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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으로 다시 듣기] 화제의 앨범 『Skin』 발표한 조이 크룩스 

▲ 영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1998년생 음악가 조이 크룩스(Joy Crookes)의 EP “Influence”(2017, File) 커버

 

영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1998년생 음악가 조이 크룩스(Joy Crookes)가 처음 세상에 알려진 것은 2017년 즈음이다. 당시 그는 첫 EP를 내고 유명 유튜브 채널인 컬러스(COLORS)에서 라이브 클립을 선보이며 조금씩 음악 팬들 사이에 이름을 알렸다. 2019년에는 BBC는 물론 글라스톤베리 무대에도 섰고, 해마다 가능성 있는 신인을 선정하는 ‘BBC Sound of’의 2020년 리스트에 4위로 올랐다. 그 해에만 두 장의 EP를 냈고, 2020년에는 영국의 대중음악 시상식 브릿 어워즈에 라이징 스타 부문 후보로 올랐다.

 

조이 크룩스는 사실상 데뷔와 동시에 주목을 받은 뮤지션이다. 다시 음악적으로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영국의 상황과 데뷔 시기가 맞아떨어졌고, 이 시기에 어울리는 얼터너티브한 매력의 음악을 선보였다. 의미 있는 화두도 많이 던졌다. 처음 곡을 발표할 즈음에는 솔직한 감정 표현을 선보이는 정도였지만, 2019년이 넘어가며 음악적으로 성장하며 음악가 본인 역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정체성에 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자신이 겪고 있는 모든 것들을 면밀하게 바라보게 되었고, 그것이 음악과 SNS 등을 통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조이 크룩스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이야기들이 있다. 첫째는 그가 방글라데시계-아일랜드계-영국인이라는 점이다. 어머니는 방글라데시 다카 사람이고, 아버지는 아일랜드인이다. 그래서 그는 아일랜드와 방글라데시의 매우 다른 문화적 배경을 모두 흡수했다.

 

둘째는 그가 남부 런던 사람이라는 점이다. 이민자의 도시이지만 여전히 인종주의가 만연한 런던의 남부에서 살아온 그는 내내 인종차별에 시달렸다. 아시아인으로서의 디아스포라[본토를 떠나 타국에서 살아가는 집단의 정체성]와, 인종차별을 겪으며 성장한 이의 정체성이 강하게 자리잡은 것이다.

 

▲ 영국 음악계에서 떠오르는 스타로 주목 받는 조이 크룩스(Joy Crookes)는 올해 발매한 첫 정규앨범 『Skin』에서 방글라데시계-아일랜드계-영국인으로서 정체성을 뚜렷하게 드러내었다. (사진 출처: Joy Crookes twitter)

 

여기에 젠트리피케이션[도시 재개발로 땅과 집값이 뛰고 세입자와 영세민 등이 밀려나는 현상]과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세대 갈등까지 조이 크룩스는 자신이 온몸으로 겪고 있는 문제들을 음악으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가 자양분으로 삼을 수 있는 음악도 많았다. 아일랜드 특유의 전통음악부터 방글라데시 음악, 남부 런던 특유의 소울 음악이나 실험적인 색채도 음악적 바탕이 되었다.

 

그 결과, 올해 발표된 그의 첫 정규 앨범인 『Skin』에서는 소울풀한, 고전적 매력이 있으면서도 다채로운 편곡으로 멋진 음악적 성과를 냈다. 이전까지 계속 싱글을 발표하며 파편적인 형태로 세상을 향해 질문을 던져왔다면, 이번 정규 앨범에서 그 질문들이 하나의 결로 묶이며 좀더 명확하게 드러났다.

 

“내가 알지 못하는 영화관의 스카이라인, 이 거리에서 삶을 벗겨내, 일광 강도야”(19th Floor)와 같은 가사는 자신의 고향이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완전히 바뀐 것에 현기증을 느끼는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

 

또 2019년 12월 영국 총선에서 보수당이 압도적인 승리를 가져가자, 그는 “Kingdom”이라는 곡을 통해 비판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이 곡은 특히 세대 간의 격차와 브렉시트[Brexit: 영국 Britain+ 나간다 exit의 합성어로,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뜻함] 등 영국 사회의 갈등과 문제점을 고스란히 담았다.

 

“한 나라의 비탄으로 도박하기

 역에서 유로화 나누기

 빵과 버터를 사러 은행 방문하기 

 우리가 고통을 겪을 때 의사를 만나고 싶지 않다

 우울해 하는 이웃이 있다고 생각해

 근데 그게 증상일수도

 널 위해 싸우지 않는 왕국을 엿먹여”

-조이 크룩스, Kingdom 중에서

 

▲ 조이 크룩스(Joy Crookes)의 싱글 “Feet Don't Fail Me Now” 커버

 

특히 주목하게 되는 것은 “Feet Don’t Fail Me Now”의 뮤직비디오다. 이 곡의 내용은 온라인 액션의 명과 암부터 ‘캔슬 컬처’(cancel culture: 온라인 상에서 유명한 사람이 자신의 입장과 다를 때 팔로우를 취소하고 손절하는 것을 넘어, 그 사람을 끌어내리는 움직임)의 명과 암을 다루고 있다. 그러면서도 조이 크룩스는 “대화를 시작하고, 목소리를 높이고, 실수를 하세요. 괜찮습니다. 그래야 발전이 이루어집니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자신의 트위터 계정과 DIY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도 한 이야기다.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이야기할 때 ‘캔슬 컬처’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생겨나지만, 용기를 가지고 공부하며 입장을 명확하게 밝힐 수 있을 만큼 생각하겠다는 이야기도 담겨 있다.

