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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를 둘러싼 게임의 법칙
<기후변화, 어떻게 대응할까>① 지구를 팝니다 
 
세계는 지금 극심한 가뭄과, 혹한, 쓰나미 등 강력하고 무서운 환경재앙에 직면해있으며, 그 주요 원인으로 ‘기후변화’가 꼽힌다. 인류가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되면서, 이전에는 기후변화와 관련이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새롭게 다가오고 있다. <일다>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공동 기획으로 “기후변화, 어떻게 대응할까” 기사를 연재한다.
 
연재를 통해 기후변화가 우리 삶에 미치는 광범위한 영향을 알아보고, 사회 문제들과 어떻게 연관되어있는지 짚어본다. 또한 끝없는 생산과 소비를 전제로 한 자본의 논리가 정치사회 전반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속 가능하지 않은 이 시스템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 지 함께 대안을 모색할 계획이다. 첫 기사의 필자 조보영님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편집자 주
 
기후변화 협상, ‘게임 판’이 만들어지다
 
오랜 시간 ‘기후변화’와 관련한 국제협상들을 보면서, 어릴 때 오빠들과 했던 재미없는 보드 게임이 생각났다. 이 게임을 하려면 4명이 필요했기에 마지못해 나를 끼워주곤 했는데, 네 개 나라를 나눠가지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자원을 팔면서 필요한 자원을 다른 나라에서 사오는 게임이었다.
 
주사위를 던져 우선권을 가지게 된 사람이 나라를 선택하는 것이 룰이겠지만, 난 한 번도 아프리카 외에 다른 지역 나라를 맡아본 기억이 없다. 아프리카가 가진 자원은 석유와 몇몇 광물이 전부인데 반해, 수입해야 할 자원은 의료, 교육 등 엄청나게 많았기 때문에 가장 불리한 캐릭터로 여겨졌다. 나는 단 한 번도 1등을 한 적이 없었고, 게임을 하기 싫어하는 이유가 되었다.
 
내가 늘 질 수밖에 없는 이유 하나는 게임을 시작할 때부터 나에게 제일 불리한 나라를 주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모든 게임의 룰을 오빠들 마음대로 바꿔가면서 결국은 자기들이 이기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이유는, 매일 지다 보니 스스로 게임에 흥미가 없어져 룰이 어떻게 돌아가든 누가 이기든 관심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나는 기후변화의 게임 판이 만들어지고 그 안에서 선진 강대국과 개발도상국, 저개발 국가들이 결코 승패를 바꿀 수 없는 게임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자주 받게 되었다.

▲ 기후변화에 책임이 상대적으로 적은 개발도상국과 사회적 약자들은, 기후변화 협상에서 선진국과 초국적 기업들에게 유리하게 짜인 시스템을 거부하며 저항하기 시작했다.  사진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13차 기후변화당사국 총회에서  현지 여성들이 플라스틱백을 이용한 치마를 만들어 퍼포먼스를 하는 모습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각국이 처음 논의한 기후변화 문제는, 우여곡절 끝에 2005년 <교토의정서>(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국제협약으로, 이 의정서를 인준한 국가는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하며, 이를 이행하지 않는 국가에 대해 높은 관세를 적용함)라는 결과를 만들어내며 초국적 환경 대응의 성공사례로 남는 듯했다.
 
분명 교토의정서는 선진국들의 책임을 강조하며, 그들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이끌어 낸 성과가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온실가스를 ‘거래할 수 있는 기회’(배출권 거래: 정해진 기간 안에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지 못한 각국 기업이, 다른 사업장이나 국가로부터 탄소배출권을 돈을 주고 살 수 있도록 허용함)를 만들어주면서, 시장의 먹이 감으로 환경을 내몰아버렸다는 비난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기후변화에 역사적 책임이 있는 선진국들과 초국적 기업, 그리고 풍요를 넘어 낭비의 삶을 유지하는 부자들에게 그들의 책임을 명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강하게 제지하거나 책임지도록 하기보다는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권리를 돈으로 살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준 것이다.
 
