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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작당을, ‘꾸준히’ 하는 사람들
[두근두근 길 위의 노래] 이문동 청년공동체 도꼬마리 


 

 

‘길 위의 음악가’가 되어 새로운 장소와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이내의 기록, “두근두근 길 위의 노래” 연재를 시작합니다. ▣ 일다 www.ildaro.com 

 

‘마을카페 도꼬마리는 더불어 살기, 어울려 살기, 나누며 살기를 꿈꾸는 공간입니다.’

 

두 번째 찾아가서야 입구 칠판의 글귀를 보았다. 두 번째 찾아가서야 아! 그런 공간이구나, 했다. 낯선 여행자를 환대하는 곳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친절 서비스에 익숙해진 소비자를 맞이하는 곳은 아니라는 말이다. 매일 지나는 외대앞역 좁은 골목 독구말길을 걷다가, 몇 번씩 흘깃 눈길을 주다가, 우물쭈물 들어왔다 갔다를 반복했을 쑥스러운 동네 이웃들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 지역에 특별히 많은) 홀로 자취하는 사람들이 밥상을 나누고, 시간의 품을 내어 카페지기를 나누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 만남, 주성치영화제 

 

▲  ‘주성치영화제’ 포스터.  © 도꼬마리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재밌는 걸 발견했다. ‘주성치영화제’라니! 주성치의 열렬한 팬은 아니지만 영화제를 소개하는 글귀들은 주성치의 영화만큼 나를 낄낄거리게 했고, 누군가가 손으로 그린 것이 분명한 포스터는 컴퓨터 시대 이전의 영화관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이메일로 참가 신청을 하자, 내가 받은 답장에는 부산에서 일부러 찾아올 정도는 아니라는 염려가 짙게 섞여있었고 -실제로 그 문제로 회의를 했다고 함- 누군가가 그림판으로 만든, 말도 안 되게 귀여운 티켓을 첨부하고 있었다. ‘흠, 어떻게든 홍보해서 사람을 많이 모으려는 곳은 아니군.’ 실망할 게 뻔하니 굳이 이것 때문에 먼 길 오시지 말라는 따뜻한(?) 마음은, 꼭 가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불러일으키는데 충분했다.

 

영화제의 이튿날 외대 앞 좁은 골목에 도착했을 때, 작은 공간에 사람들이 모여 앉아 영화를 관람하고 있었다. 영화는 둘째 치고, 잊지 못할 장면이 곧 펼쳐졌는데 그것은 바로 어둠 속에 어디에선가부터 손에서 손으로 전달된 김밥이다. 때마침 영화에서 도시락이 나오는 장면이라 4D영화인가 했더니, 주성치의 영화답게(?) 콧물이 다른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장면에서 김밥을 씹게 되었다.

 

첫날 상영을 해보니 관객들이 배고파 한다는 점을 발견하고, 둘째 날 급하게 김밥 배급이 결정되었다고 했다. 유료 상영도 아닌데 관객의 주린 배까지 신경 써 주는 따뜻한 마음이라니, 역시 꼭 참여하고 싶다는 내 촉이 맞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이 날 나는 가장 멀리서 온 관객이 되어 “최장거리 관객상”을 수상했다!

 

나이가 들면서 “촉”이라는 게 늘어간다. 같은 '종족'의 흔적을 보는 것이다. 어떤 작당을 어떤 식으로 시도하는지,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말을 전해오는지,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떤 기미들이 ‘꼭 가서 만나보겠다’ 라는 마음을 먹게 만든다.

 

연륜 있는(?) 청년들이 모여 작당을 시작했고 서울시의 마을 만들기 사업 지원을 받아 공간을 만든 지 반년쯤 흘렀다. 스스로의 재미를 따라 시작한 주성치영화제는 스스로의 힘으로 함께 일할 사람들도 불러내고 함께 즐길 사람들도 불러내었다. 일을 벌인 사람들은 올 사람들을 궁금해 했고, 오는 사람들은 만든 사람들이 궁금해서 꽃놀이 가기 딱 좋은 봄날에 이문동으로 모여들었다.

 

신이 났다. 딱 그 말이 맞다. 모인 사람들 모두는 신나 보였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라는 질문들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이 생기니 이렇게 살아도 괜찮아! 라는 느낌표가 생겼다. 봄밤이 들썩들썩, 했다. 잘하는 것보다, 재밌는 것, 사람들이 즐길만한 걸 열어 두어야겠다고, 이 영화제를 겪으며 공동체는 생각했다.

