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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1년, 일본은 지금 (2)
여성들이 일구는 쓰나미 피해 복구작업 
 
[2012년 3월 11일은 일본 동북부를 강타한 강진으로 쓰나미 피해와 함께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한지 1년이 되는 날입니다. 일본의 여성언론 <페민>의 아카이시 치에코 전 편집장이 후쿠시마 핵사고 후 1년, 일본의 현재를 진단한 글을 보내왔습니다. 일본 시민사회는 미래 세대의 생명을 위한 결단을 내릴 것을 일본 정부와 국제사회에 요청하고 있습니다. - 일다 www.ildaro.com]

▲ 일본 동북 연안부, 쓰나미에 휩쓸린 차는 처참하게 찌그러졌다.     © 페민 
 
동북 연안부를 덮친 쓰나미 피해는 상상을 불허하는 것이었다. 집이나 건물은 대부분 휩쓸려 내려갔고, 내륙 수 킬로미터까지 덮친 쓰나미는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뒤늦게 피신한 사람들은 익사하거나 그 타격으로 사망했다.
 
현재 쓰나미 피해지역의 잔해물은 깨끗이 정리되었고, 정리․분리된 잔해물은 거대한 산을 이루고 있다(잔해물 처리는 정치문제가 되었다). 가게들은 영업을 시작했고 수산물가공공장도 부분적으로 조업을 시작했으며, 대형 슈퍼마켓도 영업을 재개하고 있다.
 
그러나 가설주택에 살고 있는 피해주민들은 여전히 여러 불편과 고통 속에 노출되어 있다. 가설주택은 겨울을 지내기에 춥고 좁아 넓은 집에서 살던 동북지역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고통이라고 한다. 심지어 상가 등에서 떨어진 고지대에 있어 앞으로 이들의 고립이 문제가 될 전망이다. 
 
가설주택 주민들을 지원하는 여성들의 활동
 
몇 번인가 쓰나미 지역을 방문해 여성의 고용상황이나 가설주택에서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가설주택 내에서 혼자 방치되어 죽음을 맞이하는 고독사(孤獨死) 방지를 위해 순찰사업이 시작되었는데, 긴급고용촉진사업의 일환으로 쓰나미 피해자들이 이 사업의 방문원으로 고용되어 순찰을 돌고 있다.
 
대부분 고지대에 있는 가설주택 거주자들은 물건을 사기가 불편하다. 고령자 비율이 높은 지역임에도 노인들에게는 이동수단이 없다. 그래서 여성단체에서 미야코시, 오츠치초, 노다무라의 피해자 여성 9인을 고용하여 장보기 대행서비스와 순찰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세 명이 짝을 이뤄 부탁받은 물건을 사서 차로 배달하며, 그와 동시에 고독사를 막는다는 의미가 있다. 이름 하여 ‘메데루-카’(芽出る-car: 싹이 나는 차, 일본어로 ’메데루카‘는 ’싹이 날까‘의 의미기도 하다-역주). 이 사업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 3년간은 지속될 수 있을 전망이다.
 
손으로 직접 물건을 만들어 팔아 얼마간이라도 수입을 얻는 활동도 활발해 이렇게 만들어진 물건들이 도쿄 등 전국에서 팔리고 있다. ‘오츠치 하란코(연어알이라는 의미-역자주)’는 오츠치 마을의 가설주택에 사는 여성들이 주 2회 한곳에 모여, 머플러나 퀼트 등을 만드는 그룹이다. 이곳의 멤버 중에는 쓰나미로 가족을 잃은 사람도 많다.
 
“함께 모여 손을 움직이고 있으면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아 좋다”고 여성들은 말한다. 이러한 물품 만들기를 사업으로 일으킨 젊은 경영자도 있는데, 이들이 만든 물건은 대형백화점 등에서 판매되기도 한다. ‘공정무역’이라고 정의하는 사람도 있지만, 일본과 동남아시아만큼의 경제격차는 없기 때문에 여성들이 얻는 수입은 매우 적다.
 
▲ 이와테현 오츠치시의 제9가설주택에서 모여 물건을 만드는 오츠치 하란코의 멤버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 페민 
 
재해복구, 방재 과정에 성별감수성이 필요한 이유
 
정부는 실업급여의 수급 기간을 늘려 피해지역에서 다시 고용이 이루어질 때까지 연결되도록 해왔고 실제로 많은 사람이 실업급여를 받아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2월 즈음이면 이마저도 끊기는 사람이 많다. 그 외 가옥이 전파된 세대에게는 300만 엔의 피해자 생활재건 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반파 세대에게는 반액). 이 제도는 한신 아와지 대지진 피해자들이 싸워 얻어낸 제도이다. 그러나 집의 재건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리고 이 역시 가족 단위로 주어지는 점이 문제가 되고 있다.
 
쓰나미의 잔해물 처리나 중장비를 다루는 남성을 구인하는 경우는 많다. 연안지역 여성들은 재해 전, 대부분 수산물가공공장에서 일했다. 미역, 가리비, 굴 등 수산물이 수확되는 계절마다 가공하는 일을 해온 것이다. 물론, 이들 여성들의 일이 고용인지 가족노동의 연장인지는 불분명한 구석도 있다. 하지만, 어업 부활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연안지역 여성에 대한 고용도 요구해나가야 한다.
 
동일본 대지진 여성지원네트워크는 복구, 방재 과정에 여성의 시각을 반영하는 활동을 해왔다. 긴급고용제도의 남녀별 통계를 요구하고, 각 현에 여성 지원의 중요성을 제언하고 있다. 또한, 여성에 대한 폭력도 조사하고 있는데, 피해 스트레스에 의한 가정폭력이나 어린이 성폭력 사례 등이 보고되고 있다. 16년 전에 비해 폭력 자체가 줄어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언론에도 보도되듯, 지진재해로 인해 여성에 대한 폭력이 늘었다는 점을 부정하는 사람이 줄었다는 사실만큼은 달라진 점이다. 

  * 글: 아카이시 치에코   * 번역: 고주영     [일본어 원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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