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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미투, 대학들은 어떻게 답했는가

성폭력 신고와 조사, 후속조치에 이르기까지 겹겹이 ‘벽’



올해 초 전국 곳곳의 여러 대학 캠퍼스 내에서도 미투(#MeToo)를 외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은 교수들이었고, 피해자들은 학생이었다. 많은 이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은 사건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사건도 있었다. 각기 다른 사건들이지만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사건의 피해자와 연대자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외친 목소리가 응답 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는 거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고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징계하라는 요구에 대학들은 어떻게 반응했으며, 그 결과가 주는 의미는 무엇인지 논의하는 자리가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주최로 마련됐다. 11월 13일(화) 저녁 6시부터 서울NPO센터 대강당에서 열린 <AFTER #ME TOO: 캠퍼스는 어떻게 답했는가> 포럼에는 청주대, 부산대, 동덕여대, 이화여대 학생들이 참여해 사례 발표를 했다.


신고센터 담당자는 비정규직, 예산은 5백만원


먼저 학생들은 “사건 신고부터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상담센터에서 바쁘다고 하며 대응을 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고, “상담과 정에서 피해자의 정보가 유출”되기도 하였으며, “상담자와 신뢰 관계를 쌓기 어려워 상담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왜 상담과 신고 과정에서부터 어려움을 겪는 것일까?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전국 대학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성희롱 성폭력 피해자 및 조력인 인터뷰 등을 분석한 결과를 살펴보면 그 원인을 가늠할 수 있다.


▶ 지역별 2017년 대학 내 성희롱 성폭력 고충상담 건수(평균) 그래프 (참고: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대학 내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 및 제도개선 방안)  ⓒ일다


<대학 내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 및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이미정연구원은 “대학 내 상담 건수가 생각보다 많지는 않다”고 말했다. 총 상담 건수와 실태조사에 참여한 대학의 수(총 312개 대학)를 기준으로 봤을 때, 2017년 이루어진 개별 면접상담은 평균 5.29건, 이메일 등 온라인 상담은 4.04건, 전화 상담은 2.93건, 집단 면접상담은 0.22건이다.


상담 형태 중 가장 높은 비율이 나온 ‘개별 면접상담’의 경우, 일반대학과 전문대학의 상담 평균은 각각 1.01건, 0.03건이고, 국공립과 사립의 평균은 각각 18건, 2.92건이고, 지역별로 봤을 땐 서울이 가장 높았다. 즉 일반대학, 국공립, 서울 지역 대학에의 상담 건수가 높다는 결과이다. 이미정 연구원은 “상담 건수가 낮게 나온 결과를, 관련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읽어낼 수도 있지만 상담센터나 상담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고 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상담센터의 명칭도 ‘학생상담센터, 진로인성상담센터, 학생인권센터, 성폭력상담실, 성평등상담실, 성문화상담실 등’ 제각기 달라 명확한 역할이 무엇인지 알기 힘들다. 담당자의 업무 내용 비중을 살펴보면 학생상담(생활상담, 심리상담, 진로상담)이 44.9%로 높긴 하지만, 교육(폭력예방교육, 교직원 교육) 18.2%, 행정(행정업무, 인사관리, 학생자치기구 관리) 17.8%, 학생지원(학생 복지지원, 장애학생 및 다문화학생 지원)이 12.3%다. 센터의 명칭만큼이나 업무의 범위도 넓다.


그런데 담당자의 고용 형태는 전체 중 38.8%만이 정규직이다. 무엇보다 ‘성희롱 성폭력 상담 및 신고센터’에 배정되는 예산을 보면, 연간 5백만 원 이하인 대학의 비율이 가장 높게 나왔다.(그래프 참고) 이렇게 낮은 예산으로 무슨 일을 얼마나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수치다. 보고서에 따르면 담당자들 또한 ‘전문인력 부족, 과중한 업무량, 열악한 처우’를 업무 진행의 어려움으로 꼽았다.