지구 안의 공동체는 기후변화에 따른 모든 피해를 똑같이 나눠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선진국들은 오랜 침략을 기반으로 산업화를 이룩했고, 현재의 국제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그들과 초국적 기업들은 이 시스템 안에서 막대한 자본을 가지고 그들에게 유리한 룰을 만들어 내고 있다.
 
결국 기후변화에 책임이 상대적으로 적은 개발도상국, 사회적 약자들은 결코 지금의 시스템에서 이길 수 없는 부당한 상황에 몰리게 된다. 모든 것이 한쪽에만 유리하게 짜인 지금의 게임 판은, 끝없는 성장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옹호세력에 의해 보호되고 강화되어왔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순순히 그들이 정해준 룰에 주사위만 던질 수는 없다. 이런 부당한 게임을 계속하느니, 판을 뒤집어버려야 한다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발리 총회, 게임의 판을 뒤집는 사람들
 
이런 움직임에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렸던 제13차 ‘기후변화당사국 총회’와 2010년에 열린 ‘코차밤바 민중포럼’은 분명 도화선이 된 계기였다. 이 두 회의에는 앞으로 더 깊고 다양하게 다루게 될 ‘기후정의’와도 맥을 같이한다.

▲ 13차 기후변화당사국 총회 참가자들이 '기후변화 세계공동행동의 날'에 행진하는 모습.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기후변화당사국 총회는 기후변화 협약의 구체적 이행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매년 열리는 UN회의다. 기후변화와 관련하여 국제적으로 가장 큰 논의의 장이며, 잘 알려진 교토의정서 역시 교토에서 열린 3차 기후변화당사국 총회에서 체결된 것이다. 그런데 왜 열세 번째로 열린 발리의 회의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 걸까?
 
기후변화당사국 총회는 그 회의를 주최한 국가의 특성이 자연스럽게 반영된다. 발리가 있는 인도네시아는 오랜 식민지의 경험과, 산림 파괴, 원주민들의 인권 유린, 선진국과 초국적 기업의 자본 침착, 빈부 격차, 식량과 에너지 문제의 충돌 등 다양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발리 회의에서는 산발적으로 논의되고 목격되었던 기후변화와 관련된 사회 문제들이 한 곳에 모이게 되었다. 특히 국제 활동 영역이 적었던 아시아 지역의 많은 단체와 활동가들이 함께하게 되면서, 생각지 못한 연대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감동적인 순간이 만들어졌다.
 
이전까지만 해도 ‘기후변화’와 관련된 논의는 온전히 유엔(UN)이 열어 놓은 세트 장에서, 선진국들이 짜놓은 각본과 룰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되고, 시민사회단체들은 그들의 논의 안에서만 맴돌아왔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게임의 룰 안에 들어있지 않았던 새로운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기후변화의 해결책으로 내놓은 시장 기반의 조치들로 인해 또다시 고통 받는 농민, 원주민들의 이야기가 수면위로 올라왔다. 해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있는 군소 도서국가들의 절박한 생존의 이야기도 주목을 받았다. 이것은 처음으로 자신들이 참여한 게임이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고, 왜 이 게임이 이렇게 부당하게 운영되는지 의심하던 이들이 모이게 된 시발점이었다.
 
이에 힘입어 농민, 원주민, 노동자, 여성 등 다양한 사회적 약자들이 스스로 주체가 되어 어머니 지구에 대한 존경과 인권, 평등을 가치로 내세운 ‘기후정의운동’이 정식적으로 활동에 힘을 모으게 되었다.
 
이들은 “기후변화가 아닌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System Change Not Climate Change!)는 슬로건 아래 ‘배출권 거래’와 같은 시장주의 접근을 거부하고, 선진국과 초국적 기업들이 만들어 가는 룰을 비판했다. 그들만의 리그였던 기후변화 게임 판을 뒤집어 엎어 새로운 판을 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이다.
 
