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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으로 말하다

성폭력, 몸이 기억하고 재생하는 통증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2. 5. 7. 07:30

몸은 사월을 기억한다
<꽃을 던지고 싶다> 4. 나의 통증이 보내는 신호 
 
[성폭력 피해생존자의 기록, 너울의 “꽃을 던지고 싶다”가 연재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첫 번째 칼럼 “꿈을 꾸다: 25년 동안 관통해온 기억을 풀어내며” 편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 <일다> www.ildaro.com]
 
해마다 3월, 따스한 봄이 되면 생기를 찾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나의 몸은 말썽을 일으킨다. 매년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보름씩 입원하는 일이 반복이 된다. 불면, 두통, 구토, 심장의 두근거림, 호흡곤란. 매번 증세를 달리하지만 검사 결과는 항상 이상이 없기에, 병원에서는 스트레스성 같다는 말만 들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통제 없이는 견딜 수 없는 통증에 시달리고 불면증이 심해져서 수면제를 처방 받고, 음식을 삼킬 수가 없어서 영양제에 의존하는 시기를 보낸다. 일 년에 서너 번은 응급실로 실려 가는 반복적인 상황들이다. 꿈을 꾸기 전에는 그 통증이 약했으나 꿈을 꾼 그 후에는 견딜 수 없는 통증이 반복되었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사월이 왔다.
 
나의 몸은 삼월부터 통증을 호소한다. 이러한 통증은 사월이 오는 것을 알리는 하나의 신호가 되어버렸다.
 
참을 수 없는 두통, 어지럼증. 기나긴 불면. 잠을 이루지 못하고 10분 단위로 깨는 일상이 한 달이 되어 간다. 머리는 항상 몽롱하고 일상을 견뎌내는 것조차 버겁게 느껴진다. 밥을 삼키는 것조차 어려워서 밥을 갈아 마시는 상황까지 올해에도 어김없이 반복된다.
 
몸을 피곤하게 하면 조금 좋아질까 싶어 대청소를 하고 겨울철 옷가지를 정리하고 어항을 청소하고 화분에 꽃들을 분갈이하고 오늘도 분주하게 몸을 움직여 본다.
 
그리고 자정을 넘긴 시간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해 보지만 뚜렷한 각성만 남는다. 머릿속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기억들이 머문다. 생각을 잊기 위해 책을 읽어 본다. 그러나 책 어디에도 나의 마음이 닿지 못한다.
 
나의 머리 속 뛰어난 각성들은 4월에 일어났던 폭력의 기억들을 필름을 돌리듯 반복해서 재생한다. 하나에서 열까지 세세한 기억은 아니지만, 그 때의 고통과 두려움은 세세하게 되살아난다. 세포 하나하나가 마치 그 때의 고통을 되살리는 듯하다.
 
와인을 찾아 마시고 잠을 청해 본다. 술기운에 조금 잠을 잔 듯하다. 깨어보니 겨우 30분의 시간이 흘렸다. 몸은 피곤하다는 신호를 보내지만 역시 또 기나긴 불면의 시간을 맞이해야 하는 것 같다.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일상의 평범함조차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시간이다.
 
나의 마음과 상관없이 나의 몸은 사월을 기억해 낸다. 나에게 일어났던 4월의 사건 그 고통을 나의 몸은 해마다 반복적으로 재생해낸다.
 
신체화 장애(somatizing syndrome, 身體化症候群)라 불리는 나의 증상의 특징은, 수년 간 반복되어 통증이 일어나지만 내과적 소견이 없어 심리적 요인일 것이라고 판단되는 질환이다.
 
나에게 일어나는 통증이 ‘신체화 증상’이라고 명명한다는 것과 그 원인도 알고 있지만, 여전히 고통에서 벗어날 길은 없어 보인다.
 
왜 그 날의 사건이 한참 흐른 뒤에도 나의 몸은 그 날을 기억해 내는 것일까? 왜 일상의 평온함이 허락되지 않는 것일까 질문을 해보아도 답은 찾을 수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처음 꿈을 꾸고 난 후에는 일 년의 대부분을 두통과 불면으로 지새워야 했지만, 치유를 선택하고 나의 상처를 보듬어 주는 시간을 보내면서 일 년의 한두 달 정도만 고통 속에 지내게 되었다는 점이다.
 
처음 치유를 결심하고 잠만 잘 수 있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던 나의 소망은 어느 정도는 이루어졌다. 이제는 평범한 사람처럼 직장생활을 하고 잠을 자고 밥을 먹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고, 소소한 일상을 만들어 가고 있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불청객처럼 찾아온 나의 통증은 4월의 경험을 기억하고 스스로를 위로하라는 신호인 것 같다. 아직은 더 많이 나를 돌보고 더 많이 스스로를 아끼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야겠다. 나에게 있어 치유란, 사건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하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몸이 기억하는 고통을 애도하고 나를 위로해 주는 힘이 생기는 것이리라.
 
이 글이 끝날 때쯤이면 기나긴 불면도 지독한 통증도 고통 없이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생기기를 바래본다.  (너울)
 
연관 기사 보기- 꿈을 꾸다: 25년 동안 관통해온 기억을 풀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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