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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권 이야기> 동물을 바라보는 철학과 사상들 (하)

동성애자 여성들의 인터뷰 기록 “Over the rainbow”의 필자 박김수진님이 “동물권 이야기” 칼럼을 연재합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낯선 개념인 ‘동물권’에 대해 깊이 살펴보며,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는 생태적 삶을 모색해봅니다. www.ildaro.com


서양철학 내에서도 ‘종차별주의’를 넘으려는 시도

인간중심의 서양의 지적 전통 속에서도, 비인간동물에 대해 의견을 달리한 소수의 사상가들이 존재했습니다.
 
철학자 헨리 모어는 비인간동물에 대한 데카르트의 인식에 큰 우려를 표하며 “데카르트의 이론은 모든 동물들의 생명과 감각을 박탈하는 치명적이고 살육적인 억압 이론”이라고 반론을 폈습니다. 작가인 마담 드 세비녜는 비인간동물을 ‘물건’과 동일시하는 데카르트를 보며 분개하기도 했다는 군요. 스피노자는 자연을 이분화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면서 인간동물 중심의 사상에 문제를 제기했고, 쇼펜하우어는 “고통 받는 존재로서의 동물”에 대한 연민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특히, 공리주의자인 제러미 벤담은 현대 서구의 동물권 사상에 기반이 된 이론을 제시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벤담은 1780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처음으로 비인간동물에 대한 인도주의적 사상의 필요성을 강조했는데요. 그는 ‘인간동물만 언어 사용 능력이 있다는 점’을 기준으로 비인간동물에 대해 존재론적 평가를 하는 것을 거부하였습니다. 또 비인간동물에 대한 학대를 ‘노예의 고통’에 비유하면서, 중요한 것은 “동물들도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벤담의 사상은 동물권에 관한 최근의 영향력 있는 사상가 중 한 명인 피터 싱어에게 이어졌습니다. 싱어는 2천 년 이상 지속된 비인간동물에 대한 서구의 사유 방식을 근본적으로 타파해야 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동물권에 관한 공리주의 사상을 전개해오고 있습니다.
 
공리주의 윤리의 목표는 “고통의 최소화, 쾌락의 최대화”입니다. 싱어는 비인간동물도 고통을 느낄 줄 아는 존재, 감정적인 존재라고 주장하면서 ‘윤리적 고려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인간동물은 비인간동물에게 더 많은 자애와 보살핌을 베풀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싱어의 입장은 ‘공리주의론’ 혹은 ‘동물복지론’이라고 불립니다.
 
또 다른 동물권에 관한 영향력 있는 사상가로 톰 리건이 있는데요. 리건은 비인간동물도 타고 난 생명의 가치를 실현할 ‘도덕적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인간동물은 비인간동물의 권리를 빼앗아선 안 되며, 비인간동물들이 그들의 가치를 스스로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리건의 입장은 ‘의무론적 권리론’ 혹은 ‘동물 권리론’이라 불립니다.
 
피터 싱어 ‘감각을 느끼는 존재에 고통을 줘선 안돼’

▲ 동물권에 관한 공리주의적 사상을 전개하고 있는 철학자 피터 싱어.    
 
그럼, 피터 싱어의 공리주의론과 톰 리건의 ‘의무론적 권리론’에 관해 조금 더 살펴보도록 하지요.
 
공리주의는 ‘누구의 이익인가’와 무관하게, 감각 능력이 있는 ‘모든 존재들’에게 쾌락과 고통에 관한 이익은 동등하게 고려되어야 한다는 도덕적 입장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모든 존재들’이라는 범주 속에는 인간동물은 물론 비인간동물도 포함되지요.
 
피어 싱어에 따르면, 쾌락과 고통을 느끼는 감각 능력이 있는 모든 존재의 이익을 고려하는 것은 인간동물의 최소한의 의무입니다.
 
