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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감성 충전

우리는 '연극 유목민'입니다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2. 3. 20. 08:30


뛰다의 시골마을 예술텃밭 12. 유목연극 <쏭노인 퐁당뎐> 
 
※ 뛰다는 2001년 ‘열린 연극’, ‘자연친화적인 연극’, ‘움직이는 연극’을 표방하며 창단한 극단입니다. 지난해 강원도 화천으로 이주해 20여 명 단원들이 폐교를 재활 공사하여 “시골마을 예술텃밭”이라 이름 짓고, 예술가들의 창작공간이자 지역의 문화예술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뛰다 까페 cafe.naver.com/tuida
 
우리는 '연극 유목민'입니다

오늘은 유목연극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지난 해 <쏭노인 퐁당뎐>이란 작품으로 전국 여덟 개의 도시를 돌아다니며 ‘연극’으로 살았던 삶에 대해서 말입니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2001년 함께 ‘뛰다’라는 이름으로 연극을 시작한 이후, 끊임없이 돌아다녔습니다. 창단 첫 작품이 서울 중계동의 근린공원에서 첫 막을 올리고는, 그 해 강원도의 작은 마을들, 남해안의 섬들을 두루 돌아다니며 공연을 했었습니다.

▲ 2010년 강원도 화천에서 호주의 ‘스너프 퍼펫’(Snuff Puppets)이란 극단의 앤디와 다니엘레란 예술가들과 함께 2주일간 워크숍 <사람과 인형프로젝트>를 진행했다.    © 뛰다
 
‘뛰다’란 이름 때문이었을까요. 매년 우리는 전국의 방방곡곡 가보지 않은 곳이 거의 없을 만큼 참 많이도 돌아다녔지요. 학생 수가 겨우 여섯 명인 작은 분교에서부터 1000석이 넘는 대도시의 커다란 극장에까지, 우리나라의 구석진 곳의 작은 섬에서부터 미대륙의 공업도시에다 아시아의 끄트머리 유서 깊은 터키의 古도시까지, 우리는 연극이란 봇짐을 지고 돌아다니며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십 년이나 지난 후에야 우리는 왜 “유목연극”이란 이름을 붙여가며 이런 일을 벌였을까요. 유목연극이라니, 소나 양이라도 데리고 다니겠다는 말인가요.

 
유목의 시작: <사람과 인형 프로젝트>(2010)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2010년에 화천에서 있었던 ‘사람과 인형 프로젝트’에 대해 잠깐 소개하겠습니다.
 
우리는 호주의 ‘스너프 퍼펫’(Snuff Puppets)이란 극단의 앤디와 다니엘레란 예술가들과 함께 2주일간 이 워크숍을 열었습니다. 화천의 일반 주민들, 고등학생들, 그리고 전국 여러 곳에서 신청한 일반인들, 연극배우들이 모였습니다. 우리는 함께 놀고, 이야기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인형도 만들었습니다. 인형은 등나무와 대나무를 이용해서 만들었는데, 사람이 그 안에 들어가서 조종하는 그런 인형이었습니다. 제일 큰 물고기 인형은 길이가 5미터가 넘는 아주 커다란 놈이었습니다.
 
참여자들이 만든 이야기는 화천의 댐의 역사와 얽혀 새로운 신화가 되었고, 마침내 화천의 중앙광장에서 모든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연되었습니다. 이 공연은 일반시민들이 예술가들의 도움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우리에겐 참 신선하고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유목연극은 여기서 출발합니다.

▲ <사람과 인형> 프로젝트 참여자들이 만든 이야기는 마침내 화천 중앙광장에서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연되었다.     © 뛰다
 

관객의 참여로 완성되는 연극 <쏭노인 퐁당뎐>
 
추운 12월의 이 뜨거운 경험을 통해 우리는 어떤 용기를 얻었습니다. 영하 20도의 차가운 겨울을 지내고 봄을 맞이하며 우리는 어느새 <쏭노인 퐁당뎐>이란 작품을 완성해 가고 있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미완성인 작품을 완성해가고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시민들이 채워주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형식이었기 때문입니다.

뛰다와 스너프 퍼펫의 예술가들이 만든 인형과 장면들 사이에 작은 빈틈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 틈은 원래는 관객이었을 사람들이 채우게 되는 것입니다. 이 연극이 이전의 작품과 다른 점은 바로 이 틈에 있습니다. 극장에 가서 무대를 세우고 조명을 장치하고 관객이 오기만을 기다렸다가 짜잔 멋있게 보여주고 돌아오는 그런 공연이 아닙니다.

 
공연할 도시를 찾아가서 가장 먼저 우리가 하는 일은 텐트를 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텐트는 아주 커다란 텐트입니다. 겨울과 봄을 지내며 만든 아주 커다란 인형들이 들어갈 만한, 지름 11미터에 높이가 6미터나 되는 축구공같이 생긴 돔 텐트입니다. 그 돔 텐트 안에서 그 마을의 사람들과 함께 인형도 만들고, 그들의 이야기도 듣고, 우리가 미리 준비한 미완성된 이야기 안으로 그들을 초대합니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함께 공연연습을 한 뒤 마지막 날엔 무대에 서게 됩니다. 비로소 우리의 공연은 그들과 함께 완성되는 것입니다.
 