 

두 번째 만남, 야단법석

 

다음 달 서울로 올라갈 일정이 생겨 그곳에서 공연을 해도 되냐고 물었다. 한 달에 한번 열리는 ‘야단법석’ 행사(영화제도 이 월간 행사였다)에 초대해주어 두 번째로 그곳을 찾게 되었다. 

 

▲  도꼬마리 마을카페에서 노래부르는 이내     © 야단법석, 2014년 4월 27일 일요일.  

 

공연 전에 함께 식사를 했다. 그들은 마을 공동체답게 일주일에 한번 함께 밥상을 나눈다. 건강 문제로 육식을 끊고 지내는 중이라 지난 달 삼겹살 뒤풀이에서 상추만 먹던 나를 기억하고 채식 카레와 채식 하이라이스를 준비해두었다.

 

공동체 안에 가수로 통하는 분이 술 안마시고 노래한 게 처음이라고 하시며 오프닝 노래를 불러 주셨다. 역시나 사람들은 아주 가까이에서 나를 보고 있다. 한 곡 한 곡 끝날 때마다 마음 담은 박수를 보내주기도 하고, 거리가 매우 가까우니 말을 건네기도 한다.

 

이 날 야단법석에서는 어떻게 재미있게 혹은 조금 다르게 생존하고 살아남을 수 있을 지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도 포함되어 있었다. 심지어 나는 (백수 대표로서) 강사로 초청된 것이었던 것이었다! 최근 서울에 올 때마다 대화의 종착점이 된다고 느끼고 있던 ‘월세’ 이야기, 도꼬마리에서 본격적으로 탐구에 나섰다는 ‘청년 부채’, 누군가의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 자발적 가난을 선택한 친구, 부양해야 할 가족이라는 부담, 보험을 해지한 이야기 등 할 말들이 끊임없이 더해졌다.

 

뾰족한 수가 나오지는 않지만 서로는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다른 삶의 방식들을 그려본다. 적어도 신문이나 언론에서 만나는 기사 거리가 아닌, 함께 밥상을 나눈 사람들의 이야기는 살아서 꿈틀거리며 몸에 마음에 남겨진다.

 

시간이 곧 돈이라고 얘기하는 세상에서 

 

▲  도꼬마리 카페 입구 칠판의 글귀.   © 이내. bombbaram.blog.me 
 

둘러 돌아가고, 틈을 비집어 들어가는 삶의 태도는 비효율적이다. 시간이 돈으로 환원된다고 말하는 세상에서 시간을 돈으로만 돌려받고 싶지는 않은 사람들이 있다. 시간은 웃음과 이야기가 되어 소리로도 변할 수 있고, 눈물과 위로가 되어 온도로 바뀌기도 한다.

 

재밌게 살기 위해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이 편하게 살겠다는 뜻은 아니다. 거기에도 하기 싫은 노동이, 애씀이, 고통이, 갈등이, 낙담이 따라온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만이 아닌, 하고 싶은 일을 이루기 위한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된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생존과 자립의 이야기를 나누는 그 ‘시간’들은 서로를 만나게도 하고 마음을 나누게도 하고 오해를 낳기도 하고 생각을 계속하게도 움직이게도 한다. 도꼬마리 공동체는, 그리고 나와 그 자리의 사람들은 입 밖으로 꺼내어 말하지는 않아도 결국 (진부하게도) “함께” 사는 것에서 실마리를 찾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을공동체”의 “식구”들이 “모여”서 사람들을 초대하고 만나고 이야기를 “나눈”다. “작당”을 “함께”한다.

 

청년공동체 도꼬마리 마을카페를 나오는 길에 칠판의 글귀를 다시 소리 내어 읽어보았다.

 

‘마을카페 도꼬마리는 더불어 살기, 어울려 살기, 나누며 살기를 꿈꾸는 공간입니다.’

 

※ 덧- 이후에도 도꼬마리의 끊이지 않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법한) 사건사고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계속 밥을 나누어 먹고, 병문안을 가고, 산책과 운동을 함께하고, 자원봉사로 카페지기를 하고, 술을 마시고, 세월호 추모회를 열고, 송전탑을 반대하며 밀양으로 농활 가고, 청년 부채와 의료민영화와 의료협동조합 문제를 탐구하고 있다. “함께”와 함께, “꾸준히” 역시 (진부하게도) 또 하나의 실마리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 이내 bombbaram.blog.me 

 

 

 

 

 

 

<여성주의 저널 일다> http://www.ildaro.com <영문 사이트> http://ildaro.blogspo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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