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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의 공포, 속수무책 당하는 피해자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 5. 스토킹

 

※ 일다의 신간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 발간 기념으로, 데이트 폭력 문제를 심층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기획 기사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스토커는 자신의 행위를 사랑이라고 믿었어요’

 

2013년 가을, 성균관대학교 서울 캠퍼스에 대자보 하나가 붙었다. 문과대학 남학생 A가 2년간 다른 과 여학생 B를 스토킹 했던 내용을 고발하는 대자보였다.

 

A는 1학년 교양수업 때 B를 처음 알게 돼 구애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으로 메시지를 드문드문 보내는 정도였다. A의 고백에 B는 거부의사를 확실하게 밝혔고 교제 중인 남자친구가 있다고 말했음에도, “너는 하늘이 점지해 준 내 짝”이라면서 A는 집요하게 연락을 지속했다. B는 A의 연락을 억지로 무시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스토킹 행위는 도를 더해갔다. 학교 안에서 뒤를 쫓아오고 강의실에 따라오거나, 새벽 늦은 시간까지 전화나 문자를 끊임없이 해댔다. 이로 인해 일상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B가 “이러지 말라”고 문자를 보내면 폭언이 담긴 문자가 날아왔다.

 

당시 이 사건을 보도했던 성대신문에 따르면, B는 인근 혜화경찰서에 신고를 했지만 ‘음란, 해악, 협박’ 행위가 없어서 처벌이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 이후, 문자 메시지 등 증거를 들고 다시 경찰서를 찾았지만 경찰서 측은 “경찰이 함부로 학내에 들어갈 수 없다”, “현행범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수사에 착수하지 않았다. 급기야 B가 스토킹을 당하는 그 자리에서 경찰에 신고하고 강력하게 항의하자, 경찰은 A를 임의동행 했다. 하지만 뚜렷한 잘못이 없다는 이유로 곧바로 A를 풀어줬다.

 

B는 총학생회와 스토커 A가 속한 과사무실에 도움을 요청지만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학내 성평등상담실도 방문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A의 스토킹을 중단시키지는 못했다. 성평등상담실 측이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A에게 면담을 요청했으나, 이에 응하지 않은 것. (성대신문 2014년 3월 24일자 “외면당한 피해자, 왜 홀로 싸워야 했나”)

 

문과대학 학생회와 여학생위원회에서는 대책위원회를 꾸려 사건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당시 문과대학 여학생위원회장으로 피해자 대리를 맡았던 김초롱 씨는 A를 만나 스토킹 행위를 중단하도록 요청한 바 있다.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했던 행위를 ‘사랑’이라고 믿고 있었어요. ‘당신의 행위가 폭력이다’라고 주지시킬 때마다 흥분하면서 심한 거부 반응을 보이더라고요.”

 

A는 이 자리에서 스토킹을 그만하겠다는 각서를 썼지만, 그 후에도 스토킹을 멈추지 않았다. 문과대학 학생회 임원들이 B와 학교 안에서 함께 이동하는 방식으로 B의 안전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대책위원회는 A에게 “학교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겠다”고 엄포를 놓았고, 그제서야 A는 2년간의 스토킹을 중단했다.

 

납치, 살인으로 이어지기 전엔 ‘범칙금 8만원’

 

이 사건은 스토킹 피해자가 시의적절한 법적, 제도적 보호를 받을 수 없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리가 뉴스에서 접하는 스토킹은 살인이나 살인미수, 감금, 납치 등 강력범죄로 드러나는 사건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스토킹은 우리 주변 일상 속에 광범위하게 퍼져있으며 살인, 감금 등 강력 범죄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피해자의 일상을 파괴한다.

  

▲ 스토킹은 피해자의 일상을 파괴하지만 납치, 살인으로 이어지기 전까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다. ©PeopleImages  

 

끊임없는 전화나 문자 등 집요한 연락, SNS상에서 괴롭히기, 연락 없이 찾아오기, 가족을 포함한 주변 사람 괴롭히기, 협박과 모욕, 미행 등이 짧게는 1달 미만부터 길게는 수년간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스토킹이 강력범죄 행위로 발전하기 전에는 그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기 어렵다.

