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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보호 vs 일자리 보호’ 대립을 넘어
에너지 전환, 노동자를 위한 ‘정의로운 전환’ 모색해야
 
[여성주의 저널 일다] 한재각 

[에너지정치센터와 일다는 ‘기후변화와 에너지 전환’에 관련한 기사를 공동으로 기획해 연재하고 있습니다. 필자 한재각님은 에너지정치센터 운영위원입니다. -편집자 주]


환경과 노동자의 권리는 대립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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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 열대우림이 파괴되는 인도네시아   © 환경정의
얼마 전 과천지역의 진보신당 당원교육모임에 다녀왔다. 마침 에너지 전환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생협에 참여하고 있다는 한 여성참가자가 노조활동을 하는 자신의 남편과 다투었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저녁식사를 하다가 핵발전의 위험성에 대해 시작된 이야기가 핵발전의 중단과 폐기의 문제로 나갔는데, 거기서 사단이 났다는 것이다. 핵발전의 위험성에 염려가 큰 아내는 핵발전소 폐쇄를 주장했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고용문제를 염려하는 남편은 그 주장에 반대했다는 것이다. 접점 없이 이어진 논쟁 끝에, 결국 기분을 상하고 한동안 관계마저 냉랭해졌다는 이야기였다.
 
이 부부의 말싸움은 사실 노동운동과 환경운동 진영 사이에 오래 전부터 이어져 온 ‘일자리 대 환경’ 논쟁의 하나일 뿐이다. 환경규제가 해당 산업을 위축시키고 또 그 산업에 고용된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위협할 것이기 때문에, 환경운동과 노동운동은 대립적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에 기반하고 있다.
 
1990년대 미국 북서부 지역에 있는 고목림 지역의 벌목을 둘러싸고, 노조와 환경단체 사이에 일어난 ‘환경보호’ 대 ‘일자리 보호’라는 대립은 유혈충돌로까지 이어졌다. 이런 논쟁이 보여줄 수 있는 극단적이고 불행한 사례이기도 하다.

 
에너지전환에서도 이런 대립구도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기후변화와 오일피크 등의 문제로, 화석연료를 많이 사용하는 산업들은 에너지효율을 높이고 온실가스 방출을 줄이도록 법제도적으로 규제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이런 규제가 모두 비용의 증가와 경쟁력 약화로 받아들여지게 될 것이다.

 
그에 따라 부담하게 되는 비용을 임금동결이나 노동강도 강화 등의 방식으로 노동자에게 전가하려고 할지 모른다. 혹은 아예 그런 규제가 작동되지 않는 국가나 지역으로 사업장을 이전시킬 계획을 세울 수도 있다. 또 일자리 위협을 명목으로 노동조합을 환경규제에 반대하도록 유혹할 수도 있고, 노동조합이 스스로 반대운동에 나설 수도 있다.

 
기후변화 대응책이 노동자에게 미칠 영향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 현황(2001년)을 살펴보자. 이미 많이 알려져 있듯이, 에너지 부문이 온실가스 배출량의 83.5%을 차지하고 있다. 이를 세분화 해보면 산업생산 과정(산업부문)과 전기생산 과정(전환부문)에서 각 34.1%와 30.5%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 온실가스 방출을 줄이고자 한다면, 이 영역에 온실가스 배출감축 노력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에너지소비량에 따라 이를 구체적인 산업으로 대략 열거해보면, 발전산업, 석유화학산업, 1차금속산업, 비금속산업, 조립금속산업, 섬유.의복산업, 육상운수산업, 건설산업 등이 될 것이다. 아직 정부가 산업별로 구체적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제시하고 있지 않지만, 이들 산업에서 상당한 정도의 온실가스 감축이 요구될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측된다.

 
그렇다면 이들 산업에 고용된 노동자들의 고용에 변화가 생길 것인가? 그 고용변화는 노동자가 수용할 만한 것인가? 아니면 저항할 것인가? 그리고 그 저항은 에너지전환을 어렵게 하는 장애물로 등장할 것인가? 현재로서 이런 질문에 대해서 어떤 대답도 제시된 바 없다. 아니, 질문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은 2012년까지 온실가스 의무감축 대상이 아니며, 정부는 그 이후의 온실가스 의무감축 대상에서 어떻게든 빠질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대신에  ‘탄소시장’ 등 기후변화로 열리는 새로운 시장에 참여할 방법에만 골몰하고 있다. 기후변화와 그 대응책으로 야기되는 노동자의 고용에 어떤 영향을 있을지, 그에 따른 대책은 무엇인지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 이런 상태가 방치된다면, 우리는 노동자들이 에너지전환에 반대하는 불행한 장면을 목격할 수도 있다.

 
녹색 일자리 창출하는 ‘정의로운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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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 대 일자리’ 대립구도를 완화시키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정의로운 전환' 전략이 주창, 개발되고 있다.  © 일다
이를 피해갈 방법은 없을 것일까? 환경운동이 초기부터 활성화되었고, 노동운동과 환경운동 사이의 연대의 경험이 있는 몇몇 나라들에서는 ‘환경 대 일자리’ 대립구도를 피하고 완화시키기 위한 전략을 개발하고 있는 중이다. 그 핵심 개념이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이다.

