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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도 여전히, 자신을 찾아가는 일이 중요해

토크쇼 <뜨겁게 나이드는 여자들> 김인선, 최현숙 이야기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전 여러분한테 제 삶의 이야기를 조금 들려드리고 싶을 뿐이지, 인생 먼저 살아온 선배로서 어떤 조언을 하겠다는 건 아니에요. 각자가 자기가 깨닫고, 자기가 가는 길은 본인이 찾아야 하거든요. 어떤 사람의 인생을 참고는 할 수 있겠지만 똑같지 않으니까요.”(김인선)


“보통 사람들이 ‘닥치면 달라진다’고 하잖아요. 저도 ‘사람들 늙으면 다 똑같아진다’는 말 들었거든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늙는다고 해서 제가 다른 사람과 똑같아지지 않더라고요. 저한테는 여전히 ‘제 방식으로 살고 제 방식으로 늙어가고 제 방식으로 원하는 걸 하는 게’ 가장 중요하지, 남들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게 저에겐 전혀 중요하지 않더라고요.”(최현숙)

토크쇼 “뜨겁게 나이드는 여자들” 홍보물 (출처: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페이스북)


마이크 든 60대 레즈비언들의 뜨겁고 유쾌한 삶


1972년, 스물두 살의 나이에 독일로 건너가 간호사가 되었고 34살에 결혼을 했다. 신학 공부도 시작했다. 그러다가 자신의 인생을 바꿀 여성과 ‘운명의 키스’를 나눈 뒤, 남편과 이혼하고 여성 파트너와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이후 독일에 사는 이주민들을 위한 호스피스 자원봉사 단체 ‘이종문화 간 호스피스-동행’을 만들었다.


꽤 드라마틱하다고 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가진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현재 베를린에서 거주하고 있는 김인선 씨다. 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 중인 그가 또 한 명의 드라마틱한 삶을 사는 이를 만났다.


2008년 한국에서 최초로 커밍아웃한 레즈비언 국회의원 후보로 서울 종로구에 출사표를 던졌으며, 이후 노인복지에 관심을 가지고 요양보호사로 일했고, 현재는 구술생애사 작가로서 가난한 남성성의 기원을 찾아 나선 <할배의 탄생>(이매진), 망원시장의 여성 상인들 이야기를 다룬 <이번 생은 망원시장>(글항아리) 그리고 갓 출간된 <할매의 탄생>(글항아리)까지 써낸 최현숙 씨다.


둘 다 60대, 한국에서 꽤 찾아보기 힘든 ‘나이 든 성소수자’라는 점 말고도 개신교와 천주교 단체에서 활동한 경험, 결혼 제도 안에 들어갔던 경험, 노인과 복지 분야의 경험 등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런 두 사람이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교육플랫폼 ‘이탈’ 주최로 13일(목) 저녁에 열린 토크쇼 <뜨겁게 나이드는 여자들>에서 많은 이들의 공감과 웃음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보따리를 잔뜩 풀었다.


‘우리 사회는 고령사회다, 이제 곧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나이 든 여성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또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마이크를 잡고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걸 볼 기회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걸 감안하면 이 토크쇼는 더욱 특별할 수밖에 없다. 페미니스트 저술가 홍혜은 씨의 사회로 진행된 토크쇼는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겼다. “난 아직 두 시간 더 이야기할 수 있다”는 김인선 씨의 말처럼 화자도, 청자도 시간이 아쉽다 느낄 만큼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왔다. 그날의 뜨거웠던 대화를 간락하게나마 전하고자 한다.


결혼할 땐 확신이 없었지만, 이혼할 땐 확신 있었다


“요즘 한국의 젊은 여성들의 큰 이슈 중 하나가 비혼/탈혼이고 그렇기에 ‘혼자서 잘살아보자, 여자들이여 성공하자’는 ‘야망보지’ 서사까지 등장할 정도인데, 두 분에게 결혼은 어떤 것이었나요?” 사회자가 질문을 던졌다.


