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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욘세의 서사와 페미니즘

<블럭의 팝 페미니즘> 비욘세의 여정, 다음은 어디일까(상)


메인스트림 팝 음악과 페미니즘 사이의 관계를 얘기하면서 우리가 일상에서, 대중문화 사이에서 페미니즘을 드러내고 실천으로 이을 가능성까지 찾아보는 것이 목표입니다. 저는 전업으로 글 쓰는 일을 하고 있으며,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합니다. [필자 소개: 블럭]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팝 음악과 페미니즘의 순간들

 

▶ J. 잭 핼버스탬 <가가 페미니즘>(Gaga Feminism) 원서 표지


팝 음악과 페미니즘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대표적인 인물은 마돈나(Madonna)와 레이디 가가(Lady Gaga)다. 각 음악가의 이름을 앞에 붙인 페미니즘을 나름대로 정립한 글도 있다. 마돈나와 가가는 파격적인 시도와 비주얼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명료하게 표현한다.

 

마돈나 페미니즘이 기성 세대에 반하는 저항이었다면, 가가 페미니즘은 기존의 페미니즘 논의까지도 비판한 페미니즘이라고 평하는 해외의 의견을 다수 찾을 수 있다. 마돈나의 파격은 기존 질서에 반하는 것이었지만, 레이디 가가의 파격은 이미 ‘파격’이란 것도 정형화된 포맷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그러한 파격을 자신의 메시지와 작품에 잘 적용하며 한 단계 뛰어넘은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가가 페미니즘>(J. 잭 핼버스탬 저, 이매진. 2014)에 담겨 있다.

 

팝 아티스트들은 하나의 순간, 혹은 하나의 장면을 만들어 사회적으로 메시지를 주거나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준다. 하지만 오늘 소개할 팝 스타는 그보다 긴 호흡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작했던 것일 수 있다. 그러다가 의지를 담아 표현하기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페미니즘을 알아가고, 또 전달하기까지 그 모든 과정을 자신의 디스코그래피 내내 선보이고 있는 중이다. 바로 비욘세(Beyonce)의 이야기다.

 

비욘세의 커리어는 데스티니스 차일드(Destiny’s Child)로 시작된다. 그 이전의 시간들, 그러니까 출생 이후 그룹에 발탁되기까지의 과정도 각종 인터뷰나 자료화면을 통해 공개되었다. 그만큼 대중들에게 비욘세의 시간들과 과거는 많이 노출되어 있다. 또 대중들은 1997년부터 비욘세의 활동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다. 동시에 그가 만들어냈던 페미니즘의 순간 또한 함께 공유되었다. 그 순간에 담긴 의미의 변화도 자연스럽게 알려졌다.

 

▷ Independent Women Part I

 

첫 번째 순간은 바로 “Independent Women Part I”이다. 이 곡은 독립적인 여성을 이야기하는 곡이지만, 어딘가 아쉽고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영화 <미녀 삼총사>(Charlie's Angels, 2000) OST에 수록되어 유명해진 곡인데, 후에 데스티니스 차일드의 정규 앨범에 다시 실리기도 했다. 영화는 독립적이고 진취적이며 강한 여성 캐릭터를 표현하고 있는 한편, 할리우드 자체가 갖고 있는 가부장적 시각과 여배우를 시각적으로 상품화하는 측면을 보이며 ‘독립적인 여성’을 표현할 때의 전형적인 클리셰를 벗어나지는 못한다.

 

▶ 데스티니스 차일드 Independent Women Part I은 영화 <미녀 삼총사>(Charlie's Angels, 2000) OST 수록곡이다.

 

곡 역시 마찬가지다. 이 곡은 ‘수동적, 피지배적, 감정적, 도구적’으로 표현되는 여성 모습의 반대급부에 위치하지만, 그것이 정말로 독립적인 여성을 의미한다고 보긴 어렵다. 곡에서 이야기하는 여성은 기존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상의 변형이며, 이 역시 남성중심의 시각의 개입을 피할 수 없다. 이를테면 경제력이 사회 구성의 전부도 아니고 남녀 관계만이 관계의 전부가 아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내용은 다른 작품, 다른 이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미쓰 에이의 “남자 없이 잘 살아” 같은 곡이 대표적인 예다. 이 곡의 가사는 결국 ‘주체적인 여성을 좋아하는 남성이 바라는 여성상’에 불과하다. 진짜 독립은 ‘남자 없이’ 잘 사는 사람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잘 사는 사회 속에서 각자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Independent Women Part I” 이후, 비욘세가 솔로 때 선보였던 분위기를 지니고 있지만 메시지는 이 곡과 비슷한 임정희의 “Golden Lady”도 있다.

 

▷ Survivor

 

데스티니스 차일드 시절, 독립적인 여성을 표방하려던 시도는 의존적이라고 ‘비난 받는 여성’에서 한 발 빼는 것에 그친 경우가 많았다. 결국 많은 아쉬움을 남겼는데, 같은 앨범에 수록된 “Survivor”는 오히려 이별이라는 구체적인 상황, 그리고 ‘난 살아남을 거야’와 같은 비교적 단순한 메시지가 호응을 얻은 덕분에 좀 더 긴 시간 사랑받았다. 이별 후의 상황을 생존이라는 단어와 결부시킨 것, 그리고 힘 있고 강한 분위기와 매치시킨 것은 멋졌다.

 

▶ 데스티니스 차일드(Destiny’s Child)의 Survivor

 

▷ Me, Myself and I

 

“Survivor”에서 보여준 이별의 모습은 2003년 발표한 비욘세의 데뷔 솔로 앨범 <Dangerously in Love>의 수록곡이자 싱글로도 발표했던 “Me, Myself and I”에도 담겨 있다. 이 곡은 비욘세가 최근까지고 부르는 곡이다. 결국 세상에 남은 것은 나 혼자이며, 스스로 일어서고 판단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Because I realized I got Me Myself and I 

왜냐면 난 깨달았어, 나 자신을 가졌다는 걸

That's all I got in the end, That's what I found out, and it ain't no need to cry

결국 가진 건 그것뿐이야, 그게 내가 알아낸 거야, 울 것도 없지

I took a vow that from now on, I'm gonna be my own best friend 

지금부터 맹세하는데 난 나만의 친구가 되겠어

I know that will never disappoint myself 

내 자신을 실망시키지 않을 거란 걸 알아

 

▶ 2003년 발표한 비욘세의 데뷔 솔로 앨범 <Dangerously in Love> 자켓 이미지

 

좋지 않은 파트너를 만났을 때의 불행, 특히 그 파트너의 행동에 의한 불행을 이야기하고 있는 “Me, Myself and I”는 그걸 바라보는 여성의 심정을 대변하는 동시에, 스스로를 바보 같다고 여기면서도 다시 일어서려는 모습을 담고 있다. 관계에서 남성들의 문제점과 젠더 불평등을 지적한 것이 어쩌면 비욘세 커리어의 전반부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 2화에서 이어집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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