 
환경파괴적인 산업에서 환경친화적인 산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여기에 고용된 노동자들과 그 지역공동체에게 필요한 교육 및 재훈련, 취업기회 제공, 전환과정에서의 소득 지원 등이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노동자들의 노동이 사회적으로 유용하고 환경적으로 이로운 것이 될 수 있도록 하며, 이들이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경제적, 사회적 토대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다.

 
정의로운 전환 개념을 처음 제시한 사람은 미국 노동운동 지도자였던 토니 마조찌(Tony Mazzochi)다. 2002년 작고한 마조찌는 1990년대 노동당 창당의 주역이었으며, ‘작업장의 레이첼 카슨’이라고 불리던 환경운동과 노동안전보건운동의 개척자였다. 그는 화학산업에 의한 독성물질 생산과 소비에 맞서, 생태계를 보호할 뿐 아니라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고자 했다.

 
나아가 ‘독성경제’에 의존하는 노동자들이 그로부터 벗어나서 경제활동을 영위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노동자를 위한 슈퍼펀드’(Superfund for Worker's)를 제안했다. 마조찌는 1980년대 후반에 2차 대전 이후 돌아온 군인들이 평시 경제에 편입될 수 있도록 교육과 훈련비용 등을 제공했던 제대군인원호법을 모델로 이러한 제안을 했는데, 정의로운 전환의 개념을 담고 있는 것이었다.

 
마조찌의 아이디어는 캐나다 노동운동에서 보다 구체화됐다. 캐나다 석유화학원자력노조(OCAW)의 정책분석가인 리차드 밀러(Richard Miller)는 1993년에 오대호 수질개선을 위한 국제공동위원회에서 ‘정의로운 전환’ 개념에 바탕을 둔 제안을 내놓았다. 오대호 보호를 위해서 염소계 물질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면서, 생산자들을 위한 “노동자와 시설 전환 프로그램”을 제안했던 것이다.

 
그는 여기서 펀드와 행정기구의 설치, 조세 부과, 노동자에 대한 지원, 기술적 지원과 융자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한편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용어 자체는 에너지화학노조(CEP)의 브리언 콜러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내었다고 알려져 있다.

 
에너지 전환을 위한 노동-환경의 폭넓은 연대 필요

 
캐나다 노총(CLC)은 1999년에 ‘정의로운 전환’을 공식적인 정책으로 채택했다. CLC는 정의로운 전환의 범위를 화학.에너지 산업에 국한하지 않고 확대했다. 전환의 필요성이 있는 분야를 예상하고 전환계획을 작성함으로써, 노동자와 공동체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나아가 CLC는 정의로운 전환 정책을 녹색 일자리(Green Jobs) 창출 문제와 연결시켰다.

 
CLC에 의해 정식화된 정의로운 전환의 개념은 국제 노동조합과 기구들에 의해서도 수용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2001년에 열린 유엔 지속가능개발위원회(UN CSD)의 9차 회의에서 국제자유노련(ICFTU)과 국제화학, 에너지, 광산 일반노조(ICEM) 등은 <지속가능한 에너지와 교통>이라는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정의로운 전환’ 정책을 포함시켰다. 최근에 UNEP과 ILO 등과 함께 발간한 <녹색일자리>(2008년) 보고서에서도 이 전략이 채택되어 있다.

 
노동조합의 정의로운 전환 전략은 ‘녹색 일자리’ 창출과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환경파괴적인 산업으로부터 벗어나는 노동자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여야 하는데, 환경친화적인 일자리라면 더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녹색일자리가 재생에너지사업 분야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처럼 선진국의 노동운동은 ‘정의로운 전환’과 ‘녹색 일자리’ 전략을 통해서 기후변화 및 오일피크 등의 에너지.환경 위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한국의 노동운동은 아직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 수준이다.

 
한국에서도 2005년도부터 결성된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를 통해 에너지산업 분야의 노조들과 환경단체들이 정기적으로 대화를 하고 있다. 올해 초에는 발전노조가 <기후변화와 노동계의 대응 과제>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5월에는 한국노총이 녹색일자리에 관한 국제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했다. 그러나 에너지전환에 대한 노동조합의 참여와, 그에 따른 정의로운 전환에 관한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노동운동의 관심 부족만이 문제는 아니다. 정부뿐 아니라 환경운동단체들도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고용이 어떻게 영향을 받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기후협약이나 고유가로 영향 받게 될 기업만을 걱정할 뿐이며, 환경운동진영은 그런 정부에 초점을 두어 비판하고 있다.

 
고용에 영향을 받게 될 노동자들의 사회경제적 취약성을 주목하는 환경정의의 관점이 부족하며, 에너지전환을 위한 폭넓은 연대를 구축하려는 전략적인 시야가 부족한 것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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