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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를 위해 서로 싸워야 합니까?


<북과 남을 가로지르다> 북한이주여성 효주 씨가 북한의 서민문화와 남한에서 겪은 경험을 전한 칼럼 연재를 마칩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을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아무도 믿지 말라’는 말을 떠올리게 될 때

 

현재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탈북자들의 수가 2만이 넘는다고 한다. 말이 2만이지, 한 사람 한 사람 그 수를 헤아리기란 쉽지 않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폐쇄된 사회에서 살아가다가 생활고에 못 이겨서, 또는 친구를 잘못 만나서, 말 한마디 잘못해서 등등의 이유로, 이런 저런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국경을 넘고 남조선, 즉 한국으로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남한에 대한 정보도 없이 단지 잘 먹고 잘살고, 일하면 일한만큼 보상을 준다는 말만 믿고 한국에 와서 이곳 생활에 적응하기란, 또 한 번의 고행의 길이 시작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에서는 나라에서 지정해준 가격에, 또 나라에서 공급해주는 식량과 물건을 공급받아 살아가게 되어 있다. 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한 대신 어려서부터 조직 생활이라는 엄격한 규율 속에 내 잘못은 물론 남의 잘못까지도 눈 여겨보며 살아왔다. 그러다가 한국에 와서 살게 된 탈북자들은 아무리 같은 민족, 같은 나라라지만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현저히 다른 두 체제 속에 갈등과 번민, 후회와 외로움을 수없이 겪었을 것이다.

 

처음 한국사람들과 만났을 때, 마음도 따뜻하고 삶에 여유와 활기가 넘친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같은 민족인데 삶이 이렇게 다를 수 있는지 놀랍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생활 적응 훈련에 들어가면서부터, 자본주의 체제가 내 생각과는 다른 것 같았다. 막 사는 체제, 남한사람들이 정말 무질서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도 질서와 규율은 있어야 하지 않나?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무질서함 속에 나름의 질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북한은 북한만의 독특한 독재 체제의 엄격함이 있다. 수령과 또 수령의 가계도 중심으로 교육을 받아왔고,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수령을 위한 삶을 살아가도록 교육 또 교육, 통제 또 통제를 받아왔다. 나를 비롯해 탈북자들은 처음 한국에 와서 ‘자기중심의 삶을 산다’는 것이 많이 낯설었을 것이다. 그리고 쉽게 적응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북에서는 누구한테 시원하게 속을 터놓고 살아본 적이 없고 의심과 경계 속에서 살았었다. 평생 그런 삶을 살다가 한국에 오니, 모든 것이 자유로워 보이고 법에만 어긋나지 않게 살면 되겠구나 하고, 쉽게 생각해버렸던 것 같다.

 

그 누구의 통제와 조직 생활, 그리고 감시 속에서 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을 느낀 나는, 내게 다가오는 다정한 손길들을 뿌리칠 수 있는 방어력을 갖지 못했다. 사람을 그냥 믿어버린 것이다. 남한에서 살면서 사기를 당하게 경우가 많았다. 그때마다 ‘여기선 누구도 믿지 말아, 다 나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살아라’ 했던 누군가의 말을 떠올리게 된다.

 

‘연변에서 왔냐, 북한에서 왔냐’

 

주변에서 ‘너는 왜 자식들을 데려오지 않느냐’ 묻기도 한다. ‘너는 한국에 와서 잘 사는데 자식들을 데려다 호강시킬 생각은 않고 너 혼자 잘 살면 뭐하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가족들이나 자식들을 데려와 같이 사는 탈북자들도 많다. 정말 부럽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기회가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또 호강시키려고 자식들을 데려왔다가 취업도 못하고 결혼도 못하고 오히려 괴로움과 고통만 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런 시도를 해볼 엄두가 나지 않는 경우도 있는 게 사실이다.

 

한국은 돈이 우선인 사회이다. 북한에서 남조선 사회에 대해 교육받은 내용 중에 유일하게 맞는 것이 ‘돈이 우선인 사회’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돈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회이기도 하다. 북한에 있을 때 한 달에 열흘 분의 배급만 받아도 살 것 같았는데, 그래서 먹는 문제만 풀리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것처럼 생각했는데, 막상 한국에 와보니 배를 굶지 않는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취직을 하려고 하면 탈북자라는 이유만으로 거절을 당했다. 결혼을 해도 ‘도망가지 않을까’ 하는 시댁의 감시를 받아야 했다. 남한 사회 어디를 가나 눈에 색안경을 끼고 안 좋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탈북자들이 들으라는 듯이 ‘한국에도 못살고 한끼 식량을 벌기 위해 별의별 일을 다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왜 자꾸 탈북자들을 받아주는지 모르겠다’고 불평을 해댄다. 내 앞에서 대놓고 ‘한국도 어려운데 왜 왔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살려고 왔어요. 나도, 살려고 왔습니다.”

