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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평론에서 페미니즘 이슈 제기하기
도전적이고 새로운 목소리를 들을 준비가 되었는가 

 

※ 필자 블럭(bluc) 소개: 글을 쓰고 인터뷰를 한다. 주로 음악에 관한 글을 쓰고, 가끔 영화 이야기도 한다. [weiv]를 포함한 몇 웹진에서 일하고 있다.

 

 

 

‘더 많은 여성 음악평론가가 필요한 게 아니다’

 

한 달 전, 미국의 잡지 뉴요커(The New Yorker)에서는 “세상은 여성 락음악 평론가를 필요로 한다”(The World Needs Female Rock Critics)라는 기사를 실었다. 안웬 크로포드(Anwen Crawford)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음악평론이라는 영역 내에서 여성의 입지와 인식을 넓히기 위해 여성 음악평론가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글이다.

 

그런가 하면 얼마 후, 페이더(Fader)라는 웹진에서는 “세상은 더 많은 여성 음악평론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The World Doesn't Need More Female Music Critics)라는 기사가 올라왔다. 이 글 역시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글이다. 글쓴이 에밀리 프리들랜더(Emilie Friedlander)는 자신이 몸담은 음악평론의 영역 내에는 이미 여성평론가들이 여럿 존재하고 있으며, 중요한 것은 ‘우리’의 존재를 알리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즉, 이미 여성 음악평론가들은 각지에서 글을 쓰고 있지만, 음악평론계에서 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의식하는 분위기는 ‘전문성이 없다’고 간주하거나 ‘남성평론가와 차등을 두고’ 바라보는 등 사회에서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다. 

 

            © 여성 음악평론가에 대한 <뉴요커> 기사와  <페이더> 기사 페이지. 
 

에밀리 프리들랜더에 따르면, 음악과 관련된 평론에서 젠더, 인종 등을 이야기하기 시작한 건 그렇게 오래되지는 않았다. 최근 젊은 사람들이 인종과 젠더, 퀴어, 몸 등을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 단순히 음악을 하나의 텍스트로 읽거나 이슈를 해석하는 작업 외에도 다양한 측면에서 정체성과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2010년 초반부터 대두한 이야기 중 하나는 ‘백인이 힙합, 알앤비 등의 음악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이었다. 소위 ‘흑인음악’이라 불리는 몇 장르 음악에서는 문화 전반에 대해 이해하고 맥락을 파악하는 작업이 필요한데, 이는 인종 정체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어느 장르든 성역화되는 경향이 발생하고 그러한 과정에서 나오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 흑인 커뮤니티나 그들의 실생활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흑인음악을 듣는 것과, 그렇지 않을 때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것의 차이는 아주 크다. 그래서 아직도 어떤 이들은 최근의 젊은 백인 음악평론가들이 힙합음악을 취향 정도로 취급하거나 가볍게 소화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반대하기도 한다.

 

음악평론에서 젠더, 소수자, 인종 이야기하기

 

그렇다면 젠더, 퀴어 이슈 등은 어떨까? 이러한 이야기는 말 그대로 정말 최근에서야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관련된 음악과 음악가가 많이 등장하고 그렇기에 꺼낼 수 있는 글도 많아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발생한 분위기이기도 한데, 그렇기에 심도 있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아직 그렇게 많지는 않다. 더불어 그런 이야기를 제기하는 대부분의 매체는 주류가 아니라 온라인을 기반으로 하는 작은 규모의 웹진인 경우가 훨씬 많다.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건, 미국 여성잡지 중 나일론(Nylon)을 포함한 몇 곳은 페미닌(여성스러운 것)에서 페미니즘으로 그 방향을 조금씩 옮기고 있다는 점이다. 아직 온전하게 정착하거나 공개적으로 지향성을 표명한 것은 아니지만, 기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기사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음악과 관련된 글 역시 마찬가지다. 여전히 정형화된 포맷으로 음악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 틀을 벗어나고자 시도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기존의 틀을 벗어나는 방법의 하나로 페미니즘과 같은 프레임이 등장하고 있다. 또한 모든 음악 작품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아니지만, 몇 가지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지점에 대해서는 비판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는 앞으로도 더 커지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앞서 소개한 “세상은 더 많은 여성 음악평론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라는 기사는 젊은 음악평론가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를 언급하고, 기존의 나이 든 음악평론가들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나이 든 음악평론가는 인터넷을 중심으로 하는 지금의 글 쓰는 사람들을 순진하고 아마추어 같은 존재로 보고 있으며, 젊은 음악평론가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디에 글을 쓰는지조차 모른다는 것이다. 또한 여기에는 다소 깔보는 시선도 포함되어 있다.

 

솔직히, 이러한 행태는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느껴진다. 모든 기성 평론가가 문제를 가진 것은 아니며,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의 기준을 딱히 정할 수도 없지만, 음악평론계의 전반적인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젊은 페미니스트들의 상황과도 몇 가지 지점은 비교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기성 세대나 먼저 길을 걸었던 사람들을 전면 부정하거나 그들을 존경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며, 전체가 문제라는 말도 물론 아니다. 다만, 개선해야 할 부분은 짚고 고쳐나가야 발전이 있으므로 새로운 문제 제기와 지적은 늘 필요하다.

 

음악평론에서 성별이나 인종에 관련된 이슈는 확실히 존재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이슈를 꺼내고 확장하며 넓은 차원에서 논의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그런 논의를 해나갈 사람도 필요하다. 한국에서 음악에 관한 글을 쓰는 사람은 여전히 한정되어 있고, 영화비평이나 문학비평 등에 비해 이론적 바탕이나 활동 영역이 적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가능성과 비전을 세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페미니즘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보다 그렇게 할 사람을 찾고 함께 뭔가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나 역시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지금의 문제 의식과 생각을 놓지 않고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자 한다.  블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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