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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딸과 느릿느릿 아시아여행> *풍경보다는 사람을, 사진 찍기보다는 이야기하기를, 많이 돌아다니기보다는 한 곳에 오래 머물기를 선택한 어느 엄마와 세 딸의 아시아 여행기입니다. 11개월 간 이어진 여행, 그 길목 길목에서 만났던 평범하고도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동티모르 딜리② 옛날 옛적에 악어가...
  

▲ '아르떼 모리스' 전시장에 걸려있던 그림. 제국주의 열강의 발 아래 고통받는 동티모르가 처연하다. ©진형민

나라마다 자신들의 뿌리에 관한 이야기가 있게 마련이다. 역사적 사실을 뭉뚱그려 담기도 하고 인간들의 염원을 에둘러 숨기기도 하면서 여태 구전되어오는 이야기들이다. 운 좋게 티모르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우리들 이야기 속에 곰과 호랑이가 각별하듯 티모르에서는 악어가 그러했다.
 
한 소년이 따가운 햇볕 아래 죽어가던 어린 악어의 목숨을 구해주고 친구가 된다. 굶주림에 시달리던 악어는 소년을 잡아먹을까 잠시 고민하지만 평생의 첫 친구를 배신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서로 꿈이 있다. 소년은 바다 건너에 무엇이 있는지 보기를 원했고 악어는 거대한 몸을 가진 으뜸 악어가 되기를 소망했다.
 
몇 년 후 단단하게 자라난 악어는 은혜를 갚고자 소년을 자신의 등에 태워 바다로 나아간다. 소년의 바람대로 세상 구경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바다 위에서 소년은 결국 지쳐 쓰러지고, 이를 안타까워하던 악어는 순간 몸이 거대해져 나무와 숲과 강이 있는 아름다운 섬으로 변하였다. 소년은 악어 모양의 그 섬에서 오래도록 살았고, 나중 사람들은 그 섬을 티모르라 불렀다.
 
지나는 길에 ‘아르떼 모리스(Arte Moris,
www.artemoris.tp)’에 들렀는데, 역시나 악어가 여기저기 흔하였다. 다만 이곳의 악어들은 건물 안팎에 그림으로, 조각으로, 설치미술로 존재하는 중이다. ‘아르떼 모리스’는 스위스의 아티스트 루까(Luca Gansser)가 2003년 동티모르의 어린 예술가들을 위해 세운 비영리자유예술학교(Free and Non-Profit Art School)이다. 동티모르 아이들에게 예술작업의 기회와 공간, 그 밖에 필요한 여타의 것들을 무상 제공한다고 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루 1달러로 연명해가는 동티모르에서 예술작업을 지원하는 일은 지나치게 이상적인 것일까. 아이들의 작품을 보면서 나는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이루어낸 것들은 모두 환하고 힘찼다. 티모르의 바다와 사람과 이야기들이 꽃처럼 피어났고, 제 나라 아픈 역사와 피 흘린 전쟁에 관한 증언들이 송곳같이 꼿꼿하였다. 
  

▲ 동티모르 어린 예술가들을 위해 '아르떼 모리스'를 세운 루까 할아버지. 낯선 방문객에게도 더없이 너그러우셨다. ©진형민

아이들은 서투나마 스스로 생각하여 세상을 이해하려 애썼고 오늘 너머 내일을 바라보고 있었다. 몇 덩어리의 빵은 눈앞의 굶주림을 구하고, 풍요롭고 당당한 정신은 먼 미래를 구한다. 삶을 경제논리로만 이해하는 자들은 알기 어렵겠으나, 세상에는 근원적이고 철학적인 방식이란 것도 있다.
 
길 떠날 채비를 한다. 수도 딜리(Dili)를 떠나 동쪽 끝까지 가 볼 작정이다. 평화단체 ‘개척자들’에서 자원 활동가들을 위해 마련한 역사여행에 슬쩍 끼어들었다. 나로서는 여덟 명의 청년들과 같이 나서는 길이 여간 든든하지 않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이모, 삼촌 만난 듯 청년들을 졸졸 따라다녀 내 주변이 참 한갓지다. 마음이 한결 설렌다.
 
그런데 꾸려놓은 짐들이 어마어마하다. 어디서 노숙을 하게 될지 모르므로 바닥의 찬 기운 막아줄 돗자리와 모기장을 챙겨야 하고, 밥도 손수 해먹어야 하니 솥단지와 그릇들을 다 가져가야 한다. 물 길어올 때 쓸 양동이와 바가지, 당장 먹을 쌀이며 나뭇짐까지 싸고 나니 자그마한 이삿짐이 따로 없다.
 
