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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는 없는 머시기마을 이야기③ 우리가 꿈꾸는 공동체

 

“대전에서 이렇게 저렇게 음악하고 계시는 선배, 동료 뮤지션들 있으니까 나도 여기에서 내 속도대로 내 방식대로 길 열심히 만들어보자. 그런 생각을 해요.” -보라글방 1기 유진의 인터뷰 중에서

 

머시기마을이 이길보라 감독에게 요청하여 시작된 보라글방 1기가 끝나고, 2기를 모집하던 시기였다. 보라글방 1기 마지막 수업에서 유진은 6월 말 공연을 앞두고 ‘음악가 유진’의 셀프 인터뷰 글을 올렸다. 대전에서 음악 활동을 하는 자신의 철학을 진솔하게 녹여낸 글이었다. 보라글방 사람들은 인터뷰 글을 흥미롭게 읽으면서 온라인에서만 해왔던 수업을 한 번쯤은 오프라인 모임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서울에 구성원이 많다고 하더라도 이왕이면 탈서울 해서 대전에서 모이자고, 마침 대전에서 열리는 유진의 공연을 함께 보자고 했다.

 

▲ 대전에서 열린 유진의 공연이 끝난 후, 유진과 이길보라 감독, 머시기마을 사람들.  ©머시기마을

 

머시기마을 사람들은 신나게 다음 꿍꿍이를 준비했다. 이른바 대전에서 열리는 머시기마을 준비위원회. 앞으로 머시기마을이 어떻게 활동하면 좋을지, 어떤 철학으로 운영되면 좋을지 솔직하게 대화를 나누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다. 포스트잇에 의견을 각자 써서 한눈에 논의 내용이 들어오게 하는 회의를 기획했고 머시기마을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시간도 준비했다. 머시기마을 준비위원회를 꾸리며 나에게 머시기마을이 어떤 의미인지 다시 생각해보았다.

 

대학에 안 가도, 퀴어여도 머시기마을에선 괜찮아

 

나는 비진학을 6년 한 청년이며, 정체화한 퀴어다. 중학교에서 왕따를 경험하면서 제도권 교육이 얼마나 폭력에 무감한지 알게 되었다. 제도권 학교를 탈출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학 밖의 삶을 선택했다. 좋아하는 글쓰기와 문학을 공부하며 즐겁기보단 위축되는 날이 더 많았다. 대학 밖에는 교육 공간이 많지 않았고, 그나마 있는 사설 교육기관에서는 수강생들과 작가들이 중졸 청년이 글을 쓰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한 작가는 특이한 소재를 글감으로 사용해보라며 트랜스젠더를 그 예시로 들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한 또래 친구들을 보면 열등감이 들어서, 결국 입시에 도전했다. 제도권 교육의 시선에서 보았을 때, 나는 2년째 입시에 떨어지는 무능력한 사람이다. 그 와중에도 다만, 머시기마을 친구들과 노는 것은 즐거웠다. 대안학교 친구들, 퀴어 친구들, 비건 친구들과 허물없이 어울렸다. 머시기마을의 관점에서 보면 그냥 하윤은 글을 쓰는 사람이고 작곡을 하는 사람이었다. 여기선 내가 조금씩 편하고 좋은 사람으로 보이니까, 머시기마을에 애정을 가지고 지금까지 함께하는 것 같다. 올해 또 대학에 떨어져도 머시기마을에 평소 같은 표정으로 돌아올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머시기마을 사람들이 차별금지법제정연대와 함께하는 수어 영상을 찍기로 의견을 모으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지지하는 수어 영상을 찍었다.

 

나는 머시기마을을 다른 친구들에게 소개할 때 자주 들었던 질문들을 떠올려보았다. “머시기마을은 어디에 있어?”, “뭐 하는 곳이야?”, “구성원은 어떤 사람들이야?” 나도 덩달아 궁금해졌다. 머시기마을이 진짜 마을이 된다면, 거점의 공간과 거점으로 삼을 수 있는 철학이 생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절기 의례처럼, 머시기마을도 철마다 ‘생존 신고’를 한다. 소규모 모임, 자조 모임을 하며 고립을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어딘가에 공동의 거점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탈성장을 위한 다양한 대안 경제를 실험해볼 수 있다. 공동체를 지속하기 위해서 핵심 원칙과 철학을 만들 수 있다. 구성원들끼리 갈등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갈등은 긴장감이나 불안함 대신, 사회에서 내면화된 신념과 수치심을 마주하며 서로 돌보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어디까지 함께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혐오가 난무하는 현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20대로서 느끼는 외로움이 좀 더 견딜만한 것처럼 느껴졌다.