 

“내가 무서웠나 봐

 발아, 이제 나를 실망시키지 마

 나는 내 입장을 견지해야 해

 그리고 비록 내가 노력한 것에 대해 비난을 받지만”

- Feet Don’t Fail Me Now 중에서

 

*조이 크룩스 “Feet Don’t Fail Me Now” 뮤직비디오 https://youtube.com/watch?v=xLFCcnYSCyE

 

“Feet Don’t Fail Me Now”의 뮤직비디오는 방글라데시 문화를 담고 있다. 그러면서도 단체 샷을 많이 사용해 하나의 사회적 그룹 안에 자신이 속해 있다는 것을 상징하고, 동시에 그룹 안에 개인이 숨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려고 했다고 한다.

 

또한 전통의상인 샤리를 입으면서도, 과부를 상징하는 하얀 사리를 입고 오토바이를 맹렬하게 타는 모습은 남편과 사별한 여성을 터부시하는 가부장적 문화에 균열을 가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 뮤직비디오에도 조이 크룩스는 다양한 의미를 담았는데, 방글라데시 여성들이 직접행동에 가담하거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여전히 어렵다는 것을 아는 그는 영상을 통해 그러한 현실을 알리고 비판적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한편 “당신은 내가 필요한 전부야, 하지만 우린 매번 싸우지, 유유상종이라며, 당신의 고민도 나와 똑같아”(Trouble)와 같은 가사는 가족과의 갈등을 묘사한다. 이를 뮤직비디오로도 풀어냈는데, 그 안에는 계층과 보수적 문화에 대한 전복을 상징하는 모습을 담았다. 미국에 카우보이가 있다면 영국에는 기사가 있다. 미국 싱어송라이터들은 가장 보수적인 백인 이미지를 상징하는 카우보이의 이미지를 전복시키며 스스로가 카우보이가 되는 것을 자처했는데, 조이 크룩스는 영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백인 이미지를 상징하는 기사가 되는가 하면 기존의 기사와의 대결에서 승리를 거두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물론 실제로 승리하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는 자신의 의지를 뮤직비디오에서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조이 크룩스 “Trouble“ 뮤직비디오 https://youtube.com/watch?v=CpjiSV3NwlA

 

『Skin』 앨범에는 사랑하는(혹은 사랑했던) 사람과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앨범은 이전까지 해왔던 사회적 질문을 자신의 정체성을 중심으로 한데 엮고 작품성과 완성도를 더하여 좀 더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앨범명과 같은 제목의 곡 “Skin”에는 “당신에게 주어진 피부는 살기 위해 만들어진 것임을 모릅니까?”라는 가사가 있다. 피부는 우리 몸의 일부이며 꼭 필요한 기능을 하고 있는데, 사회적으로 그것이 불평등한 위치를 만들고 그것으로 사람을 구분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질문이다. 동시에 피부는 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고, 피부가 있다는 건 살아있다는 것이며, 또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 “당신에게 주어진 피부는 살기 위해 만들어진 것임을 모릅니까?”(앨범과 같은 제목의 곡 Skin 가사 중) 조이 크룩스(Joy Crookes)의 첫 정규음반 『Skin』(2021) 커버

 

조이 크룩스는 다양한 정체성을 고민하며 정신적, 음악적 성장을 가감없이 보여줬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음악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고 여러 자극을 받고 있다. 이 뛰어난 음악가의 여정이 이제 시작 단계라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참고자료]

-영국 매거진 <애딕티드> “조이 크룩스의 데뷔 앨범 Skin과 정체성, 그리고 정직하게 곡을 쓰는 것”(카산드라 포페스쿠), 2021년 10월 15일자

-독일 라디오 ego FM, 조이 크룩스 인터뷰(맥스 클레먼트), 2021년 10월 20일

-영국 언론사 <아이뉴스> “조이 크룩스: '내가 만든 음악이 창피했다. 나는 사람들이 갈색 소녀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두려웠다’”(알리 셔틀러), 2021년 10월 15일자

-아일랜드 문화 매거진 <디스트릭트> “조이 크룩스는 아일랜드 뿌리를 받아들이고 있다”, 2019년 10월 4일자

-영국 음악잡지 DIY, 조이 크룩스가 새 싱글 “Feet Don’t Fail Me Now” 공개하다, 2021년 6월 18일자

-영국 BBC 뉴스, “조이 크룩스, 고양이, 그리고 영혼이 담긴 지혜의 앨범”(마크 새비지) 2021년 10월 17일자

-런던 인디펜던트 음악 잡지 <더 라인 오브 베스트 핏>, “조이 크룩스가 타이틀곡 “Skin”과 함께 데뷔 앨범을 알리다”(세리스 케널리), 2021년 8월 6일자

 

필자 소개: 블럭. 프리랜서 디렉터, 에디터, 칼럼니스트.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국내외 여러 음악에 관하여 국내외 매체에 쓴다. 저서로 『노래하는 페미니즘』이 있다.  [일다] 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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