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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나의 페미니즘> 에코페미니스트 도은
 

<일다> 10주년 기획 “나의 페미니즘”. 경험을 통해 여성주의를 기록하고 그 의미를 독자들과 공유하여 대안담론을 만듭니다. 이 연재는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기금의 지원을 받습니다. - www.ildaro.com
 
신산했던 어머니의 삶을 관통한 힘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산업화로 막 달려가던 1960년대 중반 궁벽한 농촌 마을에서 태어났다. 두 돌 즈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대신 30대 후반에 과부가 되어서 (겉보기에) 고생스럽고 신산했던 삶을 살았던 어머니를 훨씬 더 많이 기억한다.
 
지금은 어머니도 자기의 고단한 삶을 마치고 수년 전에 근원으로 돌아가셨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그녀를 나와 형제자매들에게 생명을 주고 키워주었던 한 여성으로서 기억하고 바라보게 된다.
 
이렇게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그녀가 ‘생전의 내 엄마’와는 아주 다르게 다가올 때가 있다. 이를 테면, 그녀의 일생이 누가 봐도 가혹한 삶의 요구에 말없이 복종했던 가난하고 힘겨운 여정이었다는 게 분명하지만, 겉보기와는 달리 그 삶이 내적으로는 꽤나 힘이 있고 자기 충족적인 것이 아니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에게는 뚜렷한 목적이 있었고(자식들을 굶기지 말고 키워내야 한다!), 자기한테 진정으로 의미 있는 삶을 온몸으로 열심히 살았고(어떻게든 내 몸으로 땅에서 정직하게 일해서 나와 자식들의 먹이를 구하고 살아가겠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는 그 목표를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녀에게는 현대 산업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는 ‘목적 상실감’이란 게 없었지 않았나 싶은 것이다. 이것은 내가 중년의 산을 넘어가면서 테크놀로지가 지배하는 이 산업 사회 사람들과 나의 삶을 관찰하면서 깨닫게 된 바이다.
 
물론 그녀가 “자기 삶의 의미” 혹은 “삶의 목표” 같은 것들을 떠올리면서 뚜렷한 언어로 그걸 표현한 적은 아마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나처럼 조금 먹물이 든 탓에 자의식이 (지나치게) 깨어난 사람도 아니었고, 근현대인의 복잡하고 분화된 심리들과 욕망과 좌절들을 갖게 된 세대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아마 그녀는 ‘페미니즘’이란 외래어를 들으면 분명 낯설어 했을 것이다.
 
학교 문턱에도 가본 적이 없었지만 그녀에게는 어떤 힘이 있었다는 생각이 지금은 든다. 먹물 묻은 지식이야 거의 없었지만 자기 환경 속에서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서 내적인 힘을 키워나갔기 때문에, 그녀에게는 요새 중산층 여성들에게서 보이는 우울증이나 신경질 혹은 패배감이나 좌절감이 별로 없었다. 온 몸으로 열심히 살았고, 의식적이지 않았으나 나름대로 어떤 자부심이 있었던 것 같다. 주렁주렁 자신의 치마폭에 매달려서 한창 커가던 자식들을 온전히 자기 손으로 먹이고 키워야만 했으니까 말이다.
 
다시 말해서 시골에서 아무 가진 것 없이 홀로 온갖 거친 일들을 다 해내야 했다는 뜻이다. 농사일, 집안일, 품팔이, 보따리장사 등등. 나는 고생스럽기 짝이 없는 그 모든 일들을 불평 없이 끈질기게 해내는 그 어머니를 보면서 자라났다. 그리고 철없게도 그녀 삶의 방식을 당연하게 여겼으며, 어느 시기까지는 좀체 그녀에게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결혼과 이혼을 한 뒤 혼자서 아이들을 키워보니(아이가 겨우 둘뿐이었는데도), 이런! 그 일은 나한테는 결코 당연히 여길만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어찌나 힘이 들고 때때로 쓰러지고 싶던지, 무던히도 불평을 하고 속으로 흑흑댔다. 여자로 태어난 것이 원망스러웠고, 내 처지를 한탄했고, 이 사회의 불평등한 구조를 비난했다. 그녀처럼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의무를 말없이 행하는 인내력과 내적인 힘이 내게는 너무나도 부족했던 것이다.
 
