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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대전 16인성폭력사건 공대위,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 촉구”  
 
지난 해 10월, 대전의 고교생 16명이 5월부터 6월 중순까지 지적장애를 가진 15세 여학생을 지속적으로 성폭행한 사건이 알려졌다. 그러나 경찰은 ‘가해 학생이 미성년자인데다가 피해자가 강하게 저항하지 않았고 폭력이 행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해학생들을 불구속 입건해 논란을 빚었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저항여부를 묻는 것은 우리 사회의 성폭력에 대한 왜곡된 인식의 대표적 예다. 이 사건의 경우, 가해자가 16명에 달하고 피해자가 지적장애를 가졌다는 점에서 ‘저항하지 않은 점’을 이유로 경찰이 가해자에 대해 미온적 태도를 취한 것이 더욱 큰 공분을 샀다.
 
유명 작가 공지영씨가 트위터를 통해 불구속수사에 대한 공개 비판을 쏟아내는 등 여론의 질타를 크게 받자, 검찰은 가해 학생들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대전지방법원은 11월 24일,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고 피해자와 피의자들이 합의했다’는 이유로 이를 기각했다.
 
여론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은 사건이지만, 이 사건은 수사과정에 이어 재판과정 또한 많은 문제점들을 노출하고 있다. 이 사건에 대한 엄정한 수사와 가해자처벌을 촉구하기 위해 결성된 시민사회단체 공동대책위원회는 1월 24일 대전지방법원 앞에서 재판 진행과정과 가해자 측의 태도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피해자 정신감정결과 제출, 진술신빙성 문제 삼아
 

▲ 1월 24일, 시민사회단체 공동대책위원회는 대전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 장애인부모연대
 
공동대책위에 따르면, 가해자의 변호인 측은 피해자에 대한 정신감정 결과를 재판부에 제출하고 ‘피해자를 장애인으로 보기 어렵다’는 주장을 하였다고 한다. 이는 피해자의 장애정도가 경미해 성폭력 당시 피해자가 장애로 인한 ‘항거불능’의 상태가 아니었다는 주장을 펴기 위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또한 “1차 공판 이후 가해자의 한 부모가 피해자의 보호자로 위장하여 피해자의 학교에 접근한 사실이 확인”되었다고 밝혔다. 대책위 측은 가해자 부모들이 피해자의 소위 ‘문제행동’을 찾아내려 했던 게 아닌가라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1차에서 검찰의 모든 증거자료를 인정했던 가해자 측이 2차 공판에서 ‘피해자의 진술이 명확하지 않으며, 피해자가 장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문제제기를 하고 나선 것이 이러한 추측을 뒷받침한다. 결국 재판부는 가해자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피해자의 정신감정 및 피해자의 재진술 필요성을 인정하였다.
 
이 사건의 재판과정에서 노출되는 문제들에 대해 일선의 피해자지원 단체들은 ‘새삼스럽지 않다’고 말한다. 장애인 성폭력이 발생할 때마다 수사 및 재판과정에서 반복적이고 공통적으로 제기되는 문제가 이 사건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독소조항 되고 있는 ‘항거불능’ 문제 재확인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구 성폭력특별법)은 성폭력범죄에 더욱 취약할 수 있는 장애인의 성적자기결정권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로 장애인 관련 조항을 별도로 두고 있다.
 
해당 조항인 6조의 내용을 보면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로 항거불능인 상태에 있음을 이용해 여자를 간음하거나 사람에 대해 추행을 한 사람은 형법 제297조(강간) 또는 제 298조(강제추행)에서 정한 형으로 처벌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조문을 매우 협소하게 해석하여, 피해자가 사리분별이 불가능한 최중증의 장애상태일 경우만을 ‘항거불능 상태’로 인정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지적 장애여성이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에 다니거나 성에 대한 지식이 있다는 이유로 항거가 불가능한 정도가 아니라는 판단을 내린다. 두려움으로 인해 저항을 포기하거나 미약하나마 거부의사를 밝힌 경우, 이를 ‘저항능력’이 있다고 보아 ‘항거불능’의 상태가 아닌 ‘심신미약’ 상태로 인정하기도 한다. 형법 302조의 심신미약간음죄는 친고죄이며, 항거불능이 부정되면 검찰에서 형법 302조를 적용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전 사건의 가해자 측이 모든 증거자료를 인정했던 1차 공판의 태도와 달리, 2차공판에서 ‘피해자의 장애 정도’를 문제 삼고 나선 것도 ‘항거불능’ 조항을 이용하기 위한 의도가 있음을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이러한 이유로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를 위해 만든 ‘항거불능’ 조항이 오히려 가해자가 법망을 빠져나가는 안전망이 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장애인성폭력피해자 지원단체들은 성폭력특례법 제6조의 ‘항거불능’이 독소조항으로 전락했다며 삭제하거나 성적 자기결정권 보호란 취지에 맞게 항거불능 요건의 해석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장애 특성과 성폭력에 대한 이해 여부가 열쇠
 
