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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새지평

내성천에서 강과 놀다, 그리고 깨닫다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1.09.14 07:30

[특별기획] 내성천 트러스트 ‘우리가 강이 되어주자’ (2) 
 
[우리나라 자연하천의 전형으로 평가받고 있는 내성천을 대상으로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을 통한 습지 복원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내성천 트러스트’는 내성천 주변 본래 강의 땅이었던 사유지를 확보하여 다시 강의 품으로 되돌려주기 위한 내셔널트러스트운동으로, 시민 한 사람이 1평씩의 땅을 사기 위한 금액을 기부하는 것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일다>www.ildaro.com는 내성천트러스트의 취지에 깊이 공감하며 내성천을 지키기 위한 특별기획을 진행합니다. 두 번째 글은 내성천 순례를 다녀온 여성노동자글쓰기모임의 김근례님이 보내주셨습니다.-편집자 주]

▲ 야트막히 흐르는 내성천은 다가서기 두렵지 않은 강이다.     © 김명희 
 
광복절까지 낀 긴 여름휴가를 맞았다. 올 여름은 내내 찌뿌둥한 날씨에 비마저 오락가락하고 습하여 빈둥빈둥 집에서만 있었다. 내내 집에만 있다가 출근이 가까워오자 마음이 바빠졌다.

휴가에 뭐했냐는 주변사람들의 인사치레 물음에 대답할 거리가 궁색하였다. 무엇보다 휴가가 아니면 평소에 하기 어려운 일을 한 가지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도 강박으로 다가왔다. 무엇을 할까. 마침 내가 속한 모임에서 내성천에 갈 인원을 꾸렸다. 두 대의 승용차에 어른 아이 꽉 채워서 휴가 끝자락에 강 여행길에 올랐다.
 
일행이 도착한 곳은 내성천 상류의 이산마을이었다. 지율 스님이 큰 수박과 찰떡을 준비하여 우리 일행을 반가이 맞아주었다. 아주 작은 규모의 집 한 채만 있는 이산서원과 눈을 맞추고 곧바로 맨발로 강에 들어갔다. 어린 아이들이 물을 좋아하듯 야트막히 흐르는 눈앞의 강을 보자 자연스럽게 강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하교하다 방죽에 빠져죽을 뻔한 아찔한 사건을 겪은 이후 물에 대한 공포로 수영을 하지 못했고 그 두려움이 잠재해 있던 터였다. 그러나 작년에 1박2일 낙동강 순례 길에서 강을 걸어본 이후 공포는 사라지고 어느새 물과 친숙해졌다. 그래서 또 달려 내려왔을 것이다.
 
고운 모래와 시리도록 맑은 물을 보라
 
내성천은 낙동강의 한 지류로서 봉화, 영주, 예천 지역을 흘러흘러 삼강에서 낙동강과 합류한다. 정부의 4대강 사업으로 거의 완공단계에 이른 낙동강의 환경변화 영향인지 수량이 불어났고 물살이 세었다. 강바닥은 거친 모래와 작고 뾰족한 돌이 많아 발바닥이 아팠다.

작년에 걸었을 때는 모래가 곱고 층이 단단하여 발을 디뎌도 굳은 땅처럼 편했었다. 이번에는 굵은 모래가 많이 쓸려 내려와 발등이 잠길 정도로 푹푹 빠져서 걷기가 불편하였다. 하지만 팔월 한 낮의 뙤약볕 아래서 강을 걷고 있는 우리 일행은 신나서 펄펄 뛰었다.  

▲ 맨발로 느끼는 모래의 감촉을 무엇에 비길까. ©김명희  
 
흐르는 강물에 잠시 멈춰 섰더니 발등위로 모래가 스쳐 흐른다. 몸의 중심인 발바닥 뒤꿈치의 모래가 빠르게 빠져나가는 바람에 균형이 흐트러져 넘어질 뻔하였다. 모래도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했던 순간이다. 이 모래가 부산의 해수욕장까지 흘러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맨발로 모래의 감촉을 느끼며 종아리를 휘감아 흐르는 시원한 물길을 걷는 즐거움을 그 무엇에 비길 수 있을까. 어린 시절이 그리운 어른들의 추억놀이처럼 마냥 즐거웠다. 뿐만 아니라 수초와 어우러진 부드러운 곡선의 푸른 강변과 물의 농담에 의해 바짝 마른 하얀 모래와 물에 적셔진 갈색모래의 기하학적인 모양과 색의 조화는 자연만이 창조할 수 있는 예술 작품처럼 보였다.
 
하류로 내려 갈수록 폭이 넓은 강은 물을 따라 굽이굽이 자연스런 곡선 모양을 이루어 흐른다. 강둑에는 버드나무가 강을 호위하듯 줄지어 서있고 강둑에 바짝 붙은 논두렁에는 사람들의 양식이 될 푸른 벼가 자라고 있다. 그 옆에는 밭이거나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마치 강과 논과 산이 자연의 질서인양 잘 어우러져 조화롭다. 그 모습이 한 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수풀과 버드나무 대신 시멘트로 단장된 한강에서는 도저히 찾아 볼 수 없는 생명력이 넘치는 평화로운 풍경이다. 이 풍경은 농촌에서 자랐던 내 어릴 적 정서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풍경이 낯설지 않고 편안하였다.
 
