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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정인진 선생님의 하늘을 나는 교실(19) 우리들의 명절 

명절이 다가오고 있다. 이럴 때는 아이들과 우리의 전통적인 명절 문화 속에 깃들어 있는 남녀 차별적인 특성을 찾아보고, 양성 모두가 좀 더 행복할 수 있는 명절문화로 고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보곤 한다.

 
이 프로그램을 위해서는 3학년의 태준이와 아영이의 의견을 사례로 소개할 것이다. 다음은 이 수업의 텍스트이다.
 
<추석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많은 아이들은 명절을 즐겁게 생각하지만, 수연이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수연이네는 큰집이라서 추석이나 설 같은 명절에 많은 친척들이 수연이네 집에 모여 차례를 지냅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차례상 준비로 항상 너무 바쁘십니다.

물론, 다른 친척 어른들이 도와주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그 많은 음식 장만은 모두 여자들이 하는 것이 수연이는 늘 불만입니다. 여자 어른들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음식 장만으로 쉴 틈이 없는데, 다른 남자 어른들은 TV를 보거나 아주 간단한 일들만 하는 것은 정말 이해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정작 차례를 지낼 때는 일을 그렇게 많이 하신 어머니와 작은 어머니들은 절도 하지 않는 것이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 텍스트 속 수연이네 집안 풍경은 바로 우리 집의 명절 모습이다. 아이들과 텍스트를 읽고 나서, 나는 이 이야기는 우리 집안의 명절 풍경이라고 꼭 말해준다. 그러면 어린이들은 훨씬 자기 집안의 명절 풍경을 솔직하고 자유롭게 잘 펼쳐놓는다. 이제 아이들 차례다.
 
<문제 1. 여러분 가정의 명절 모습은 어떻습니까?>
 
태준: 큰집에 가서 여자 어른들은 음식을 만드시고 감자 같은 것도 깎는데, 남자 어른들은 아무 일도 안하고 텔레비전만 본다. 그리고 어린이들은 음식상 차리는 것을 돕기도 하고, 어쩔 땐 사촌 누나랑 보드게임, 아니면 피아노를 치고 논다.
 
아영: 엄마는 음식을 만드시고, 아빠는 밥을 먹고 나서 먹을 고기를 구우신다. 그러고 나서 엄마는 그릇을 치우신다. 아빠는 소에게 가서 먹이를 준 다음, 강아지를 돌보신다. 나는 뒤에 가서 고추 등을 딴다.
 
태준이네는 흔하게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명절 풍경이다. 그에 비해 아영이네는 비교적 남성, 여성 함께 일을 나누는 모습이다. 아영이 말로는, 텔레비전도 다 같이 보거나 아니면 아무도 볼 수 없단다.
 
그렇다면, 이런 자기 집안의 명절 모습이 마음에 드는지 물어보자.
 
<문제 2. 여러분 가정의 명절 모습은 마음에 듭니까? 아니면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생각을 자세하게 써 보세요.>
 
태준이는 ‘불만이 있다’고 말하고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우리가 피아노를 칠 때, 남자 어른들은 아이들보다 한 일이 없으면서도 피아노가 시끄러워서 텔레비전 소리가 안 들린다고 강제로 피아노 전원을 끄신다. 반면, 여자 어른들은 소리가 좋다고 하면서 계속 치라고 하신다. 나는 남자 어른들에 대해 불만이 많다.”
 
한편, 아영이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엄마와 아빠가 함께 일하시고, 나는 고추 따고 노는 모습은 마음에 든다. 하지만 오빠들은 할 일이 없어서 나가지도 않고 게임을 하는 것이 조금 마음에 안 든다. 나는 오빠들도 일을 도왔으면 좋겠다.”
 
좀 더 적극적으로 명절 문화 속에 있는 남녀차별적인 특성들을 찾아보자. 아이들이 느끼지 못하더라도, 명절문화는 양성평등과는 거리가 먼 것이 사실이다. 한 예로, 명절에 지내는 차례는 대체로 아버지와 관련한 조상님을 추모한다. 이런 걸 평등하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이런 질문에 척척 대답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대답하기 힘든 문제를 내줄 때조차 나는 항상 간단한 사례만을 제시한다. 만약, 의견을 잘 쓰지 못하는 학생이 있다면, 다른 친구들이 어떻게 쓰고 있는지 살펴보면서 그 속에서 사례를 보충해 준다. 아이들은 친구의 의견을 들으며 더 좋은 생각을 해낼 때가 많다.
 
