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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새지평

의학적으로 밝혀지지 않는 외로운 고통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09. 1. 25. 08:15
마음이 아파서 몸이 아픈 사람들

여자 아이가 자라납니다. 사람을 돌보고 보듬으며, 음식을 마련하여 먹이고, 일상생활을 가꾸는 방법을 익히면서 성장합니다. 가족을 꾸리게 되었을 때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됩니다. 배워온 대로, 삶의 기초적이고 일상적인 부분을 유지시켜 내는 사람은 그녀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릅니다. 지나간 세월은 겹겹이 쌓인 희로애락의 두터운 기억으로 생생하건만, 남은 삶은 쓸쓸하기만 합니다. 쇠약해지는 몸과 주름지는 피부가 상기하는 건 얼마 남지 않은 죽음뿐입니다. 그녀를 통해서 성장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이미 곁을 떠나갔고, 그녀를 잊고자 합니다. 그녀와 함께 했던 동반자들은 어쩔 수 없는 시간의 흐름에 순응하여, 죽음을 통하여 그녀에게 이별을 고하려고만 합니다.
 
그녀는 아프기 시작합니다. 병원에서는 별 문제 없다고 하지만 자꾸 아픕니다. 원인을 찾을 수 없다는 말에 두렵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꾸만 아이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이처럼 보듬어지고 보살핌 받고 의존하고 싶습니다. 내가 얼마나 힘들고 아픈지 알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병원에서 아무 문제 없다지 않냐 하면서 외면하려고만 합니다. 갑자기 아이가 되어 버린 사람에게 짜증이 날법합니다. 그런데 당사자는 더 서럽고, 쓸쓸하고, 화가 나겠지요.
 
심리적 갈등에 의한 신체적 고통
 
의학적 원인이 분명하게 밝혀진 신체적 질병은 사회적으로 용인됩니다. 그러나 어떤 신체적 고통은 의학적으로 밝힐 수 없습니다. 흔히 의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하면 그 고통은 경시되기 너무나 쉽습니다. 그러나 의학적 원인이 없다고 해서 고통 자체가 없는 건 아닙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밝혀지지 않은 고통으로 힘겹습니다.
 
그 중 일부는 의학이 발전하면서 밝혀지겠지요. 그런데 이와 다르게, 신체적 고통의 원인이 심리적인 갈등에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심리적 갈등에서 발현된 신체적 고통도 마찬가지로, 거짓말이 아니며 과장된 꾀병도 아닙니다. 심리적 갈등이라는 분명한 원인이 있는 실재하는 신체적 고통입니다. 아무도 겪어보지 못했으므로 아무도 모르는 외로운 고통입니다.
 
어린 시절, 몸이 아프면 돌보아 주는 어른에게 가서 아프다고 말했었지요. 그 어른이 이리저리 걱정하고 보살펴 주었을 때 얼마나 사랑 받고 있는지 온몸으로 충만했던 따뜻한 기억들이 있으실 겁니다. 하지만 차가운 기억도 있지요. 아프다 해도 아무도 돌봐주지 않았다는 뿌리깊은 원망과 분노가 뒤섞인 기억들도 있으실 겁니다. 사랑 받고 싶은 어린 마음에 허기지고 참으로 쓸쓸했을 겁니다. 어른이 되어도 사람은 그렇습니다. 사람이니까요.
 
집안을 꾸리고 일생 내내 사람을 보살피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사랑을 주는 역할은 웬만한 강인함과 독립심이 아니고서는 해내기 어렵습니다. 이제는 사랑을 좀 돌려받고자 하고, 늙고 병든다는 낯선 길에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으실 겁니다.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몸이 아픕니다.
 
숨겨야 했던 감정, 보살핌 받고 싶은 마음
 
심장병으로 배우자를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한 중년의 여성이 치료를 찾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커다란 상실감과 함께 남은 것은 죽음과의 마주침이었습니다. 소화되지 못한 외로움은 남편이 겪었던 심장병 증세와 똑같은 증상으로 그분에게 찾아옵니다. 물론 그분의 심장은 튼튼했지만요.
 
