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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두려움과 상처는 누군가에게 빛이 되어줄 것이다

<질병과 함께 춤을>⑥ 아픈 몸들의 공동체, 기적



-엄마, 아빠가 나를 그 사람에게 팔아넘길 것 같아.

-목우야, 망상이야!

-두려워. 정말 그렇겠지, 망상이겠지.

-응. 그래요. 뭐가 두려워요? 우리가 있잖아요.


삼 년 전의 대화다. 삶에 대한 근거 없는 두려움과 가족에 대한 불신, 그런 것들은 종종 망상이 되어 삶에 출몰하곤 했다. 예전에는 혼자서 끙끙 앓고만 있었을 두려움을 처음으로 다른 사람 앞에서 얘기했을 때 그녀들은 나를 탓하거나 이상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조현병으로 인한 망상이라고 분명하게 말해 주며 나를 감싸 안았다. 다른 누구보다 나는 그녀들에게서 속 깊은 다정함을 느꼈다. 그리고 이 망상은 이후 다시 내 삶을 침범하지 않았다.


<질병과 함께 춤을> 모임에서 다른 동료의 원고를 읽고 있는 필자의 모습. (사진: 혜영)


나의 아픔과 망상과 환청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


내가 정신장애문학회 ‘천둥과번개’에 처음으로 함께 했을 때, 이곳이 다른 곳과 조금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나와 엇비슷해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너무 자연스럽게 서로 융화되어 살아가고 있었다. 특별히 괴로워 보이지도 힘들어 보이지도 않았다. 오랜 세월 견지해 온 평상심이었을까. 평온하고 자연스러운 그들의 모습에 나는 처음에 당황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은미는 처음 만난 날, 내 팔짱을 껴주며 말했다.


-언니, 오늘 오후 일정도 함께 할 거죠?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분명한 목소리로 자신이 쓴 글을 발표할 때, 나는 아득함을 느꼈다. 홀로 몇 편의 글을 끌어안고 절망에 빠져있던 내가, 일상이라는 것이 없었던 내가, 한순간 쓸쓸하게 되비쳐졌다. 이곳에 있고 싶었다. 한 해가 마무리되고 다시 시작되는 세밑의 미약한 햇빛 아래서 나는 희미한 희망을 느꼈다.


조금 다르다는 이 느낌은 이후 구체적인 형태로 내게 각인되었다. 회의를 하던 도중, 갑자기 나미가 아무 말도 없이 밖으로 나가버렸다. 다른 곳 같았으면 무책임하다느니 좀 이상한 것 같다며 수군거렸을 상황이지만 이곳의 사람들은 달랐다. 나미에게 달려나가

-괜찮아?

묻는 것이었다. 더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 정말로 괜찮은 건지, 묻고 염려해 주는 것이었다.


사회에서 늘 시선의 따가움에 지쳐 있던 내게, 이곳은 출구와 같았다. 내 몸의 상태와 나의 망상과 나의 환청, 그런 것들이 대화의 자연스러운 소재가 되고 소통의 도구가 되어 그것으로 관계가 다정해지고 깊어진다는 것이 놀라웠다. 늘 너는 이상해서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듣던 내게 이들이 주는 위로는 감미로웠다.


소통의 부재로 말을 잃고 살아가던 나는 조금씩 말을 트기 시작했다. 나의 아픔에 대해, 상처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판단 받지 않고 이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공간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서로에 대한 이해를 열고 서로를 따듯이 품어주는 삶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며 나는 서서히 변해갔다.


2019년 10월 26일, 정신장애인의 축제이자 대중운동인 <제1회 매드 프라이드 서울>이 열렸다. (사진: 안티카)


내 삶으로 다가오는 누군가의 작은 발걸음 소리


그즈음 정신장애인 당사자 언론 <마인드포스트>가 창간되었다. 나는 내 마음에 싹트고 있는 희망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은미가 연극 <우리 여기 있어요>를 공연했다. 때마침 미현이 내게 함민복 시인의 산문집 『눈물은 왜 짠가』를 선물로 준 후였다. 나는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여 글을 채워 나갔다. 은미의 연극공연과 함민복의 산문집 내용을 교차해서 쓴 감상문이었다.


