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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으로 말하다

아동성폭력의 경험과 성매매의 경험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2. 12. 5. 07:30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꽃을 던지고 싶다> 25. 피해자에게 폭력적인 문화


성폭력 피해생존자의 기록, “꽃을 던지고 싶다”가 연재되고 있습니다. 이 기록은 30회까지 연재될 예정입니다. www.ildaro.com
 
 
성폭력의 기억을 지우고 싶다  
 
드라마를 즐겨보지 않지만 최근 <보고싶다>라는 드라마가 논란이 된다고 해서 보게 되었다. 그 드라마에서 성폭력의 후유증,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수연의 모습과 분노가 잘 묘사된 듯했다. 몇몇 장면에서는 공감이 되기도 하고, 같이 아파하기도 하며 드라마를 보게 된다.
 
7회에서 수연이 ‘나의 성폭력을 기억하는 모든 사람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이 가슴에 툭 하고 돌이 되어버린다. 그래, 나도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지. 나의 성폭력 경험을 알고 있는 상담선생님을 괴롭히고 싶어지는 순간들도 존재했다. 아니, 여전히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죽지 못하므로.

▲ MBC 드라마 <보고싶다>의 수연은 14년전의 성폭행 가해자를 다시 마주친 후 패닉상태에 빠진다.   © MBC 
 
최근에 급격히 나빠진 몸 때문에 병원에 갔다. 지난 번에 병원에서 자궁내막증식증 같다는 진단을 받았고, 확실한 진단을 받기 위해 재검사를 하러 가는 길이었다. 자궁내막증식증은 큰 병이 아니지만 원인을 찾아야 하고, 무엇보다 어지럼증 때문에 일상이 거의 불가능했다.
 
자궁내막증식증은 자궁내막의 이상으로 인해 월경과 출혈이 반복되는 증상으로, 확진이 되면 조직 검사와 호르몬 검사를 통해 원인을 찾아야 한다. 자주 반복된 출혈로 인하여 빈혈이 심해진 상태였다. 길을 걷다가 갑자기 눈앞이 하얘지고 외출도, 책을 읽는 것도 힘에 겨울만큼 어지럼증이 몰려왔다.
 
버스에서 내려 걸어가고 있는 길에 너무도 멍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나는 나의 몸 상태가 실은 몸이 아픈 것이 아니라 마음 탓이라 여긴다. 최근의 글을 쓰는 작업들이 나를 성폭력의 고통 속에 가두어 놓고 있기에, 수연의 대사가 떠나지 않았다. 성폭력을 이야기하는 것과 그 고통 속에서 사는 것은 다른 일이므로, 성폭력을 사유하는 것이 아닌 내 몸은 고통 그 자체에 머물러 있었다. 그럼 내가 죽어야 하는 것인가?

왜 우리는 성폭력을 기억하고 있는가   

오늘 친구가 자살 시뮬레이션을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왔다. 죽기 위해 목을 매다는 연습을 해보았다고. 왜 우리는 성폭력을 기억하고 있는가? 친구의 이야기에 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 친구와 주말을 같이 보내기로 하고, 왜? 라는 질문, 정작 사라져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고민을 하며 걸어가고 있는데 한 여자가 길을 막아 선다.
 
너무나 당혹스러웠다. 나의 마음을 들켜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 여자는 “2천원만 줘” 라고 말한다. 행색이 홈리스인 듯하다. 다른 때 같으면 당연히 나는 주머니를 털어서 밥값 정도는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난 어지럼증에 길을 서둘러 걸었다.
 
병원에서 최종검사에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듣고, 나는 여전히 마음이 갇혀있다는 생각에 정신을 차려야 함을 느꼈다. 성폭력을 기억하는 나를 죽일 수 없음으로….
 
정신 없이 그 여자를 찾아서 거리를 헤맸다. 내가 주지 못한 밥값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에 빠져 당신의 필요를 지나쳤지만, 난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확인해야 했다. 나는 다른 사람의 필요를 외면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거리를 되돌아서 찾아보아도 그 여자는 없었다. 그 여자를 찾지 못하면 안 되는 사람처럼 정신 없이 거리를 헤매다 포기가 될 무렵 눈물을 흘렸다.
 
나에겐 중요했다. 나는 누군가의 필요를 외면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다른 사람의 고통을 느끼지는 못하지만 사유할 수는 있다고, 그러하기에 나는 존재해야 한다고 느껴야 했다.
 
가끔씩 그런 생각을 한다. 나의 성폭력 경험을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살고 싶다고. 그곳에 가면 나는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일까? 그러나 나의 기억은 어쩔 것인가?
 