<문제 3. 어떤 것보다도 명절 문화 속에 ‘남녀차별’적인 특성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것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생각나는 대로 써 봅시다.>

이 질문에 대한 아이들의 의견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여자 어른들이 일을 많이 한다.
2) 명절 때, 아빠의 어머니나 아버지네 가고 나서 외갓집에는 나중에 가거나 아예 안 간다.
3) 남자 어른들은 여자 어른이 주는 음식을 받아먹고 넓은 상에서 밥을 먹는데, 여자 어른들은 음식을 주면서 좁은 상에서 밥을 먹는다.
4) 함께 놀 때 남자들은 같이 놀지만, 여자들은 과일 같은 것만 주고 놀지는 않는다.
5) 여자 어른들이 일을 할 때, 남자 어른들은 조금만 도와주고 논다.
 
그렇다면, 이런 식의 명절 문화 속에 존재하는 남녀 차별적인 특성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놔두어도 괜찮을까? 이를 위해 나는 아이들에게 ‘명절 증후군’을 설명했다. 여성들이 명절을 앞두고 그에 대한 부담감으로 정말 몸이 아픈 질병을 말한다고 설명하면서, 이렇게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는 명절문화를 좋다고 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문제 4. 명절 문화의 남녀차별적인 특성으로 인해 발생될 수 있는 문제점은 어떤 것이 있을지 추측해 봅시다.>
 
다음은 아이들의 대답을 정리한 것이다.

1) 여성들이 계속 고통에 시달릴 것이다.
2) 여성들은 명절이 짜증날 것이다.
3) 여자들이 명절이 되면 싫은 표정을 지을 것이다.
4) 남자 어른들에게 불평을 내놓다가 싸울 수 있을 것이다.
5) 너무 힘들다고 생각하다가 스트레스가 쌓여 건강이 나빠질 수 있다.
 
마침, 이 질문에 대답을 하면서 태준이가 묻는다. “선생님, 우리나라만 이렇게 명절이 남녀차별적인가요? 아니면, 다른 나라도 그런가요?” 나는 그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어, 질문에 대답할 수는 없었다. 대신, 프랑스에서 내가 경험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늘 마지막 질문에 앞서 아이들에게 해 주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추석이나 설날처럼 프랑스에서 중요한 명절은 바로 크리스마스랍니다. 그래서 프랑스 사람들도 크리스마스만 되면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자녀들이 부모님을 뵈러 가느라 우리 못지않은 민족대이동이 벌어지지요.

프랑스인들이 어떤 식으로 명절을 보내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제가 본 한 가정은 크리스마스에는 자기 자식들만 모인다고 합니다. 결혼을 한 자녀라고 하더라도 배우자와 함께 오지 않는다고 하네요. 또 한 가정은 한 해는 남편 부모님 댁을, 다음 해에는 부인 부모님 댁을 방문하는 식으로 번갈아 가면서 부모님을 찾아뵌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보다 남녀 평등한 명절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문제 5. 모두 즐겁게 즐길 수 있는, ‘남녀평등적인’명절문화를 새롭게 만든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여러분의 상상력을 발휘해 새로운 명절 문화를 만들어 봅시다.>
 
아영이는 다음과 같은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한 번은 둘이 떨어져서 자기 엄마에게 가고, 한 번은 바꾸어서 간다. 그럼, 낯설지 않을 것이고, 다른 엄마 집에 가는 것도 그렇게 불평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보다는 더욱 친해져서 남녀차별이 조금씩 사라질 것이다.”
 
또 태준이는 이 질문에 두 가지 재미있는 의견을 발표했다.
1) 작은 야구장을 만들고 친가와 외가가 붙은 다음, 돌아오는 명절 때는 이긴 팀 집을 먼저 가고, 그 다음 명절 때는 진 팀의 집을 먼저 간다. 그것을 반복하면서 간다. 
2) 어디론가 여행을 가서 자연을 많이 찍어온 사람이 포인트를 획득해, 10포인트를 먼저 획득한 팀의 집을 먼저 간다.
 
오늘 공부는 여기까지다. 해마다 반복되는 즐거운 명절에 어떤 사람들은 즐겁기는커녕, 괴롭기까지 하다면 그건 정말 문제가 있는 문화임에 틀림없다. 모두들 기다려지고 즐거운 명절이 되기 위해 지금의 명절문화를 어떻게 바꾸어 나가야 할지도 아이들과 함께 생각해 보았다.
 
지금은 이런 아이들의 상상이 말도 안 되어 보일지 모르지만, 글쎄? 지금까지 엉뚱한 생각들이 세상을 바꿔놓았듯이 아이들의 이런 상상이 미래의 모습이지 않을까? 아니, 꼭 그렇게 되도록 꿈꾸고 싶다. 꿈은 그것을 간절히 바랄 때 이루어지는 법이니까. 다음 시간이 기다려진다. (정인진) ※ ‘하늘을 나는 교실’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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