 

2013년 3월, 경범죄 처벌법에 ‘지속적 괴롭힘’ 조항이 신설되어 우리나라에서도 스토킹 행위와 관련한 법조항이 생겼다. 그러나 범칙금은 고작 8만원이다.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이 법이 “실효성이 없다”고 말하며, 오히려 ‘스토킹은 가벼운 범죄’라는 인식만 심어주고 있다고 비판한다.

 

스토커들은 범칙금 8만원을 내고 나서도 스토킹 행위를 지속하기도 한다. 스토킹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상해를 입히거나 주거 침입을 하는 등 다른 범죄로까지 발전하기 전까지는 제대로 처벌하기도, 스토킹 행위를 중단시키기도 어렵다. 이러니 스토킹 피해자의 입에서 “차라리 때리기라도 하면 좋은데”라는 말이 나오는 실정인 것이다.

 

‘내꺼’에서 벗어나면 응징하겠다는 심리

 

2011년부터 2013년까지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와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접수된 스토킹 상담은 총 240건으로 이 중 93.8%인 225명이 ‘아는 사람’에 의한 피해를 겪었다. 스토킹의 목적은 일방적 구애(31.7%)가 가장 많았고, 연애가 끝난 후 만남 요구(30.7%)가 뒤를 이었다.

  

▲  스토킹의 구체적 양상 (단위: 건) <2014년 한국성폭력상담소 상담통계 현황> © 한국성폭력상담소 
  

‘상대의 폭력 없이 깔끔하게 헤어짐’을 뜻하는 ‘안전이별’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난 것은 이별 과정에서 폭력이 빈번한 현 세태를 반영한다. 아주대학교 성평등상담센터 허은영 연구원은 “센터에 접수되는 피해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남녀가 사귀었다가 이별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스토킹”이라고 말한다.

 

허은영 연구원에 따르면, 여학생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들은 일부 남학생은 “너 때문에 내가 피해를 봤다”는 마음을 갖고 ‘복수’를 시도한다. 같은 학교에 다니면서 사귀었던 경우, 서로의 행동 반경을 훤히 알고 있고 수업이 같거나 인간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상대를 괴롭히기 더 쉽다.

 

“남녀가 사귀다가 헤어질 땐 서로 상대방 탓을 하는데, 특히 남학생들이 여학생 탓을 많이 해요. ‘그냥 이대로 헤어질 수 없다, 고통을 주면서 이별하겠다’ 이런 식이에요. 동아리방이나 과방에 여학생이 앉아 있으면 “쓰레기 같은 게 여기 있네”라고 말한다든가, 여학생이 앉아있는 의자를 발로 툭툭 찬다거나 모욕을 주기도 해요. 자기편을 만들고 여학생을 왕따시켜서 동아리에서 나가게 만든다든가, 사귈 때 핸드폰으로 찍은 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한다든가 하죠.”

 

‘다른 사람과 바람이 났다, 양다리 걸쳤다’는 거짓 소문까지 내는 지경에 이르면 여학생은 참다 참다 못해 상담센터에 찾아온다. 그러나 대부분의 가해 남학생은 면담 자리에서 오히려 “내가 피해자다, 억울하다”라고 말한다고 한다.

 

“스토킹하는 남학생들은 ‘관계의 시작과 끝은 내가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끝내는 방식, 시점, 내용 모두 자신이 결정해야 하는데 여자 쪽에서 먼저 헤어지자고 하면 억울해서 좋게 헤어질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런 ‘통제 욕구’가 스토킹이라는 폭력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사회적으로 남성에게 권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죠. 또 ‘내꺼’일 때는 잘 해주지만 ‘내꺼’에서 벗어날 때는 응징하겠다는 논리로, 여성혐오와도 맥락이 닿아있어요.” (허은영 연구원)

 

‘도끼병 아냐?’ 오해와 편견에 갇힌 피해자

 

이처럼 스토킹은 남-녀간 권력 관계 속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남성이 가해자인 경우가 다수이지만, 드물게는 여성에 의해 스토킹을 당하는 남성피해자도 있다.