무언가로 마음이 포근해져 글을 쓰는 경험은 아주 오랜만이었다. 내 삶에 사랑이라는 눈부신 빛이 작은 별처럼 맺히는 순간이었다. “부드러운 것들이 부딪치며 내는, 세상에서 가장 큰, 하늘에서 내려오는 소리, 천둥에 나는 또 얼마나 놀랐던가.” 함민복 시인의 말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밤중에 현경에게서 카카오톡 메시지가 오기 시작했다. 저녁 7시 즈음부터 새벽 1시까지. 늘 같은 질문을 반복하며 이어지는 카카오톡이 부담스러워 미현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에게서 왜 그 사람에게 끌려다니냐며 단호하게 끊어버리라는 말씀을 들은 직후였다.


-현경 님은 네가 좋은 것 같은데? 아무한테나 그러는 사람이 아니거든.


미현의 이야기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내가 느끼는 불편함이 누군가 내 삶으로 아주 작은 발걸음 소리를 내며 걸어들어오는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머리를 친 것이다. 내가 아주 큰 실수를 할 뻔했구나. 그 조그만 발소리를 내가 듣지 못하고 있었구나.


미현의 통찰에 다시 한번 놀라며 나는 미현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미현의 솔직하고 진솔한 모습이 좋았다. 그 따스한 이해가 미현의 힘이고 자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늘 중심이 무엇인지를 아는 미현으로 언제까지든 남아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그의 맑은 눈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이후로 현경과의 카카오톡이 이어졌다. 시간은 밤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로 서로 조정하기로 했다. 나는 자주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과다 수면이라서 그 시간에는 잠을 자야 하는 사정도 있었고 새롭게 마주치는 일상이 버거웠다. 그러는 중에도 끊임없이 현경은 20분에 한 번씩 30분에 한 번씩 1시간에 한 번씩 카카오톡 메시지를 남겼다.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오늘 어떻게 지냈어요? 오후는 어땠나요? 저녁에는 뭐 했어요? 라는 질문들이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일어나 카카오톡을 열어보면 이런 말들이 빼곡히 올라와 있었다.


-목우샘전6시조금후까지강연듣고

 서좀이따마트에갔다저녁때와서

 피곤한것같어쉬어야겠어요그럼

 잘쉬세요~


현경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렇게 작은 사람이 이렇게 작은 일상을 조용한 걸음걸이로 끝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아름다움을 느꼈다. 나의 밤 시간은 혼돈의 시간이거나 환청의 시간이었을 뿐인데, 이 시간을 단정한 자세로 책을 읽거나 성경을 펼치거나 일지를 쓰는 일로 오롯이 깨어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나의 혼란스러운 시간들까지 정돈해 주는 듯했다. 맑은 명상과도 같은 작은 삶을 보며 현경이 사랑받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일상이 생겼다


-현아 잡아라!


현아는 빠른 걸음으로 도망을 치기 시작했고 나도 질세라 현아를 따라잡아 꼭 안아 주었다. 현아는 지금 대한적십자사에 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있지만 지난 여름 우리는 ‘안티카’에서 연극연습을 함께 했다. ‘안티카’는 예술로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혐오에 맞서 사회적 공감과 이해를 넓혀가는 단체였다.


현아는 늘 작은 소녀 같았고 그래서 현아와 함께 있는 시간에는 나 자신도 다시 작은 소녀가 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사람들의 등을 도닥이고 손을 잡아주고 안아 주는 걸 좋아하는 현아, 감정 표현이 서툴고 늘 어색했던 나는 현아를 만나며 타인에게 마음을 전하는 법을 알아가고 있었다.