 

억양 때문에 ‘연변에서 왔냐, 아니면 북한에서 왔냐’ 하는 질문을 자주 듣게 되었는데, 중국에서 왔다고 하면 그런 대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지만 탈북자라고 하면 받아주지 않는 곳들이 많았다. 그 이유는 내가 듣기에 매우 부적절했다.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해서 라든가, 일을 잘 못한다든가, 사투리 때문에 말을 못 알아들어서 안 된다든가 하는 것이었다. 이런 현실이니, 탈북자 중에는 조선족이라고 속이고 취직을 하는 이들이 있을 수밖에.

 

또, 들리는 말에 의하면 탈북자들이 취직을 하면 기껏 3개월을 못 견디고 그만둔다고들 한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일에 대해 가르치면 그걸 잔소리로 여기고 말도 없이 그만두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들었다. 사실 북한과는 다른 세상에 적응해 살아가려면 탈북자로선 모든 상황을 인내심을 가지고 극복해가야만 살아갈 수가 있는 게 사실이다.

 

한국 생활은 나와의 끝없는 싸움이었다. 끈기, 인내심, 그리고 결단성이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에서는, 결과는 어떻든 간에 하루 여덟 시간 로동시간을 채우고 내 앞에 주어진 일만 다 하면 된다는 개념이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날 그날 일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하고, 정신 바짝 차리고 이러 저러한 사항을 결정하면서 일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북한 사람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편견이 심했기 때문에, 나도 처음에는 내가 누구라는 걸 숨기고 살았다. 그러나 결국엔 대화하는 과정에서 북한 출신임이 드러나는 경우가 생겼다. 이왕 이렇게 알게 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처음부터 당당하게 내 소개를 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보았더니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한편으론 탈북자로서, 남한사람들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게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정말 다른 것들 생각할 새도 없이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앞으로도 내게 주어진 생이 다하는 날까지 열심히 살아갈 생각이다.

 

북한에 대한 뉴스는 여전히 불편하다

 

남한에 와서 북한과 관련한 정치 뉴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해 검증되지도 않은 추측성 보도들을 접할 때 마음이 불편하고 괴로웠다. 내가 북한을 나왔을 당시 아무리 힘이 들고 병들고 굶고, 또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걸 직접 보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대한 비방 뉴스를 보면 심기가 불편해졌다.

 

수령이 혼자 정치를 하는 것도 아니고 밑에 간부들이 뒷받침을 해줘야 나라가 잘 살 수 있는데, 사리 사욕만 채우는 간부들이 나쁜 거라고 믿었다. 한국 텔레비전 화면에 김정일의 모습이 보이면 왠지 모를 안타까운 마음에 울컥거리기도 했다. 김정일이 사망했을 때, 아버지인 김일성 사망 때만큼은 아니지만 슬픈 마음이 들었다.

 

현재 북한은 김정은이 정권을 잡고 있고 오래된 간부들을 숙청한다 뭐다 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정은은 나름 할아버지나 아버지 흉내를 내면서 인민들의 민심을 사려고 부인과 여동생까지 동원하고 있지만, 이미 예전의 북한 인민들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할 것이다. 언제까지나 순진하게 김정은을 따를 것이라는 환상은 버려야 한다고 본다.

 

한국에서도 정확하게 증명되지 않은 일에 대해 추측 만으로만 북한 정부를 비난하는 보도를 쏟아내는 건 정말 아니라고 본다. 가령 어떤 범죄에 대해서, 범행 사실을 밝힐 증거가 있어야 범인을 잡을 수 있다는 건 한국 사람들이 더 잘 아는 사실이 아닌가? 왜 추측만으로 북한에 대한 뉴스를 내보내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전에 쓴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북한 사람들도 알지 못하는 ‘김정일의 기쁨조’니 뭐니 하면서 보천보 경음악단, 왕재산 경음악단 같은 예술인들을 우습게 취급하는 것도 옳지 않은 일이라고 본다. 북한 사람들은 이들에 대해 깍듯이 예우한다.

