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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그 이후의 삶> 직장내 성희롱 사건 ‘이긴 싸움’의 기록

 

젠더폭력 생존자들이 기록하는 <폭력 그 이후의 삶> 연재는 젠더폭력을 단지 하나의 사건으로 바라보지 않고, 그 이후에도 계속되는 피해와 저항과 생존의 이야기에 주목합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 직장내 성희롱 사건을 사장에게 알린 후, 난생처음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 조사를 받고 법률자문을 구하고 원청에 연락해 보호를 요청하고 고용노동부와 지방노동위원회에 진정을 넣고 고용평등상담실에 상담을 요청하고 정신과 진료를 받고… 10개월 간 고군분투하며 이 사건에 나의 모든 에너지를 쏟았다. (일러스트 제작: 두두사띠)

 

공공기관 콜센터에서 일하다 겪은 일

 

어떤 말부터 시작해야 할까. 그 일은 공공기관 콜센터에서 벌어졌다.

 

짧은 치마를 입고 출근했던 날이었다. 옆자리 선배에게 모르는 내용을 질문했는데, 그의 시선은 내 얼굴을 보는 것이 아니라 허벅지 사이에 노골적으로 머물렀다. 커다란 노트를 쫙 펼쳐서 그의 시선을 차단해야 했다. 아무 일 없다는 듯, 내가 질문한 것에 계속 답하는 그를 보며 너무 황당했다. 그는 우리 콜센터 상담원 7명 중 유일한 남성이며, 사장의 아들이었다.

 

다음 날, 다른 상담원들에게 어제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놀랍게도 다들 이런 일을 겪었다고 했다. 갓 들어온 신입사원 한 명을 제외한 여성 상담원 전부가 성희롱의 피해자였다. 몇 년 동안이나 그는 같이 일하는 여성들의 몸을 뚫어지게 보거나 위아래로 훑어봤다고 한다.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였다. 그대로 두면 피해자가 끊임없이 나올 것이었다.

 

다음날 사장을 독대했다. 사장의 아들이 직장 내 성희롱을 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피해자와 가해자의 분리, 객관적인 조사, 공식적인 징계를 요청했다. 사장은 자신이 아들을 잘못 키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서른 넘은 아들의 행동은 (부모가 아닌) 본인 책임이지만 직장 내 성희롱, 성폭력은 사장님 책임이라고 말했다.

 

사장은 나와 면담을 마치고는 아들을 데리고 콜센터를 떠났다. 그 이후로 가해자를 볼 일은 없었다. 다른 직원들은 그저 사장이 아들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나는 가해자와 분리조치가 잘 이루어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건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 성희롱 피해를 공개한 이후 내게 닥친 일들에 대해, 하루 하루 글로 적으며 상황을 정리했다.  ©보라

 

명예훼손 고소, 동료들의 따돌림, 해고통지서까지

 

다음 근무일 아침 조회에서, 사장은 자신의 아들이 변호사를 고용했으며 나를 검찰에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고 전 직원에게 공지했다. 물론 직원들은 분개했다. 나는 사장에게 혹시 아드님께 변호사 비용 지원해주셨다면 저한테도 변호사를 지원해주셔야 한다고 요구했다. 사장은 아들이 단독적으로 진행한 일이고 자신은 잘 모른다면서, 사건을 객관적으로 조사할 수 있는 곳을 찾고 있으니 기다려 달라고 했다.

 

첫 번째로 우리 콜센터의 원청에 요청했으나 원청에서는 그럴 권리가 없다며 발을 뺐다. 노무법인을 통한 조사는 그 비용을 지불할 사람이 사장이기에 객관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거절하였다. 여러 여성단체와 관련 기관에도 전화해봤지만 조사해줄 곳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우리는 조사를 포기했고, 사장은 가해자를 해고했다고 공지하였다. 그러나 그건 거짓이었다. 가해자는 재택 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의 업무실적이 콜 시스템에서 생중계되었다.

 

나는 명예훼손으로 고소되었기 때문에 형사과가 아니라 경제과에서 조사를 받았다. 연차를 쓰지 않고, 성폭력 피해자가 쓸 수 있는 유급휴가를 신청하여 경찰 조사에 응했다. 수십 명의 경찰관과 수십 명의 민원인이 어우러진 시끄러운 공간에서 목청 높여 대답해야 했다. “그러니까요! 그 사람이 사장 아들인데요! 저한테 일 가르쳐준다고요! 제 허벅지 사이를 뚫어지게 쳐다봤어요!” 2시간이 넘도록 신뢰관계인 동석도 없이 나 혼자 부들부들 몸을 떨어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명예훼손은 불기소 결정이 나왔다. 당연한 일이었다.

