고인에게 두 번 절하며(재배), 여성은 네 번 절한다(사배)는 것이다. 여자는 음이므로 양인 남자의 갑절로 절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에 와서는 남녀가 같은 재배로 바뀌었다는 내용이었지만,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문화였다. 여자는 음이라서 네 번이나 힘들게 절해야 한다고? 세상에나.

 

나는 기독교인이라서 간단하게 목례와 묵념을 하지만, 혹시라도 장례식장에서 예절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고인을 모욕하거나 큰 결례가 될 거 같아 조문예절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평소 복장과 달리 장례식장에서의 옷차림은 좀 더 격식에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검정 재킷과 검정 바지, 넥타이를 매는 형태의 옷 스타일을 갖춘다. 문제는, 이렇게 차려입으면 평소보다 더 남자같아 보여 너무 튄다는 점이다.

 

일상에서는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나를 드러내도 되는 공간과 순간들이 있다. 하지만 타인의 장례식장에서는 나를 드러내는 것보다 고인의 뜻과 가족의 뜻이 더 중요할 수 있다. 고인이 성소수자일 경우에, 장례식장에는 고인의 가족과 친척들이 있고 살아생전에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이 있을 텐데, 혹여나 내가 가는 것 자체로 고인이 아웃팅되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쟤(고인) 친구 중에 저런 사람 있던데, 쟤도 혹시 그런 거 아냐?” 추측하여 부모와 형제와 친구들에게 커밍아웃하지 않았던 고인의 정체성이 나로 인해 드러날까 봐 장례식에 가는 것조차 망설이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또 다른 난감함은 주목도다. 결혼식장에서는 신랑과 신부 측 하객이 뒤섞여있고 특별히 가족과 친척들에게 일일이 인사하지 않지만, 장례식장에서는 상주와 가족들이 내가 고인을 애도하는 모습, 절하는 모습들을 낱낱이 보고 있다. 그럴 때면 왠지 모르는 부끄러움과 민망함에 등줄기에서 땀이 나기도 한다. 또한, 고인과는 살아생전에 어떤 관계였는지 가족들에게 소개하고 조문하는 순서를 거치게 된다. 이런 상황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 작년 한 해는 트랜스젠더들의 죽음이 잇달아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였다. 장례식장에 놓았던 무지개곰돌이와 트랜스젠더 뱃지. ©김민수

 

가족의 장례를 치르는 위치에서, 상복은?

 

그래도, 어쩌면 조문객으로서 겪는 불편함은 별것 아닐 수도 있다. 부치로서 더 큰 관문이 남아 있으니까. 바로 부치가 누군가의 딸로서 장례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다.

 

몇 년 전에 ‘이쪽’ 커뮤니티 친구의 부친상에 친구들과 함께 갔다. 장례식장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맞이한 친구의 모습을 보고 표정 관리하는데 혼이 났다. 평소에 치마를 절대 입지 않았던 부치 친구가 검정 저고리에 검정 치맛단을 두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찌나 어색하고 어울리지 않던지 웃으면 안 되는 자리에서 풉 웃음이 새어 나왔다.

 

장례식장을 나와서 같이 갔던 친구들끼리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모두가 그 친구의 치마 상복 입은 모습을 보고 웃음이 터질 뻔했다고 했다. “나중에 너의 부모님 장례식에 가게 되면 꼭 네가 치마 입은 모습을 구경하러 갈 거야”라며 씁쓸한 농담을 주고받았지만, 언젠가 나에게도 닥칠 일이기에 마냥 웃고 넘길 수는 없었다. 많은 부치들이 겪게 될 일이기도 해서, 우리는 한편으로는 이 문제에 대해 한탄하며 토론도 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나눌 때만 해도 아직 부치의 본인상을 가까이에서 겪지는 못한 때였다. 나는 최근에야 부치로서 장례에 또 하나의 산이 더 있음을 깨달았다.

 

치마는 여자 수의, 바지는 남자 수의?!

 

나는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죽을 수 있을까? 이것은 내가 죽으면 누가 나의 의사대로 장례를 치를 수 있을 것인가와 관련이 있는 문제다.

 

작년에 각별한 동성애자 친구 A가 말기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A는 10년 넘게 동성 파트너와 함께 지냈다. 2년 전, 4기 암 진단을 받고 1년 반 동안 항암치료를 받았다. 치료 과정에서 암 덩어리가 더 이상 줄지 않아 요양병원에 들어갔고, 작년 5월쯤 건강이 급격하게 나빠져서 호스피스 병동을 알아보았다. 하지만 A는 호스피스 병원에 들어가는 것에 거부감이 컸다. 그래서, 대신 친구가 방을 내어 주어 그 집에서 5일 동안 임종을 준비했다.