왜 그럴까? 나는 왜 이리 허약하게 불평만 해대면서 나의 좌절을 외부 탓으로만 떠넘기려는 것일까. 이 문제는 아이들을 양육하던 시기에 꼭 풀어야만 했던 내 인생의 중요한 숙제였다.
 
닳고 닳은 어머니의 손가락이 흘린 피
 
내 어린 시절의 기억들 중에 또렷하게 남아 있는 기억이 하나 있다. 눈이 많이 내렸던 어느 추운 겨울, 어머니는 어린 우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자던 단칸방 바로 옆의 허름한 창고에서 베틀 비슷한 수동식 기계 앞에 앉아서 밤늦게까지 가마니를 짜곤 하셨다. 난로를 피워놓을 형편이 아니라서 창고는 찬바람이 숭숭 드나드는 아주 추운 곳이었다.
 
지금 젊은 세대 중에는 이 짚 가마니를 본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비닐 포대가 나오기 전에는 나락을 비롯한 많은 곡물들을 짚으로 짠 가마니에 담았더랬다. 그래서 농사일이 없는 겨울 한철에 가마니를 많이 짜서 공판장에 내다 팔면 어느 정도 돈이 되던 시절이었다. 그러니까 가마니 짜는 일은 시골에서 겨울철에 할 수 있었던 어머니의 중요한 생활비 벌이였던 셈이다.
 
꿈결에 “철거덕 철거덕” 틀을 밟는 소리를 들었던 예닐곱 살의 나는 오줌이 마려워서 동이 틀 무렵에 일어났다. 곁에는 언제 들어왔는지 어머니가 모로 누워서 깊이 잠들어 있었다. 나는 방문을 열고 나가 마루에 놓인 요강에 앉아 하품을 하며 반쯤 졸면서 오줌을 누었다. 그리고 날이 추워서 오소소 몸을 떨면서 얼른 방에 들어가려다 무심결에 옆 마루와 토방을 보았다.
 
그곳에는 어머니가 부드럽게 다듬어서 간추려 놓은 짚더미가 조금 쌓여 있었다. 그런데 뭔가 점점이 박힌 듯 짚들의 색깔이 군데군데 이상했다. (검불을 털어내고 잘 다듬어 놓은 짚 색깔은 원래는 노랗게 빛난다.)
 
“뭐지?” 호기심을 누를 수 없어서 가까이 다가가서 보았다. 부드럽고 신선한 첫 여명 빛에 비추어진 그것은 붉은 핏자국이었다. 무섭고 섬뜩했고 소름이 돋았다. 이게 도대체 누구의 피란 말인가?
 
그것은 바로, 하도 지푸라기를 많이 만진 탓에 닳고 닳아져버린 어머니의 거칠기 짝이 없는 손가락들이 밤새 흘린 피였다. (나중에 어머니는 피가 묻은 지푸라기들을 골라내며, 희미한 호롱불 아래라서 자기는 피가 나는 줄도 몰랐다고, 몹시 고단해서 어서 마치고 잘 생각으로 아픈 줄도 모르고 일만 했다고 말했다.)
 
그런 장면들을 목격하며 자랐는데도 불구하고 어린 나는 엄마의 삶을 불쌍하다고만 생각했지 금방 잊어 먹었다. 또한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나의 어머니였던 그 여성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오직 내 앞에 다가오는 삶을 살아내느라 전전긍긍 정신이 없었다. 한국이란 나라가 워낙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고, 가치, 도덕관, 성공의 기준 등도 휙휙 뒤바뀌고 있었기에 그걸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다고 말한다면, 분명 나의 이기심을 포장하기 위한 구차한 변명일 것이다.
 
