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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도 ‘일코’하고 싶을 때 있어요
장애여성 숨은그림찾기(21) 나는 디시인이다 
 
[이 글은 내용상 다양한 인터넷 유행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 웹 용어가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께 양해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1999년에 설립된 디시인사이드(dcinside.com)는 초창기엔 디지털카메라 정보를 나누는 곳이었다. 그러다가 디지털카메라 문화가 확산되며 사이트에 유입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다양한 카테고리 내에서 갤러리가 생성되기 시작했다.
 
아햏햏을 필두로 싱하횽, 글설리, 본좌, 지못미, 흠좀무 같은 유행어와 개죽이, 개벽이, 딸녀 등 ‘짤방’의 근원이 되었다. 갤러리들은 세세하게 분화되어 현재는 거의 없는 것만 빼고 다 있다. 카테고리가 늘어남에 따라 현재 디시인사이드는 디지털카메라 정보는 유명무실하고 커뮤니티로서의 기능에 더 치우치는 모양새다.
 
욕구 배설의 순기능이 있다고 믿으며
 
나는 디시인이다. 디시에 글을 ‘싸는’ 류는 아니지만 정기적으로 접속하고 그 곳에서 시시덕거린다. 요즘은 디시인사이드의 버스커버스커 갤러리에 주로 드나들었다. 갤러리에서 버스커버스커의 공연정보를 얻고 ‘직찍’과 ‘직캠’을 감상하고 댓글로 ‘갤러’들과 교류(?)했다. 물론 유동닉이었지만.
 
얼마 전에도 갤러리에서 시시덕거리고 있는데 한 갤러가 글을 올렸다. ‘나 십년감수..’ 뭐 이런 제목이었을 것이다. 내용은 디시가 페이스북과 트위터, 미투데이 등과 자동연계 기능이 있는데, 폰갤을 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그걸 누를 뻔했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댓글이 좌르륵 달렸는데 모두들 킬킬거리면서 자기도 그럴뻔한 적이 몇 번 있다는 글들이었다.
 
강제일코해제=인생퇴갤? 디시를 하는 많은 사람들이 ‘일코’라 불리는 일반인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일반인 코스프레란 무엇이냐 하면, 말 그대로 디시를 하지 않는 척을 하며 고상하고 평범한 일반인인 척하는 것이다. 그럼 왜 디시를 하는 것을 감추려고 할까? 디시를 하는 게 창피한 걸까?
 
디시인사이드에 처음 접속한 사람들은 그 저속함에 불쾌감을 표하곤 한다. 존칭이나 존댓말 따위는 없고 서로를 게이라 부르며 온갖 욕을 주고 받는 그 문화에 얼굴이 뜨거워질 수도 있다. 인터넷 상의 익명성 폐해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할 때 디시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유도 바로 이 ‘저속함’ 때문이다. 이런 것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일코’를 하며 강제로 일반인 코스프레가 해제되었을 경우 더 이상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다며 ‘인생퇴갤’이라고 칭하는 것이다.
 
근래에 자주 가는 ‘버스커버스커’갤의 행태를 예로 들자면, 갤러리에서 버스커버스커의 멤버들은 온갖 섹드립의 대상이다. ‘어제 갤주와 쎆쓰하는 꿈을 꿨어’ 등의 드립은 얌전한 편에 속한다. 지금 섹스나 키스를 하고 있는 중이라는 둥, 바지 벗은 멤버들의 알몸과 성기를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섹드립도 심상찮게 등장한다. 이런 글들에는 ‘미친년’같은 얌전한 욕부터 듣도 보도 못한 욕까지 다양한 댓글이 달린다.
 
이렇게 내가 싼 글과 댓글이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현실세계에서 활동하는 매체들에 노출되었을 경우, 감추고 있던 또다른 자아가 드러나는 것이라, 더 이상 일반인 코스프레를 할 수 없음은 물론이요, 주변에 좀 이상한 애로 낙인 찍힐 수가 있는 것이다.
 
웹에서와 현실이 꼭 같을 필요는 없잖아? 익명성에 기댄 웹과 실명성을 기반으로 하는 현실에서의 모습이 꼭 같을 필요가 있을까? 두 개의 공간에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나뉜 자아를 가지고 있는 것이 그렇게 나쁜 것인가 싶다. 아무도 모르게 내가 가진 은밀한 욕구를 분출할 곳이 필요하기도 할 텐데 말이다.
 
물론 누구도 그러지 않는 곳에서 욕구를 배설하면 문제가 되겠지만, 디시인사이드는 욕구배설이 주 목적인 곳인데 그 곳에서 섹드립 좀 치든, 쌍욕을 하든 그게 큰 문제가 될까? 이렇게 말하면 집창촌은 성 상품화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곳이니 그 곳에서 성노동자와의 하룻밤을 사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라는 개드립을 치는 부류도 나올 것이다. 그게 그거랑 같아?
 
웹과 현실에서의 모습이 한결같기를 강박적으로 요구되는 사회가 꼭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듯, 디시인사이드에서 적당히 풀어지고 상스러운 것도 꼭 나쁘지만은 않다. 어느 매체든지 문화든지 순기능을 가지고 있다. 나는 디시인사이드에 적절한 순기능이 있다고 생각한다. 욕구를 배설함으로써 삶을 너무 피폐하게 만들지는 않는 순기능.
 
장애인에게는 '일코'를 하는 곳이 웹이다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PC통신으로 사람을 만났는데, 장애인인 것을 알고 상대가 난색을 표했더라는 이야기. 그러고는 왜 장애인을 것을 먼저 밝히지 않았냐고 신경질을 냈다는 이야기. 허허, 비장애인의 웹과 현실의 전혀 다른 모습이 그 장애인에게는 반대로 구현되어 나타났던 것이 아니었을까? 이를테면 비장애인에게는 '일코'를 하는 곳이 현실세계라면 장애인에게는 '일코'를 하는 곳이 웹이었던 것이다.
 
장애인은 현실세계에서 '찌질한 존재'로 '취급'될 때가 종종 있다. 겉모습부터 생활수준이나 배움의 정도 등 여럿 부분에서 비장애인과 '다르기' 때문에 '장애인이 그렇지 뭐' 등의 대우를 받는다. 나 또한 지난 겨울의 막바지에 병원에 갔는데 아니 왜 건강보험이 1종이 아니냐는 질문을 들었다. 직장인이었으니까요, 라고 대꾸를 하긴 했는데 그 미묘한 눈빛이란. '헐.. 휠체어를 탄 장애여성이 직장인이었대' 정도의 뉘앙스였달까. 뭐 이것은 그냥 내 쩌는 피해의식이 만들어낸 과대망상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장애인이 찌질한 존재인 현실보다 보통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웹이 더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현실에선 정부의 무능함과 말 바꾸기 등에 분노해 갖은 퍼포먼스를 하며 '진상'을 부리다가도 웹에서는 우아하고 고상하게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그러니 당신들, 웹에서 알게 된 인연이 장애인임을 알았을 때 너무 놀라지 마세요. 우리도 일코하고 싶을 때 있어요. 흐흣. (푸훗)
 
     * 여성저널리스트들의 유쾌한 실험! 인터넷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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