 

A와 그의 파트너의 친구들은 각자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맡아 A의 마지막을 함께했다. 의사 친구는 A에게 마지막일지 모를 그 기간을 함께 할 방을 내어 주고 그의 건강을 살폈다. 어떤 친구는 A가 좋아하는 미역국을 어머님의 비법으로 끓여주었다. 나는 운전을 해서 옮겨야 할 짐들을 나르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또한, 친구들은 유언장을 쓰기 힘들어하는 A를 위해 함께 모여서 유언장 쓰기 프로그램을 열었다. 마지막일지 모를 인사와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나눌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만들었다. 임종 하루 전날에는 비대면 줌으로 A에게 “너와 함께해서 우리는 너무 행복했다”라는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A는 6월에 그의 어머니와 파트너가 지켜보는 가운데 고통 없이 삶의 마지막을 맞이했다.

 

A의 항암 치료 과정, 병원 입원과 퇴원, 임종의 순간, 그리고 장례를 치르는 모든 과정을 A의 파트너와 친구들이 함께했다. 가족에게 커밍아웃하지는 않았지만, 오랜 시간 옆에서 파트너가 A를 돌보는 모습을 보고 가족들은 장례식장에서 상주와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게 자리를 내어주었다. A는 부치였고 평소에 화장이나 화려한 것을 즐겨 하지 않았으며 단정한 것을 좋아하는 친구였다. 그래서 장례 과정에서 우리가 신경을 쓴 부분 중 하나는 영정 사진을 너무 여성스러운 사진으로 고르지 않을 것, 입관할 때 치마 수의를 입지 않을 것, 색조 화장을 하지 않을 것 등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성별 고정관념이 없는 좋은 장례지도사를 만난 덕분에, A는 화장도 하지 않았고, 바지 수의를 입을 수 있었다. 물론 고인에게 바지 수의를 입히기까지 협의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친구들이 장례지도사에게 고인에게 치마가 아닌 바지 수의를 입히는 것을 제안하자, 그럼 남자 수의를 입어야 한다며 안 된다고 했다. 고인이 살아생전에 치마 입는 것을 워낙 싫어하는 친구였기에 바지 수의를 원한다고 강력하게 요구하자, 가족들과 장례지도사도 결국엔 알겠다며 받아들였다.

 

죽어서도 치마는 여자 수의, 바지는 남자 수의로 정해져서 여자로 태어나면 죽을 때까지 화장을 하고 치마를 입어야 한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죽어서 무슨 옷을 입는지가 뭐가 그리 중요하냐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떤 이의 삶에서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A가 살아생전에 지켜온 ‘부치 자존심’을 지키는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관습에 밀리지 않고, 함께 지켜낸 친구의 장례식

 

장례식장을 떠나 관을 옮기는 운구 과정에서, 보통 운구하는 사람은 상주의 친구나 지인 ‘남성’으로 배치한다. 그러나 A의 친구들은 대부분 여성이었고, 우리가 관을 드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장례절차를 협의했다. 운구차를 운행하는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운전기사님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수많은 장례를 봤지만 여성이 관을 드는 모습은 처음 봅니다. 어떤 일을 하시나요?” 대뜸 직업을 묻길래 모른 척하고 나는 되물었다. “아 여자가 관을 들 수 없나요?” “그럼요. 요즘은 장례가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보통 관을 드는 사람은 남성이지요. 고인이 여성단체에서 일을 많이 하셨나 봐요. 허허허” 이 멋쩍은 웃음엔 우리를 신기하게 보는 듯한 시선이 담겨 있었지만, 나는 우리가 관습에 밀리지 않고 이 순간을 지켜낸 것이 자랑스러웠다. 그렇게 여섯 명의 여성이 친구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했다.

 

▲ 남성이 상주가 되어야 한다거나, 위패나 영정을 남성이 들어야 한다거나, 운구를 남자가 해야 한다는 법(장례법)은 없다. 관습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이미지 출처: pixabay)

 

한국 사회의 장례문화에서 낯설고 이례적인 이런 풍경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A의 투병부터 마지막까지의 시간까지 파트너의 오랜 돌봄 노동이 있었으며 페미니스트, 퀴어 친구들이 그 과정을 함께 해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족들이 친구들의 의견을 수용해 주었기에 절대적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어머님은 자식을 친구들이 진심으로 끝까지 돌보아주는 걸 보았고, 그 과정에서 자신보다도 친구들이 내 자녀가 원하는 바를 더 잘 알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 장례식 과정에서 친구들이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해 준 결과이다.

 

보통 장례에서 무엇이든 결정권은 혈연과 가족들에게 있으며, 친구들이 개입할 여지나 권한은 아예 주어지지 않는다. 특히 상주 역할은 여자에게는 주어지지 않을뿐더러, 하물며 동성 친구에게 자리를 내어 주는 것도 흔하지 않은 일이다. 또한 장례식을 어떤 종교 색으로 할 것인가? 입관할 때 어떤 사람을 들여보낼 것인가? 누가 고인의 영정과 혼백을 들 것인가? 등의 수많은 결정은 고인의 뜻이 제일 중요하지만, 결국 결정하는 것은 남은 가족들이며 장례를 집도하는 장례지도사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어떤 장례지도사를 만나느냐도 정말 중요하다.