기억이 너무나 강렬해질 때, 그 기억을 지워버리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고 느낄 때, 기억을 지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죽음을 사유한다는 것은 또 그만큼의 삶을 사유하는 것이리라. 죽음을 꿈꿀 때마다 나는 이 기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성폭력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릴 수 없는 나는 멀쩡한 표정으로 살아가는 것이 힘에 겨웠다.
 
‘그 아이가 미아리로 갔대’
 
중학교 시절 학교에는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학교의 한 아이가 고등학생 오빠들에게 ‘그 짓을 당했다’ 라는 소문과, ‘누가 그것을 직접 봤다’는 소문이었다. 그 소문은 ‘그 아이가 원래 걸레였대’ 라는 소문으로 번졌고, 선생님들의 어설픈 통제에도 불구하고 소문은 가라앉지 않았다.
 
얼마 후 그 아이의 모습을 학교에서 볼 수 없게 되었고,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아이가 미아리로 갔대’, ‘몸이 더러워졌는데 달리 할 게 있겠어?’ 라는 말들이 들려왔다.
 
내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 내가 성장했던 시절에는 그런 문화가 존재했다. 성폭력 피해여성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폭력적이었다. 중학생이라서 어리숙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사고는 우리가 사는 문화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였고, 그 친구에게 연민이나 위로가 아니라 폭력적인 시선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성폭력의 피해를 들켜버리기라도 한다면 나도 학교를 그만두고 창녀가 되라고 내몰릴 것 같았다. 나는 항상 착한 아이여야만 했다. 그래야만 용서받게 될 것 같았다. 학교 다닐 때 항상 봉사정신과 희생정신이 투철하다는 말이 통신문에 기록되었고, 그래야만 나는 용서받을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성폭력을 기억하는 나는 ‘창녀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거부하고 싶으면서도 나도 모르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 같다. 기억하는 사람이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몇 번의 자살시도를 하고, 그 시도들이 모두 무가 되었을 때 나는 창녀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스님의 말처럼 창녀가 될 운명을 따르지 않으면 계속 강간을 당하는 삶을 살아야 하므로.
 
나는 왜 ‘창녀가 되어야 한다’는 말에 대해서, 그리고 성인이 되어 겪은 성폭력적 상황을 거부하지 못했을까? 성폭력 경험을 기억한다는 것은, 성폭력적인 상황에서 나의 판단이나 저항이 힘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공포를 함께 가지고 있다.
 
아동성폭력의 경험과 성매매의 경험
 
얼마 전 지인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당신도 나처럼 성적인 제안을 받은 적이 있냐”고, 혹은 “모든 여성이 이런 성적인 제안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냐”고. 그 사람은 “나도 주위 남자들로부터 그런 요구를 받은 적이 있지. ‘나를 뭘로 보고!’ 라고 생각했어.”
 
“나를 뭘로 보고.” 그 말이 오랫동안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 같았다. 처음으로 누군가가 미치도록 부럽기도 하고 밉기도 했다. 나는 왜 그런 생각을 해보지 못했을까? 나에게는 왜 그런 생각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보지 못했다.
 
아동성폭력의 사건은 하나의 시점에서 발생한 일이지만, 그 영향은 일생을 두고 나에게 영향을 미쳤다. 사람이 어떤 판단을 하게 되는 것은, 그 사람의 학습된 기억과 그 사람이 살아오면서 경험한 환경, 그리고 그 사람을 둘러싼 문화와 관련이 있다. 어떤 문화와 환경에서 성장하고 자신의 경험을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성숙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 여긴다.
 
지금 또다시 나에게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나는 그때와는 다른 선택을 할 것 같다. 나의 경험을 해석하는 방식이 달라졌으므로.
 
내가 성매매를 한 것은 단순한 사건이나 한때의 잘못된 선택이 아니라, 내 삶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구성된 선택과 판단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그것이 한때의 타락이나 잘못된 결정이었다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너무나 취약한 상태에서 성폭력을 둘러싼 폭력적인 문화에서 살아낸 사람으로서, 비록 위험한 선택이었을지라도 나로서는 살아내기 위한 최선이었음을,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핑계처럼 들리는 말로 스스로에게 위로를 보낸다.
 
‘나의 성폭력을 기억하는 사람 모두가 죽었으면 좋겠어.’ 이 말은 나에겐 항상 ‘나의 성폭력의 기억이 사라졌으면 좋겠어. 그러나 그 기억이 지워지지 않기 때문에 내가 죽었으면 좋겠어’ 라는 의미였다. 내가 죽을 수도, 나의 기억을 지울 수는 없는 일이기에, 성폭력 사건을 다룬다는 것은 이런 기억과 문화 속에서 나를 지켜내는 것이리라. (너울)
 
    *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영문블로그> ildaro.blogspo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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