제국주의 열강의 발아래 고통 받은 동티모르
 
차로 얼마나 왔을까. 인적 없는 바닷가에서 하루 묵기로 한다. 바닷바람 막아가며 밥을 해 나눠 먹고 어둠 속에 장작불을 피웠다. 들짐승들을 쫓기 위해 밤새 불을 피운다고 했다. 우리는 정말 바다 코앞에서 노숙을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나무 사이에 매달아둔 모기장 속으로 쏙 들어가 장난을 치고, 나는 불 옆에서 사람들에게 십년 전 동티모르 이야기를 들었다.
 
동티모르 침략을 지시하였던 수하르토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1998년 극심한 경제위기와 민중궐기로 인해 물러나자, 서구열강들의 태도가 급변하였다. 인도네시아의 침략을 눈감아주는 대신 동티모르 석유개발권을 얻어갔던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 그리고 전력을 가다듬던 인도네시아 군에게 재빨리 전투기와 전함을 팔아치웠던 유럽 나라들이 갑자기 동티모르의 독립을 옹호하기 시작한 것이다.
 
1999년 8월 30일, 유엔의 감시 하에 동티모르 국민들에게 자국의 독립 여부를 묻는 투표가 진행되었다. 투표반대를 외치는 친(親)인도네시아 민병대들의 폭행과 난동이 마을마다 계속되고 있었다. 사람들은 새벽부터 소리 없이 투표장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투표를 마친 이들은 하나 둘 조용히 산을 타고 올라갔다. 선거 후 뒤따를 군의 보복을 피하고자 함이었다. 선거 결과 투표율 98.6%에 독립지지율 78.5%로 동티모르의 독립이 결정되었다.
 
인도네시아는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동티모르의 거의 모든 건물들을 파괴하고 가는 곳마다 대규모의 양민학살을 감행하였으며 민병대들의 잔혹한 동족살해가 이어졌다. 동티모르 전체 인구의 1/4인 20여만 명이 인도네시아 치하에 죽거나 사라졌다. 죽음의 폭풍이 지나가고 유엔의 신탁통치를 거친 뒤 2002년 동티모르는 가까스로 독립국가가 되었다. 묵은 원한과 울음이 가시지 않은 상처투성이의 나라였다.
 
나는 옆에 앉아있는 에디와 짤레스, 우노와 마이클을 돌아본다. 그들은 인도네시아 청년들이다. 굳이 이 땅에 와서 가해자 조국의 침략사와 마주하고 있는 저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애처로운 역사를 끌고 왔던 내 나라가 눈에 밟힌다며, 남의 초상집에서 제 신세 곡하듯 나는 감상에 젖어 있었다. 그런데 저 어린 청년들은 내내 입을 굳게 다물고만 있다.
  

▲ 게으르고 지저분한 우리집 막내 짜이. 나를 닮아 그렇다는 것이 우리 식구들의 중론이다. ©촬영 -'개척자들' 이황우

바닷가에서 하루 자고난 뒤로 짜이가 몸이 가렵다며 벅벅 긁기 시작했다. 들춰보니 뭔가에 물린 자국들이 다닥다닥 줄지어 있다. 벼룩에 물린 듯 했다. 길에 떠도는 동물들이 많아 그런지 가는 곳마다 벼룩과 진드기가 극성이다. 말라리아모기 걱정에 날 저물면 더위를 무릅쓰고 헐렁한 긴 옷을 걸치곤 하는데, 몸을 파고드는 벼룩이나 진드기에게는 속수무책이다. 게다가 짜이 녀석은 유독 벌레에 자주 또 많이 물리는 중이다.
 
가렵다며 울상인 아이에게 약을 발라주며 네가 마음이 착하고 동물들을 예뻐해서 벌레들도 너한테만 오나보다 하였더니, 큰 아이가 대뜸 쏘아붙인다. “엄마, 자꾸 그렇게 말하면 걔가 진짜인 줄 알아. 땀나도 잘 안 씻고 머리도 자주 안 감고 하니까 물리는 거지, 그게 왜 마음이 착해서야? 그럼 벌레 잘 안 물리는 사람들은 다 나쁜 놈들이겠네.”
 
깔끔쟁이 언니들과는 달리 막내 짜이가 좀 지저분한 것은 사실이다. 주변도 늘 어수선하고 번번이 뭔가가 없어져 찾아 헤매느라 부산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는 악어의 섬 티모르 아닌가. 친구를 아끼고 걱정하던 악어의 마음이 이토록 아름다운 섬도 만들어 냈다는데, 벼룩에게 뜯긴 동생을 위해 달콤한 위로 한 자락 그냥 흘려들을 수는 없냔 말이다. 그래도 더 대꾸 않고 꾹 참기로 한다.
 
“짜이는 엄마 닮아서 지저분하고 게으른 거야, 그거 알지?” 하지는 않았으니, 그 정도면 서로 많이 봐준 셈이다. 그런데 나도 아까부터 자꾸 몸이 가렵다. (진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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