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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여성들이 함께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
[최하란의 No Woman No Cry] 결혼이주여성들의 셀프 디펜스 수업
여성을 위한 자기방어 훈련과 몸에 관한 칼럼 ‘No Woman No Cry’가 연재됩니다. 최하란 씨는 스쿨오브무브먼트 대표이자, 호신술의 하나인 크라브마가 지도자입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 6월 28일, 다문화가족 자녀 비하(잡종) 발언을 한 익산시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익산시청 앞에 모인 전북 지역 이주여성들의 피켓 시위.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결혼이주여성들과 함께 한 셀프 디펜스 수업
6월과 7월 결혼이주여성들과 셀프 디펜스 수업을 함께 했다. 한국 여성들뿐 아니라 중국, 일본, 태국, 베트남, 필리핀 등 여러 나라에서 온 여성들이 자신에게 닥친 위험 상황을 인식하고 자신을 안전하게 하는 방법을 배우며 달리고 몸을 서로 부딪치고 땀 흘리고 웃었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고 태도도 다르고 몸짓이나 억양도 다르지만, 살아온 문화권에 따른 특색도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주여성들과 함께 한 수업은 독특한 흥취가 있었고, 유달리 시끌벅적하고 즐거웠다.
모의 연습을 하는 상황에 알맞게 “그만 하세요”, “하지 마세요”, “때리지 마세요”라는 언어테크닉을 할 때는 단호하고 분명한 자세와 태도 덕분에 부정확한 발음이나 표현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 틀린 점을 고쳐주면서 즐거워했고, 훈련하면서 몸을 부딪치다 좀 아픈 일이 생기면 상대의 강한 방어력을 칭찬했다.
그러나 속상한 일도 있었다. 내가 폭력에 대해 설명하고 있을 때였다. 우리는 셀프 디펜스 수업을 위해 폭력을 크게 두 가지 ‘더 흔한 폭력’과 ‘더 두려운 폭력’으로 나눠 설명한다. 첫 수업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경험했고 또 살아가면서 경험할 가능성이 높은 ‘더 흔한 폭력’에 대처하는 방법을 교육한다. 성희롱, 모욕적인 말, 원하지 않는 접촉과 붙잡기, 밀침, 뺨이나 머리를 때리는 경우가 여기에 속한다.
한 여성의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커다란 눈망울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조용히 일어서더니 뒷문으로 나갔다.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다행히 실무자 한 분이 따라나섰다. 십 분쯤 지난 후에 그는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수업에 들어왔고, 각 나라 말로 하나 둘 셋 숫자를 붙이며 몸을 풀고 훈련을 하면서 얼굴이 점점 밝아졌다. 훈련이 다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에 그는 자신이 겪은 폭력을 이야기 해줬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물었다.
그리고 나는 며칠 전 베트남 아내를 무차별 폭행한 남편의 영상과 그 폭력 남편이 구속됐다는 뉴스를 보면서 수업에서 못 다한 말을 글로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7월 15일, 이주여성들이 법무부 앞에 모여 결혼이주여성의 폭력피해 예방과 체류자격에 관한 출입국관리법 개정, 인종차별 해소를 위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며 집회를 했다. (사진 출처: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한국인 남편의 폭력으로 사망한 이주여성들
7년 전 이맘 때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한국인 남편의 폭력으로 사망한 중국동포 결혼이주여성들을 위한 추모집회가 열렸다. 한 여성은 경찰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지만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고, 경찰서에서 돌아온 지 두 시간 뒤 칼에 찔려 죽었다. 다른 여성은 남편의 무차별 폭행으로 4일간 뇌사 상태에 있다가 숨졌다.
이뿐 아니다. 임신한 몸으로 갇혀 있던 아파트 9층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오다 떨어지고, 갈비뼈 18대가 부러지고, 14층 아파트에서 떨어지고, 보험금을 노린 남편이 수면제를 먹이고 방화하고, 가정폭력 피해자 친구를 보호하려다 칼에 찔리고, 가정폭력 때문에 이혼한 전 남편이 자녀 면접권을 이유로 찾아와 납치한 뒤 살해하는 등 2007년 이후 남편의 폭력으로 숨진 이주여성은 언론에 보도된 것만 21명이라고 한다.
