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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여성들, 영문도 모른 채 이혼 강요당해 
  
결혼을 통해 한국으로 이주한 여성들이 영문도 모른 채 한국인남편으로부터 이혼을 강요 받는 사건들이 줄지어 발생하고 있다.
 

회사원인 한국인 남편(34)과 라누(22)씨의 결혼증명서

지난 2월 네팔에서 한국남성(34세)과 결혼식을 치르고 경기도 수원으로 와서 살던 라누 수바(22세, 가명)씨는 4월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의 손에 이끌려 법원에 다녀왔다. 라누 씨는 자신이 왜 법원에 갔는지 이유도 모른 채, 남편이 내미는 서류에 사인을 해야 했다. 한국말을 모르는 그녀에게 누구도 통역을 지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슨 일인지 어리둥절한 상황에서 라누 씨는 “divorce”(이혼)라는 단어를 뒤늦게 듣고, 비로소 자신이 어떠한 상황에 처했는지 알게 됐다고 한다. 라누 씨는 법원에 다녀온 다음날에서야 한국어를 조금 할 줄 아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남편이 왜 이혼하려고 하는지”를 듣게 됐다.
 
남편과 전화통화를 한 친구의 말에 따르면, “시부모가 싫어해서 이혼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녀가 몽골리안처럼 한국사람과 가깝게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시부모가 싫어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라누 씨가 남편에게 “나는 당신을 사랑하게 됐다”고 사정을 해보아도, 돌아오는 답변은 “노우(No!)”였다. 그녀는 남편이 전처와의 사이에서 난 두 아이들이 이미 자기를 잘 따르고 있고, 아이들과 정도 많이 들었다고 말한다. 라누 씨는 “내 아이처럼 잘 키우겠고, 이혼할 수 없다”고 매달렸지만, 남편은 “안 된다”는 말만 했을 뿐이다.
 
시부모가 싫어하니까 네팔로 돌아가라?

 
앙냐무리 라마(29세, 가명)씨 또한 지난 2월에 네팔에서 한국남편을 만나 부산으로 왔다. 그녀는 신혼살림을 시작한 지 며칠도 되지 않아 남편 김모씨로부터 “네팔로 돌아가라”, “이혼하자”는 협박에 시달렸다고 한다.
 
한국에 온 지 3일째 되는 날부터 남편은 그녀를 무시하는 언행을 했고, 심장병으로 네팔에서 수술을 받은 적이 있는 앙냐무리 씨가 먹는 약조차 빼앗는 등 구박이 심했다고 한다. 앙냐무리 씨는 “네팔에서 결혼하기 전에 결혼중개업체 사람에게 심장병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는 것도 알려주었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남편도 몸이 아픈 사람”이라면서 문제시되지 않았지만, 한국에 온 후로부터 남편이 이를 트집잡아 심하게 대했다고 한다.
 
당시 남편 김모씨는 신부감을 고르기 위해 부모와 함께 네팔에 왔는데, 시부모가 특히 앙냐무리 씨를 마음에 들어 해서 결혼으로 이어지게 됐다. 그러나 앙냐무리 씨는 한국으로 온 며칠 지나지 않아 남편으로부터 멱살을 잡힌 채 “네팔로 보내버린다”, “이혼 하자”는 협박을 받기 시작했고, 결국 한달 뒤 이혼서류에 서명을 하게 됐다.
 
몇 년 전만 해도 한국으로 국제결혼한 여성 중 네팔여성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지난해 3월, 캄보디아 정부가 자국 여성들이 한국남성들과 결혼하는 것이 인신매매 성격이 짙다며 국제결혼을 금지한 뒤로, 결혼중개업체들이 네팔로 이동해간 것으로 보인다.
 
“사람은 물건이 아니다” 한국남성들 인식 문제 있어
 

한국에 오기 전, 네팔에 있는 라누씨의 고향집에선 그녀의 결혼을 축하해주기 위해 가족과 친지, 이웃이 모여 파티를 열었다. 라누씨는 이혼을 당해 고향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아주대학교 NGO학과에 다니고 있는 네팔여성 먼주 타파(35세) 씨는 “지난 1년 사이에 네팔여성들이 결혼으로 한국에 600여명 정도 와있는 걸로 안다”고 말하면서, 최근에 부쩍 그 인구가 늘었다고 말했다.

 
먼주 씨는 이 여성들 중에 라누 씨나 앙냐무리 씨처럼 “결혼 온 지 얼마 안돼서 이혼을 강요당하는 사례가 꽤 많다”면서 문제가 심각하다고 우려했다. 한국말과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네팔여성들이 남편에게 이혼을 당했다고 연락이 와서, 최근에 같은 문제로 만나본 사람만도 대여섯 명이나 된다는 것.
 
낯선 땅에 와서 문화가 다른 남편과 결혼생활을 시작하는 것도 힘겨운 일인데, 갑작스럽게 이혼을 강요당한 여성들이 받게 되는 심리적 충격은 상당히 커 보였다.
 
라누 씨는 이혼 서류에 사인을 한 후 남편이 “가방 싸서 집을 나가 네팔로 돌아가라”고 해서 현재 집을 나온 지 한 달이 되어간다. 그녀는 “지금도 왜 한국인남편이 이혼하려 하는지 이유도 모르고, 두 달간 잘 대해주던 남편이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납득하기 힘들어했다. 이유도 설명해주지 않았고, 심지어 사인을 하라면서 이혼서류라는 사실조차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 모멸감은 더 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신적 충격 못지 않게 심각한 현실은, 이혼을 당한 여성들이 네팔사회로 다시 되돌아가기 어렵다는 점이다. 씨족공동체 성격을 가진 네팔에서 이혼한 여성에 대해 사회적 냉대는 심각한 수준이라고 한다. ‘다문화열린사회’ 이완 사무국장은 “네팔사회에서 이혼당한 여성들은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집밖에도 나가기 힘든 실정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18년째 살고 있는 네팔인 고빈다 라이(38세, 남성) 씨도 “이혼당한 여성들이 고향에 돌아가기 힘들다”는 사정을 전하면서, “이 여성들이 한국사회에서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남편으로부터 이혼당해 곤란을 겪고 있는 네팔여성을 뒤에서 물심양면 돕고 있는 고빈다 라이 씨는 “한국남성들이 결혼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하며, “사람은 물건이 아니다. 마치 물건을 사서 쓰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되돌려 보내는 것처럼, 지금 사람에게 똑같이 하는 것 아니냐”고 항의했다. 윤정은 기자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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