 

▲ 성희롱 가해자에게 당한 명예훼손 고소에 대해, 검찰청으로부터 받은 ‘무혐의’ 처분 안내 문자

 

나는 콜센터를 그만두지 않고 계속 다녔다. 내겐 절실한 직장이었다. 권한이 있는 공공기관인 원청을 통해 보호를 받고 싶었다. 직장내 성희롱 사건에서 원청은 책임이 없는지 알고 싶어서, 콜센터와 원청의 계약서를 살펴봤다. 뜻밖에도 그 과정에서 불법 재하도급 계약이 체결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어쩐지 사장이 알려준 우리 회사 이름이 두 개였다. 사장은 자신을 이사라고 부르라고 했었다.

 

원청에 메일을 보냈다. 그들은 불법계약이 확실해 보이지만 처리하는 데 시일이 걸릴 것이라 예고하고, 위로하며, 저녁밥을 사주었다. 시일은 정말 오래 걸렸다. 일주일, 한 달, 두 달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었다. 나는 계속 시들어갔다.

 

무엇보다 힘든 건, 처음에는 날 도와주던 직장동료들이 점차 돌아선 것이었다. 사장은 새로운 행정업무를 추가하여 업무량을 늘렸다. 사람들은 일에 허덕였고, 전부 나 때문인 것처럼 되어갔다. 근무시간 중 일주일에 두어 시간, 내가 성폭력 피해자 유급휴가를 이용하여 고용평등실로 상담을 받으러 간 게 밉다고 했다. 업무공지를 나한테만 생략하는 등 교묘하게 날 배척했다. 그럴수록 나는 열심히 일했다. 전화를 많이 받았다. 모든 콜을 굉장히 상냥하게 받았고, 틀린 정보를 전달하지 않으려 심혈을 기울였다. 퇴근 시간이 되면 다리에 힘이 없어서 일어나지 못할 정도였다.

 

그렇게 버텼지만, 입사 4개월 만에 해고통지서를 받았다. 불법 재하도급 계약에 대한 처분으로 원청과 용역계약이 해지된 것이다. 이런 경우 직원들은 고용이 승계되지만, 이번에도 나만 제외됐다. 다른 상담원들은 내 앞에서 자신도 해고 당했다고 연기했다. 나만 고용승계가 되지 않는 것이 부당하다고 원청에 문의했으나, 자신들이 어찌할 도리가 없다며 손을 놓았다.

 

무고죄 고소, 노동부 진정…하나하나 절차를 밟다

 

해고를 당한 이후, 나는 사건 해결을 위해 여러 절차를 밟았다. 첫째, 가해자를 무고죄로 고소했다. 그의 명예훼손 고소는 직장 내 성폭력 처리절차를 방해했다. 또 아버지를 통해 고소사실을 아침 조회 시간에 공표한 것은, 피해자인 나뿐 아니라 다른 상담원들을 압박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 부당해고를 당하고, 집에서 하루 종일 한 일들을 카톡 메시지에 담아 애인에게 자랑했다. 내 곁에 나를 지지하는 친구들, 애인, 지인들이 있다는 것이 큰 힘이 됐다.

 

둘째, 고용노동부에도 진정을 넣었다. 회사는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을 조사하지 않았으며, 가해자를 해고했다고 거짓말했다. 성폭력 예방교육은 창업 이래 단 한 번도 시행하지 않았다. 그런데, 노동부 진정은 쉽지 않았다. 3시간 진술하였음에도 내 조서는 A4용지 단 한 장이었으며 직장 내 성희롱은 언급조차 없었다. 근로감독관은 내게 끊임없는 위로를 건넸다. 이 조서에도 내가 겪은 일이 적히지 않는다면, 그 어디에도 남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신체접촉이 없는 성희롱은 경찰에 신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여성노동자회에서 법률 동행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서 도움을 받았다. 근로감독관에게 전화하여 노무사님과 동행하여 다시 진술하겠다고 했더니 펄펄 날뛰었다. “이런 일 가지고 그렇게까지 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못 봤어요, 정말 유별나시네요!” 노무사님과 동석해 재진술을 할 때에도 근로감독관은 내 피해사실을 조서에 기재하지 않으려 했다. 결국 완성된 조서를 받아 들고 노무사님이 볼펜으로 30분 넘게 조서를 수정하고 나서야, 내 사건은 조서에 기록될 수 있었다.

 

셋째,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넣었다. 사장은 사업장 폐쇄를 이유로 나를 해고하였으나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다. 사장은 여러 개의 콜센터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의 사업장이 폐쇄되는 경우, 나를 다른 콜센터에 배치했어야 된다. 그러나 전환배치에 대해 논의하는 등의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 사장은 나에게 수많은 거짓말을 했듯 노동위원회 심판관들에게도 수많은 거짓말을 했다. 여러 거짓말들이 심판장에서 밝혀졌고, 그렇게 부당해고 구제심판을 이겼다.

 

책임도 사과도 없는 합의 

 

고용노동부에서는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 미실시로 인한 과태료 500만 원이 책정되었고, 부당해고 구제심판에서는 내가 해고당하지 않고 지금까지 일했다면 받아야 했을 임금 950만 원이 배상액으로 책정되었다.

