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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과 ‘모두를 위한 도시’가 필요해

<주거의 재구성> 무엇이 우리를 안전하게 하는가


편집자 주: 다양한 시각으로 ‘주거’의 문제를 조명하는 <주거의 재구성> 기획 연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보도됩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여성안심’ 주택과 서비스에 대한 의문


현재 중앙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는 다양한 여성 안심 정책을 펴고 있다. 다양한 수단과 종류가 있는데, 크게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귀갓길에 발생하는 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서비스다. 안전 취약지역을 경찰이 집중적으로 순찰하거나, 여성이 신청할 경우 노란 조끼를 입은 스카우트(대부분 중년 여성)가 지하철역 또는 버스 정류장에서부터 집 앞까지 동행한다. 범죄예방 환경디자인 기법을 적용해 거리환경을 개선하는 사업도 여기에 해당한다. 여성 안심귀가스카우트, 여성 안심 귀가 서비스 등의 이름으로 안전한 귀가 지원을 목표로 한다.


여성 안심 귀가 서비스 웹 홍보물. 출처: 정부 정책정보지 위클리공감(2015. 7. 25.) 


둘째, 주택 방범 기능을 강화하는 지원 사업이다. 현관문 보조키, 방범창, 문열림 센서, 창문 잠금장치, 휴대용 비상벨 설치를 지원한다. 주택 내의 사설 경비회사와 연계해 CCTV를 설치하거나 긴급 호출 벨을 통해 경찰 또는 경비회사가 출동하는 서비스를 도입하는 곳도 있다. 무인택배함과 같이 주택 내에서 범죄가 발생할 수 있는 대면 접촉의 기회를 절대적으로 감소시키는 사업도 포함된다.


셋째, 여성안심주택의 보급이다. 여성들만 거주할 수 있는 임대주택으로 앞서 언급한 첫째, 둘째 사례 시설이 접목되어 있다. 일정 소득과 자산을 기준으로 선발한다.


그런데 나는 이런 정책의 필요성을 인지하면서도, 그 한계와 문제점도 명확하게 보인다. 여성 안심 귀가 지원 사업은 경찰에 의한 순찰이든, 신청에 의한 시민과의 동행이든 ‘여성의 몸은 도시에서 혼자 있어서는 안 된다’는 신호를 여성에게는 물론 전 사회에 지속해서 발신한다. 여성이 안전하게 귀가하기 위해서는 여성에 대한 무차별적, 성차별적 시선을 바로잡는 것이 먼저이고, 사회가 이런 성차별적 시선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여성 폭력을 정확하게 처벌하는 것이 우선이어야 하는데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지금과 같은 방식의 여성 안심 귀가 지원 사업은 문제 해결의 주체를 다시 여성과 여성 안심 귀가 스카우트인 중년 여성에게 전가하고 있다. 젊은 여성의 몸과 중년 여성의 몸을 가부장적인 시선으로 가르고 위계를 형성한다. 만약 이것이 가부장적 시선의 위계가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여성 안심 귀가 스카우트가 집으로 돌아갈 때도 이들을 지원하는 사람이 있어야 할테니 스카우트의 스카우트, 스카우트의 스카우트의 스카우트가 필요하다.


여성 안심 귀가 지원 사업은 의식적으로 더 강력하게 도시계획과 치안의 영역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스토킹 범죄, 강간 미수 범죄를 ‘주거침입’이라는 한정된 틀 안에서 가볍게 다뤄왔다. 여성에 대한 폭력을 개인들의 사적인 문제로 치부했고, 여성국민의 안전 앞에서 법과 제도는 공백 상태에 놓인 것과 마찬가지 역할을 해왔다.


서울 천왕여성안심주택 개념도, 출처: 서울시 보도자료(2014. 10. 31)


주택의 방범 기능과 여성 호신 기능을 강화하는 각종 물품은 심리적인 안정에 이바지할 수는 있겠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여성전용주택과 상관없이 모든 시민의 안전을 위해 설치해야 하는 요소들이다. 현관문 보조키, 방범창, 문열림 센서, 창문 잠금장치는 집을 지을 때 외부인의 침입을 대비해 사전에 설치 또는 갖춰야 하는 요소들이다. 이는 정부가 신청을 받아 지원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주택건축법에 따라시 정부의 관리·감독 아래에서 허가 또는 승인의 방식으로 관리되어야 하는 일이다.


민법 제623조에 따르면 임대인은 목적물을 임차인에게 인도하고 계약 존속 중 그 사용, 수익에 필요한 상태를 유지하게 할 의무를 부담한다. 사용에 필요한 가장 기초적인 상태는 외부의 물리적인 위협으로부터 차단되는 것이다. 이는 원시시대 인류가 집을 만들어 온 역사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장애인, 아동, 노인 등 누가 어떤 집에 살더라도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집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비단 여성에게 경비 기능이 강화된 물품을 지원하는 것은 허울뿐인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의료 지원과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은 물론 누구라도 집에서 안전하게 거주할 수 있도록, 건축법과 주택법에 기준을 명시하고 이를 정부가 철저하게 관리하는 것이 우선이다.