 

또 중앙당 요직 간부들이 국외 대통령이나 귀빈들이 찾아왔을 때 주요 행사 후 만찬회에서 초청 공연을 보여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정부에서도 하고 있는 일이고, 합법적이고 공개적인 행사인데 왜 문제를 삼는 것일까? 오히려 한국에선 웬만한 직장인들까지도 노래방과 다방을 찾아 다니며 도우미 여성들을 불러내 추잡한 짓들을 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북한이 잘하고 한국이 못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모든 일에 있어서 과정보다는 결과를 더 따지는 사람들이, 떠도는 말과 추측 만으로 뉴스를 내보내는 것이 거북하다는 것이다. 남한의 언론 매체가 그러고 있는 걸 보고 있자면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북한의 별것도 아닌 정보도 ‘특종’이라고 떠들어댈 때는 한심하게 보이기도 한다.

 

남과 북의 정치, 분단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  남과 북이 서로 교류와 협력을 해가면서 점차 통일의 문을 열어준다면 좋겠다.   © 손그림- 효주 
 

남과 북이 갈라져 60여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아직도 같은 민족끼리 비난하고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 오랜 세월을 함께해 온 같은 민족, 선량한 사람들이 서로 적대시하는 이 비극적인 현실은 생각할수록 가슴이 무너지고 통탄할 노릇 아닌가. 누구를 위해서 싸워야 하는지, 어느 쪽에서든 분단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위인은 나오지 않는 걸까?

 

북한에서는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을 위해 이 한 몸 총포탄이 되어 한줌의 가루가 될 때까지 싸우겠다고 맹세했었다. 조국과 인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수령과 당간부들의 자리를 지켜주기 위해 죄 없는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도록 세뇌교육을 시키는 사람들이나, 한국에서 말로는 통일을 부르짖으면서 결국 자신들의 자리를 빼앗길까 전전긍긍하며 전시를 대비해 대피지까지 마련해놓고 자기 안위를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뭐가 다를까 생각해본다.

 

내가 남북의 위정자들에게 감히 충고를 한다면, 국민들 앞에서 말로만 통일을 부르짖지 말고, 또 추측 자료나 가지고 뉴스에 내보내지 말고, 어떻게 하면 딴 주머니나 찰까 하는 생각일랑 하지 말고, 진심으로 국민을 생각하고 국민의 편에 서서 그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해결해주려고 신발이 닳도록 뛰어다니는 일군이 되어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 국회위원이 되기 위해, 환심 사는 공약이나 들고나와 국민들의 마음을 흔들어 놀고, 당선이 되면 국고가 어쩌니 하면서 공약은 뒷전으로 하고, 쓰잘 데 없는 곳에 돈을 탕진하고, 방송에서는 누가 어땠고 누가 저땠고 하는 비방만 늘어놓을 것이 아니라, 그 시간에 나라 살림살이 걱정을 더하고 진정 애써주는 진정한 정치일군이 되었으면 한다.

 

지금 한국의 젊은이들은 통일을 왜 해야 하는지, 왜 절실한지, 아예 통일이라는 단어 자체도 떠올리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지금 당장 통일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아무 준비도 없이 당장 통일이 된다면 서로 힘들고 어려워질 테니까. 남과 북이 서로 교류와 협력을 해가면서 발전할 수 있는 기로를 열어준다면 좋겠다. 그리고 언제가 되든 꼭 한반도의 통일을 기원하는 마음은, 북한이나 남한이나 모든 사람들이 숙명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같은 동네 살았던 남조선 출신들과 재일동포

 

지금까지 글을 써오면서 조금이라도 북한에 대해 알려줄 수 있었던 것 같아 마음이 후련하다. 물론 그것이 북한인민의 최말단 중의 한 사람이었던 나의 삶과 좁은 소견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북한의 평범하고 순진한 인민들의 생활을 조금이나마 한국 사람들에게 전달한 것 같다.

 

그리고 <일다>에 실린 재일조선인 관련한 기사들을 보면서, 문득 떠오른 것이 있다. 북한에서 살 때 주변에 재일조선인 동포들을 종종 보았었다. 뿐만 아니라 남조선 출신들도 한 동네에서 어울려 살기도 했다. 그에 관한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한다.

 

내가 어린 시절 살던 동네에는 남조선 출신이 두 집이나 있었다. 그분들의 아들들이 나와 같은 학년이어서 아직도 그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고 있다. 허씨와 오씨였는데, 남조선에서 인민군이 고향을 점령했을 때 강제로 끌려와 인민군에 입대해 싸우게 되었다고 했다.