 

▲ 지방노동위원회에서 받은 우편물. 내가 이런 우편물을 받다니, 조금 신기했다.

 

사장은 합의를 요구했다. 무고 혐의로 아들을 형사 고소한 건과,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 미실시 관련한 고용노동부 진정 건, 그리고 부당해고 구제심판 배상액까지 합쳐 취하해달라며 합의금을 제시했다. 사과는 없었다.

 

사건 발생부터 합의까지 10개월.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한 뒤 법률자문을 구하고, 태어나 처음으로 경찰에 출석하여 조사를 받고, 고용노동부와 지방노동위가 무엇인지 공부하고 수많은 사이트를 검색하고 콜센터에 전화하고, 몇 번씩이나 내 사건을 글로 정리하고 인적 사항을 기재하고, 고용평등상담실에 상담을 받으러 다니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보고, 정신과 진료를 받고,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고마워하고 미안해하는 것까지 정말 많은 에너지를 이 사건에 쏟아부었다.

 

합의금은 내겐 너무 적은 돈이었다. 1년이 지나 글을 쓰는 지금도 이렇게 눈물이 나고 힘들다. 마음고생을 너무 많이 했다. 그래도 받았다. 내 피해를 보상받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피해자는 많은 일을 해야 한다. 그 돈은 그간 피해구제를 위해 내가 했던 작업에 대한 임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청의 문제는 국감으로

 

합의로 사건이 끝났어도, 여전히 원청의 책임은 남아있었다. 책임을 회피하는, 힘 있는 자들의 위로가 얼마나 기만적인지 뼈 아프도록 느꼈다.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고위직 사람들의 행태를 참을 수가 없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고, 소관 부서에 민원을 넣었지만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없었다. 나는 이 사건을 국회로 보냈다. 산업자원부 상임위 소속 국회의원이 내 사건에 관심을 가져주어, 원청 기관장이 국감장으로 불려나갔다. 기관장은 불법 재하도급 용역계약을 수년째 인지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사과했다. 물론 이 불법계약의 희생양이 된 나에게 사과하지는 않았지만, 국회에서 내 사건이 다뤄진 것은 참 좋은 경험이었다. 내 사건이 ‘공적인 일’임을 증명하는 것이었으니까.

 

성폭력은 힘을 모아서 해결해야 하는 ‘정치적인 일’이다

 

지금 나는 지방의 한 성폭력상담소에 취직해서 일하고 있다.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해결방법을 찾는 것이 나의 일이다. 내 월급은 세금에서 나온다. 덕분에 월급을 받을 때마다 성폭력은 국가와 사회의 책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 서울동북여성민우회에서 주최한 100시간 ‘성폭력 전문 상담원 교육’ 자료집과,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주최한 ‘조직 내 사건지원자 역량강화교육’ 자료집. 표지만 봐도 ‘네 탓이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매일 만나는 피해자들에게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모두 해준다. “성폭력은 당신의 탓이 아니며, 지금이 너무 힘들겠지만 이 일은 분명히 끝납니다.” 성폭력이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얘기에는 누구나 동의하겠지만, 막상 사건이 발생하면 그렇지 않다. 나조차도 ‘그 날 짧은 치마를 입지 않았다면…’ 하는 자책을 떨쳐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미 상처 받은 마음들에 가 닿도록 수십 번, 수백 번 반복해서 말해야 한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의 사건이 정치적으로 이용될까 봐 걱정한다. 내 생각은 다르다. 정치를 벗어나기는 어렵다. 성폭력 자체가 이미 정치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힘이 필요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성폭력 피해자 단 한 명의 힘으로는 부족하기에, 연대가 필수적이다.

 

직장내 성희롱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은 30년 넘는 인생을 일단락하며 기말고사를 보는 것 같았다. 평소 인권과 여성의 삶에 관심이 많았기에 성폭력 문제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편이었으며, 정책을 공부하며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조금은 알고 있었다. 이런 모든 것들이 도움이 되었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이나 사람도 많이 알고 있는 편이었다. 해고를 당했지만 다른 일을 찾아볼 수 있었다. 다른 피해자들이 겪은 경험을 글과 영상으로 공유 받았고, 고립되지 않도록 내 곁에는 친구들과 애인이 있었다. 성폭력과 싸워온 여성들의 역사가 만든 고용평등 법률을 통해 법적 근거를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이길 수 있었다.

 

누구에게나 인생에는 고비가 찾아온다. 직장 내 성희롱, 성폭력도 그런 일이었다. 상처가 남았고,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남겼지만, 결국 그 사건은 지나갔다. (보라) 

 

출처: 성희롱 가해자가 사장님의 아들이었다 - 일다 - https://ildaro.com/9177

 

 

당신의 연애는 안전한가요

데이트 초기부터 헤어짐, 이별 후 과정까지 피해자의 눈으로 낱낱이 재해석하며, 데이트폭력이 일어나는 과정을 속 시원하게 보여주며 데이트폭력의 전모를 밝힌 책이다. 책의 전체 구성은 연

www.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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