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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말하는 기후위기>① 기후위기X청소년

 

지난 9월 16일, 여성환경연대가 주최한 제6회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컨퍼런스가 ‘여성X기후위기’를 주제로 열렸다. 서울시 성평등기금 지원을 받아 진행된 이 행사에서, 기후위기 시대에 대안을 찾고 실천하는 5명의 여성들이 강의한 내용을 연속 기고를 통해 소개한다. [편집자 주]

 



▲ 9월 15일 열린 제6회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컨퍼런스에서 발표하는 윤현정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여성환경연대 제공)

 

‘나 정도면 지구를 지키는 사람 아닌가?’

 

2019년 여름, 기후위기에 대해 처음 제대로 알게 되었다. 이전까지 기후위기는 나에게 그저 지구온난화, 환경 문제 중 하나, 혹은 북극곰의 살 곳이 사라지는 문제였다. 큰 관심을 가지고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고, 환경을 살리는 작은 실천에만 집중했다. 주말마다 플로깅(plogging, 조깅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것)을 하러 다니고, 최대한 플라스틱을 쓰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비건(vegan)을 실천했다. ‘나 정도면 지구를 지키는 사람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기후위기는 북극곰만의 문제가 아니라 당장 우리가 평범하고 존엄한 삶을 누릴 수 있느냐의 문제였다. 그리고 너무 거대한 문제였다. 기후위기가 심각해지는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는데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동안 기후위기를 100년 후의 일로 생각했던 나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기후위기가 나의 일임을 알고 나서,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더 찾아보았다. 개인의 작은 실천만이 아닌 정치와 정책 그리고 시스템의 변화가 반드시 필요했다. 작은 실천만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을 찾았다.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서다

 

일단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그냥 무작정 박스를 주워왔고, 그 박스에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적었다. 그리고 그걸 들고 거리로 나갔다. 일주일에 6일 동안 거리에서 피켓을 들었다.

 

정책결정권자들을 향해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을 요구하는 피켓 시위를 진행하면서, 이후 부시장, 시의원, 교육감 등을 만났다. 하지만 그들에게서 ‘기특하다’, ‘대견하다’는 칭찬만 받았을 뿐이었다. 또는 시위는 청소년들이 하기에는 과격하다며 ‘학교에 가서 환경 교육이나 들어라’, 아니면 ‘기후위기 동아리를 만들어줄 테니, 거기서 활동하고 대신 시위는 하지 말아라’ 등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에게서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서 어떤 변화를 만들겠다는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다.

 

사실 내가 하는 이야기들은 너무 당연한 내용이었다. 기후위기가 심각하니 대응이 필요하고, 그 대응은 정책결정권자들이 만들어야 한다는 건 당위적인 이야기였다. 처음에는 피켓을 들기만 하면 변화가 생길 줄 알았다. 하지만 변화는 거리에 서서 외치는 것만으로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전략도 필요했고, 더 많은 당사자들과의 연대가 필요했다.

 

▲ 청소년기후행동은 “당연한 일상과 안전한 미래를 위해 청(소)년 당사자들이 주도하여 지구 평균 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제한하기 위한 유의미한 변화를 만드는 단체”다. (출처: 청소년기후행동 youth4climateaction.org)

 

그런 고민을 하던 차에 청소년기후행동이라는 단체를 만났다. 당사자의 목소리로 변화를 촉구하는 청소년기후행동은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나의 고민을 해결해줬다.

 

‘한국의 툰베리’ ‘미래의 희망’이라는 말은 사절한다

 

나는 지금 기후위기의 ‘당사자’로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치, 정책, 시스템의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기 위해 행동하고 있다. 함께하는 동료들도 나처럼 기후위기를 자신의 위기라고 느끼고,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기후운동을 하고 있다. 북극곰을 위해서 아니라 나의 권리를 위해서. 당사자로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 중에서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미래세대’, ‘한국의 툰베리들’이라는 말을 듣고 있다.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우리의 희망, 우리의 미래’라고도 불린다. 또는 환경을 사랑해서, 생태 감수성이 높아서, 정신이 깨어 있는 민주시민이어서, 심지어 대안학교를 다니거나 탈학교를 해서 이런 활동을 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우리는 정의감에 불타서 기후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자신의 문제이기 때문에 목소리 내는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미래, 희망도 아니며 그렇게 되고 싶지도 않다. 우리는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다.