 

국군포로 출신들은 남조선 출신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인민군에 입대하여 싸운 사람들만 남조선 출신으로 인정하고, 매년 1~2회를 교육을 받는다. 통일이 되면 제일 먼저 남조선 출신들이 고향으로 들어가 북한사상을 심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솔선 수범이 되어 사람들을 동원하고 북한의 정신을 심어주도록 하는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이런 교육은 비밀이고 외부에 나가서는 함구하도록 되어있다. 정확히 어떤 내용의 교육인지는 정확하게 듣지 못했지만, 대충 아저씨들에게 그런 교육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다.

 

북에선 그들에게 입당도 시키고 승진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정부에서 그들에게 믿음을 주고 신뢰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반면 국군포로 출신들은 직장과 가정을 꾸리고 살되, 당에 입당하거나 승진의 길은 영원히 막혀있는 상태이다. 간혹 특출하게 똑똑하고 나라에 공을 세웠다면 상으로 입당을 시키기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모래밭에서 좁쌀 줍기라 할 정도로 기회가 드물다.

 

이번에는 재일동포 가족들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함경도와 양강도에는 이유도 모른 채 이곳으로 추방되어서 아주 어렵게 사는 가족들을 볼 수 있다. 내가 결혼하여 살던 함경도 마을에는 남편이 재일동포고 아내가 일본인인 부부와 딸 이렇게 세 식구가 살았다. 일본에서 살 때 조선인 남편은 아주 가난한 고학생이었는데, 일본인 아내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일본에서 진행된 ‘북송사업’으로, 만경봉호를 타고 남편이 먼저 귀국해 평양의 한 연구소에서 일하다가 뒤늦게 아내와 합쳐 6년인가 살림을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갑자기 어떤 사람들이 들이닥쳐 남편을 끌고 갔다고 한다.

 

아내는 어린 딸을 안고 아무런 살림 도구도 챙기지 못한 채 차에 실려 온 곳이 바로 함경도의 어느 산골마을이었다. 몇 년 후 남편이 집에 찾아왔다. 이유 없이 감옥생활을 하였고, 아무 것도 묻지도 않은 채 감옥에서 지내다가 풀려나 아내가 있는 곳으로 왔다고 한다. 그동안 아내는 남편 없이 딸 하나를 키우기 위해 조선말도 잘 못하는데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 와중에 딸은 제대로 먹이지도, 돌보지도 못해 갑자기 열이 펄펄 나더니 소아마비에 걸려 한쪽 다리를 절게 되었다.

 

이들 부부와 딸은 마음씨가 착하고 법 없이도 살 가족들인데 ‘왜 여기 와서 사냐’고 물었더니, ‘모른다’고 ‘이유라도 알았으면 속이라도 시원하겠다’고 하면서 가슴을 쳤다. 그 가족뿐 아니라 주변에 그런 가족을 가끔 볼 수 있었다. 그래도 일본에 가족이 있거나, 잘사는 친척이라도 있는 집들은 도움을 받을 기회라도 있지만, 이들 부부는 친척들조차 찾아오지 않는 외로운 사람들이어서 안쓰러웠다.

 

모든 탈북자들에게 응원을!

 

내가 한국에 온지도 10년이 훌쩍 넘었다. 지금까지 한국 생활을 하면서 나름 정직하고 바르게 열심히 살아온 것에 대해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다. 오히려 남한 사람들이 고민이 있으면 내게 털어놓을 정도로, 이제는 한국 생활이 익숙하고 사람들과도 친숙해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생활은 알아갈수록 더 힘들고, 후회할 때도 있었고, 외롭고 두려움이 따를 때도 많았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 세상을 마감하는 날까지도 우리 탈북자들은 배우고 익혀야 할 것들이 많다. 지금까지의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게 마음을 다잡고 더 열심히 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탈북자들 중에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신을 포장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정치적으로 활용되는 부분이 있어서인지, 한국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 때문인지, 뻔한 거짓말로 자신을 포장하며 사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를 아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일 것이다.

 

한국 사람들도, 만약 자신이 체제가 다른 북한 사회에서 살아가게 된다면 적응하기 힘들고 고통스러울 것과 마찬가지로, 북한에서 살다가 온 사람들이 지금 한국에서 적응하느라 얼마나 힘겹게 살아가고 있을지 한번쯤 생각해줬으면 한다.

 

‘국경을 넘어 한국에 와서 제 2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탈북자 여러분에게 마음으로 응원을 전합니다. 생의 마지막에 후회가 없는 삶이 될 수 있기를!’  ▣ 효주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영문 번역기사 사이트ildaro.blogspo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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