“전 1972년에 한국에 떠났고 내년에 70세인 구시대 사람이에요. 근데 지금 한국에 와 보니까 이렇게 ‘보지’ 얘기를 막 하고.(다같이 웃음) 한국이 너무 달라져 있더라고요.” 놀라움을 내비치는 김인선 씨의 말에, “이럴 줄 알았으면 한국에 살 걸 그랬다 싶죠?”라고 덧붙이며 청중을 더 크게 웃게 한 최현숙 씨. 두 사람의 ‘케미’(조합)는 시작부터 빵빵 터졌다.


2018년 제6회 디아스포라영화제에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김인선 씨는 이때를 계기로 한국의 성소수자들을 위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출처: 디아스포라영화제 인스타그램 @diasporafilmfestival)


지금으로부터 30~40년 전, 두 사람에게 ‘결혼’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강요에 의한 선택만은 아니었다. “독일 가서 하고 싶은 게 많았다. 술도 밤새 마시고 춤도 추고 결혼도 한번 해 봐야겠다 싶기도”(김인선)했고, “아마 많은 기혼 여성들에게 결혼은 ‘아버지로부터의 탈출’일 텐데 저에게도 그런 의미”(최현숙)이기도 했다.


그럭저럭 굴러가던 결혼 생활에서 탈출을 꿈꾸게 된 건 “정말 사랑하는 운명의 사람과의 만남”(김인선)과, “공공의 선을 추구하고자 하는 신념과 정당정치 활동을 하면서 여성주의를 만나 나의 섹슈얼리티와 정체성을 탐구”(최현숙)하게 된 게 계기였다. “결혼할 땐 확신이 없었지만 이혼할 땐 확신이 있었다”는 김인선씨의 말처럼, 결혼을 시작할 때와 달리 끝맺을 땐 단호했다.


두 사람은 현재 비혼 상태. 김 씨에겐 함께 산 지 거의 30년이 되어 가는 여성 파트너가 있지만, 아직 결혼은 하지 않았다. “결혼 그거 종이일 뿐이라고 했는데도(다같이 웃음) 짝꿍은 결혼을 한 번도 안 해봐서 해보고 싶대요.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 사람 소원이니까 들어줘야지.” 독일로 돌아가면 결혼할 예정이라고 밝힌 김인선 씨와 달리, 최현숙 씨는 “(동성결혼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할 생각이 없다”고 못 박았다.


“성소수자의 결혼은 중요한 의제니까 (혼인권을 얻기 위해) 같이 싸울 수 있지만, 전 이제 등록으로 묶이는 게 정말 싫어요. 혼자 살면서 연애를 계속하고 싶어요. 저한테는 자유로운 게 가장 중요하더라고요.”


‘이름’은 끊임없이 변화할 수 있어


성소수자, 동성애자, 양성애자라는 이름조차 생소하던 시대를 살아오다 동성과 사랑에 빠져버린 여성들에게 자신을 정체화하는 과정이 어땠을까? 두 사람은 여전히 자신을 ‘자유롭게’ 두고 있었다.


“이름이 뭐든지 상관없다”는 김인선 씨는 “내가 과거에 남자들을 만났었고 하지만 지금은 여자랑 행복하게 산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닐까요?”라고 물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이 좋아요. 한국에 와서 맛있는 음식 먹으니까 짝꿍 생각이 나더라고요. 이렇게 애틋한 마음이 있는 동안 같이 살고, 못 살겠다 싶으면 헤어지고. 복잡해질 필요가 없어요. 나대로 오늘을 사는 거”라는 그의 말에서 호탕함이 묻어났다.


