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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선 밖으로 나가도 괜찮아> 18살 이한결이 말하는 ‘자유’ 
 
여성주의 저널 <일다>는 사회가 강요하는 10대, 20대의 획일화된 인생의 궤도를 벗어나, 다른 방식의 삶을 개척해가는 청년들의 시간과 고민을 들어봅니다. 특별기획 “선 밖으로 나가도 괜찮아” 연재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생이 아닌 ‘열여덟’ 

▲ 지금 내 나이는 열여덟. 친구들은 모두 '고등학교 2학년'으로 불리면서 학교생활의 마지막 종점인 수능을 준비해야 하지만, 나는 지금 그저 '열여덟'이다. 
 
지금 내 나이는 열여덟. 친구들은 모두 꽃다운 18세가 아닌 고등학교 2학년생으로 불리면서 내년에는 고3이 되어 학교생활의 마지막 종점인 수능을 준비해야 한다.
 
고등학교 1학년 2학기 중간고사 때쯤이었다. 성적은 성적대로 안 나오고, 학교생활은 힘들고,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던 중에, 나를 지켜보던 엄마가 학교를 그만둘 것을 제안하셨다. “네가 학교에 그렇게 가기 싫고 힘들면 그냥 그만둘래?” 하고. 나는 망설임도 없이 “정말? 그래도 돼? 그럼 나 학교 안 갈래” 라고 말했다.
 
그렇게 말했던 그때의 나에게, 사람들은 학교를 그만두는 것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그만 둔 이후에 진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등으로 많이 고민했을 것 같다고 말하지만, 그렇게 고민을 많이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땐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이미 하고 있어서인지, 어서 빨리 학교를 빠져나갈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고민을 하고 걱정했던 부분이 있다면 검정고시에 대해서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주는 시험이니까, 고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 과정까지 시험을 보는 줄 알고 있어서 공부를 어떻게 해서 시험을 봐야 하지? 생각했었다. (사실 검정고시는 고등학교 1학년 과정에서 문제가 나온다.)
 
‘너는 왜 벌써부터 인생을 포기하느냐?’
 
내가 다니던 학교는 우리 지역에서도 좀 유명한, 빡세게(?) 공부를 시키는 여고였다. 아침 8시쯤 학교에 도착해서 바로 20분간 영어듣기 모의고사를 풀고, 오전에 보충수업 1시간을 듣고서 정규수업으로 들어간다. 정규수업이 끝난 뒤에는 오후 보충수업을 듣고, 학교에서 저녁을 먹은 뒤 밤 10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한다. 이것이 보통 인문계 고등학교의 하루 일과다.
 
모의고사가 있는 날에도 끝나고 나서 야간자율학습을 해야 하고, 수학과 영어는 수준별 학습이라고 해서 성적 별로 반을 나눠서 수업을 받는다. 게다가 공부를 잘하는 애들이 많아서, 시험기간만 되면 서로 눈치 보면서 경쟁하느라 바쁜 학교였다.
 
이렇게 특별한 학교는 나를 순순히 학교 밖으로 나가게 도와주지 않았다. 중퇴하기 전에도 나는 야간자율학습을 빠졌는데, 그때 교감선생님께서 나를 교무실로 부르셨다. 그리고 다른 선생님들과 학생들도 있는 곳에서, “아직 1학년인데 야간자율학습을 빠지면서 왜 인생을 벌써부터 포기해?”, “너의 인생을 위해서 야간자율학습은 못 빼줘”라고 말씀하셨다. 내 귀에는 교감선생님 말씀이 그냥 ‘공부가 인생의 전부야!’ 라는 식으로 들렸다. 그 말씀을 듣고 너무 황당해서 아무 생각이 안 들었다.
 
담임선생님께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말씀을 드리고 중퇴를 할 때,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그 주 토요일에 학교에 있는 내 짐을 가지러 엄마와 같이 학교에 갔다. 짐을 다 챙기고 나오려는 중간에, 교감선생님과 교장선생님께서 나와 엄마에게 면담이지만 거의 설교 식으로 말씀을 하셨다. 엄마는 차분히 듣고서 말씀하셨지만, 나는 별로 듣기 싫었다. 아마 내가 학교를 그만두게 되면 학교 이름에 먹칠하는 일이라고, 명예를 가장 먼저 생각하다 보니 그러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중퇴한지 이제 1년이 지났다. 학교를 그만둔 친구들은 다 각자의 사정이 있겠지만, 나한테 물어본다면 오로지 ‘대학’, ‘경쟁’을 하기 위해서 하는 공부가 싫었다고 말하고 싶다.
 
많은 사람들과 만나며 진로를 탐색하다 

▲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친구들과 제주도, 부산 등을 우리끼리 계획을 짜 여행했다. 걱정과 다르게 서로 협력하고 회의해서 두 번의 여행 모두 즐겁게 다녀왔다. 
 
학교를 나오기 전에는 반 친구들이 그랬고, 그만두고 나서는 주변 어른들이 항상 내 진로에 대해서 걱정하셨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직업, 돈에 대해서 걱정하셨다. 이런 걱정 어린 말들을 들어도 내 생각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왜냐면 나는 직업을 갖기 위해서, 취직을 하려고 학교 밖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 해보고 싶은 일들을 찾고 해보기 위해서 나왔기 때문이다. 나는 학교를 나온 뒤 많은 사람들과의 인연으로 진로를 찾게 된 것 같다.
 
