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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의 일다 논평> 한양대 ‘성의 이해’ 강좌 폐강 
 
남성중심의 사회통념과 편견을 마치 과학적인 사실인양 교재에 기술하고 성희롱에 가까운 강의를 진행해 논란이 됐던 한양대학교 교양강좌 ‘성의 이해’가 오는 2학기부터 폐강됐다.
 
이 강좌에 사용된 교재에는 ‘성폭력은 남성의 내재된 본능이다’, ‘자연유산은 성격적으로 미완성인 경우와 독립성이 강하고 욕구불만인 여성에서 나타난다’, ‘남녀평등을 실현하려는 여성이 혼외정사에 빠진다’, ‘동성애의 원인은 남성으로 태어나 여성의 뇌를 가지게 되는 것에 있다. 부모의 잘못이 대부분이다’ 등 차별적이고 왜곡된 내용이 상당한 분량 기술돼있다.
 
학생들은 수업 중에도 강사가 음담패설을 던지는가 하면, 성인사이트 동영상을 갈무리한 것으로 강의자료를 마련하고, 심지어 포르노나 관음증 사진을 과제로 제출하도록 했다며 항의했다.
 
올해 2월, ‘성의 이해’를 수강한 학생들의 문제제기와 제보로 이 사건은 언론 매체를 통해 공론화되었으며, 30여 개 시민단체가 강의 폐지를 요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수업을 옹호하는 학생들의 목소리 또한 적지 않았다. 논란 속에서 강좌는 계속됐고, 올해 수업을 들은 학생들만도 수백 명에 달한다.
 
‘성의 이해’ 수업에 문제제기를 해온 학생들은 4월부터 인터넷 카페를 개설해 강의 내용을 공개했다. 또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시켜갔다. 그리고 드디어 지난 7월 7일, 2학기 과목 ‘폐강’이라는 결실을 얻게 된 것이다.
 
16년 간이나 인기 강좌였다는 ‘성의 이해’ 강의안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이런 수업이 오랫동안 유지되었던 데에 의문을 제기했다. 1년에 1천명. 그 동안 이 강의를 들은 수많은 학생들은 강의 내용에 문제를 느끼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강사의 주장대로, 남자의 음담패설을 불쾌하게 여기는 여학생보다 웃어넘기는 여학생이 많고, 소수의 여성들만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일까?
 
아마 이 강좌가 대학에서 꾸준히 학생들을 모으며 유지된 이유는, 강사가 주지시킨 ‘성의 이해’ 논리 이외에 다른 방식으로 ‘성’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었던 까닭도 클 것이다. 대한민국의 성에 대한 담론은 너무나 남성중심적일 뿐 아니라, 그 문화를 내면화하고 있는 수많은 남녀가 존재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또한 학생들이 수업의 문제점에 대해 공론화하는 과정을 보면서, 우리 사회에서 이미 인정받고 있는 무언가에 ‘틈을 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대한민국 열악한 성교육의 현실에 대해 비판하지만, 지배적인 성문화와 담론을 뛰어넘고 성찰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는 않는다.
 
학생들은 수업의 문제점에 대해 감정적으로 호소하기보다는 관련 단체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의견을 청해, ‘성의 이해’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과 자료를 구축했다. 또한 대학사회 내부와 외부에서 꾸준히 자신들의 문제의식을 공유해나갔다. 닫혀있고 왜곡되어 있는 ‘한국사회의 성의 이해’에 대해 앞으로도 이와 같은 문제 제기들이 풍부해지길 바란다.
 
진정한 의미의 ‘성의 이해’란, 다양한 사람들의 경험과 생각이 담긴 논의들을 통해 타인을 존중하며 다양성을 인정하는 성문화를 배우는 장이 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일다 논평을 함께 만드는 사람들] 박희정(편집장) 조이여울(기자) 정안나(편집위원) 서영미(독자위원) 박김수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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