좀 더 솔직히 말한다면, 어느새 학교라는 체제에 잘 순응했던 내가 교육 시스템 속에서 알게 모르게 길들여진 탓이 크지 않았을까 싶다. 즉, 가난하고 무지해 보이는 어머니의 삶으로부터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리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난 엄마와는 다른 삶을 살 거야!” 그러면서.
 
성공이란 것은 촘촘히 발전해 가는 체제 안에서 경쟁을 통해 이루어지는 외적인 성취나 그것을 통해 돈을 벌거나 크고 작은 권력을 얻으면서 인정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라고 세뇌 당했으니까 말이다. 당연히 내 눈에는 가난한 어머니의 삶 속에 자랑할 만한 외적인 성취라고 할 만한 게 거의 없어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아주 달리 생각하게 되었다. 어떤 배움과 깨달음들이 내 인생에 천천히 다가왔고, 그녀 삶을 관통했던 의지랄까 힘을 존경하게 되었다.
 
가난한 시골의 삶이 ‘풍요’로 기억되는 까닭은
 
어쨌든 (학교) 체제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기 전, 내 어린 시절의 가난과 아버지 부재는 내 영혼에 별다른 상처를 남기지 않았다. 오히려 꽤나 풍요로웠고 누린 게 많았다고 기억한다. 과거를 감상으로 색칠해서 자기 삶을 미화하려는 기억의 왜곡 현상이 우리에게 분명히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여전히 나는 물질적으로는 헐벗었으나 내 어린 시절의 감수성과 영혼은 풍성하고 자연스런 기쁨들을 누렸다고 말하고 싶다.
 
아마도 땅과 자연이 지금처럼 크게 파괴되지 않았던 시절에 시골 한 구석에서 “어떤 것을” 실제로 경험하고 살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 경험은 요새 사람들이 여행지에서 찍어대는 사진들 속에 갇혀버린 경험과는 그 본질이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크고 우아한 전망 창이나 액정 화면 혹은 대형 스크린에 펼쳐지는 화려한 장면들을 감상하면서 느끼는 것과도 전적으로 다를 것이다.
 
산업화와 기계화의 거센 이빨이 아직은 크게 미치지 않았던 그 시절의 시골구석과 지역 공동체는 아이들에게 의외로 자유와 자율성을 꽤나 많이 주었던 곳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빈부격차로 인한 소외감도 지금만큼 크지 않았다. 또한 대중 미디어에 의해서 쓸데없이 인위적으로 부풀려진 욕망(생존이나 필수품 얻기와는 큰 관계가 없다!) 같은 것이 없었으며, 그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해서 좌절하거나 괴로워할 일도 없었다.
 
아이들도 자신과 가족의 생존과 생활에 필요한 일들을 어느 정도는 어른들을 도와서 해야 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는 노력하면서 자기 몸과 두 손을 써야만 살 수 있었고, 책상 위에 앉아서 시험지 푸는 일과는 전혀 다른 일들을 많이 했더랬다. 어쩌면 그런 일들을 통해서 의식하진 않았을지라도 아이들도 삶에 기여하고 있다는 자부심과 충족감을 조금은 느끼지 않았을까?
 
한 인간의 내적성장을 방해하는 현대사회에서
 

▲  [도시사람]     © 일다-오승원 
 
하지만 지금은 아주 달라져버렸다. 우리 사회가 아주 빠르게 산업화를 해버렸기 때문이다.
 