다리 위에서 걸어온 강을 내려다보니 물 흐름에 따라 너울너울 W자 무늬로 수놓은 모래가 유리창을 투과하듯 햇빛에 투명하게 빛났다. 이곳 상류지역은 영주댐 건설공사가 올 가을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다리 아래쪽에 마을이 보이고 마을 가운데 유난히 높은 대문에 기와집이 위엄 있어 보였다. 조상대대로 집성촌을 이루어 온 오래된 마을이란다.

옆 동네인 400년 넘은 장씨 고택이 있는 마을과 함께 수몰된다고 하니 되돌아서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고 가슴이 착잡하였다. 긴 세월 보존되어 온 전통과 문화의 숨결을 한순간에 수장시킨다는 것이다. 우리는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자연을 훼손하고 경제성 논리에 의해 막대한 예산을 들여 다시 복원을 되풀이 하고 있다. 근시안적이고 성과주의적 국가정책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른 아침의 강의 모습은 차분하고 운치가 있었다. 모래사장 위로 새 발자국과 수달 발자국, 이름 모를 동물들의 발자국 흔적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고 멀리 두 쌍의 원앙새도 보였다. 동물을 본다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해야 함에도 오히려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만큼 나는 자연생태계에서 멀리 떨어져 살았다는 방증이다.

마을 지형이 물의 흐름을 따라 태극원형으로 형성된 회룡포는 마을 앞 넓디넓은 모래사장과 강물에 비친 산과 하늘이 하나 되어 잘 찍은 사진을 보는 듯하였다. 어디를 가도 내성천 하류는 모래사장이 넓어 해수욕장이 연상되었지만 끝없는 수평선 대신 초록의 논과 밭 위쪽에는 짙은 녹음의 산이 둘러 서 있다.

이렇게 고운 모래사장이 있고, 시리도록 맑은 물이 있고, 아이들에게 위험하지도 않은 이런 곳을 두고 여름철 피서객들은 다들 어디로 갔는가? 멀리 바다를 찾아가지 않아도 좋을 이 아름다운 강을 두고.

제 길 따라 흐르는 강은 축복이다  


▲ 내성천 모래톱 위에 새겨진 새들의 발자국.     © 김명희

어려서 농촌에서 자란 나는 강가에서 놀았던 희미한 기억이 남아 있다. 우리 마을은 호남의 곡창지대인 평야였다. 우리 집 뒤에는 소나무가 많은 뒷동산이 있었고 동네주변은 야산 옆에 붙어 있는 밭 이외에는 거의 다 논만 있었다. 큰 산이 없기 때문에 계곡이 없고 물놀이 할 곳도 없었다. 다만 논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물을 가두고 방류하는 농수로가 있었다. 물이 바짝 바른 때에는 피라미 등을 관찰하지만 깊은 웅덩이가 있어 물놀이는 하지 못하였다.

 
봄이 무르익을 무렵이면 동네언니들과 쑥과 나물을 캐러 들판으로 갔다. 마을 끝에 있는 정자를 벗어나면 시야에는 온통 끝없는 지평선만 보인다. 논길을 따라 한 참을 가면 시냇가가 나왔다. 내성천에 비하면 아주 작은 시내지만 모래사장이 있었고 제방구실을 하는 언덕에 쑥과 나물이 많았다. 특히 간식으로 ‘삘기’라는 식물의 하얀 속살을 먹었는데 연하고 부드러웠다. 이것이 좀 쇠게 되면 질겨져서 껌처럼 오래오래 씹기도 하였다.
 
제방 바로 밑에는 수초가 많았고 수심이 깊었다. 쑥을 캐다 지루하면 얕은 물길을 걷기도 하고 물이 촉촉한 모래위에 콧구멍만한 구멍을 파보면 영락없이 조개가 나왔다. 손으로 파기 귀찮으면 발로 파기도 하였는데 조개는 둥그스름한 삼각형 모양으로 옅은 녹두 색에 가는 흰줄이 있어 귀여웠던 것으로 기억된다. 크기는 어린아이 손톱만한 것부터 어른 손가락 마디만한 것도 있었다. 집에 가져가지는 않았지만 앞 다퉈서 많이 캐려고 실랑이도 하였다. 그것을 “새앙조개” 또는 “모시조개”로 불렀다.
 
내성천은 평소에 생각하지 못하던 어릴 적 기억을 되살려 주었다. 이런 한 줌의 기억이 되살아 날 때 불쑥 찾아가도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일 것이다.
 
어디서 봤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평범한 한 장의 시골마을 사진 설명에 ‘세계 어디를 가도 한국처럼 마을과 강과 산이 함께 있는 아름다운 곳을 찾아 볼 수 없다’는 외국인의 설명에 강한 인상을 받았었다.

그렇다. 고향의 정서가 묻어나는 아름다운 우리의 산천을 있는 그대로 두었으면 좋겠다. 강이 제 물길을 따라 구불구불 흐르고, 산은 산의 모양대로, 오래된 집은 그 위엄을 후손에게도 보여 줄 수 있도록 말이다. 우리는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함께 조화롭게 살아온 민족이다. 이 아름다운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호하는 것이 어떤 경제적 가치보다 우선한다는 사실을 강과 함께 놀면서 깨닫는다. (김근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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