 

나중에 장례지도사의 명함을 받고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때 하신 말씀이 인상에 남았다. “남성이 상주가 되거나 위패나 영정을 남성이 들어야 한다거나 운구를 꼭 남자가 해야 한다는 법이 장례법으로 정해져 있지는 않아요. 관례적으로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그 관습을 따라가는 것이죠. 지역마다 장례절차가 다 다르고, 유교적인 문화로서 엄격하게 지키는 지역이 있고, 집안의 문화에 따라 장례문화는 다 달라요. 그리고 현대에 와서는 절차가 많이 간소화되고 많이 바뀌기도 했고요. 무엇보다도 고인이 원하는 모습에 따라 장례가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족들과의 대립이 생겼을 때 저는 고인이 원하는 방식이 제일 중요하다 생각하고 장례에서 많은 결정들을 합니다.”

 

A의 오랜 투병 생활을 지켜보고 죽음을 준비하며 장례를 친구들과 함께 치르게 된 경험은, 내가 죽었을 때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생각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뿐 아니라 이것이 성적소수자 모두가 처한 상황이라는 점에서, 돌봄 시스템과 장례문화를 바꾸는데 인권활동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더 있으리라 생각했다.

 

내가 죽으면 바지 수의를 입을 수 있을까?

 

세상은 여전히 생물학적으로 외부 생식기의 모양으로 성별을 나누고 그 성별에 맞춰서 내가 어떻게 행동하고, 무슨 옷을 입을지, 어떻게 꾸밀지 일일이 지정해 놓는 성역할 고정관념이 강하다. 그중 하나가 장례와 관련된 것인데, 최근엔 이것이 성소수자만이 겪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랑 덕분이다.

 

싱어송라이터이자 작가이기도 한 이랑은 작년 12월에 언니를 떠나보냈다. 이랑은 인스타그램에 “저는 언니의 장례식장에서 상주를 했습니다. 빈소에서 여자는 상주를 못한다 하기에 일단, ‘저 여자 아닙니다.’ 했더니 바로 양복과 완장을 주더군요. 제 복장과 행동을 비난하는 분도 많은 것 같은데 저에겐 언니에게 어울리는 모습으로 장례를 이끄는 것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고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성별과 관계없이 식을 대표하고, 조문객들이 빈소에서 춤추고 노래할 수 있는 장례문화를 만들어 갑시다”라는 글과 함께, 바지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완장을 찬 모습의 사진을 함께 올렸다.

 

그 모습을 보고 큰 울림이 되었다는 댓글과, 아버지 장례식 때 미처 하지 못했는데 이랑님을 보고 힘을 얻었다는 댓글 등 지지와 응원,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댓글들이 줄을 이었다. 가수 이랑의 언니의 장례식에 대한 기사들도 많이 보도되었다. 이랑은 언니의 영정사진도 근엄한 모습이 아닌 반려견과 함께 웃는 사진으로 골랐다. 또한, 장례식장에서 언니가 속해 있던 댄스팀이 함께 춤추는 장면을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장례식의 엄숙주의 문화도 깰 수 있다는 선례를 보여준 것이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흔히, 퀴어들이 모이면 농담처럼 했던 “나의 장례식에서는 너무 슬퍼하지 말고, 무지개 깃발도 걸고 ‘본디스웨이’(Born this way) 노래 틀어줘”라는 말을 실현할 날도 머지않아 올 거라는 희망을 가졌다.

 

사람은 태어나서 내가 입고 싶은 옷, 내가 꾸미고 싶은 모습, 내가 나답게 존재하고 살아가기를 원한다. 하지만 사회는 내가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성별대로 규정 지어진 옷과 모습, 역할을 강요한다. 옷 따위가 뭐라고 이러나 싶다가도, 죽을 때까지 나의 옷을 간섭하는 사회가 징하다 싶기도 하다. 내가 바지를 입을지 치마를 입을지, 사회에서 정해진 관습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모습대로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적어도 내가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바지 정장을 입어도 괜찮을 날이 오길.

 

[필자 소개] 홀릭.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이며,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다.  일다 

 

▶ 애정결핍과 공동의존의 회복 『남은 인생은요?』

 

남은 인생은요?

국계 이민자, 90년생 성sung이 시카고에서 쓴 트라우마 치유 에세이한국과 미국 두 문화를 가로질러 살아가는 세대의 이전에는 없었던 다른 목소리와 놀라운 서사『남은 인생은요?』는 미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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