▶ 전국 대학의 성희롱 성폭력 예방 및 사건처리 관련 예산 (참고: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대학 내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 및 제도개선 방안)  ⓒ일다


이미정 연구원은 “교육부에서 성희롱 성폭력 방지를 위해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상담센터에 적합한 명칭을 부여함과 동시에 조직의 위상을 부여해야 하며, 피해자 보호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대학 단위에서 진행하는 (성폭력) 실태 조사가 꼭 필요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신고인의 ‘알 권리’를 보장하라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또 다른 문제는 피해자의 신원 보호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와 징계가 이루어지기까지 과정에서 신고인(피해자)이 배제된 채 그 결과도 알 수 없다”는 점이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을 통해 대학 내 성폭력 사건들을 지원한 안지희 변호사(법무법인 위민)는 ‘신고 및 조사 과정에서 피해자의 인적 사항이 드러나는 점’은 큰 문제라고 말하며, “아직 징계 절차에서 신고인의 인적 사항을 비공개로 하는 보호 장치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따라서 “신고인의 인적 사항을 기재하지 않고 조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법령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박주민 의원이 ‘민사소송절차에서 법원이 피해자의 개인정보가 공개되지 않도록 조치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민사소송법 개정안(20111213)을 발의했으나, 여전히 통과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언급했다.


또한 “징계 절차에서 피해자가 형사 고소를 할 때처럼 절차참여권(진술권 및 알 권리)를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성폭력 피해자가 공공기관에 피해 사실을 신고하는 경우에도 법률 조력, 진술 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법령상의 근거를 마련”해야 하며, “국가공무원법, 지방공무원법에 ‘성폭력 신고인이 징계절차 진행상황을 문의한 경우에는 공개해야 한다’는 내용을 추가하고, 피해자가 ‘주요 증인’으로 준당사자의 지위를 갖고 법률 조력 하에 충분히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지희 변호사는 또한 “2019년 4월 17일부터 시행되는 국가공무원법에는 징계 처분 결과를 피해자에게 통보하도록 하고 있다”는 정보를 공유했다. 단, “이 규정은 국공립대학교의 경우에만 적용되고 사립학교에는 적용되지 않으며, 징계절차 진행 상황 등에 대해 공개해야 한다는 내용은 빠지고 결과 통지만 규정하고 있다”는 한계도 짚었다. 사립학교법은 별도로 개정되어야 하며, 국가공무원법 또한 또 보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11월 13일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주최한 라운드테이블 ‘애프터미투: 캠퍼스에서 마주한 벽’ (왼쪽부터 부산대학교 권연화, 이민희, 동덕여자대학교 문아영, 사회자 권김현영, 청주대학교 강윤지, 이화여자대학교 김정한경) ⓒ일다(박주연)


뿐만 아니라 대학들이 사건에 대한 고소가 들어가 형사절차가 진행되면 ‘그 결과를 두고 봐야 한다는 둥의 핑계를 대며’ 대학 내 징계 절차를 연기하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안 변호사의 설명에 따르면, 정부-공무원 징계사례집에서 ‘공무원에게 징계 사유가 인정되는 이상, 관계된 형사 사건이 수사 중이거나 유죄로 인정되지 아니하였더라도 징계 처분을 할 수 있으며, 형사 사건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할지라도 징계 처분을 할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형사 절차와 별개로 충분히 대학들은 징계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피해학생은 ‘일상’(강의실)으로 돌아가고 싶다


탁틴내일의 이현숙 대표는 “성희롱 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교육과, 학교 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과제를 제시했다. 또한 “예방교육은 교수 대상으로 의무적으로 시행하고 있으나 형식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며, “단순한 폭력예방 교육이 아니라 성인지적 인권 교육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통합(포괄)적 교육으로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 내 성희롱 성폭력 실태조사 및 제도개선 방안>에 따르면, ‘피해자들이 원하는 지원’ 중 가장 높은 응답율을 보인 것은 ‘피해자 학습권 보장을 위한 조치 및 학사 지원’ 항목이다. 법적 지원, 수사 지원보다도 학생들은 ‘자신들이 계속 학생으로 남을 수 있게 해 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라운드테이블에 참여한 학생들도 사건 조사와 가해자 징계도 중요하지만 “피해자 보호와 피해자가 학습권을 보장 받고 학교를 계속 다니며 미래를 꿈꿀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대학 내 성희롱 성폭력 피해자들이 원하는 지원 (참고: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대학 내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 및 제도개선 방안)  ⓒ일다


포럼 자료집엔 피해학생이 쓴 다음과 같은 글도 있었다. “저는 학교를 위해 미투 운동을 한 게 아닙니다. 저와 같은 감정을 그 누구도 느끼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었습니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확실해야 피해자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저는 이제 그만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캠퍼스 미투를 외친 학생들은 강한 의지와 용기를 보여줬다. 어떤 대책이 나와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와 제언도 나왔다. 이제, 캠퍼스가 제대로 응답해야 할 차례다. (박주연 기자)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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