밤길 되찾기, 슬럿위크, 거울 행진…언제 어디서든 안전할 권리


현대의 여성들은 여성 공간을 더 확장시키는 움직임을 벌여왔다. 공간을 한정하지 않고, 집 밖으로 향했다. 1991년 한국성폭력상담소 주최로 처음 시작된 ‘달빛시위’는 여성들이 밤길을 되찾는 시위였고 3년간 계속되었으며, 1999년부터 부산 지역 반성폭력 단체에서도 진행됐다. 그리고 2004년 유영철 연쇄살인사건과 여성에게 범죄 책임을 전가하는 언론 보도 등을 계기로, “달빛 아래 여성들, 밤길을 되찾다”라는 캐치 프레이즈를 걸고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다시 이어졌다.


2004년 8월 13일 서울 인사동에서 열린 달빛시위 모습. 참가자들은 성폭력, 여성살인 범죄에 대한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하지 말라고 외치며 빼앗긴 밤길을 되찾겠다고 외쳤다.


공포와 통제에 저항하며 밤길에 나서서 모든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를 주장한 여성들의 걸음은 일회적인 이벤트가 아니다. 2011년과 2012년에는 잡년행진(#Slutwalk, 캐나다에서 경찰이 ‘여성들이 성폭력을 당하지 않으려면 Slut처럼 입지 말아야 한다’고 발언한 것에 항의하면서 시작된 집회로, 한국에서는 2011년 고려대 의대생 집단 성추행 사건이 계기가 되어 시작되었다)라는 이름으로 여성들의 밤길 행진이 계속됐다. 잡년행진은 여성들 스스로 자신을 ‘잡년’으로 지칭하며 ‘야한 옷’을 입고 거리로 나섰다. 이는 여성에게 끊임없이 ‘여성다움’을 강요하고 여성의 몸을 규율하는 사회적인 관습과 제도를 우습게 만드는 행위였다.


무엇보다 이러한 여성들의 행진은 사회적인 실천이다. 첫째, 밤이라는 특정한 시간대에, 거리와 광장이라는 공공 공간의 규범을 탈피하는 전복과 교란의 행위로 공사 이분법을 흐트러뜨리고 둘째, 여성에게 발생하는 폭력과 폭력의 원인을 여성에게 돌리는 ‘피해자다움’에 맞서 싸우며 셋째, 여성이 더 많은 거리를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도시권 운동으로 나아간다.


2016년 5월 26일 밤 8시 30분에는 강남역 일대에서 ‘거울 행진’이 일어났다.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피해자를 애도하고 여성폭력에 분노하는 자리였다. 여성들은 “당신도 여성혐오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라는 피켓을 들고 나섰다. 포스트잇으로 가득 채운 강남역 10번 출구와 온, 오프라인 할 것 없이 이어지는 추모행렬 속에서 여성들은 함께 불안과 분노를 나눴다. 공포가 우리를 압도하지 않기를, 폭력에 소리 없이 희생당하지 않기를 바라며 강력한 대처를 요구했다.


2017년 2월 1일 트위터에서 “#이게_여성의_자취방이다”라는 태그운동이 일어났다. 여성들은 자신의 주거공간에서 겪는 공포의 실제 경험을 드러냈고, 많은 여성들이 같은 패턴과 유형의 사건과 범죄를 겪고 있음을 공유했다. 동시에 여성들이 겪는 공포와 불안 아래는 이 사회에 뿌리박혀 있는 가부장적인 시선과 문화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강력하게 확인하고 고발하는 목소리였다. 가장 자유로우리라 생각했던 나만의 공간에서조차 남성의 구두를 놓거나, 남성 이름으로 택배를 받는 등의 방법을 쓰고 있다는 걸 확인했는데, 이는 곧 공간 자체가 젠더화되어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여성들을 위한, 또는 여성으로 존재하는 사람들을 위한 주거 정책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에겐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고, 그 방을 나섰을 때에도 안전한 마을이 필요하다. (일러스트: studio 장춘)


도시가 안전해야 주거도 안전하다


지금의 여성안심주택은 CCTV, 무인택배함, 경비 시스템 등 보호와 통제의 기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외부의 침입으로부터의 차단이라는 특정 요구를 충족시킬 뿐이다. 여성들을 험난한 도시 생활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강화할 뿐이며, 가부장적이고 온정주의적인 남성중심적 시선을 벗어나지 못하는 미봉책이다.


여성안심주택의 발전적 목표는 지금과 똑같은 형태로 더 많은 CCTV, 더 자주 돌아다니는 순찰차, 더 커진 무인택배함이 아니라, 여성이 더 많은 곳에, 더 다양한 곳에, 언제 어디로 갈 수 있는 주거정책과 도시정책이 되어야 할 것이다. 탈학교, 탈가정 청소년이 걱정 없이 자립할 수 있는 주택, 노인에게 낙상 위험이 없는 주택, 장애인이 의료 지원을 요청했을 때 즉각 실행할 수 있는 주택, 그리고 이들이 지역사회에서 분리되어 섬처럼 있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존재로 함께 살아가는 것이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지점이다. 


(이 기사는 일부 요약문입니다. 기사 전체보기: ‘자기만의 방’과 ‘모두를 위한 도시’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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