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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장애여성 숨은그림찾기(18) 애니메이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장애여성, 숨은 그림 찾기”는 다섯 명의 장애여성들이 다양한 ‘매체 읽기’를 통해 비장애인, 남성 중심의 주류 시각으로는 놓칠 수 있는 시선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어렸을 때 학교에서 돌아와 마루에 엎드려 숙제를 하다가 꾸벅꾸벅 졸고 있으면 잠결에 탁. 탁. 탁. 퉁. 퉁. 퉁. 가족들이 마루를 지나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있으면 어느새 거기에 통. 통. 통 뛰어다니는 나의 발소리도 섞이는 것 같았다.
 
이미 병이 깊어져 걸어 다니기가 어려울 때였는데 마루를 다니는 걸음 소리에, 불가능한 일이지만 내 것마저 섞여든 것 같아 설레며 듣고는 했다. 한참동안 눈을 감고 아련하게 듣다가 잠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오래 전 기억을 일깨운 것은 최근 본 단편 애니메이션 때문이다. 3명의 대만 대학생들이 졸업 작품으로 만든 <보이지 않는 곳에서(Out of sight)>. 상영시간 5분 27초짜리밖에 되지 않는 짧은 애니메이션이다.
 
사람들의 삶에 ‘상상’이 빠진다면?
 

▲ 애니메이션 <보이지 않는 곳에서(Out of sight)> 중 한 장면. 시각장애가 있는 소녀 치코가 촉감과 소리로 느끼는 세상의 모습이 그림으로 펼쳐진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시각장애가 있는 어린 소녀 치코가 소매치기에게 가방을 빼앗기고 그를 뒤쫓아 달려가 버린 (치코의) 강아지 꼬꼬의 소리를 따라 쫓아가는 이야기이다. 어둠 속을 달려가는 치코가 부딪치듯이 들려오는 소리에 맞추어 사물의 이미지를 상상하는 모습이 정말 사랑스럽다. 수채화와 손으로 직접 그린 그림은 보지 못하는 치코가 상상하는 이미지에 따뜻한 느낌을 가득 불어넣어주었다.
 
이 작품을 ‘시각장애인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며 보지는 않았다. 물론 작품 의도가 장애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을 표현했고 캠페인성 짙은 어떤 작품보다 사랑스럽고 두고두고 간직해서 보고 싶은 작품이다. 그러나 나는 그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비롯하여 모든 인간을 좀 더 풍요롭게 하는 ‘상상의 힘’에 훨씬 더 반했다.
 
비장애인이라 해도 사람의 몸의 능력은 그리 대단하지 않다. ‘육백만불의 사나이’도 아니고 ‘소머즈’도 아닌 바에야. 육백만불의 사나이와 소머즈가 비록 액션 드라마의 영웅 캐릭터이지만 원래는 사고로 장애인이 되었다가 모두가 아는 비싼 수술을 받고 거듭난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아무튼 절대다수의 비장애인은 눈으로는 몇 십 미터밖에 보지 못하고 귀로는 그보다 근거리의 소리밖에 듣지 못하며 다리로는 모든 장소에 가지 못하고 모든 사람을 만나지도 못하면서 일생을 보내는데 거기에서 상상하는 것을 빼버리면 얼마나 삭막하고 재미가 없을까.

 
폭력과 파괴를 막아내는 상상의 힘
 
눈으로 보이는 것만을 믿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까지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소중하고 의미 있는 일이다. 나는 주로 멋지고 활동적인 자신을 상상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때는 손오공의 머리카락 수만큼이나 많은 또 다른 나를 상상하고 즐거워했지만 나이를 먹어서는 수많은 타인의 삶이 억울하고 아프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것이 나빠질 것이라는 비관주의자가 된 것이 아니라 더 나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거대한 폭력이 아름다운 것을 파괴하는 것을 막기 위해 상상해야 할 필요도 있음을 알았다.

 
예를 들어, 풍전등화처럼 무력 앞에 놓인 제주도 강정마을의 ‘구럼비 바위’가 폭파되면 얼마나 슬프고 화가 날지, ‘와락(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와 가족, 특히 아이들의 심리적 내상을 돌보기 위해 만들어가는 심리치유 프로젝트)’의 아이들과 가족들이 얼마나 힘들게 견디고 있을지도 상상의 힘이 아니면 알 수 없다.
 
나중에 구럼비 바위가 없어지고 나서 제주도에 갔다가 누군가 내게 “예전에 이곳에 아주 아름다운 구럼비 바위에 있었는데 지금은 폭파되고 흔적조차 안 남았습니다”라며 사진으로만 남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나중에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를 부모로 둔 사람을 만났는데 그의 아버지가 그때 죽었다면, 그래서 가족이 오랫동안 크게 고통스러웠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몇 달 전부터 SNS를 시작했다. 혼자 상상하고 알아가는 것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상상도 때로는 정확한 정보를 필요로 한다. 제 마음대로 뻗어나가다가는 벽에 부딪치고 잘못하면 독선이나 공상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멀리 어떤 곳에서 여기에 있는 나에게 들려주는 소식이 매일 실시간으로 SNS에 올라온다. 나는 잊지 않고 싶다. 내게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아픈 사회가 있고, 내게 들리지 않아도 억울한 비명소리가 있음을.   (다비다)

* 여성저널리스트들의 유쾌한 실험! 인터넷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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