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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의 지분은 내가 가질게

<아주의 지멋대로> 똔똔 


※ 지구별에 사는 34년산 인간종족입니다. 지금은 그림을 그립니다. [작가: 아주]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스무 살. 집에서 용돈을 넉넉히 받는 처지가 아니었다.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생활비를 써야 했다. 호감이 오고 가는 사이인 이에게 비싼 밥을 얻어먹은 적이 있다. 부담스럽긴 했지만 나보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니까 라고 생각했다. 맛있긴 맛있었다.


밥 먹고 나오는데 나한테는 ‘갑자기’이고, 그 쪽에게는 자연스러웠는지 내 허리를 손으로 감쌌다.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이건 뭐지?’, ‘아직 그럴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지금이야 ‘뭐 하는 짓이냐!’ 할 테지만 그때는 15년 전이었고, 난 내 감정을 타인에게 직접 전달하는 훈련이 되어있지 않았다.


집에 와서 그 불편한 상황을 내내 복기했다. 뭐가 잘못된 거지? 난 뭘 잘못한 거지? 내가 빌미를 준건가? 결국, 마음에 걸리는 건 그 사람이 비싼 밥값을 냈다는 거였다. 엄마가 ‘세상엔 공짜가 없다’ 신신당부하던 게 생각났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랑도, 내 몸도 돈이구나 싶었다. 그다음부터는 철저하게 반반을 내거나, 내가 더 내는 게 마음이 편했다.


스물여섯 살. 명동에 있는 호텔 앞이 공사 중이라 차량 진행방향을 안내하거나 주차 안내를 하는 주차요원 일을 했다. 매일 아침 성당에 다니시는 할아버지가 ‘젊은이가 수고한다’, ‘열심히 산다’ 격려하시면서 아침마다 사탕을 주셨다. 사탕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어르신이 주시는 거니까, 마음이 고마웠고, 도닥여 주시는 게 고마웠다. 그래서 가끔 나도 껌이나 캐러멜을 사두었다가 드리곤 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난 어느 날, 할아버지가 꼭 밥을 사주고 싶다 하시기에 일 끝나고 밥을 같이 먹게 되었다. 술도 한잔했다.


이야기가 야릇하게 흘러갔다. 당신이 OO건설 회장, OO전자 회장들의 자연 치유사라며 한번 치료하면 몇 백씩 받는다고 했다. 마포에 큰 저택에서 혼자 살고 있고 자식들은 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결혼하고 자식 낳고 살고 있다며 ‘방이 많으니 들어와 살라’는 이야기였다. 나는 한사코 괜찮다고 했다. 어르신에게 버릇없게 굴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사실 뭘 모르기도 했다. 월세가 있긴 하지만 나는 혼자 사는 게 편했고 굳이 할아버지네 집에 들어가 살고 싶지 않았다. 여기까지 난 너무 순진했다.


그 후에 당신 친구분이 최근에 서른 살 어린 여자를 집에 들여 자식을 낳았는데 그렇게 이쁠 수가 없다며, 연신 부럽다며 자신도 그런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공부며 집이며 다 지원해 줄 수 있다고 했다. 헷갈렸다. 나한테 하는 이야기인가? 설마… 자꾸 술을 권해서 무서웠다. 그 와중에 다행인 것인지 나는 그 할아버지보다 술이 세서 택시 태워 보내고 집으로 왔다. 며칠 후, 공사가 끝나고 내가 하던 일도 끝나 다른 아르바이트를 알아보고 있었다. 할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지만 받지 않았다.


서른 살. OO대표한테 강연 사례비와 감사의 뜻으로 행사 주최 측 실무자인 내가 식사를 대접하는 자리였다.


5년 전 그를 한 술자리에서 만난 적이 있다. ‘여자가 술을 따라야 제 맛’이란 말을 들은 이후부터는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그 대표가 있는 술자리에는 앉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엔 내가 행사 섭외를 맡게 되어 피해갈 수가 없었다. 사회 분위기도 많이 바뀌고 했으니 이젠 그쪽도 조심하겠지 싶었다.


그는 이런저런 내 사정을 어디서 들었는지 아니면 그냥 넘겨짚는 건지, 자기가 이 동네에 오피스텔이 있으니 들어와 살라고 했다. 친구네 전전하지 말고, 월세는 필요 없다고 편하게 지내라고, 자신이 일주일에 한두 번 서울에 오는데 그때만 같이 쓰면 된다고. 또 이건 뭔 소리지? 싶었다.


참고로 말하자면 강연비를 전달하는 자리였고, 나는 감사의 뜻만 표하고 밥을 먹고 헤어지면 되는 자리였다. 딱 술 한 잔만 하자고 하여 심하게 거절하는 것도 곤란하고 해서 간 술자리였다. 점점 말의 수위가 높아졌다. 거절했다. 난 당신과 잘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랬더니 도망가는 내 등 뒤에 대고 ‘외로운 것도 죄냐!’ ‘나랑은 왜 안 자냐!’ 술은 별로 먹지도 않았는데 길거리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도망치듯 집에 와 계속 울리는 전화기를 껐다. 다음 날 아침에 전화기를 켜보니 80통 넘게 전화와 문자가 와 있었다. 6개월 후 적성에 맞지 않아 그 일을 그만뒀고, 내가 다니던 회사는 1년 후에 문을 닫았다. 최근 그 대표 소식을 지인에게서 들었는데 술자리에서 ‘술은 여자가 따라야 제 맛이지’ 말하고 나서는 ‘아, 요즘에는 이런 말도 조심히 해야 하지’라고 덧붙인다고 했다. 요즘 것들은 쓸데없이 많이 알고 예민해져서 세상 불편하고 시끄러워졌다는 말도 했다고 전해 들었다.