2018년 6월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결혼이주여성 체류실태>(설문 조사 대상: 결혼이주여성 920명)에 따르면, 결혼이주여성의 42.1퍼센트가 가정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피해자의 81.1퍼센트가 심한 욕설을 듣는 심리·언어적 학대를 당했고, 폭력 위협 38퍼센트, 흉기 위협 19.9퍼센트, 성추행이나 강간을 당한 경우가 15.5퍼센트였다.
▶ 결혼이주여성 920명을 설문 조사한 “결혼이주여성 체류실태” ⓒ국가인권위원회
이런 조사결과의 배경에는 결혼이주여성들의 불안정한 체류 자격 문제가 있다. 결혼이민(F-6) 비자는 한 번에 최대 3년까지 체류를 허가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1년, 2년의 체류 기간을 주고 있다. 심지어 가정폭력을 피해서 정부 지원 쉼터에 입소한 이주여성에게 체류기한을 6개월밖에 주지 않은 경우도 있다.
안정적으로 체류하기 위해 영주권을 얻거나 귀화를 하려고 해도 소득이나 재산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 그래서 가난한 결혼이주여성들은 남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혼을 하는 경우 반드시 재판을 통해 남편의 귀책 사유를 입증해야만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다. 법과 제도가 이렇다 보니 많은 결혼이주여성들이 남편의 폭력에 맞서거나 신고하는 순간 한국에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없다고 여기며 폭력을 견디고 있다.
성차별 더하기 인종차별
#미투 운동으로 뜨거웠던 2018년, 세계여성의날 다음날인 3월 9일 <이주여성들의 “#Me Too”>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는 결혼이주여성들이 겪는 가정폭력 피해뿐 아니라, 일하기 위해 한국에 온 여성 노동자들이 겪는 사례도 발표됐다.
한 캄보디아 여성은 입국한 지 두 달도 되지 않아 사장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사장은 고용허가제를 이용해 성추행과 성폭행을 반복했다. 고용허가제 때문에 이주노동자는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없다. 이주노동자가 합법적으로 직장을 옮기려면, 사장의 위법 사실을 직접 증명하거나 사장이 고용변동신고서에 서명을 해줘야 한다.
올해 5월, 다문화가족 600명이 참가한 행복나눔 운동회에서 익산시장이 ‘생물학적, 과학적으로 얘기한다면 잡종강세라는 말도 있지 않느냐. 똑똑하고 예쁜 애들을 사회에서 잘못 지도하면 프랑스의 파리 폭동처럼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의 축사를 했다. 이에 분노한 이주여성 500여 명이 국회 앞에 모여 항의 집회를 열었다.
7월 15일에는 법무부 앞에서 불안정한 체류 자격 해결을 요구하는 <이주여성의 권리보장과 인종차별을 포괄하는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고, 100여 명의 이주여성들이 참가했다.
▶ 결혼이주여성들이 항의 행동에 나서다. 지난 6월 28일,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와 한국이주여성연합회 등 14개 단체가 ‘차별에 기반한 다문화가족 자녀 비하 발언 익산시장 규탄 행동’을 벌이는 모습.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누구에게나 있다
내 수업에서 눈물을 뚝뚝 흘렸던 필리핀 여성의 경험은 다행히 생명을 위협하는 폭력은 아니었다. 그러나 분명한 인종차별 폭력이었다.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뒤에서 나이 든 여성이 갑자기 손으로 그의 머리를 내리쳤다. 사전에 적개심을 보이는 말이나 행동도 전혀 없었고, 뒤돌아서 내리는 순간을 노리고 공격한 것이었다.
이럴 때 셀프 디펜스 기술이 성공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아마 거의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셀프 디펜스는 초능력이 아니다. 지진이나 화재 대피 요령처럼 안전을 위한 기술일 뿐이다.
사회가 불평등할수록 사회관계가 더 적대적이고 폭력적이다. 그런데 불평등과 차별, 배제에 기초한 사회관계가 지속된다면 단지 사회의 최하층 약자들만 불행해지는 것일까? 사실은 사회의 다수가 고통에 시달린다.
개인적 폭력이든 제도적 폭력이든 희생자는 소수일 수 있다. 그러나 폭력이 주는 공포는 더 많은 사람들을 위협하기 마련이다. 폭력도 문제고 폭력이 불러오는 공포도 문제다.
우리 모두는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 결혼이주여성, 이주노동자, 난민, 탈북민, 가난한 사람이라고 해서 거주와 이전의 자유, 존중받을 권리를 제약당해서는 안 된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평등한 권리가 보장될수록 우리가 함께 더 안전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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