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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말하는 기후위기>② 기후위기X교육농

 

지난 9월 16일, 여성환경연대에서 주최한 제6회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컨퍼런스가 ‘여성X기후위기’를 주제로 열렸다. 서울시 성평등기금 지원을 받아 진행된 이 행사에서, 기후위기 시대에 대안을 찾고 실천하는 5명의 여성들이 강의한 내용을 연속 기고를 통해 소개한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지속가능한 세상을 위한 교육, ‘교육농’

 

교육농협동조합에 대해 소개하고 싶다. 정식으로 인가를 받은 협동조합은 아니지만, 농업을 공부하고 배움을 나누는 교사와 농부, 활동가들이 함께 만든 모임이다. 우리가 먹는 하루 세끼의 식사가 만들어지는 ‘땅’, 작물을 생산하는 ‘농부’, 그들이 몸 담은 ‘농촌’, 그리고 최종적으로 ‘농업’을 가르치지 않으면 세상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문제 의식을 가지고 시작했다.

 

▲ 조진희 교사가 학교 텃밭을 준비하고 있다. (교육농협동조합 제공)

 

학교에서는 음악을 가르친다. 그렇다고 모든 음악을 다 가르치지는 않는다.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필요한 기초적인 ‘교육 음악’을 정선해서 가르친다. 삼시세끼 늘 먹는 음식을 주는 농업도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 그렇다고 모든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농부가 되라고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농업을 통해서 시민으로서 지녀야 할 지식과 가치를 함양하도록 하는 것이 ‘교육 농업’이다. 줄여서 ‘교육농’으로 이름 지었다. 학교에 영어실, 음악실, 도서실, 컴퓨터실, 운동장 등이 있는 것처럼 교육농 선생님들은 꼭 있어야 할 텃밭과 텃논을 만들고 연대하고 있다.

 

감상적인 환경교육에 머물지 않고 ‘생태 감수성’ 키우기

 

학교에서는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감성적인 생태환경교육을 열심히 하고 있다. 플라스틱이 지구 오염의 주범인 양 가르치면서 새끼에게 플라스틱을 먹이는 어미 알바트로스, 빨대에 찔려 고통스러워하는 바다거북, 작은 빙하를 위태롭게 의지하고 있는 북극곰, 지도 위에 없는 나라 플라스틱 아일랜드까지. 학생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이미지나 영상을 통해 쓰레기를 줄이고 분리 배출하며 재활용하자고 교육한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 지금처럼 당위적인 생태환경교육, 즉 리사이클이나 제로웨이스트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쓰레기를 줄이자는 소비자 개인의 양심에 호소하는 교육을 넘어서, 확장성을 가져야 한다. 나와 공동체의 삶은 연결되어 있고, 지구의 모든 생명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기후위기를 가속화시킨 신자유주의적 삶의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정치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

 

▲ ‘교육농’ 선생님들이 텃논에서 학생들과 함께 모내기를 하는 모습. (함께배움사회적협동조합 제공)

 

그런 의미에서 교육농이 지향하는 생태교육은 “생태적 감수성을 가진 민주시민교육”이다. 교육농 선생님들이 텃밭 텃논 교육에서 목표로 하는 것은 논과 밭에서 작물을 돌보고 기르고 만들고 나누며 느끼는 실천이다. 여러 가지 교차적인 교육이 가능한 생명교육, 생태교육, 식생활교육, 사회적 경제 교육, 다양성 교육“들”을 지향한다. 이 모든 교육의 목표는 생태적인 시민성을 함양하는 것이다.

 

지구상의 생명은 서로 이어져있다는 ‘순환’의 관점

 

생태적 감수성을 가진 민주시민교육의 첫번째 관점은 ‘순환’이다. 지구상의 생명들은 서로 이어져 있다는 인식이 순환의 관점이다.

 

텃밭과 텃논이 미래교실인 이유는 생명의 순환을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땅속과 겉의 미생물, 작은 동물, 작물들은 인간이 농약을 뿌리기 전까지 서로 유기적으로 살아간다. 학교 텃밭에서는 벌레들이 잎이나 열매를 갉아 먹을 때에도 살충제를 뿌리지 않고 관찰한 후 옮겨준다. 관행농은 살충제나 제초제를 뿌리고 비닐을 덮어 해결하지만, 학교 텃밭은 풀과 벌레가 무성해도 괜찮은 살아있는 생태 교과서가 된다.

 

텃논은 벼의 생장을 중심으로 1년 사계절의 순환을 공부한다. 볍씨를 골라 모판에 심고 논을 갈고 써레질을 하고 다시 모를 내고 풀을 뽑고 웃거름을 주고, 큰비와 바람에 쓰러진 벼를 세우고 벼를 베고 이삭을 털고 벼 껍질을 벗기는 수많은 농부의 손길이 깃들어야 쌀이 된다.

