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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밀양… 여섯 편의 목소리]① “이내 억울함 누가 아나” 
 
내 한평생 나고 자라 농사만 짓고 사는데
논 한복판 마을길에 송전탑이 웬 말.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이내 억울함 누가 아나 아무도 몰라.
- 밀양 송전탑 아리랑 중
 
초등학생들과 밀양 송전탑 사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아이들은 밀양 기사를 보자 단박에 입을 열었다. “이거 알아요. 이 사람들 땅값 올리려 그러는 거죠?” 내가 뭐라 할 틈도 주지 않고, 아이들은 밀양 아리랑을 개사한 송전탑 노래를 따라 부르며 킥킥거렸다.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장난스럽게 부르는 노래를 내버려 두었다.
 
아이들은 어렸다. “이내 억울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밀양의 송전탑이 이 노래를 만든 이들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고 있는지, 알기에 어렸다. 정작 내가 씁쓸했던 까닭은, 이 초등학생들이 아니었다. 아이들의 반응이, 밀양을 대하는 일부(또는 일반) 시민들의 반응과 닮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 밀양시 단장면 평리마을, 765㎸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농성장.     © 희정 
 
보상금 때문에 저리 싸우는 거라 했다. TV 화면에 비춰지는 자극적인 장면(목줄과 구덩이와 노인의 나체 등)에 잠시 눈을 주다가 그만이었다. ‘돈 때문에’라고 생각하는 것은 편했다. 사태의 본질, 대립하는 가치 등을 눈 여겨 보는 데는 시간과 공이 들었다.
 
눈 여겨 봐줄 내용을 전하는 언론도 소수였다. ‘인권침해감시단’(밀양주민에 대한 공권력의 폭력이 심각해지자, 인권침해 상황을 기록하고 알리고자 인권단체를 중심으로 밀양 인권침해감시단이 만들어졌다)이 밝힌 바로, 밀양에 공사가 재개된 후 ‘원인 진단과 해결방안 모색’ 내용을 담은 주요 신문사 보도는 전체의 15%에 불과하며, 이 또한 소위 진보적 경향을 보인다는 몇 개 언론에 치중되어 있었다. 주로 다뤄지는 것은 폭력 난동과 갈등 대치 같은 자극적 장면들이었다.
 
밀양은 싸우고 있다. 언론에 비춰지는 대로, 매일 자극적인 싸움이다. 밀양에서 만난 한 노인은 말했다. “죽으라고 들어오는데, 죽어야지.” 책을 쓰는 일을 한다는 말에 노인은 “꼭 이렇게 써라”고 당부했다. 한전과 경찰이 사람 죽으라는 식으로 밀고 들어오니, 소원대로 죽겠다 했다. 죽겠다며 싸우는 이유는, 지키고자 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그네들의 억울함과 지키고자 하는 것에 대한 여섯 편의 ‘목소리’이다.
 
89번 송전탑 공사현장 근방 ‘바드리’ 마을
 
밀양 주민들의 삶이 변화한 것은, 알려진 대로 밀양 4개면이 신고리 3호기 전력을 이송할 송전탑 69기(송전선 길이 39.15km) 부지로 선정되면서부터이다. 주민들의 반대가 있었고, 합의가 되지 않았으며, 갈등은 길어졌다. 횟수로 8년째다. 해가 갈수록 싸움은 격해졌다. 작년 일흔 넷의 노인이 공사에 반대하며 목숨을 끊었다. 한전이 공사에 들어간 이 달은, 송전탑 부지에서 부상자만 50여명이다.
 
공사가 재개되고 밀양을 방문했다. 내려가 처음 찾은 곳은 ‘바드리’ 마을이었다. 정확히는 89번 송전탑 공사 현장 근방. 언덕을 오르니 작은 천막 두 동이 보였다. 그 너머로 가는 길에 검은 전경들이 가득하다. 누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경찰이 막아선 저 길 위로 송전탑 공사 현장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앳되고 무표정한 얼굴의 전경들을 슬쩍 보다가, 농성장으로 들어갔다. 할머니 서넛과 각 지역에서 연대를 온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할머니들 중 몇은 안면이 익었다. 지난 5월 한전의 공사 강행 때도 농성장에 나와 있던 이들이다. 그때 그네들은 울고 있었다.

