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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마블, ‘여성 영웅 서사’를 살린 음악감독도 여성

<페미니스트라면 이 뮤지션> 영화음악가 피나르 토프라크



5백만 관객을 돌파하며 3월 최고 흥행작 기록을 세운 <캡틴 마블>은 마블 스튜디오에서 처음으로 만든 여성 솔로 영화라는 점에서 주목받았고,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새로운 히어로를 원하는 시대’에 맞게, 여성 영웅 서사를 써나간 <캡틴 마블>은 비주얼과 음악에서도 이를 탄탄하게 뒷받침한다.


고전적인 히어로의 면모,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의 등장, 페미니즘 색깔의 여성 성장기, 난민 이슈를 담는 진지함과 그럼에도 잃지 않는 영화의 유머러스한 부분까지 다양한 구성을 유기적으로 엮고 설득력을 더한 것은 음악이다. 때문에 영화 못지않게 OST도 화제다. 오늘 소개할 내용은 <캡틴 마블>의 음악감독 피나르 토프라크와 영화에 등장한 음악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 <캡틴 마블>(Captain Marvel, 애너 보든, 라이언 플렉 감독, 브리 라슨 주연, 2019) 포스터 ⓒMarvel Studio


피나르 토프라크는 이 영화를 통해 마블 최초의 여성 음악감독이 되었다. 대부분의 멋진 여성 예술가들이 그렇듯, 그 역시 하루아침에 등장한 스타가 아니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태어난 피나르 토프라크는 네다섯 살 즈음, 아주 어릴 적부터 클래식 음악을 배웠다고 한다. 이후 다양한 악기들을 연주하고 작곡을 배우면서, 오케스트레이션(대규모 오케스트라 편성의 연주로 구현할 수 있게 작곡하는 것)을 익혔다.


그는 22살이 되기 전 영화음악과 작곡으로 학위를 취득했으며, 그 과정에서 시카고에서 재즈를 공부하기도 했다. 그리고 유명 영화음악 감독 중에서도 1인자라 불리는 한스 짐머(Hans Zimmer)의 스튜디오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이미 피나르 토프라크의 경력은 20년에 가깝고, 그가 참여한 영화도 40편이 넘는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인 <더 라이트키퍼스>와 요트 레이싱을 다룬 다큐멘터리 <더 윈드 갓즈>의 음악 작업을 통해 수상을 한 전력도 있다.


최근 들어 피나르 토프라크는 대규모 작품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게임 포트나이트의 음악부터 영화 <저스티스 리그>에 참여했고, 슈퍼맨 탄생의 비화를 다룬 대규모 미국 드라마 <크립톤>의 음악감독을 맡았다. 즉 <캡틴 마블>의 음악을 맡기 전 그는 승승장구 중이었다.


드디어 <캡틴 마블>을 만난 피나르 토프라크. 그는 어릴 때부터 히어로물의 팬이었다고 하니 마블 시리즈를 좋아하는 것은 당연했다. 당연히 히어로물의 음악에도 관심이 많았고, <슈퍼맨>을 대표하는 시그니처 곡에 푹 빠지기도 했다. 1977년부터 마블을 좋아했다고 밝힌 그는 영화의 음악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고 엄청나게 기뻤다고 한다.


▶영화 <캡틴 마블>(Captain Marvel, 애너 보든, 라이언 플렉 감독, 브리 라슨 주연, 2019)  ⓒMarvel Studio


<캡틴 마블> 작업 이후, 버라이어티라는 채널에서 자신이 ‘여성이어서 이 영화의 음악을 맡게 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에 대해 피나르 토프라크는 조목조목 반박했다. 지금까지 자신의 경력과 최근 히어로물을 맡았던 경험, 무엇보다 마블 시리즈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점 등을 설명한 것이다.


남성의 영역으로 불리던 곳에서 이제야 여성의 능력을 인정했을 뿐인데, ‘처음’이라는 훈장을 단 여성들에게는 쉽게 꼬리표(여성이라는 이유로 특혜를 받은 게 아니냐)가 붙는다. 피나르 토프라크는 이러한 의문에 대해 음악으로 이미 증명하고 있다.