처음 학교를 나와서 나는 운 좋게도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친구를 두 명 더 만나게 되었다. 그 친구들과 제주도, 부산 등을 여행했는데 길이 아닌 곳도 여행해보고 같이 자면서 더 많이 친해진 것 같다. 사실 처음에는 우리끼리 여행계획을 짜고 우리끼리 여행을 한다고 했을 때 좀 걱정했었다. 가족여행이나 학교에서 가는 수학여행은 어른들이 같이 가고 계획도 어른들이 하시니까 내가 신경 쓰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스스로 여행계획을 짜야하니까 장소, 둘러볼 곳, 숙소, 돈 등을 다 알아봐야한다. 그래도 걱정과 다르게 서로 협력하고 회의해서 두 번의 여행 모두 즐겁게 다녀왔다. 이제는 우리끼리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몽골여행을 도전해 볼 생각이다.
 
우리 세 사람은 우연히 청소년을 위해 진로탐색 프로그램을 해주는 기관을 알게 되었는데, 거기 참여해서 심리 검사와 흥미 검사를 통해 서서히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서로 도와주게 되었다. 그곳에서는 탈학교 학생들이 자립에 대해 교육을 받으면서 검정고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센터를 소개해주었다. 우리는 거기서 공부도 하고 직업체험이나 문화체험도 하면서 지금까지 다니고 있다.
 
학교를 나와서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 진로에 대한 생각들은 점점 바뀌며 틀을 잡아가고 있는 것 같다. 처음에 학교를 나올 때는 제과, 제빵 쪽에 관심이 있었다. 그러다가 우리를 도와주는 선생님들을 보면서, 청소년상담이나 심리 쪽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요즘에는 시사와 사회, 언론에 관심이 생기면서 기자의 꿈을 꾸게 되었다. 지금은 직업까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관심 있는 분야의 대학교 학과를 진학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어서,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알아가려고 노력 중이다. 이런 나를 ‘정해진 것도 없고 길도 없어서 불안해 보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나는 지금 생각도 많고 고민도 많은 열여덟 살이기 때문에 괜찮다.
 
고3이 되지 않는다는 것의 의미, ‘자유’  

▲ 나는 고등학교 2학년, 3학년이라는 ‘입시의 지옥’을 맛보지 않았다. 지금 나는 자유롭다. 
 
고등학교, 중학교 다닐 적 친구들과는 연락을 못하고 지냈는데, 요즘엔 친구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게 되면서 점점 연락이 닿게 되었다. 오랜만에 연락이 된 친구들은 내가 학교를 안 다니고 있다는 사실에 한 번 놀라고, 고등학교 졸업 학력을 땄다는 것에 두 번 놀랐다. 그리고 모든 친구들이 다 나를 부러워했다. 왜냐하면 (조금 자랑이지만) 일단 나는 고등학교 2학년, 3학년이라는 ‘입시의 지옥’을 맛보지 않았고, 누구보다 지금 나는 자유롭기 때문이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들어보았다. 내년에 고3이 된다는 사실이 제일 부담스럽다고들 했다. 많이 힘드냐고 물어봤더니, 이젠 익숙해져서 아무렇지 않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고등학교 다닐 때 친했던 한 친구는 원래는 역사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번에 물어보니 갑자기 전문대학교 물리치료학과를 간다고 해서 많이 놀랐다. 그 친구는 성적 때문에 고민이다. 이 성적으로 어느 대학도 갈 수 없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지만, 나는 성적 때문에 꿈을 버렸다는 말이 안타까웠다.
 
그러면서 생각해보게 된다. 내가 만약 학교를 그만두지 않았다면, 나도 내 친구와 비슷한 상황이 되어있을까? 아니, 오히려 친구보다 더 안 좋은 상황이 되었을 것 같다.
 
이 글을 쓰기 전에 <일다>에서 “선 밖으로 나가도 괜찮아” 기획에 실린, 나와 비슷한 여러 사람들의 글을 읽어보았다. 확실히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어! 이건 나하고 비슷한 고민이네?’ 하고 생각한 부분도 있고, 해외여행 경험에 대한 글을 보며 친한 친구들 셋이서 배낭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실제로 어디어디 가자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일다>라는 매체를 알게 되면서 새롭게 느끼게 된 것도 많고, 하고 싶은 일들이 더 많이 생겨나서 요즘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된다. 그리고 실제로도 하고 싶은 것들을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고등학교 다닐 때보다 정말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 가끔은 그 시간들이 좀 아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앞으로 대학에 진학할 예정이지만, 대학 안에서도 배우는 것은 한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일다>와 같은 미디어나 사회운동을 하는 시민단체에서 일을 해보고 싶다. 내가 사는 세상이 너무 힘들고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 세상을 앞으로 조금씩 바꾸는 일들을 하고 싶다. 그리고 <일다>처럼 사회의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더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 좀 추상적인 앞으로의 계획이지만 꼭 실천할 수 있길, ‘미래의 나’에게 바라면서 내 이야기를 마친다.  (이한결)

    * 여성저널리스트들의 유쾌한 실험! 독립언론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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