몸이 아파 심리상담에 참여하러 오신 분들의 마음을 살피면, 사랑 받지 못했다는 외로움과 강한 의존 욕구와 마주칠 때가 많습니다. 받아들여지거나 이해 받지 못했던 기억이 강렬한 분노와 적개심으로 응어리져 발견되기도 합니다. 어르신의 경우에는 나이 듦과 죽음에 대면하면서 나타나는 깊은 허망함과 두려움과 관련된 경우가 많아 보입니다. 인생을 정말로 열심히 살아오셨건만, 그 분의 사랑을 받은 자들은 사랑을 돌려줄 줄 모르니 노하시는 것도 당연합니다.
 
다른 사람이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나조차도 인정해주지 않았습니다. 사회가 가르쳐주지 않았고 숨겨왔습니다. 억눌리고 맺힌 채 스스로에게조차 인식되지 못한 감정들은 풀어내어질 길을 찾지 못해 몸이 아픈 형태로 나타납니다. 어떻게 보면, 내면을 좀 보살펴 달라고 마음이 보내는 신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몸이 아픔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의 관심과 보살핌을 얻어내게 되니, 우회적인 방식으로 노여움을 표현하는 길이 되기도 합니다.
 
어찌됐건, 풀어나갈 길이 없었다 함은 표현할 수 없고 공감 받지 못했던 탓입니다. 인정 받지 못한 감정, 이름 붙여지지 못한 감정, 숨겨야 하는 감정에 그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응당 느끼게 되는 감정들이 있는데, 사회문화적, 혹은 개인의 주변 환경에 따라 그 감정은 ‘느껴서는 안 되는 무엇’이 될 때가 있습니다.
 
몸이라도 아파야 그 마음이 허락되는 것일까
 
중년의 남성에게도 유사한 고통이 있습니다. 평생을 아무렇지 않은 듯 강한 모습으로 꿋꿋하게 살아내야만 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던 아이처럼 보듬어지고 싶은 욕구가 문득문득 떠오릅니다. 그러나 이는 인정할 수 없는 욕구이기 때문에 풀어내질 수 없습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했지만 사람들과 친밀감을 나누는데 어려움이 있던 한 중년의 남성분이 생각납니다. 어디에도 마음을 둘 줄을 몰랐고, 외도도 심했지요. 어느 날부터 그분에게 견딜 수 없는 오한이 지속됩니다. 병원을 전전했을 때 모두들 아무런 이상이 없다 했지만, 그분은 너무나 추워서 견딜 수 없다 했습니다. 따뜻하게 품어질 어딘가를 찾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요. 그러나 따뜻하게 마음 둘 곳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느끼는 것조차 너무 힘들었을 겁니다. 온몸으로 추위를 느끼게 되기 전까지, 따뜻한 관계를 원하는 마음이 얼마나 당연한지 아무도 말을 안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누가 그분에게 사랑 받고 싶은 마음은 창피한 거라고 새겨놓은 걸까요. 원한 것을 갖지 못했을 때 드는 당연한 패배감과 좌절감은 왜 가려야만 할까요. 슬픔, 두려움, 불안, 분노, 수치심, 죄책감, 상실감. 실재하기에 이름 붙일 수 있는 그 모든 감정은 없애야 할 어두움이라고 모두들 쉬쉬합니다. 병들고 나이 드는 이치를 기억에서 사라지게 하고, 평생을 젊고 아름답게 살 수 있다는 허탈한 거짓말만 난무하니, 죽음과 가까워지면서 응당 찾아온다는 상실감이 자연스레 해소되지 못한 채 불분명하고도 지독한 신체적 고통으로 되돌아 오는 것 같습니다. 왜곡된 독립심을 부추기는 사회에서 의지하고 싶고 돌봄 받고 싶은 마음은 약한 것으로 배격되니 몸이 아플 수밖에 없습니다.
 
몸이라도 아파야 그 마음이 허락되는 걸까요. 마음은 늘 솔직한 것 같습니다. 마음이 진솔하게 말을 건넸을 때 받아들여질 수 있다면 아프지 않아도 될 텐데 그렇습니다.
 
▣ 최현정의 마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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