인종차별주의자와 성차별주의자들은 자신이 속한 인종과 성별의 이익을 우위에 둠으로써, 공리주의의 평등 원리와 ‘동등 배려의 원칙’을 위반합니다. 피터 싱어는 종차별주의(Speciesism. 인간동물들이 동물의 위계를 정하고 비인간동물을 차별하기 위해 고안한 신념체계. 리처드 라이더가 제안한 개념으로, 그는 종차별과 인종차별을 동일선상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역시 비인간동물을 대상으로 평등 원리와 동등 배려의 원칙을 위반한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비인간동물이 이성을 가진 존재인지, 언어를 사용할 능력이 있는지 여부는 고려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고려의 대상은 ‘감정을 가진 비인간동물이 쾌락과 고통을 느끼는가’입니다. ‘동등 배려의 원칙’을 비인간동물에게 적용하는 것에 동의한다면, 인간동물이 야기하고 있는 비인간동물의 고통은 근절의 대상이 됩니다.
 
그러나 싱어는 종차별을 거부한다는 것이 곧 인간동물과 비인간동물의 “완전한 평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또한 그는 모든 생명의 가치가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도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의 주장의 핵심은 신체적 고통을 피하고 싶어하는 인간동물의 이익과 비인간동물의 이익이 비슷할 경우, ‘동등 고려의 원칙’에 입각해 사고하고 판단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싱어의 입장은 다른 존재의 이익을 무시하거나 경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제한적이고 합리적인 주장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싱어의 동등 고려, 동등 배려의 원칙은 모든 종에 해당되는 도덕적 가치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싱어의 도덕적 가치는 비인간동물의 본원적 가치에 집중하기보다, ‘고통의 감소’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비인간동물에 대한 시혜를 부각시킵니다.
 
싱어는 도살 자체보다 비인간동물에 가해지는 고통을 강조하고, 인간동물이 비인간동물을 착취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면 그에 상응하는 혜택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지요. 그는 고통을 없애거나 최소화하는 방식의 사육과 도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육식’을 용인합니다. 이러한 이론적 바탕 위에서 그가 제안할 수 있는 대안은, 비인간동물을 학대하는 ‘공장식 축산업’을 규제하고, 윤리적 채식주의를 실현하여 비인간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하는 것이겠지요.
 
톰 리건 ‘모든 생명체에는 고유의 가치가 있다’ 

▲ 톰 리건은 하나의 생명체로서 본래적 가치를 가지는 비인간동물에 대해 ‘어떠한 고통도 허용될 수 없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싱어의 접근 방식은 공장식 축산업의 종식을 주장하기보다, 공장식 축산업 안팎에서 자행되고 있는 비인간동물에 대한 잔혹한 학대의 종식을 강조하게 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싱어가 주장하는 비인간동물에 대한 ‘시혜적 철학’을 현실에 적용하는 것이, 인간동물에 예속되어 있는 ‘비인간동물의 해방’과는 무관하다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이러한 문제 제기의 철학적 기반을 만든 사람이 바로 톰 리건입니다.
 
리건은 하나의 생명체로서 본래적 가치를 가지는 비인간동물에 대해 ‘어떠한 고통도 허용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모든 생명체는 고유한 생명체로서의 가치를 존중 받아야만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인간동물과 마찬가지로 감정이 있고, 고통과 쾌락을 느끼는 의식이 있는 모든 생명체가 인간동물에 의해 고통을 받거나 살해당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지요. 생명의 위협이 없는 안락한 삶이 중요한 가치라면, 비인간동물에게도 마찬가지로 생명체의 본원적 가치는 훼손되어서는 안 될 기본적인 권리라는 관점입니다.
 
모든 생명체의 생명권은 어떤 종인지 여부와 무관하게 그 자체로 존중되어야 할 기본권이라는 의미이지요. 앞서 소개한 불교 사상의 ‘생명’에 관한 기본 관점과 유사합니다.
 
따라서 리건의 입장에서 보면, 비인간동물을 감금하고 살해하는 모든 행위는-그것이 식생활을 포함한 인간의 생명 유지를 위한 행위일지라도- 비인간동물의 기본권인 “생명권”을 박탈하는 행위로, 도덕적으로 합리화할 수 없는 일입니다.
 
싱어가 중요하게 보았던 ‘비인간동물의 고통을 유발시키느냐 시키지 않느냐’의 문제는 리건의 철학에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에 따르면 인간동물에게는 육식, 동물실험을 포함한 비인간동물의 사용을 중단해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을 뿐이지요. 비인간동물의 기본권은 인간동물의 도덕적 의무 이전에 존재하는 것으로, 양보할 수 없는 도덕적 권리가 됩니다.
 
