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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추모대회, 유가족의 호소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희생자 유가족들 ©진보정치 정택용

1월 23일 금요일 저녁 서울역 광장에서 ‘이명박 정권 퇴진, 용산 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추모대회’가 열렸습니다. 유가족 다섯 분이 오셨습니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을,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억울한 일도 고통스러운 일도 함께 겪고 견디었을 아내들은 이제 더 이상 사랑하는 남편의 숨결을 느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지켜봐 주었을 아버지는 이제 더 이상 딸 곁에 없습니다.

한 여성 분이 대표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글로 적어 오셨습니다. 그 말과 목소리가 가슴을 칩니다. 집에 돌아와 녹음한 것을 그대로 풀었습니다. 제목은 말씀 중에 나온 이야기를 토대로 제가 달아보았습니다.

“다시는 우리처럼 불행한 사람들이 나와서는 안 됩니다”

<설날 연휴가 시작되었는데 이렇게 많이 추모회에 모여주셔서 정말 감사 드립니다. 사건이 일어나고 며칠이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 유가족들은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온 국민이 다 아는 너무나 참혹한 사건으로 한 순간에 남편을 잃고 나니,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생각할지 머릿속이 새까맣게 타버렸습니다.

우리 아저씨들이 과연 어떻게 돌아가시게 되었는지, 왜 우리 유가족들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시신이 훼손되고 부검을 했어야만 했는지를, 생각하면 답답한 마음 또한 어쩔 수가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죽어야만 하는 것이란 말입니까? 자기 집이 없고 건물 없는 사람은, 나가라면 나가라는, 엄동설한에도 집에서 쫓겨나고 십 수년 동안 장사한 가게도 고스란히 내어놓고 조용히 물러나야 하는 것이 이 나라입니까?

어떤 사람이 좋아서 농성을 하고, 좋아서 옥상에 올라가겠습니까. 우리는 큰 욕심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저 세끼 밥 먹고 자식들 공부 가르치는, 생존을 위해 먹고 살게만 해달라는 것밖에 우리는 바라는 것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왜 세상은 늘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힘들고 가혹한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다섯 가족 모두 하루아침에 가장을 잃었습니다. 어린 자식들과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벌써부터 막막하기만 합니다.

유가족들은 진상을 밝혀달라 호소한다. © 진보정치 정택용

그래도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 일의 진상을 밝히는 일입니다. 우리가 왜 이렇게 살아왔는지, 우리가 왜 이렇게 죽어갔는지 온 세상이 진실을 알아야 합니다.

언제 우리가 쫓겨났다고 신문에서 떠든 적이 있습니까. 언제 우리가 통곡한다고 텔레비전에 비춰준 적이 있습니까. 우리가 살게만 해달라고 호소할 때 기자님들이 언론에서 관심을 가져 주셨으면 오늘 같은 일이 없었을 겁니다. 우리 아저씨가 돌아가시고 나니까 국회의원, 정치인들도 찾아오고 합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 우리가 필요할 때 우리를 한 번만 돌아봐주었으면 우리 아저씨는 안 죽어도 되었을 것입니다.

사건이 발생하고 하루 종일 우리 유가족들은 시신이 어디 있는지 알 수도 없었고 시신을 볼 수도 없었습니다. 왜 내가 내 남편의 시신을 보겠다는데 경찰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왜 우리의 경찰이 방패를 들고 막아섭니까? 싸우고 싸워서 간신히 시신을 확인한 우리 유가족들의 원통하고 분한 마음을 짐작도 못하실 것입니다. 새까맣게 불에 그을린 시신은 이미 부검이 되어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뭐가 그리 무서워서, 뭐가 그렇게 찔리는 게 많아서 몇 시간 만에 그렇게 서둘러 부검을 해야 했을까요.

어떤 기자분이 그러시더군요. 법적으로는 가족동의 없이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요. 무슨 법이 그렇습니까. 무슨 놈의 법이 그렇게 야박합니까. 그 시신이 우리 철거민들 시신이 아니라 돈 많고 높은 사람 시신이었어도 그럴 수 있었을까요? 아닐 겁니다. 절대 아닐 겁니다.

우리는 집주인한테 무시당하고 정부한테 버림받았습니다. 우리도 장사를 하면서 세금 내고 장사했습니다.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도 아니란 말입니까. 너무 억울하고 너무 답답하지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우리 아저씨, 아니 우리 철거민들의 죽음의 진실을 꼭 밝혀낼 겁니다. 진실을 밝혀내고 우리 아저씨의 명예를 회복할 때까지 우리는 절대로 죽지도 못할 겁니다.

국민 여러분! 부탁 드립니다. 힘을 보태주세요. 가난한 우리들 힘으로는 못합니다. 여러분들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부탁 드립니다.

그리고 기자님들, 제발 양심 좀 찾으세요. 왜 불쌍한 우리를 두 번 죽이십니까. 특히 조중동 기자님들! 제발 그러지 마십시오. 경찰특공대는 우리 아저씨를 죽였지만, 여러분들은 우리 가족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우리 유가족들은 경찰이고 정부 사람이고 누구한테도 미안하다는 말한 마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부에게 부탁 드리겠습니다. 돈 많은 사람들만 행복하게 살아가는 나라를 만들지 마시고, 돈 없고 빽 없는 우리 철거민들 같은 사람들도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 주세요. 돈 없고 빽 없는 우리 철거민들 같은 사람들도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 주세요! 다시는 우리처럼 불행한 사람들이 나와서는 안 됩니다.

국민 여러분 부탁드립니다. 제발 우리들의 이 절박한 심정을 알아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정부는 사과해라! 책임자를 구속해라! 우리 아저씨를 살려내라!’ 목소리 높여 외치고도 싶지만, 오랜만에 명절에 고향 가시는 분들 편히 고향 가시라고 소리를 지르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진실뿐입니다. 여러분, 도와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일다
▣ 필자 박수정님은 <숨겨진 한국여성의 역사>(2004)와 <세계의 꿈꾸는 자들, 그대들은 하나다>(2009) 등을 집필하신 르뽀작가입니다.

 [저널리즘의 새지평 일다 www.ildaro.com]  일다의 다른 기사들을 보고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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