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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감성 충전

예술텃밭을 찾아온 유쾌한 ‘광대’들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2. 7. 13. 20:00

한 눈에는 슬픔을, 한 눈에는 환희를 담고
[뛰다의 시골마을 예술텃밭] 20. ‘뛰다’와 ‘THE 광대’ 
 
※ 7월 2일부터 화천에서는 ‘뛰다’가 주관하는 제 2회 <텃밭예술축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텃밭예술축제>는 예술가들이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장일뿐만 아니라, 지역주민과 함께 하는 문화축제로 자리매김 되고 있습니다.

<텃밭예술축제>의 첫 주 프로그램인 ‘자원방래’를 통해 얻은 경험과 성찰을 뛰다의 대표이자 배우인 황혜란씨가 나눕니다. ‘자원방래’는 두 예술가 집단이 각기 서로의 재능과 경험을 워크숍을 통해 나누는 프로그램입니다. - <일다> www.ildaro.com
 
예술텃밭을 찾아온 유쾌한 ‘광대’들

▲ 2회 텃밭예술축제의 첫 공연, 'The 광대'의 <놈놈놈> 중 버나놀음.     © 뛰다  
 
뛰다가 살고 있는 시골마을 예술텃밭에 광대 한 무리가 찾아왔습니다. 예술텃밭에서 열리는 ‘텃밭예술축제’의 첫 번째 프로그램인 <자원방래>를 위해서입니다.
 
이들을 광대라 부르는 이유는 첫째, 이들이 작당하여 흥겨운 한 판 굿을 벌이기 위해 스스로에게 붙인 이름이 ‘THE 광대’인 까닭입니다. 전통연희를 전공했거나 고성오광대 탈춤의 이수자인 이들에게 ‘광대’란 참 어울리는 이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들을 광대라 부르는 두 번째 이유는 민중과 함께하며 그들의 애환을 웃음으로 승화시킨 과거 유랑광대의 예술과 삶의 자취를 이어가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이들과 함께 한 첫째 날부터 그들이 내뿜는 넉살좋고 능청스런 기운에 예술텃밭 전체의 공기가 한껏 달아올랐지요. 생활인으로서의 이들의 모습은 마당에서 판을 휘어잡는 연희자로서의 모습과 그대로 겹쳐집니다.
 
세 번째 이유는 이들이 이미 확보해 놓은 안전지대에 머무는 대신 적극적으로 모험에 나서기를 즐기는 까닭입니다. 한 분야에 오랫동안 매진하여 이제 뭘 좀 알겠다 하게 되면 그 자리가 참으로 편하고 안락하여 더 이상 발을 떼기가 쉽지 않습니다. 헌데, 춤이면 춤, 악기면 악기, 재담이면 재담, 연희면 연희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재주를 가진 이들은 지금 가진 재주 안에 머무는 데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 덕분에 뛰다와 ‘THE 광대’들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한 마디로 유쾌한 광대들입니다. 주변의 공기를 순식간에 바꾸어 놓는 신명이 그들 안에 늘 넘실댑니다. 그 신명이란 것이 아주 쉽사리 옆 사람에게 전염되는 그런 것임을 뛰다들은 한 주 동안 온 몸으로 느꼈습니다.
 
서로 다른 에너지가 맞부딪혀 기묘한 장(場)을 만들다

▲ 'The 광대'와 워크숍을 통해 즉흥장면을 만드는 모습.     © 뛰다
 
한 주 동안 뛰다는 이들의 신명에 전염되어 ‘얼쑤’ ‘잘한다’ ‘그렇지!’ ‘장단을 걸어 놓고!’ ‘해 보는데!’ ‘왜 그런고 허니’ 를 연발했지요. 익숙지 않은 말들이 처음엔 생경하여 목구멍에 걸리는 듯도 했으나, 어색한 억양과 몸짓 안에 담긴 신명만큼은 광대들에게 뒤지지 않았습니다. 광대들과 함께 뛰어논 지 일주일이 지나자 어색한 느낌은 사라지고 신명만 남았습니다.
 
뛰다와 광대들은 일주일 동안 아침부터 밤까지 쉬지 않고 함께 뛰어 놀았습니다. 아침엔 함께 몸을 푼 뒤, 광대들이 뛰다에게 자신들의 장기를 가르쳐 줍니다. 뛰다들은 장구도 배우고, 사자춤도 배우고, 버나도 배우고, 문둥춤도 배웠습니다.
 