 

경민(가명, 남성, 40세)씨는 사귀었던 여성에 의해 6개월째 스토킹을 당하고 있다. 사귀는 동안에도 폭력적인 언행을 보였던 상대는 경민씨가 헤어지자고 말하자 스토킹을 시작했다. 상대는 직장 퇴근시간에 맞춰 주차장에서 기다리다가 차를 운전하지 못하게 차 앞을 가로막기도 하고, 집으로도 수시로 찾아와 몇 시간동안 벨을 누르고 발로 문을 차댔다. 수신거절 해 둔 전화를 받을 때까지 매일 수십 통의 전화를 걸고, 스팸 처리했음에도 매일 문자를 수십 통씩 보내고, 회사 이메일로 경민씨와 가족들에 대한 비난과 욕설을 담아보내던 가해자는 메신저 해킹시도까지 했다.

 

경민씨는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경고했지만 그 후로 오랜 시간 욕설과 폭력에 시달려야 했다”면서 “남성은 이런 일을 당하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사회적 편견에 직면해야 한다”고 토로한다.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초조하고, 항상 쫓기듯 비슷한 차림의 사람만 봐도 깜짝깜짝 놀라 가슴을 쓸어내려야 합니다. ‘남성’이기 때문에 물리적 대응이 쉽지 않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상황에서 일일이 외부에 해명할 수도 없이 고스란히 오해와 질타를 받아야 해요.”

  

▲ 성균관대 문과대 여학생위원회에서 붙인 ‘스토킹’에 대한 대자보에 누군가 “이건 그냥 도끼병이야! 착각은 자유!”라고 썼다.  ©성균관대 문과대 여학생위원회 
 

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소 유리화영 소장은 “스토킹은 (가해자)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행위이다. 상대를 존중한다면 당장 멈춰야 한다. 그런데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악의를 갖고 한 건 아니야’, ‘좋아해서 그런 거잖아’ 라며 용서해주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폭력에 대해 너그러우며 이를 사소한 문제 취급한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면서 구애 과정에서의 스토킹을 낭만적인 것으로 묘사하거나, 헤어질 수 없다며 매달리는 사람을 ‘약자’로 여기며 동정의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오히려 피해자에게는 “네가 어떤 여지를 준 게 아니냐”, “썸 탄 거 아니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한다. “어장 관리한다”거나 “도끼병”이라는 식으로 피해자를 비난하는 경우도 있다.

 

스토킹 당하는 사람이 느끼는 ‘공포’를 이해해야

 

문제는 스토킹 신고를 받고 사건을 처리하는 경찰의 인식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이선미 활동가는 “스토킹을 사소한 문제로 여기는 현장 실무자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스토킹으로 상담을 요청해 온 여성이 있었다. 남성이 계속 만나달라고 해서 거절 의사를 밝혔는데, 몰래 촬영한 동영상을 유포하겠다고 계속 협박하면서 스토킹을 했다.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이 ‘가해자가 영상을 유포할 수 있으니 일단 둘이 만나서 잘 해결해서 영상을 지우게 하라’며 개인적인 해결을 권했다. 피해자 혼자 위험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몬 거다.”(이선미 활동가)

 

사회적 인식의 변화와 함께 제대로 된 법을 만드는 일도 필요하다. 미국의 경우 1990년 캘리포니아 주를 시작으로 1993년에는 50개 주 전역에서 스토킹을 처벌할 수 있도록 법을 제정했다.

 

허민숙 이화여자대학교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는 “미국은 대부분의 주(州)에서 ‘평범한 사람이라면 합리적인 공포를 일으키게 되는, 특정 사람을 겨냥한 행동의 과정’으로 스토킹을 정의하고 있다. 즉, 스토킹 피해자가 느끼는 ‘공포’를 사법부가 이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에 따라 상대의 위협으로 공포를 느끼고 출퇴근 경로를 바꾸거나 이사를 하는 등 행동 양식을 바꿨다면, 이를 범죄 피해로 인정해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처벌한다는 것이다. 스토킹이 상해나 주거 침입, 살인 등으로 이어지지 않는 한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한국과는 대조적이다.

 

스토킹은 더 큰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을 끊임없는 공포와 불안 속으로 몰아넣는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심각한 범죄다.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공포에 24시간 떨어야 하는 스토킹 피해자들과 가족들, 이제는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나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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