정신장애인 창작문화예술단체 <안티카>의 송년회 풍경. 2019년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선물을 주었다. (사진: 안티카)


내 마음속의 그녀들. 구체적인 체온으로 존재하는 이들. 그녀들은 한 줄기 빛과 같이 내려앉았고 나는 저 먼 바닥에서 그 빛의 끈을 잡고 서서히 세상 밖으로 나아갔다. 잡으려고 하면 텅 빈 빛이지만 몸을 가볍게 채워 세상을 자유롭게 떠돌 수 있게 하는 힘을 조금씩 배워갔다. 저 공기는 얼마나 평온하게 세상을 주유하는가. 빛이 내려앉을 때 공기 입자들은 하얀 먼지의 모습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무언가를 떠받치고 높이는 힘으로 그들은 대기를 흐름으로 채우고 있는 것이다.


이제 나에게는 일상이 생겼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늦은 밤에도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며 함께 만나 조각 케잌과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수다를 떨고 헤어질 때면 잘 가라고 포옹할 수 있는 일상. 그것은 얼마나 내가 바랐던 삶이었을까.


누군가를 만나서 눈을 맞추며 이야기하는 것이 한없이 어색했던 나는 이제 사람들의 어깨를 감싸주곤 한다. 그리고 때로 우스운 이야기를 하며 웃기도 한다. 내가 그럴 수 있으리라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삶을 사는 것이다. 내게 가만히 기대어 오는 그녀들의 느낌이 좋다. 그리고 먼저 나의 기댐을 품어 주었던 그녀들에게 고맙다.


얼마 전 ‘안티카’의 한 남자 단원에게서 자신은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잘 모르겠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그 질문이 중요하다는 말을 했다. 그것이 시작이지 않을까.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 처음부터 다시 출발해야 한다는 것, 매 순간 말이다.


그리고 어떤 단어들은 삶에서 중요한 화두가 되어 준다. 중심이 되는 질문을 놓치지 않고 살아간다면 나는 그/녀가 어디에 있든 사람들에게 빛이 되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삶이란 결국 그 질문들에 대한 긴 이야기들을 서로 나누는 것은 아닐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이년 전 겨울, 한 커피숍에서 나는 십여 년 만에 처음으로 나의 삶 전체를 이해해 주는 말을 들었다. ‘질병과 함께 춤을’(이하 질병춤) 모임을 이끌고 있는 조한진희 선생님(『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저자)이었다. 새 삶이 움트는 소리.


-그러니까 함께 있는 것만으로 당신은 행복했던 거군요?


증상 때문에 어디에 가서도 쉽게 섞일 수 없었고 그로 인한 좌절감이 삶을 무겁게 내리누르던 때였다. 희망버스(2010년 10월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항의하는 파업에서, 노동자들을 응원하는 시민들을 태우러 전국 각지에서 운행된 버스)를 타고, 집회에 찾아가고, 농성장을 지키고… 보이는 길 밖을 찾아 나섰으나 갈 길을 잃었다. 친구도 동지도 내게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연이어 닥친 고립이 주는 고통은 컸다. 이대로 내가 사랑하던 삶을 포기해 버려야 하나, 아픈 마음을 부여잡고 갈 곳 몰라 하던 마흔셋. 그 말을 들을 때 나의 눈에는 씨앗 위로 내리는 너른 햇빛처럼, 빗물처럼 따스하게 희망이라는 빛이 감돌았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나, 어느 비 내리는 겨울의 오후에 나는 처음으로 가족이 아닌 타인에게 저린 그리움을 느끼게 된다. 질병춤 모임에 갔는데 마치 이번 생에서는 다시 볼 수 없는 사람들처럼, 아니라면 지난 생에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던 사람들의 모습을 지금 보고 있는 것 같은 강렬한 감정이 몰려든 것이다.


나의 간절한 눈빛을 읽은 것일까. 내가 알 수 없는 그리움에 흔들리는 눈빛으로 바라보았을 때 은주 님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것은 더이상 내가 혼자만의 망상 속에서 헤맬 필요가 없다는 거였다. 그리운 사람이 바로 내 곁에 있다는 거였다. 나는 그렇게 어떤 현실에 기입된 것인지 모른다. 누군가의 이웃이 된 것인지 모른다. 어떤 빛에 힘입어서.