 

▲ 2020년 3월,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들이 정부와 국회가 기후위기에 소극적으로 대응한 것에 대해,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책임을 묻는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출처: 청소년기후행동 youth4climateaction.org)

 

나는 아직도 캠페인을 진행할 때 겁도 나고, 눈물도 많고, 여전히 기후위기 문제가 어려운 사람이다. 크게 용기가 있어서, 대담한 사람이라서, 어려운 과학보고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서 기후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기후운동에 있어서 나이나 전문성은 자격이 되지 않는다. ‘당사자’이기에 사회구조적 변화, 정부와 정치의 변화를 외치고 있다.

 

‘위기’처럼 여겨지지 않는 기후위기

 

기후위기는 말 그대로 위기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상황을 위기라고 이야기해도 위기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과연 우리가 살아가는 곳은 멀쩡한가? 기후위기 속에서도 우리는 안전할 수 있을까?

 

작년 여름, 긴 장마와 태풍, 산사태, 홍수라는 기후재난이 지구 곳곳을 쓸고 지나갔다. 내가 살던 울산에도 태풍이 찾아와 온 동네의 창문을 다 깨버렸다. 전봇대를 무너뜨렸고, 신호등을 꺾었고, 하루종일 정전이 일어나게 만들었으며, 차들을 파손시켰고, 그리고 심지어는 핵발전소의 가동을 멈추게 했다. 그날 태풍 하나로 우리의 시스템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았다. 안전하다고 믿었던 내가 살아가는 곳도 전혀 안전하지 않았다.

 

기후위기 속에서 많은 것이 무너질 것이라는 게 너무나도 당연해 보였다. 나는 돈도 없고 사회적 권력도 없고 특별한 능력도 없는 평범한 사람이기에, 기후재난이 닥치면 가장 먼저 쓸려갈 사람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후위기는 평범한 모두가 약자가 되는 위기다. 그리고 기후운동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행동이라기보다는 모두가 약자가 되지 않기 위한 행동이다. 모두가 안전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 지난 5월 서울에서 열린 P4G 정상회의 기간에, 윤현정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가 그린워싱(greenwashing, 친환경이라며 홍보하지만 실제로는 위장에 불과한 기업의 상술)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여성환경연대 제공)

 

기득권에게 맡길 수 없는, 당사자가 만드는 변화

 

지금까지 정책을 만들어온 사람들은 권력이 있는 사람, 나이가 많은 사람, 돈이 많은 사람, 그리고 전문가들이었다. 정책의 대상이 되는 당사자들은 배제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 우리에겐 기득권이 만드는 세상이 아니라, 당사자들이 만드는 세상이 필요하다.

 

꼭 어떤 구체적인 피해를 입어야만, 어떤 자격을 갖춰야만 ‘당사자’인 것은 아니다. 석탄발전소 노동자가 아니어도, 자신의 집에 에어컨이 있어도, 청소년이 아니라고 해도, 당신은 기후위기 당사자이다. 물론 기후위기의 피해는 차별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더 빨리, 더 많은 피해를 받는 사람들이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각자는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기후위기라는 최악의 위험으로부터 각기 다른 취약성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가 기후위기의 당사자이다. 당사자들이 함께한다면, 더 큰 변화가 가능하고 변화는 가능해야만 한다. 당사자로서 기후위기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기후운동에 참여하는 것에서 변화는 시작된다.

 

[필자 소개] 윤현정.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학교를 그만두고 기후운동에 뛰어들었다. 등교 대신 사무실에 출근하는 중. 여전히 기후우울과 무력감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내가 나로 존재하고 나로 살아가기 위해서 당사자로서 목소리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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