2008년 최초로 커밍아웃한 레즈비언 국회의원 후보로 나선 정당인 최현숙 씨와 선거운동본부 사람들의 열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레즈비언 정치도전기>(홍지유, 한영희 감독, 2009) 포스터 (출처: 연분홍치마)


최현숙 씨는 이름이 가진 의미를 좀 더 생각해보게 하는 이야기를 보탰다. “이성애자와 시스젠더(cisgender, 타고난 지정 성별과 자신이 정체화하는 성별이 일치한다고 느끼는 사람)가 공고한 사회에서, 불편함과 다름을 느끼는 사람들이 자신을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로 호명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아, 그게 나구나’라고 생각을 하죠. 그러다가 또 ‘그게 정말 나를 설명하는 용어인가?’ 혼동하는 거 자체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까요?”


“그런 라벨링(이름 붙임)들이 우리를 그룹화하는 어떤 명칭으로써 필요한 측면이 있죠. 하지만 그게 개개인들과 상당히 어긋날 때도 있어요. (자신을 어떤 이름으로 부르냐는 것은) 지금 어떤 조건과 상황에 놓여 있는지, 어떤 상대를 만나는지에 따라서 끊임없이 변화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최근 몇 년간 한국 사회의 부끄러운 특이점으로 자리 잡은 특정 종교의 ‘혐오’ 선동과 움직임에 대한 이야기도 빠질 수 없었다. 인생의 반 이상을 독일에서 보낸 김 씨는 한국의 퀴어퍼레이드에서 종교의 이름으로 ‘동성애 반대’를 부르짖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에 와서 보니까 기독교와 하나님은 상관없는 것 같다”고 꼬집기도 했다. 김 씨는 “하나님이 이렇게 다양한 모든 걸 창조하셨다는 점이 의미가 있는 거 아니겠냐?”고 말하면서 “같은 성서를 읽는데 왜 독일과 한국이 다르냐? 인간적인 잣대에서 보니까 그런 것”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천주교 단체에서 사회운동을 한 경험이 있는 최 씨는 “지금 하나님이 있냐 없냐? 그건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다만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최선을 다해서, 나에서 출발한 공공의 선을 지향하는 삶을 살기로 했다. 이미 죽어 간 사람들의 삶을 산 사람들이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재해석하는 걸 통해서 후대 사람들이 자기 삶의 방향을 잡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죽음 이후나 사후세계엔 관심 없다, (어떤 삶이든) 오는 대로 살아주겠다”고 말하는 최현숙 씨의 모습은 ‘이게 바로 나이든 여성의 카리스마구나!’ 느끼게 했다.


‘노인(늙음) 혐오’에 대해 성찰해봐야 하지 않을까?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하면서도 같은 두 사람의 이야기는 재미가 가득했다. 청중들이 몇 번이나 큰 웃음을 터트리고 격한 고개 끄덕거림을 반복하는 사이, 이야기는 ‘나이 듦, 죽음’으로 이어졌다. 그 어떤 이야기보다도 귀가 쫑긋해지는 주제이기도 했다.


김인선 씨는 “나이 들어서 좋은 것도 많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리고 호스피스 활동을 통해 “죽음을 준비하는 분들과 동행을 많이 했기 때문에” 죽음을 먼일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죽음은 늘 우리 삶과 같이 있다”고 설명했다.


“제가 소유했던 것들이 제 것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건 제가 받은 선물이니까, 내가 다른 사람한테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전 원가족한테 받지 못한 사랑을 다른 사람들을 통해 받았고, 지금 이렇게 삶을 살 수 있다는 게 행복해요. 나보다 더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안아 주고 그러면 세상이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늙음과 죽음이 저에게 가장 중요한 주제가 되었다”고 말한 최현숙 씨는 “어떻게 나이 들어갈지 불안하다면 자기 자신에 대해 돌아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가난해지는 게 불안하다면 적극적으로 대책을 세워야겠죠. 자기가 수긍할 수 있는 전략을 세우고 나면, 나이 드는 게 그렇게 두려운 일이 아니에요.”


“나이가 든다는 건, 어느 날 갑자기 노인이 되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 차근차근 늙어가는 거고 젊을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사는 것을 끊임없이 자기 일상 속에서 차례차례 배워나가는 것”이라고 설명한 최 씨는 ‘노인(늙음) 혐오’에 대해서도 한마디 덧붙였다.