▲ 지난 5월, 한전이 송전탑  공사를 강행하자 온 몸으로 막아섰던 밀양 바드리 마을 주민들.   © 희정 
 
다섯 달 전, 할머니 넷이서 공사를 막는다며 포크레인에 쇠사슬로 몸을 묶었다. 버텨볼 요량이었지만, 순식간에 한전 직원들에 의해 들려 나왔다. 철을 자르는 공구가 노인들의 몸을 지나 쇠사슬을 끊었다. 끌려 나오는 과정에서 포크레인 쇳덩이에 머리가 부딪쳐 노인들은 정신을 잃었다. 내가 당도했을 때는, 상황이 끝나고 난 뒤였다. 한 명은 병원으로 후송되고, 노인 셋이 남았다. 포크레인은 저 멀리 있고, 오른쪽은 한전직원이 왼쪽은 경찰들이 막고 섰다. 노인들은 악을 쓰며 울었다.
 
“참말로 억울하다. 억울해. 우리가 왜 저거한테 이래 당하고 살아야 하는데.”
“진짜로 목숨하고 바꿔야 합니더.”
“이게 법인가. 대한민국 법이 이런가.”
 
한참을 울다, 한 노인이 길 끝으로 가 섰다. 말이 길 끝이지, 반걸음 앞은 낭떠러지와 다를 바 없이 가파른 경사였다. 전경들 손을 뿌리치는 모습이 위태했다. 설령 ‘쇼’라고 할지라도, 절박했다. 할머니 옷자락을 붙들며 내가 느낀 것은 절박할 정도 강한 무력감이었다. 저쪽은 전경 수십에 용역 수십인데 여기는 할머니 셋이 끝이다. 사슬을 묶고 버텨도 쇠를 잘라버린다. 신발 양말 벗겨진 맨발 잡히고도 버텨 보지만 소용없다. 울고, 악을 쓰고 욕을 퍼붓고, 결국 낭떠러지 끝이다.
 
다행히 공사를 할 수 없는 장마철이 다가오고 있었다. 공사 재개 열흘 만에, 일시 중단이 결정됐다. 전문가 협의체를 구성하고 40일 간 밀양 송전탑 건설의 타당성 여부를 가려 국회에 제출하기로 한 것이다.
 
옛이야기 하듯 웃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잠시간 밀양이 평화로웠던 사이, 바드리에서 본 노인들을 다시 만났다.
“내가 네 번을 뛰어내릴려고 안 했나. 우리도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제 정신이 아니다. 그 당시에는 안 미치면 안 됐고, 미쳐야 했고.”
자신이 찍힌 밀양 송전탑 방송까지 보여주는 노인의 모습은 안정을 찾은 것 같았다.
 
“전문가 협의체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공사만 중지되바라, 10일 동안 한 거 옛날이야기 하듯이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추억이 되지 못했다. 할머니들의 바람에 전문가들은 한전의 문서를 베껴 낸, 아니 문서 파일명만 바꾼 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하는 것으로 응답했다. 협의체는 무산됐다. 한전은 다시 공사를 강행했다. 감나무에 감이 쨍쨍하게 달려 농민들 손이 제일 바쁘다는 가을, 한전 직원들이 밀양에 들어왔다.
 
한전 직원들만 온 것이 아니다. 경찰 3천여명이 밀양에 주둔했다. 국가를 등에 업고 자본을 앞세운 한전은 막강했다. 경찰은 전보다 더 노골적으로 주민들을 막았다. 공사현장도 아닌, 그곳에서 2, 3킬로나 떨어진 마을 입구부터 길을 막고 섰다. 농사를 지으러 가는 주민도, 이웃을 만나러 온 이도 경찰에게 신분증을 보여주고 허락을 맡아야 한다. 그 또한 들어가지 못할 때가 많다.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이는 한전 직원들뿐이다.
 