서른두 살. 내가 따르던 오라버니가 있었다. 믿었다. 오빠란 말은 친오빠한테밖에 안 쓴다. 오라버니는 몇 안 되는 어른에게 쓰는 친밀함의 호칭이었다. 금전적인 큰 실패를 겪으시고도 ‘인생은 유머 있게 살아야 한다’며 웃음을 잃지 않으시는 분이었다. 뭐든지 맡은 일은 열심히 하고 나이를 먹어서도 배우려는 자세와 열정적인 태도로 임했다. 배울 점도 많고 좋은 분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발목을 삐고 경제적으로도 어렵고 심적으로도 우울했을 때, 온천행을 제안했다.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 때라 돈이 없다고, 부담되기 싫다고 했더니, 사람이 몸이 낫고 봐야지 무슨 돈이냐고 했다. 발목 삔 대는 온천욕이 최고라고 했다. 내가 상태 좋았을 때 자신도 좋은 기운을 받았으니 이럴 때 힘이 되고 싶다고 했다. 고마운 마음이었다.


드라이브 하니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서울 외곽 아주 큰 온천으로 갔다. 대중온천탕 줄에 서서 ‘그런데 저는 목욕탕에 숨이 막혀서 30분밖에 못 있는데, 얼마나 있다 나오실 거예요?’ 라고 묻는데, 그가 나를 잡아끌었다. 절뚝거리며 ‘왜요?’라고 했더니 가족탕이 있다며 대중온천탕은 사람도 많고 발도 삐었는데 도와줄 사람도 없으니 가족탕으로 가자고 했다. 비쌌다. 현금으로 척척 계산하더니 키를 받았다.


이건 또 뭐지? 사고 회로 정지, 온 몸이 굳었다. 가족탕에는 침대 두 개와 간유리로 된 탕이 있었다. 물을 받고 탕에 들어갔다 나오면 마사지를 해주겠다고 했다. 일단 탕에 들어가서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다. 밖에서는 필요하면 꼭 부르라고 세 번이나 이야기했다. 나는 문을 부여잡고서 괜찮다고, 쉬시라고 했다. 탕 안에 숨어 있다가 몸을 대충 닦고 마르지도 않은 몸에 가운 대신 입고 들어갔던 내 옷을 싹 다 챙겨 입고 나왔다.


마사지를 해주시겠다는 걸, 내가 하겠다고 했다. 마사지크림까지 챙겨오셨길래 뺏어 들었다. 처음 방에 들어왔을 땐 탕에 대여섯 번은 들어갔다 나와야 한다고, 그래야 발목이 낫는다고 하더니, 내가 나올 때마다 양말까지 챙겨 신고 나왔더니 두 번 만에 이젠 됐다며 본인은 씻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결국 40분만에 방에서 나왔다. 밥을 먹으며 그는 ‘아주는 정말 순수하구나’ 했다. 기가 찼다. 어쨌든 집까지 와야 했으므로 순순히 그의 차를 타고 왔다. 그 후로는 연락을 안 받는다.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고 생각했다.

▶ 똔똔: '개념녀'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아주의 지멋대로


내가 섹스를 하고 싶은 사람과도 모텔에 갈 일이 있으면, 나는 모텔 문도 내가 열고 모텔 계산대 직원도 내가 상대한다. 물론 카드결제도 내가 한다. 상대는 다음 날 밥을 산다거나 차를 사는 식으로 한다. 돈 때문이다. 그런 것을 기반으로 자세나 태도 면에서 섹스할 때도 나의 즐거울 권리를 당당히 요구한다. ‘사정할 거 같으면 이야기 해’ 라고 말한 다음 내가 느끼지 못했는데 상대가 사정할 것 같으면 내 몸을 뺀다. 내가 오르가슴까지 오르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사정을 해버리면 그 시간과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반복해야 하는데 힘들다. 굳이 상대의 사정하는 때와 나의 오르가슴 느끼는 순간을 맞추는 편이다.


돈으로 인해 감정노동을 하고 싶지 않다. 돈을 빌미로 상대가 내 몸이나 감정에 어느 정도의 지분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게 싫다.


더럽고 치사해서 똔똔(손익분기점)으로 하자 이거다.


안다. 모든 비용을 반반 내는 것이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는 걸. 남성과 여성의 임금 격차도 해결되어야 하고, 남녀만이 아닌 계층과 계급의 문제로 기본수당도 고민할 부분이 많다는 거. 사람이 사람을 돈으로 거래하는 것이 아닌 사람으로 봐야한다는 의식 문제가 큰 그림으로 그려져야 한다는 거. 


하지만 지금 당장 내 둘레 안에서라도 떳떳하고 당당하고 안전하고 싶어서 이렇게라도 하는 거다. 당신 마음에 들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 마음에 들려고 악착같이 하는 거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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