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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몸들’이 마이크를 잡으면 세상이 변할 거야

아픈 몸, 무대에 서다① 몸에 ‘관한’ 게 아니라 몸을 ‘통한’ 이야기


※질병을 둘러싼 차별, 낙인, 혐오 속에서 살아가는 ‘아픈 몸들의 목소리’로 만든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배우들의 기록을 연재합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아픈 몸은 건강 중심 세계의 난민과 같은 존재다. 여전히 질병은 삶의 바깥으로 쫓겨나 있기 때문이다. 의료권력이라는 절대왕정 아래서, 질병이 ‘완치’되지 않으면 ‘실패’한 것이라는 이분법에 아직 갇혀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질병을 삶의 일부로 다시 들여올 수 있을까. 의료권력의 언어만으로 질병을 재단하지 않고, 온전하게 아플 수 있는 ‘질병권’(疾病權)이 보장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의료권력과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질병권이 보장되는 사회가 되려면, 질병을 둘러싼 이야기를 복원하는 과정을 밟지 않을 수 없다. 질병을 실패, 절망, 고통의 말로만 납작하게 포장해 놓은 그 이면을 더 많이 들추는 것이다.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를 준비하며, 배우들이 즉흥극 도중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다리아)


의료사회학자 아서 플랭크가 말했듯, 아픈 몸들이 ‘상처 입은 스토리텔러’(wounded storyteller)이며 우리 이야기가 몸에 ‘대한’ 것이 아니라 몸을 ‘통해’ 발화되는 것이라면. 어떻게 좀 더 잘 발화하는 몸을 만들어 볼 수 있을까?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다른 아픈 몸들과 함께.


질병 서사, 글쓰기에서 몸 쓰기로


내가 처음 질병 경험을 말하기 시작한 것은 질병 세계에 혼자 떨어진 듯한 혼돈 때문이었다. 그 지독했던 혼돈을 조금 지나자, 나 말고 곳곳에 흩어져 있을 ‘동료’들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


2015년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에 <반다의 질병관통기>(http://ildaro.com/7243) 연재를 시작했다. 나의 질병 경험을 토대로 우리 사회 질병 문화에 대해 문제의식을 던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일다의 시민교실에서 <잘 아프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 질병과 함께 춤을>이라는 긴 이름의 강의도 열었다. 2017년까지 계속된 이 강의는 한 학기가 4회기였는데, 강의가 끝난 이후에도 곳곳에서 모인 아픈 몸들은 끝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곳이 아니면 어디 가서 아픈 몸에 대해 마음 놓고 말을 하겠냐며 후속 모임을 진행하자고 했다.


후속 모임에서, 오랫동안 동료들이 집중적으로 이야기하고 고민해왔던 ‘질병 서사’를 글로 쓰는 워크숍을 진행했다. 그렇게 나온 동료들의 글은 <질병과 함께 춤을>이라는 꼭지명으로 올해 초 일다에 연재되었다.(http://ildaro.com/8625) 짧지 않은 연재를 마치며, 마지막 글을 ‘아픈 몸들의 질병 서사로 만들어지는 연극(낭독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참여자를 모집한다는 내용으로 썼다. 우리는 고립되어 있을 또 다른 아픈 ‘동료’들을 찾고 싶었다.


▲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온라인 관람 신청 https://socialfunch.org/dontbesorry


이번에는 강의나 글쓰기가 아니라 연극(낭독극) 형식으로 준비하기까지 여러 고민이 있었다. 가장 핵심은 앞서 말했듯 어떻게 하면, 우리가 질병 경험을 좀 더 잘 ‘발화하는 몸’으로 만들어 볼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이었다.


질병과 함께 춤을 모임에서 동료들과 함께 글을 오래 쓰다 보니, 우리의 감정과 경험이 너무 빠르게 정돈되는 느낌이 들었다. 좀 더 자신의 감정에 깊게 접촉하고, 좌절하고 있음을 드러내도 될 것 같은데, 글을 쓸수록 생생함보다 가지런함이 늘어갔다. 아마 더 깊은 상처나 두려움에 접촉하는 게 두려워서 적당 선에서 협상을 하게 되는 듯 보였다.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준 방어 기제일 지도 모른다.


모임에서 전체적으로 호흡을 고르기 위해 단기적으로 연극 기법을 활용해 각자의 질병 서사를 다시 다뤘다. 글쓰기를 할 때와 달리, 날것의 감정이 비죽하게 올라오기도 하고, 질병에 대한 어떤 책에서도 다루지 않은 방식으로 자신의 서사를 설명하는 순간이 잠시나마 늘어나는 것을 목격했다. 글쓰기가 고요하게 감정의 역동을 만나게 한다면, 연극은 보다 적극적으로 몸 자체를 흔들었다.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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