경찰의 주둔은 국가가 누구의 편에 섰는지를 보여준다. 이전까지는 ‘중재자’ 시늉이라도 내던 정부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다. 한전 차량이 들어올라 치면, 경찰은 노인들을 끌어낸다. 그 와중에 손목이 비틀어지고 사지가 들린다. 공사 자재가 지나가는 동안 주민들은 경찰에 둘러싸여 감금된다. 경찰은 충돌을 막기 위해 주둔한다지만, 늘 경찰 주변에서 충돌이 일어난다.
 
우스운 일도 벌어진다. 술을 먹은 경찰이 마을에서 ‘선생님’이라 불리는 노인에게 시비를 건다. 다짜고짜 연행을 한다. 경찰 팔꿈치에 맞아 머리를 다친 노인을 쓰러진 채로 방치한다. 응급 처치를 한다는 인권감시단조차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누구누구 씨, 경찰이 특정 주민의 이름을 부르며 위협을 준다. 사지를 들어 끌어내는 와중에 “할머니 사랑합니데” 같은 농을 던진다. 모욕은 일상이다. 기자, 변호사, 인권감시단의 접근이 금지된다. 밀양은 모욕당하고 고립됐다.
 
“이게 법인가. 대한민국 법이 이런가.”
 
“주민들은 느낌이 어떤가 하면요. 정말로 우리 어느 누구 하나 시골에 살면서 선량하게 살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이 공권력하고 맞닥뜨려졌을 때, 버려졌구나, 우리는 이제 버려졌구나…. 사실이고 진실이고 다 떠나서 거짓이 이기고, 모든 권리를 박탈당하는 상황. … 대한민국의 국민이 아닌 걸로. 이제 국민이 아니에요. 버렸어요, 정부는, 우리를.” -밀양 용회마을 구00씨(64)의 말. 밀양 765kv송전탑 인권침해감시단이 채록한 주민 증언록 모음.

▲ 답답한 마음에 할머니는 지팡이를 짚고 배낭을 둘러매고, 이 산 저 산 길도 나지 않은 길을 한두 시간씩 걸어 공사 현장 근처로 간다.  ©사진 제공-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 대책위 
 
레미콘이 들어가고 장비를 나르는 헬기가 뜬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땅에서 몇 십 년을 살아온 주민들은 정작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어떤 결정권도 없다. 다치고 싸우고 울고불고 해도 무표정한 경찰들이 막고 선 길 안으로 한 발도 들일 수가 없다.
 
그렇다고 가만있진 않는다. 이 산 저 산을 넘어 겨우 공사 현장 근처로 간다. 그곳에서도 길을 막고 있는 경찰들에게 한바탕 소란을 떨고 온다. 그것이 전부다. 길도 나지 않은 길을 한두 시간씩 걸어, 공사현장을 한 번 보고 오는 일이 전부다. 힘들게 왜 거기까지 다녀오시냐 하니, “답답해서”란다. 송전탑 공사가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지 눈으로라도 보고 와야지 답답한 속이 좀 나을 것 같다고, 지팡이를 짚고 배낭을 둘러맨 할머니가 말한다. 답답하다. 포크레인이 열차게 가동하는 바람에, 지칠 수도 없는 노인들이다.
 
지칠 수도 없는 그네들은 허탈해져 말한다.
“설마설마 했어요. 그래도 나라인데, 공정하게 하겠지 했는데….”
그토록 추억이 되길 바라던 꿈은 사라지고, 또다시 밀양에는 곡소리가 반복되고 있다.
“이게 법인가. 대한민국 법이 이런가.”
 
그러나 죽겠다 악 쓰는 소리만 전파를 탈 뿐, 그네들의 목소리는 전해지지 않는 요즘이다. ▣ 희정_르포작가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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