지난해 10월 21일 공익변호사그룹 공감과 서울 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 장애여성 공감 성폭력상담소가 공동주관한 <장애인성폭력사건 쟁점토론회>에서 김정혜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객원연구원은 구 성폭력특별법 제 8조에 ‘정신상의 장애’ 요건이 추가된 1998년 1월 1일 부터 2010년 7월 31일까지의 판결 261건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김정혜 연구원은 ‘항거불능’의 요건을 확대한 2007년 7월 27일 대법원 판결을 주목했다. 2007년 지적장애여성을 상대로 한 성폭력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정신장애가 주된 원인이 되어 항거불능인 상태에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피해자의 정신상 장애의 정도뿐 아니라 피해자와 가해자의 신분을 비롯한 관계, 주변의 상황 내지 환경, 가해자의 행위 내용과 방법, 피해자의 인식과 반응의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같은 조항과 비슷한 사건을 놓고도 판결이 달라지는 것은 판결을 내리는 사람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른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지금 있는 법만으로도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한다. 새롭게 법을 고치거나 추가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며, 근본적으로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의 성폭력에 대한 인식수준과 관점이 변화해야 한다는 말이다.
 
<장애인성폭력사건 쟁점토론회>에서 민병윤 서울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지적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성폭력 범죄는 가해자의 범행의도와 강간목적 달성을 위해 취한 행동과 말, 유인책 등에 수사와 재판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재판과정에서는 “성폭력 피해 당시 피해자의 대처 행동과 태도, 저항여부, 비장애인 수준의 일관된 자기주장, 정확한 피해 정황 진술 내용을 판결의 주요소로 봄으로써 가해자의 범행의도와 범행은 축소되거나 왜곡, 정당화되기도 한다”는 지적이다.
 
대전 사건의 가해자 부모들이 피해자의 보호자인 양 위장해가며 피해자의 행동을 살피려 한 것은 이렇듯 재판과정에서 ‘피해자의 태도’를 문제 삼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 사건에서 명백한 사실은 바로 이것이다. 가해자들은 피해자가 ‘지적장애를 가졌다는 점을 이용해 성폭행을 저질렀다’는 점이다.
 
‘합의’의 문제 경계해야
 
이 사건에서 또 하나 눈여겨 볼 부분은 ‘합의’의 문제다. 피해자와 가해자 간에 ‘합의’가 있을 경우, 이는 유리한 양형사유가 되어 왔다. 미성년 가해자들에게는 ‘합의’ 사실만으로 사실상 면죄부가 주어지는 등 문제점이 많다.
 
공동대책위는 기자회견을 통해 최근 대법원 ‘젠더법연구회’가 밝힌 “피해자에 대한 금전보상을 유리한 양형사유로 참작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입장을 인용했다.

젠더법 연구회의 입장은 “합의여부가 양형판결에 영향을 주는 상황이 지속될 경우, 피해자가 합의를 요구하는 가해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시달림을 당하거나, 역으로 이를 이용한 피해자가 과도하게 보상을 요구하는 현상 등을 방지하자”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현재 대전 사건의 피해자의 아버지는 가해자들과 합의를 마친 상태라고 한다. 그런데 대책위 측에 따르면, “가해자들의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제출해 주는 정도와는 차원이 다르게, 피해자의 부모가 피해자의 장애를 부정하여 사건의 성격자체를 호도하려는 과정에 협조”하고 있다고 한다. 상식적이지 않은 일이지만, 금전적 보상에 피해자의 가족들이 눈머는 일이 아주 일어나지 않는 일 또한 아니다.
 
공동대책위는 이 사건의 경과과정에서 보인 피해자 아버지의 행동이, “금전적 보상이 유리한 양형사유로 참작되어 온 그간의 관행이 빚은 비극적인 결과”라며 이러한 관행을 반드시 바로 잡아줄 것을 요청했다. (박희정) * 일다 즐겨찾기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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