호된 신고식으로 시작된 첫 유목연극
 

▲ 경기도의 한 도시, 안산 한가운데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가는 25시 광장에 돔 텐트를 치면서 첫 유목연극이 시작되었다.     © 뛰다 

 
우리가 첫 유목연극을 떠난 것은 꽃피는 오월이 오기 바로 얼마 전이었습니다. 경기도의 한 도시, 안산 한가운데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가는 25시 광장에 터를 벌렸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 단원이 달려들어 돔 텐트를 쳤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잠을 자게 될 작은 텐트들도 치고 나니 해가 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첫 유목이 시작되는 설렘으로 첫날밤을 맞았습니다.
 
배우와 연출, 디자이너, 무대감독, 조연출, 스태프들을 모두 합해 20여명의 연극유목민들이 텐트에 옹기종기 자리를 펴고 누웠습니다. 오월이 코앞이었지만 밤공기는 차가웠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자정이 되면서 빗방울을 거세지고 땅바닥으로 물이 흐르기 시작하고, 어떤 텐트는 비가 새고, 침낭은 젖고, 떨어지는 빗방울을 피해 몸을 웅크리고 밤을 지새웠습니다.
 
호된 신고식으로 유목생활은 시작되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서로의 피해상황을 파악하고 대책수립에 들어갔습니다. 물이 새는 천막을 다시 여미고, 젖은 침낭을 빨아 말리고, 디자이너와 배우들 몇몇은 인형을 수선했습니다. 다행히 모두들 살아남았습니다.
 
점심을 먹고 드디어 우리는 시민참여자들과 워크숍을 시작하였습니다. 우리가 만난 20여명의 시민참여자들은 고등학생에서 70대 할머니까지 다양한 연령대였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만든 서사의 한 장면에 들어와 그들만의 캐릭터를 만들었습니다. 스스로 자신이 쓰게 될 인형을 만들고 자신들만의 사연을 풀어나갔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연극의 마지막 장면을 만들었습니다. 그들의 손으로 자신들의 가장 소중한 것들을 담아 고통 받는 아주 커다란 물고기를 치유하는 것으로 연극은 마무리 되었습니다.
 
6일간의 연습을 마치고 우리는 안산의 시민들 300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연을 올렸습니다. 20여명의 시민 배우들 외에도 시민합창단, 주부 락밴드가 참여하는 참 거대한 프로젝트였습니다.
 
서로를 변화시킨 놀라운 만남

▲ 시민참여자들과 6일간의 연습을 마치고 안산의 시민들 300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쏭노인 퐁당뎐> 공연을 올렸다.     © 뛰다 

 

5월 한 달 동안 우리는 안산에서 시작해서, 서울의 한강, 의정부, 다시 서울의 국립극장으로 떠돌아 다녔습니다. 여름을 건너뛰고 가을이 오자, 우리는 다시 전라도 광주, 과천, 안동, 고양을 돌아 화천까지 긴 유목의 여정을 이어나갔습니다. 가는 곳 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고, 새로운 이야기들과 새로운 인물들이 <쏭노인 퐁당뎐>이란 작품의 그 틈을 채워주었습니다.
 
우리가 시민배우들과 워크숍을 하고 그들을 우리의 연극 안으로 끌어들인 그 만남은 아주 작은 움직임이었습니다. 기껏해야 20명, 작으면 10여명의 사람들을 만났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만남이 만들어내는 파장은 참 기이한 것이었습니다. 그 일주일간의 경험은 그들의 인생에 있어서 참 충격적인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도 그러했습니다.
 
유목연극이 끝난 후, 의정부의 주부님들은 ‘날다’라는 연극모임을 만들게 되었고, 서울 유목에 참여했던 볍씨학교의 한 아이는 연기를 전공하기로 결심하게 되고, 광주 유목에 참여했던 주부극단 ‘봄날씨’는 그 인형들을 소재로 새로운 작품을 만들었고, 과천에서 참여한 한 중학생 아이는 계속 연극을 하고 싶다며 화천으로 찾아오고 말았습니다. 유목연극 <쏭노인 퐁당뎐>은 단지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어떤 관계를 만들고 서로에게 다른 방식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 유목연극을 한다고 했을 때 우리는 밖에서 먹고, 자고 하는 외적인 것을 먼저 떠올렸습니다. 그래서 힘들지만 굳이 텐트를 치고, 침낭 속에서 밤을 지새우고, 방랑자의 낭만을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유목연극은 그런 외적인 형태에 있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도시에서 유목생활을 한다는 것은 참 힘든 일입니다. 도시의 밤은 번쩍거리고, 기계적인 소음이 떠도는 복잡한 곳입니다. 몸은 점점 피로해지고, 마음도 약해지게 됩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사람들과의 만남입니다. 연극이라는 방식으로 서로 소통하고, 나누고, 같이 느끼고, 움직이면서 그들도 우리도 조금씩 변해가는 것이 이 만남의 의미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연극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기쁨도 얻고, 마음의 치유도 받고, 희망을 얻기도 하고, 잘못을 깨닫게 되기도 하고, 위안을 얻기도 하겠지요. 그런 일이 일어난 후 우리 연극유목민들은 다시 떠나갑니다. 왜냐하면 그게 우리의 운명이니까요.    (배요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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