<질병과 함께 춤을> 동료들이 내 이야기를 깊이 경청하고, 지지해주고 있다. (사진: 질병과 함께 춤을)


질병춤 모임에서는 내가 가진 장애뿐 아니라 다른 몸의 경험을 들으며, 우리는 음료를 마시고, 부침개를 먹고, 질병 발병과정과 삶에 대해 말하고, 발표하지 않는 연극을 하고, 글을 쓴다. 연극 워크숍 때 ‘친해지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꺼낸 나의 말에, 피식 웃으며 손 내밀어 주었던 현진 님의 미소가 아직도 생각이 난다. 늘 넌지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파스가 붙어 있는 혜정 님의 아픈 팔목이, 함께 버스 정거장까지 걸어가곤 했던 U님과의 짧고 다정하던 한때가 생각 난다.


질병춤 모임에서 우리가 나누는 것은 ‘정상성의 신화’로 인해 지워진 몸의 경험이다. 다양한 질병을 겪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 속의 치열한 분투와 생에의 의지를 본다. 나의 질병만이 아니라, 이 사회 곳곳에서 질병을 관통하는 힘겨운 삶을 살아냈던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의 세계는 눈물처럼 쓰라리게 확장된다. 그런 눈물과 이해 속에서 우리는 사회의 만연한 건강 담론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질병 세계의 언어를 처음으로 만들어간다.


얇은 미농지를 대고 글자들을 베껴나갔던 어린 시절의 경험처럼, 아프고 혼란스러웠던 것들을 투명한 이해의 눈빛들을 덧대어 써 내려간다는 것은 가슴 저린 안도감을 준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아픔과 불편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기를 바라게 된다. 지금처럼 질병에 대한 글을 써 내려가면서 나는 또 다른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고 있는 느낌이다. 질병이라는 공동체 안에 담길 수 있는 반짝이는 빗금과도 같은 관계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눈물겹고 아름다운 일이기 때문이다.


작은 기적들


우리의 두려움과 상처는, 이제 막 발화되는 그것들은 아직 고립되어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는 상처를 가진 누군가에게로 가서 빛이 되고 손이 되어 줄 것이다. 그 생각을 하면 작은 돌확에 담긴 수련 한 송이를 볼 때처럼 나의 생애 전체가 수굿해진다. 봄날 따스하게 내리는 조용한 빗방울 듣는 소리를 들을 때처럼 고요한 기척에도 민감해진다.


매일 나 자신을 탓하며 환청과 망상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던 내가 보인다. 나는 왜 이렇게 잠을 많이 자지? 나는 왜 이렇게 쉽게 잊지? 나는 왜 이렇게 많이 먹지? 나는 왜 이렇게 생각이 안 나지? 어느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못하고 우울하게 지난 아픔이 주는 상처로 몇십 년의 세월을 웅크리며 살았던 내가 보인다.


그러나 밤하늘의 별처럼 무수히 빛나고 있는 이름들. 내가 보았던 삶에 대한 선의와 소박하지만 진솔한 통찰들을 이제 나도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누군가의 밤하늘에 별이 되어 뜰 수 있다는 것은 가슴 떨리는 일이다. 우리가 서로에게 별이 되어 서로의 인력으로 이 우주를 운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나의 삶이 소중해진다.


마음처럼, 보이지 않는 조용하고 고요한 질서. 나는 그/녀들을 통해 세상으로 나왔고 그/녀들도 아주 긴 여행을 통해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었음을 안다. 그래서 때로 그/녀들의 눈물을 생각할 때 나는 내 것인 것처럼 아프다. 이 작은 기적을 나는 ‘사랑’이라는 이름 외에,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주 작은 이들이 주는 기적과도 같은 ‘생’이라는 선물을 말이다. (목우)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 세상을 바꾸는 작은 변화, 이 연재는 <아름다운재단> 지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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