리건의 ‘의무론적 권리론’은 성차별을 폐지하지 않으면서 성평등을 논하거나, 인종차별을 폐지하지 않으면서 인종차별 금지를 논하는 것이 지니는 한계와 마찬가지로, ‘종차별에 있어서도 생명권 자체의 권리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이지요. 즉, 비인간동물의 학대를 종식시키려면 노예해방 같은 급진적인 전략과 장기적인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입니다.
 
‘동물 복지 증진’과 ‘동물 해방’ 사이에서
 
현대 서구사회에서 전개된 동물보호와 동물권, 생명권 운동은 피터 싱어와 톰 리건이 제시한 이론적 배경 위에서 다양한 양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공장식 축산업’의 문제를 다룰 때 고통 없는 사육 환경과 고통 없는 도살에 대한 이야기를 제기하는 방식과, 비인간동물의 생명권 박탈 자체를 문제 삼는 방식 등으로 나타나지요.
 
한국을 비롯한 많은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동물권 논의는 피터 싱어의 논의를 따르는 양상입니다. 비좁은 닭장에서 닭을 해방시키고, “인도적인 도축방식”을 고려하고 “사육 환경을 개선하자”는 논의가 많은 진전을 이루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비인간동물에 대한 학대와 착취를 종식시키려면, 환경을 개선하거나 복지를 증진하는 것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있는 것이지요. 사육이란, 비인간동물이 타고난 본성대로 원하는 환경에서 제 수명대로 살고 죽을 권리를 보장하지 않으니까요. 소비의 측면에서, 소비자로 하여금 부채의식과 죄책감을 덜어주는 기능을 할 뿐이라는 겁니다. A4 한 장만한 공간에 닭 5, 6마리씩을 가두어 키우던 것은 2,3마리로 줄여 키운다 하여도 닭을 가두어 키운다는 사실, 닭이 원래 타고난 특징과 수명대로 살 수 없다는 사실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장 모든 인간동물들이 ‘육식’을 전면 중단하거나 생명 연장의 꿈을 향한 동물실험을 전면 금지시킬 리 만무합니다. 그래서 등장한 ‘신복지주의’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동물사랑실천협회 박소연 대표의 말을 인용하자면 “오늘은 돼지우리를 깨끗이 청소하고 내일은 돼지우리를 완전히 비우자”는 내용입니다.
 
모든 사회운동에서 단일한 운동 방식이나 특정한 의제만 힘을 발휘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향이 같아도 걷는 길의 위치나 환경, 의미들은 각양각색이지요. 그래야 하고 말입니다. 동물권 논의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누군가에겐 동물복지론이, 또 누군가에게는 동물권리론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신복지주의가 대안일 수 있습니다. 동물권을 고민해 가는 과정에서 더욱 다양한 대안이 마련될 수도 있을 테고요.
 
동물권에 관한 이론들을 생각하며 각자의 이론적, 실천적 지향과 목표를 정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모든 문제가 그러하듯 그러한 지향과 목표 또한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는 것일 테고요.  (박김수진)

[참고문헌]
르네 데카르트. 2010. 『방법서설․성찰․데카르트 연구』. 최명관 역, 도서출판 창.
멜라니 조이. 2011.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노순옥 역. 모멘토.
에리카 퍼지. 2007. 『‘동물’에 반대한다』. 박상준 역, 사이언스북스.
조너선 사프란 포어. 2011.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송은주 역, 민음사.
조민환. 2006. 「피터싱어(Peter Singer)의 동물해방론과 전 지구적 윤리」. 연세대학교.
존 로크. 1996. 『통치론』. 강정인․문지영 역. 까치.
최훈. 2012. 「동물의 도적적 지위와 종 차별주의」. 『인간동물문화』. 한국학술정보.
피터 싱어 & 짐 메이슨. 2008. 『죽음의 밥상』. 함규진 역, 산책자.
현각. 2010. 『선의 나침반』. 김영사.

        - 여성 저널리스트들의 유쾌한 실험!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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