“모든 혐오는 두려움이죠. 그렇다면 왜 난 늙음과 빈곤한 노인을 두려워하는지, 늙음에 대한 혐오는 동성애자들을 혐오하는 자들의 혐오와 어떤 면에서 닮아있는 건 아닌지, 그런 걸 좀 돌아보는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교육플랫폼 ‘이탈’ 주최로 6월 13일 저녁에 열린 토크쇼 “뜨겁게 나이드는 여자들” 홍혜은(사회자), 김인선, 최현숙 씨. (출처: 일다 박주연 기자)


최현숙 씨는 또한 “노인이 고독사한다고 하더라도 비참하게 표현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밝혔다. “주변에 (고독사한) 누가 있다고 하더라도, 사실 죽음의 순간엔 모든 사람들이 고독하게 죽음을 향해 간다고 생각해요. 내가 설사 고독사하더라도 비참함, 불쌍함 그런 걸로 표현되지 않고 내가 ‘충분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김 씨는 늙었다고 사랑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방법이 달라지는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화끈하진 않아도 은근한 게 있다”고 말하면서도 “예전에 저도 활발한 섹스를 즐겼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은 이렇게 두 달씩 혼자 와 있다”고 밝혀 모두의 웃음을 자아냈다.


하나씩 하나씩, 자기만의 서사를 만들어가요


‘아직 60대면 청춘’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두 사람은 지금 죽어도 후회는 없다고 했다. “하고 싶은 거 다 해서 앞으로 특별히 하고 싶은 건 없고, 그냥 내 기력이 다하는 동안 누가 불러주면 내가 살아온 경험담이나 얘기하는 정도”(김인선), “남아있는 시간 동안 더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사실은 ‘무엇이 되는가’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최현숙)하다고 했다.


김 씨는 그동안의 호스피스 활동 경력(?!)을 살려 “제 도움이 필요하면 얘기해 달라”는 말을 덧붙여 청중들의 웃음을 자아냈고, 최 씨가 한술 더 떠서 “사실 제가 방법을 좀 모아놓은 게 있긴 한데, 아마 언니가 정확한 방법을 알고 있을 거”라고 말해 폭소가 터져 나왔다.


두 사람이 죽음을 마주하고 있는 방식은 ‘천당과 지옥이 있다면?’이라는 질문에서 다시 한번 드러났다. 김 씨가 “내가 맘에 드는 데로 찾아간다”고 당당함을 뽐냈다면, 최 씨는 “사후세계를 믿지 않지만 굳이 간다면 지옥. 그쪽 사람들이 사연도 많고, 구술생애 인터뷰도 할 수 있다”며 소신을 드러냈다. 청중들이 감탄 섞인 박수를 보낸 건 당연한 일이었다.


좀처럼 보기 힘든, 나이든 여성들의 ‘뜨거운 이야기’에 청중들의 질문도 많았다. “내가 원하는 걸 어떻게 아는지, 우리의 욕구는 모두 실현되어야 하는지?”라는 질문에 최현숙 씨는 “한 번씩 해보자”고 답했다.


“아주 사소하고 조그마한 것, 이기적이지만 내가 죽어도 이건 충족해 버리고 싶은 그런 게 있다면 한번 충족해 보자고요. 그게 옳은지 아닌지는 한번 해보면서 깨달아 갔으면 좋겠어요. 제가 보니까 ‘옳고 그름?’ ‘선악?’ 이런 거 없더라고요. ‘처지와 맥락과 사연’이 있어요. 자기의 처지와 맥락과 사연과 서사를 잘 만들어 가면서 자기 자신을 찾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김인선 씨는 “자신을 믿고 자신을 관찰하는 일”을 강조했다. “전 항상 저를 관찰하면서 살았어요.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 무엇을 앞으로 할 건가. 그런 걸 시시때때로 관찰하면서 살아왔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박주연 기자)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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