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발: 덧씌우거나 제거된 정체성의 기록 어떤 말에는 주술적 기운이 깃들어 있다. 사실보다 바람의 효용이 센 병실에서 오고가는 말들이 주로 그랬다. J언니의 수술실 밖에서, 치료차 입원한 병실에서, 어둡고 습했던 그의 지층 집에서 내가 한 거의 모든 말에도. 다른 누가 아닌, 말하는 자신이 듣고 믿고 싶은 말들. 그런 말들은 꼭 두 번씩 발화된다.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검사 결과를 전하는 J언니의 목소리가 너무 덤덤해서 내가 뭘 잘못 들은 게 아닐까 의심하면서도 나는 그렇게 두 번 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걱정 좀 덜하고 살 걸…” 언니의 그 말에도 주술적 기원이 실리지 않았을까. 몽땅 다 거짓말이어서 앞으로 걱정 덜하고 살게 해주세요, 해주세요, 하는. 몇 번의 경험을 지나온 지금에야 무거운 ..
모빌: 연결의 감각으로 잡는 균형 그동안 사물/객체/대상으로 인식되어온 여성과 오브젝트의 만남은 우연하고 필연적이다. 앞으로 연재할 글들은 여성과 오브젝트가 연결되고 욕망하고 합일하고 분열되어 결국 각각 아름답게 존재하게 되는, 세계가 잠시 오작동하는 순간들의 재구성이 될 것이다. 둘 사이에는 뚜렷하게 실감되는 슬픈 힘이 있다. ▲ 모빌: 연결의 감각으로 잡는 균형 (출처: 플리커) 여성과 오브젝트: 모빌(mobile) 친구가 아이를 낳았다. 한 몸이었다가 둘이 된 각각이 모두 무사하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 순간에 나는 막 창문을 열던 참이었다. “딸이야.”라는 말과 함께 순한 바람이 불었다. 딸이구나. 창밖 멀리 시선을 두는데 목이 잠겨왔다. 하늘이 맑았다. 한 생명의 세계가 시작되는 초침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