<캡틴 마블>을 위해 다양한 장르의 문법을 사용했고, 고전적인 작법부터 가장 최신의 사운드까지 활용했다. 보스턴 글로브 매거진에 따르면, <캡틴 마블>의 두 감독(애너 보든, 라이언 플렉)은 처음 데모를 받고 굉장히 놀랐다고 한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주인공의 두려움 없고 즐거운 모습, 또 감정적인 변화와 그 울림까지 음악에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고전음악과 SF의 결합은 쉬운 것이 아니다. 과거에는 현악기를 비롯한 오케스트라의 편성으로 모든 걸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제한적인 방법으로 영화의 이미지를 음악으로 옮겼지만, 지금은 신스와 전자음악 요소를 비롯해 구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해졌다. <캡틴 마블>과 같은 최신 히어로물 영화를 높은 완성도로 작업해냈다는 것은 그만큼 기술적인 면도, 예술적인 면도, 상상력에서도 뛰어난 역량을 드러낸 것이다.


▶영화 <캡틴 마블>(Captain Marvel, 애너 보든, 라이언 플렉 감독, 브리 라슨 주연, 2019) 중에서 ⓒMarvel Studio


오리지널 스코어(영화음악가들이 특정한 영화를 위해 만든 음악)도 힘이 있지만, 영화에 쓰인 음악 한 곡 한 곡이 모두 인상 깊다. <캡틴 마블>이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만큼, OST도 그 시대를 느낄 수 있도록 1990년대를 대표하는 음악들로 채워졌다. TLC와 노 다웃(No Doubt), 엔 보그 & 솔트-앤-페파(EN VOUGE & SALT-N-PEPA), 데스리(Des’Ree), 마블렛츠(The Marvelettes) 등 여성 음악가들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페미니스트로서의 성향이 강한 뮤지션들이기도 하다.


데스리(Des’Ree)의 “You Gotta Be”는 <캡틴 마블>의 서사와 이미지에도 부합하지만, 모든 여성들의 임파워링을 응원하는 메시지로 읽을 수 있다.


“당신에게 펼쳐지는 하루처럼 들어봐요, 미래가 쥐고 있는 것에 도전하세요, 항상 고개는 하늘을 향해 치켜든 채로” -Des’Ree, You Gotta Be


특히 영화의 전투 장면에 깔린 노 다웃(No Doubt)의 “Just a Girl”은 여성들이 겪는 억압에 대한 저항의 메시지를 담아 경쾌하게 노래하는 그웬 스테파니의 목소리가 어우러져 명장면을 만들어냈다.


“내가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이 세상은 내가 너의 손을 잡길 강요하지. 난 그저 소녀니까”, “세상은 나를 너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해. 아무런 권리도 갖지 못하게 하지. 지긋지긋하다, 이제 질렸어.” -No Doubt, Just A Girl


▶영화 <캡틴 마블>(Captain Marvel, 애너 보든, 라이언 플렉 감독, 브리 라슨 주연, 2019) 촬영현장 ⓒMarvel Studio


여전히 여성 음악감독이 업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적다. 그러나 여성 음악감독들은 연대하고 있다. 2014년 설립된 여성 음악감독을 위한 얼라이언스(Alliance for Women Film Composers)에 가입한 이들만 400여 명이다. 얼라이언스는 최초의 여성 히어로물 음악감독인 셜리 워커(Shirley Walker)를 위한 추모 행사를 여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동하고 있다. 셜리 워커는 1990년대에 <배트맨>과 <슈퍼맨>의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담당하며 마블과 양대산맥이라 불리는 DC 코믹스의 음악적 기반을 다진 인물이다.


피나르 토프라크는 ‘음악과 예술은 젠더리스다(genderless, 성별의 경계가 없음)’라고 했다. 히어로 영화라고 해서 주인공이 남성이거나 남성적일 것이라는(혹은 그렇게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액션 영화, 박진감 넘치는 비디오 게임이라고 해서 남성이 음악감독을 맡아야 할 이유도 전혀 없다. 영화도, 영화음악도, 이제 여성들이 만들고 여성들이 성공시킬 것이다. 이미 그러기 시작했다. 피나르 토프라크는 훌륭한 사례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 Pinar Toprak - Captain Marvel https://bit.ly/2FBekuL

※ Des'ree - You Gotta Be https://bit.ly/1sS0qtf

※ No Doubt - Just A Girl https://bit.ly/1iLfy4z

※ Captain Marvel Full Movie Trailer https://bit.ly/2JJp2nb


[필자 블럭(bluc): 음악에 관해 글 쓰는 일과 기획 일을 하는 프리랜서입니다. 2019년에는 음악과 여성학, 문화연구를 더 깊게 공부하여 그 정보를 독자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Feminist Journal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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