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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은 시(市) 주최로 ‘여성능력개발 경진대회’가 있던 날이었다. 이 대회는 꽃꽂이, 서예, 수채화, 유화, 글쓰기 등의 분야로 나눠 여성의 능력을 평가한다. 벌써 23년 된 행사란다. 요즘은 이주여성 한국어 글쓰기 부문도 첨가되어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난 수채화 부문에 참여했다. 꼭 무슨 상을 타야겠다는 마음으로 참여한 것은 아니다. 그저 학창시절, 해마다 벌였던 사생대회가 생각났고, 그 시절로 돌아가 사생대회를 즐기고 싶은 마음이 슬며시 고개를 들어, 신청서에 이름을 썼다. 게다가 나는 구청에서 운영하는 문화센터에서 수채화를 배우고 있었다. 수채화를 배운 지는 꼭 1년이 된다.
 
어린 시절, 한 사생대회에서 미술부에 있는 같은 반 아이가 자리를 잡자마자 그림을 그리기 위해 ‘야외용 이젤’을 폈는데, 그때 처음으로 이런 이젤도 있다는 걸 알았다. 그렇게 이젤이 흔하던 시절이 아니었다. 나는 ‘와, 세상에 저런 걸 놓고 그림을 그리는구나!’ 생각했는데, 화가가 되고 싶은 꿈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림을 즐겨 그리는 것은 더 더욱 아닌데도 야외용 이젤은 ‘나도 저런 걸 놓고 그림을 그리면 정말 멋지겠다’는 부러운 감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때가 생각나, 수채화를 배우기 시작한 지 얼마 안돼 야외용 이젤부터 장만했다. 하지만 막상 야외로 그림을 그리러 나갈 때는 무겁다는 핑계로 한번도 그걸 들고 나가지는 않았다. 그날 사생대회에도 이젤은 제쳐놓고 시시한 스티로폴 판을 덜렁덜렁 들고 대회에 참석했다.
 
학창시절에도 이런 대회에서 열심히 뭔가를 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공원 한 켠에서 그림을 그리는 건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우리 학교는 사생대회와 백일장을 동시에 실시했고, 그 가운데 마음에 드는 부문에 참여할 수 있었다. 나는 항상 백일장에 참여했다. 그림은 잘 그리지도 못하는 데다가 화판이며, 물감, 물통 등등,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준비해 갈 것이 너무 많았다. 그러나 백일장은 원고지와 연필만 가지고 가면 돼, 간편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나는 당시에도 글은 곧잘 쓰는 편이었지만, 백일장에서 상은 한번도 타지 못했다. 그것은 어린이대공원이나 고궁 같은, 대회가 열리는 장소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친구들과 놀이동산에서 바이킹을 타거나 민속박물관 같은 데를 재미있게 구경하며, 소풍을 즐기다가 마감하기 한 20~30분을 남겨 놓고 아주 급하게 원고지 장수를 채워 대강대강 글을 써 던져놓고 오곤 했다. 그래서 사생대회는 늘 소풍만큼 즐거운 날이었다.
 
물론, 이번에도 난 사생대회가 끝난 뒤에는 공원 주변에서 토요일마다 열리는 알뜰벼룩시장을 순례하는 걸 잊지 않았다. 사생대회 주변의 즐거운 놀 거리를 놓칠 수야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주어진 시간 내내 정말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이렇게 사생대회를 성실하게 참여한 것은 처음이다.
 
지나온 어린 시절이나 학창 시절을 생각하면, 마음 무겁고 괴로웠던 순간들이 참 많다. 그러나 그것들을 살짝살짝 헤집어 보면 그 사이사이 재미있는 것들이 자꾸 기억나는데, ‘내가 이래서 나이가 들었구나’ 생각한다.
 
선생님들이 아무리 막아도 쉬는 시간에는 도시락을 까먹고, 청소가 단 10분이라도 빨리 끝나면 음악실로 내 손을 끌고 가 피아노를 연주해주던 한 단짝친구. 그때 깔깔거리며 내달리던 소녀들의 웃음소리를 그림을 그리면서 들은 것도 같다.
 
이렇게 어린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걸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당장 소풍이라도 가보면 어떨까? 
정인진 일다 www.ildaro.com [교육일기] ‘서른 살 아이’가 선물로 받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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