 

텃밭, 장터, 빵집, 머시기 아카데미까지…

 

대전 녹색연합 공간에서 보라글방과 머시기마을 친구들이 모였다. 보라글방에서 온라인으로만 만났던 사람들은 모니터 속 인물들을 실제로 만난 일이 신기하고 반갑다고 했다. 준비한 PPT를 화면에 띄웠고 넓은 책상 위에 필기구, 포스트잇들을 늘어놓았다.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고 싶어서 “의성어와 의태어로 인사 나누기”를 했다. 경직된 자기소개 대신 몸짓과 소리의 낱말들로 자신을 소개하는 방법이었다. 누군가는 자신을 “꼬물꼬물”로 소개했고 누군가는 “야옹야옹”으로 소개했다. 어색한 분위기가 조금씩 풀렸다.

 

“머시기마을에 함께하며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다양성은 어떻게 연결될까요? 우리의 다양성은 어떻게 세력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에게 이미 있는 자원은 무엇일까요? 번아웃이 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지구와 돈과 권위와 어떻게 관계 맺을 수 있을까요?” -머시기마을 준비위원회 발제문 중에서

 

▲ 머시기마을은 어떤 곳이면 좋을까? 머시기마을 사람들이 열심히 적고 모아서 펼쳐놓은 포스트잇들.  ©머시기마을

 

포스트잇에 아이디어를 적어서 둘러앉은 책상에 붙였다. 아이디어에 한 아이디어가 덧붙여지며 책상이 빽빽해졌다. 머시기마을에 대한 바람은 다양하고 복합적이었다. 그래도 마치 한 사람이 하는 말처럼 비슷한 결이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서기가 되어 사람들의 대화를 기록했다.

 

“다양한 사람들과 생명이 숲에서 공존했으면 좋겠어./ 자급자족 텃밭에서 자연농을 하고 수확물을 나누는 장터가 있으면 좋겠어./ 잡지도 만들고 인문학 사회과학 수업도 열리는 머시기 아카데미가 있었으면 좋겠어. 그 옆에 빵집도 있고 책방도 있고./ 대안 공동체인 인도 오로빌에서는 재능을 나누는 방식으로 마을을 운영한다고 해. 칠판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적고 커뮤니티 센터에서 마을 사람들과 그것들로 교류를 하는 거지./ 미래의 머시기마을에선 여러 세대가 다양한 형태의 가족 구성으로 살아가는데 서로를 돌보는 공간이야.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애인 말고, 불리고 싶은 별명으로 부르는 공간이었으면 좋겠어./ 협동조합을 만들고 싶어.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동체가 지속되기 위해선 수익구조가 필요하니까.”

 

구체적으로 만들고 싶은 마을의 공간과 시스템을 제안하기도 했고 마을이 추구해야 할 방향과 지향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권위주의 사회에선 한 사람이 비진학 청년, 퀴어, 여성, 소수자 등등으로 읽히지만, 머시기마을에서는 글 쓰는 사람, 노래하는 사람,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되지. 그러한 방식으로 권위를 회복하고 정상성에 질문을 던지자./ 한국 사회에서 강요되는 가치와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면 쉽게 배제됐어. 서로를 그렇게 대하지 말았으면. 머시기마을이 마이크를 움켜쥐고 한국 사회에 메시지를 전했으면 좋겠어./ 다양성은 세력이 되기 어려운 것 같아. 한 팀으로 잘 안 뭉쳐지는 느낌. 어떻게 함께 할 수 있을까? 세력화되어 좀 더 나아갔으면 좋겠어./ 탈 서울과 탈 중심주의도 생각해봤으면 좋겠어./ 공동체 안에서 사람들끼리 갈등이 생기고 지쳤을 때 잘 회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공동체의 지속성은 개인이 느끼는 안전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새로 오는 사람들을 방어하지 않고 누군가 떠날 때 응원하는 사람들. 간판이 따로 없어서 쉽게 오갈 수 있는 공동체. 느슨한 마을.”

 

▲ 권위주의와 가부장제에 균열을 낼 수 있도록, 머시기마을 사람들은 마이크를 쥐고 지워진 존재들의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

 

회의를 마친 후에 유진의 공연을 보러 가면서 누군가 물었다. 10년 후의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여러 사람이 제각기 이야기하느라 미처 적어두지는 못했지만 한 명의 낭랑한 목소리는 기억에 남는다. “정상성에다가 질문할 수 있는 중년이 되고 싶어. 질문을 잘하는 어른이 되고 싶어.” 다른 친구들이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유진의 공연 시간이 다가왔다. 대흥동에는 저녁 바람이 선선했고 하늘에 반달이 떴다. 무대와 가까운 자리에 앉아서 유진이 기타를 튜닝하고 마이크 테스트하는 모습을 보았다. 끝나고 싸인 받을 유진의 앨범을 쥐고, 노래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유진의 목소리에 환호하고 기뻐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필자 소개] 하윤: 글 쓰고 곡 쓰는 사람. 비진학 청년이다. 농담을 잘하고픈 퀴어.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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