대다수 아이들과 어른들은 미용과 건강 유지 혹은 스포츠 같은 대리만족 행위가 아닌 한 자기 몸을 거의 쓸 줄 모른다. 땅과 자연에서 자기 먹이를 스스로 마련하거나 서로 협동하며 필수품을 구하면서 생존의 자부심을 경험할 기회가 이제는 거의 없게 되었다는 뜻이다. 각자 산업 사회에 고용되거나 체제가 마련해준 전문가 자격증을 따서 돈을 벌고 그 돈을 쓰면서 살아가야 한다. 아님 사기를 치거나 투기를 하거나 복지기금 나눠먹기라도 해야 한다.
 
특히 디지털 세대의 아이들은 진짜 나무와 땅과 풀을 자신들의 환경으로 인식하지 않는 듯하다. 네모난 화면 속의 구경거리거나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풍광을 진짜 땅보다 더욱 친숙하게 느끼는 세대이다.
 
우리나라에서 산업화가 시작된 지 불과 수십 년 밖에 안 되었는데 모든 것이 인공의 세계,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 게다가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위해서 아이가 기여할 일이라곤 손톱만큼도 없다. 어른들의 삶과는 완전한 분리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또래끼리 경쟁을 해서 앞서야만 한다는 심한 압박감과 미디어와 광고와 마케팅 산업으로 인한 인위적인 욕망들이 한껏 부풀려져 있는 상태이다.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체제의 승리이다.
 
그렇기에 어른도 아이도 진짜 삶에 기여한다는 자부심과 충족감을 가질 기회가 많지 않은 게 이 시대의 문제점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오히려 아이들은 이미 만들어진 것들을 수동적으로 따라하거나 소비하는 대리만족 행위들(게임, 경쟁, 인터넷, 스펙 쌓기, 정보 모으기, 여행 등등)에 집착하도록 키워지는 것 같다. 어른들 역시 더욱 심하게 체제와 그 체제가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치밀하게 개발하고 있는 테크놀로지에 길들여져 있는 상태이다. 발달한 산업 사회는 자율성을 상실해 버리고, 길들여진 양순한 사람이나 조직들만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 시대 대개의 자식들은 어느 시기까지는 부모의 삶에 관심을 가지려 해도 그러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아이들은 자기 부모한테는 이기적이고 의존적이고 요구가 많은 존재들이다. 부모 역시 자식들의 인생을 통해서 대리 만족을 하려는 것인지 매니저 역할을 자처하며 자식을 노심초사 조종하도록 사회가 부추기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사회의 사교육 열풍을 생각해보라. 자식의 주위를 빙빙 돌며 관리하는 ‘헬리콥터 부모’란 용어까지 쓰인다고 들었다.
 
이런 상태라면 자식은 결코 자기 인생에 필요한 어떤 통과의례와 입문의식들과 고난들을 겪으면서 한 사람의 어른으로 성장해 갈 수가 없을 것이다.
 
나는 페미니즘과 생태주의를 만나고 살아오면서 한 인간이 내적으로 자신의 힘을 미묘하게 느끼고, 키워가며, 책임 있게 자기 인생 항로를 항해하는 사람이 되는 게 인간 존재에게 아주 소중하다는 것을 아주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그러므로 사람들로 하여금 이런 일을 못하게끔 방해하는 이 현상은, 발달한 테크놀로지로 인해서 인간의 삶이 무의미해진 현대 사회의 특이함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온전한’ 한 여성으로 의미 있게 살아가기
 