오후엔 함께 모여 즉흥 훈련을 합니다. 서로 다른 에너지가 맞부딪혀 기묘한 장(場)이 형성됩니다. 내가 할 수 없는 무언가를 쉽사리 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서로를 감탄의 눈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익숙하지 않은 연출의 주문에 당황해 하기도 하면서, 그러나 절대 못하겠다 움츠러들지 않는 광대들의 흥으로 예술텃밭의 연습실이 과열되어 광란의 물놀이를 떠나기도 합니다.
 
밤이면 막걸리를 받아 놓고 사는 이야기, 연극 이야기, 공연 이야기에 신이 납니다. 신이 난 뛰다들은 ‘연극이 무슨 공부냐?’ ‘이 엘리트주의자들!’ 이라며 스스로의 학구적 분위기에 일침을 가하기도 합니다. 스스로를 그렇게 흉보면서 뛰다들은 가슴이 후련해지기도 합니다. 혼자서는 넘기 어려운 스스로의 벽을 광대들의 힘을 빌어 슬쩍 올라가 보는 것이지요. 광대들도 같은 경험을 했으리라 믿고 싶습니다. 뛰다가 내민 손의 힘을 빌어 자신의 앞에 버티고 선 벽 위로 한껏 뛰어올라 보았으리라고.

▲ '자원방래' 프로그램을 통해 탄생한 'The 광대'와 '뛰다'의 창작 <화천탈춤> 

외줄타기와도 같은 광대의 삶, 그러나…
 
인디언 말로 친구란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사람’이라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습니다. 어쩐지 가슴이 먹먹해 지면서 눈물이 좀 날 것 같은 기분이 되었더랬지요. 친구란 대체 어떤 존재일까요. 당신은 어떤 친구들을 가지고 있나요. 당신의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그런 친구가 있나요? 아니, 사실 그 물음은 저를 향해 던지고 싶은 것이겠지요. 이렇게 물어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어떤 길을 걷고 있으며, 어떤 친구들을 만나고 싶은 걸까요.
 
공연창작집단 뛰다의 일원인 저에게 하루하루의 삶은 외줄타기와 같습니다. 비유가 아닙니다. 뛰다는 제게 마음 놓고 뛰어 놀 수 있는 놀이터이기도 하지만, 그저 마음대로 하는 것을 뜻하는 자유가 아닌, 어떤 상황으로부터의 탈출을 뜻하는 자유가 아닌, 진정한 자유를 위해, 많은 것들을 버리고 포기해야만 하는 일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나이가 들수록, 부모님이 늙어갈수록, 아이가 자라날수록, 일터가 요구하는 삶을 살아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매일매일 내 손으로 허공 위에 줄을 매고 그 위를 걷습니다.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으며 눈 먼 봉사 코끼리다리 더듬듯 막막한 심정으로 한 발 한 발 내딛는 그 줄의 양쪽에는 전혀 다른 세계가 존재합니다.
 
제가 가고자 하는 길은 그 어느 쪽도 아닙니다. 양쪽을 모두 바라보며 그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길, 아직 만들어져 있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가보고 싶은 까닭에 매일 아침 내 손으로 줄을 매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이쪽 세상과 저쪽 세상 사이에 얇고 가느다란 줄로 길을 내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우리는 ‘광대’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늘 이쪽과 저쪽 가운데, 하늘과 땅 사이에 서서, 한 눈에는 슬픔을, 한 눈에는 환희를 담고 줄 위를 걷습니다. (여담이지만 넘치는 재주를 가진 ‘THE 광대’들이 못하는 몇 안 되는 연희가 바로 줄타기라는군요.)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이 매일 사표를 쓴다는 말을 하듯, 저도 매일 아침 그 줄타기를 그만할까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저보다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줄을 매어 놓고는 저를 부르는 친구들이 있어 그만둘 수가 없습니다. 언제 떨어져도 떨어질 것이 분명한 줄 위를 한사코 올라가겠다는 친구들이 있어서, 내가 떨어졌을 때 손을 내미는 친구들이 있어서. 그들은 분명 내 슬픔을 등에 진 사람들입니다.
 
헤어진 지 몇 시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보고 싶어집니다.   (황혜란 / 배우)
 
※ 뛰다의 “시골마을 예술텃밭” 카페 cafe.naver.com/tui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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