 

텃밭과 텃논에서 수확한 작물은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배춧잎과 볏짚은 다른 작물의 웃거름이 되고, 비닐을 대체하는 멀칭 재료가 되며, 잘 발효된 퇴비가 되어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순환하면서 전환되고 또다시 생명을 품는 퇴비로 환대받는다.

 

▲ 3월에 학생들이 봄감자를 심고 있는 모습. (필자 제공)

 

정크푸드와 과소비 문화, 인간종 중심주의 ‘전환’하기

 

두 번째 관점은 ‘전환’이다. 탄소중심산업, 소비만능주의, 인간종 중심주의의 전환을 교육하는 것이다. 살아있는 돼지 수백만 마리를 땅에 묻어 살처분하는 야만은 막아야 한다. 살아있는 오리와 거위의 보드라운 가슴 털을 뽑아 만든 패딩을 입고, 정작 그 안에는 반팔 옷을 입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모순은 없어야 한다. 초고령화되어 가는 농촌의 생존 전략으로, 작물에서 가축으로 급속히 전환되어 가는 우리 농촌의 붕괴에 대해서도 가르쳐야 한다.

 

운동장의 폭염이 오늘 학교급식에 나온 맛있는 삼겹살과 연관되어 있음을, 탄소가스를 쐬어 먹음직스럽게 나온 주황색 귤과 학교식당 밖에 오는 폭우가 연결되어 있음을, 그래서 한 달에 하루라도 채식 급식으로 전환하자고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지식 위주의 교육은 감각 발달을 더디게 한다. 하루종일 책상에 앉아서 교과서와 영상만 보는 교육은 이제 유튜버들과 경쟁해야 한다. 학교 텃밭에서 기른 오이, 가지, 당근, 당근 잎 등을 맛보고 정크푸드(인스턴트 음식)에 길들여진 미각과 후각을 회복하는 것은 아이들의 삶을 전환시킬 것이다.

 

타자와 타 공동체에 대한 ‘환대’를 가르치는 교실

 

세 번째 관점은 ‘환대’이다. 다른 생물과 사람, 타 공동체까지 돌보고 대접하는 환대의 자세를 기르는 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 인도의 과학자이자 에코-페미니스트인 반다나 시바는 가짜 고기를 만드는 GMO 콩을 위해 아마존이 불타고, 가난한 농민들은 정크푸드로 연명하는 현실을 고발한다. 그는 “세균, 식물, 동물의 권리를 존중해야 인간도 건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환대’는 타자와 타 공동체에 대한 공감과 연대 그리고 포용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폴란드 여성 국회의원들이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대통령을 향해 무지갯빛 드레스로 시위한 것처럼, 토마토, 호박, 가지 등의 무지갯빛 다양성은 우리 농업이 같은 모양의, 같은 색의 작물만을 대량 생산하고 있는 현실을 일깨워준다. ‘환대’의 관점은 우리 교실에서 외모도, 성격도, 성별도, 성적 정체성도 제각각인 친구들을 어떻게 존중하고 포용해야 하는지 교육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 9월에는 학생들과 텃밭에 배추를 심는다. (필자 제공)

 

세상은 이제 어린이들에게 금융 교육을 하라고 한다. 학생들은 안그래도 입시경쟁 교육과 학벌 중심 교육에 찌들어 있는데, 앞으로 신자유주의 교육까지 하라고 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 교육은 어디로 치달을까. 기후위기를 가속화시키는 삶의 방식을 되돌리지 못하고 계속해서 지구의 온도를 상승시켜 결국에 나와 공동체를 파멸시키는 세상이 되게 하는 교육으로 가려는가?

 

기후위기를 늦추고 나와 공동체를 살리는 미래교실은 땅과 생명의 순환, 삶과 교육의 전환, 타자에 대한 환대를 배우고 가르치는 텃밭과 텃논이다.

 

[필자 소개] 조진희. 전교조 여성위원장. 22년째 재직 중인 초등학교 선생님. 성평등, 페미니즘, 혁신교육, 학교 텃밭에 관심을 갖고 활발하게 강의를 이어오고 있다. <교육농>, <재난은 평등하지 않다>, <이것은 교육이 아니다>, <하늘을 덮다>의 공저자이다. 현재 전교조 여성위원회는 페미니즘 교육 잡지 <바꿈 F>를 연 2회 발간하고 있다.

 

페미니스트 엄마와 초딩 아들의 성적인 대화 

 

페미니스트 엄마와 초딩 아들의 성적 대화

저자인 엄마와 초딩 아들이 성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들이 기록되어 있다. ‘성적(性的) 대화’라고 해서 특별한 것이 아니다. 여자 엄마가 겪어온, 혹은 지금 겪는 일상이고, 다른 한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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