나는 내 삶이 의미 있기를 바란다. 현대 사회의 온갖 복잡다단함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어떻게 하면 내가 온전한 한 여성으로서 불평 없이 묵묵히 내 삶의 길을 갈 수 있을 것인가를 오랫동안 물어왔고 탐색해왔다. 이 탐색의 길에서 내가 만난 가치들 중에 페미니즘도 하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나에게 페미니즘은 내가 가진 여성성을 힘차게 긍정하는 것을 말한다. 즉, 의존적이지 않으면서 깊은 자부심과 힘을 갖고서 묵묵히 내 길을 가는 것을 말한다. 또한 내가 도무지 인정하기 힘든 이 기술 사회에 크게 의존하지 않으면서 사는 능력, 즉, 테크놀로지 사회 너머에서도 살아나갈 수 있는 힘을 키우고 생존의 힘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이런 시선을 가졌기 때문에 소비 사회의 아웃사이더임을 아주 좋게 바라보는 일도 나에게는 페미니즘이다. 사소하고 대다수 남들이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가치가 없다고 여기는 것들에 눈길을 주고 은밀히 사랑하는 것이 나에게는 페미니즘이다. 없는 것이 많은 내 처지를 거꾸로 진짜 삶을 위한 절호의 기회로 보는 것 역시 나의 페미니즘이다.
  
그러니까 나는 “온전한 한 사람의 여성”이 되어서 인생을 의미 있게 살아가기 위해서 페미니즘에 입문한 듯하다. 내가 한 때 배운 여자 티를 살짝 내면서 겉으로는 아닌 척 했으나 실은 남성에게 의존적이고, 가부장제 의존적이고, 체제 의존적이었을 때에는 도무지 여성으로 사는 내 삶에서 깊은 자존감과 자신감을 갖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마치 누군가 떠밀어서 절벽에서 떨어지듯이(스스로 원한 것은 아니었음) 어렵고 쓰라린 처지에 빠져야 했고, 페미니즘을 만나야 했고, 밑바닥에서 혹독하게 살아남는 법을 맨손으로 익혀야 했다. 남성에게 의존적이란 것은 다시 말해서 내가 관계 의존적이며, 늙고 노회한 가부장제와 손을 잡고 이루어진 이 테크놀로지 산업 체제에 의존적이란 뜻이었다.
 
그래서 절벽에서 떨어지기 전의 나는 실존 자체가 불안했고, 경쟁심과 질투심이 저 깊이 숨어 있어서 호시탐탐 기회만 되면 올라왔다. 바닥으로 떨어진 후에도 한참동안은 틈만 나면 내 처지를 속으로 원망하고 불평하고 한탄하고 싶었으며, 나의 실패와 좌절을 위로받고 싶었고, 누군가가 나를 절실히 도와주었으면 싶었다. 길들여지고 의존적인 습성을 아직 떨쳐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시골로 막 내려온 온 당시의 내 고립된 상황 때문에, 그 비참한 의존성을 까발려 보일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다는 게 다행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의 나란 여자는(30대 나이 즈음) 참으로 한심하고, 바라보기 민망하고, 가까이 하기에 부담스런 여자가 아니었을까 싶다. 다만 내 속에 어떤 희미한 자존심 같은 게 남아 있어서(어린 시절에 키워진 것일까?) 속으로는 그 문제를 조금이나마 인식하고 있었고 정말로 극복해보고 싶어 했다. 그런 까닭에 가능한 겉으로는 크게 티를 내지 않으려고 조심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를 잘 모르고 흘낏 겉모습만 본 사람들은 “도도한 여자 같아!”라고 말할 정도였다. 아휴, 진짜 속사정도 모르고 말이다.
 
그러니 그 한심한 여자가 성장하려면 어떤 시련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자라서 어른이 되고 아이들을 낳아 기르면서 겪어낸 삶의 경험은 우리 시대의 변동과 체제의 발달과 함께 나에게 강요된 측면이 많았다. 그리고 어느 시기까지 나는 착하고(?) 수동적으로 그 강요에 충실히 따랐던 것 같다.
 
하지만 삶의 경험이 쌓인 지금은 그런 수동성과 인정 욕구를 조금은 벗어던진 상태라고 믿고 있다. 나한테는 자율적인 힘과 능동적인 선택이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고립과 소외가 무섭지 않다. 남들이 같이 안 간다면 혼자서라도 내 인생의 윤리와 진실을 알아내고 싶다. (도은)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만화 <두 여자와 두 냥이의 귀촌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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