코차밤바 세계민중회의, 새로운 세계의 룰 선언
 
그리고 2년, 두 번의 기후변화당사국 총회가 더 열렸다. 하지만 기후변화에 대한 논의는 선진국의 책임 전가와 회피, 그리고 기후변화 문제를 시장에 기반해 해결하려는 ‘자본의 확산’(탄소 시장)을 논의하는 자리로 마무리됐다. 국제금융의 위기와 붕괴 속에서, 금융자본에게는 기후변화가 새로운 숨통을 틔어줄 희망이자 마지막 보루였던 것이다.

▲ '지구의 날'에 맞춰 열린 <기후변화와 대지의 권리에 대한 세계민중회의> 폐막식 장면. 볼리비아 코차밤바 축구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공식 선언문 낭독에 귀기울였다.  ©출처- 진보언론 <레프트 21> 
 
이에 실망한 사람들은 남미의 볼리비아와 베네주엘라 등 볼리바르동맹(ALBA) 국가를 중심으로, 볼리비아 코차밤바에서 제1회 <기후변화와 대지의 권리에 대한 세계민중회의>를 진행했다. 이것은 실로 절박한 민중들이 모여 ‘기후정의’를 외치는 부흥회와도 같았다. 등록된 공식 참가자만 2만 여명이었으며, 지구의 날인 4월 22일 열린 폐막행사에는 5만 여명이 모인 가운데 공식 선언문을 채택하였다.
 
이 선언문은 선진국들이 역사적 책임을 묻고, 개발도상국에 대한 ‘기후 부채’(Climate Debt)를 인정하는 내용과 함께, 식량주권과 원주민 인권 보장 등을 담고 있다. 특히 세계적 국민투표라는 세계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고 있어, UN을 중심으로 한 강대국의 게임에 반대하고 시장 기반의 비민주적인 룰을 거부하면서 새로운 세계의 룰을 만들 것을 제안하였다.
 
비록 현 시점에서 볼 때는 불가능한 이야기로 보이지만, 정해진 룰에 갇혀 주사위만 던지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을 완전히 인지하고 새롭고 민주적인 공동체 룰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99%를 위한 ‘기후정의 운동’ 확산되길
 
또 다시 코차밤바 세계민중회의 이후 2년이 지났다. 두 번의 당사국 총회가 더 진행되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고 쏟아지는 것은 비난뿐이었다. 지난해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총회에서는 자본주의의 마지막 회생카드라는 ‘녹색 경제’가 모든 논의 테이블을 채웠다.
 
아쉽게도 발리에서 시작되어 코차밤바 세계민중회의라는 부흥회를 격은 민중운동진영 역시 그 힘을 더 모아내지는 못했다. 산발적으로 점거(Occupy) 운동이 진행되었고, 대안공간을 통해 진보적 논의가 오가긴 했으나 이전과 같은 열기는 느끼기 힘들었고, 더욱 견고하고 높게 쌓아진 벽에 막혀버렸다.
 
근 5년 사이에 ‘기후정의 운동’은 주류 기후변화 대응운동으로까지 성장했다. 자본과 시장을 기반으로 한 접근을 반대하며, 어머니 지구와 인권을 지키기 위해 힘을 보태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기후변화당사국 총회에서 수만 명이 거리로 나와 행진을 할 때마다, 같은 뜻을 가지고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모여있다는 느낌을 받으면 뭉클해진다. 아마 5만 명이 운집한 코차밤바 축구장에서 민중선언문 낭독을 들었던 이들도 이런 뭉클함과 벅차 오름을 느꼈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감동과 힘이 되어주어야 한다. 그 뜻을 모아 여전히 우리를 게임 판 위의 말로 전락시키는 거대 자본과, 초국적 기업, 잘못된 해결책을 주장하는 선진국들의 논리에 맞서야 한다. 이것은 기후변화를 둘러싼 일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1%가 아닌 99%를 위한, 민주적이고 평등한 사회 문제의 해결책을 만들어가는 길이다. 그러기에 또 한번의 가슴 뭉클한 도전을 기대하며, 더 많은 사람들이 ‘기후정의 운동’에 함께하기를 바란다.  (조보영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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