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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으로 말하다

아내구타, 왜? 라는 물음은 답이 없다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2. 4. 17. 08:00

왜 맞았는가? 라는 질문은 어리석고 우습다
<꽃을 던지고 싶다> 2. 
 
[칼럼 소개: 성폭력 피해생존자 너울의 세상을 향한 말 걸기, <꽃을 던지고 싶다> 연재가 계속됩니다. -편집자 주  <일다> www.ildaro.com]
 
사건 하나. 내 기억 속의 첫 번째 폭력
 
폭력에 대한 기억은 원인이 없이 결과만 남을 뿐이다. 내가 가해자가 아니기에, ‘왜’라는 질문 자체가 너무도 쓸모 없고 어리석은 것이다. 왜라는 질문은 가해자에게는 변명의 여지를 주며, 피해자에게는 또다시 가해지는 학대가 된다.
 
당신은 왜 맞았는가? 당신은 왜 강간당했는가? 어떠한 사람도 강간당하거나 폭력을 당하고자 하는 의지나 사고 자체가 없기에, 왜라는 질문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 날의 폭력에 대한 기억 또한 ‘왜’라는 질문이 우스운 것은, 거기엔 어떤 이유(사람들이 말하는 폭력 유발론이나 원인론)가 있을 수도 없거니와, 설령 폭력의 이유를 억지로 만든다 하더라도 그 피해와 상처는 너무도 심각하기 때문이다.
 
화창했던 봄날, 오빠와 나는 그 날도 오빠의 야구방망이와 글러브를 가지고 놀았을 것이다. 가난했기에 특별한 장난감이 없었던 우리에게, 오빠가 생일 선물로 받은 야구 방망이는 그 어느 것보다 특별하고 즐거운 놀이기구였다.
 
당시 7살이던 난 바로 위의 2살 터울인 오빠를 둔 탓으로 동네 남자아이들과 어울려 딱지치기, 구슬치기, 야구 등을 즐겼다. 그 날도 오빠와 야구놀이를 하고 집에 들어갔을 것이다. 유난히 눈이 부신 햇빛이 세상을 평온하게 비치는 그런 날이었다. 소박한 밥상에 마주 앉아 우리 가족은 저녁을 먹었을 것이다. 가난하지만 평범한 그런 저녁을…….
 
가해자가 야구방망이로 엄마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4명이나 되는 우리 형제가 울며 매달렸지만 구타를 막을 수는 없었다. 가해자는 너무 강했으며 나는 무기력한 존재일 뿐이었다. 아무런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무조건 가해자에게 매달려 빌기만 했다.
 
폭력은 한동안 지속되었다. 우리 형제의 울음소리, 엄마의 악다구니와 비명에 찬 저항만이 가득했다. 가해자의 하얀 피부보다 더 하얀 그의 러닝셔츠에 빨간 피가 묻고, 엄마의 저항이 멈춘 후에야 폭력은 정지되었다.
 
그 날의 폭력이 왜 시작되었는가는 기억도 나지 않지만 중요하지도 않다. 크고 작은 육체적 구타는 일상적인 것이었고, 언어폭력은 매일 반복되었다. 반찬이 형편없다는 것부터 남자를 무시한다 등등 매번 수많은 이유들이 만들어졌다. 내가 10대를 넘어가는 시기에는 심지어 나의 치마 길이까지도 이유가 되었다.
 
그러나 이유는 다를지라도 명확한 것은, 가부장제에서 아내는 자신의 소유물이며 자신의 물건에 대한 폭력은 집안의 물건을 부수는 것처럼 사소한 일이라는 사실이다.
 
이웃에서 흔히 일어나니 일이기에 의례 사소하고 부차적인 문제로 취급되는 아내구타는 그것을 보고 자란 나에게도 심한 트라우마를 남겼다.
 
나의 머릿속에 사진처럼 박혀 있는 그 날의 사건은 일상적으로 일어났던 다른 가정폭력보다 나에게 힘의 관계를 선명하게 인식하게 해주었다.
 
나에게 있어 폭력이란, 힘이 강한 사람이 힘이 약한 사람을 통제와 화풀이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어떠한 이유도, 설명도 없이 나에게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며, 어떠한 저항도 폭력의 강도만 높일 뿐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그 사건 이후 나는 놀이기구를 잃었으며, 엄마가 살해당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두려워했다. 야구방망이를 가져다 버리고, 나도 언제가 엄마가 당한 만큼 꼭 그만큼만 갚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어릴 적, 집이라는 공간에 ‘아빠’라는 사람이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 사람만 사라진다면 누구보다도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을 꿈꿀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 바람은 시간이 흐르고 더 많은 상처를 남긴 후에, 한참 후에나 가능했다. (너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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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프로필사진 나그네 그 가해자를 죽여버리면 속이 시원할듯 2012.04.18 09:33
  • 프로필사진 하아~ 제발 자식때문에 참고산다고 하지 말아주세요...이렇듯 가정폭력은 보고자란 아이들에게도 상처가 됩니다... 2012.04.18 09:48
  • 프로필사진 청송 아내구타...
    아이러니한 건 가해자들은 그 폭력을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긴다는 거죠..
    그래서 자신이 가해자이면서 이런 글을 보고 가해자를 욕하는 경우도 많아요
    중요한 건.
    피해자들이 계속 폭력을 증언하는 일 같습니다
    경험을 얘기해주셔서 고마워요
    2012.04.18 10:31
  • 프로필사진 심판 연약한 여자를 힘으로 밖에 제압할 줄 모르는 무지하고 무식한 수컷들,,,사고력이 있는 인간이라면 대화로 해결을 하겠져...긴말 필요없음! 폭력적인 수컷=인간 아님!!! 2012.04.18 17:05
  • 프로필사진 무지개 수원살인사건도 옆집에서 살려주세요 소리를 들었는데 부부싸움인줄 알았다는 기사를 보고 가정싸움이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있기에 일어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부부싸움은 해도 된다는, 가부장적인 남자의 폭력을 용인하는 현사회이기때문에 저런 일이 발생할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나는 여자지만 우리 모두가 가해자일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저런 생각에 동조하지 맙시다. 그리고 저런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노예처럼 잡혀 사는 불쌍한 사회적약자들의 권익이 보장되는 사회가 하루 빨리 오길 기원합니다 2012.04.18 17:15
  • 프로필사진 간지마덜 못난 남자가 폭력을 행사한다 폭력은 무조건 죄라는 인식을 가지고 경찰들도 적극적으로 개입학 처벌함이 마땅할것이다 2012.04.18 19:15
  • 프로필사진 비밀댓글입니다 2012.04.18 20:38
  • 프로필사진 정신의 미성숙자 그들은 일종의 정신질환자이다. 겉으로는 멀쩡할진 모르지만..어릴때 부터 성장과정과 내재된 본인의 욕구불만와 미성숙된 정신의 상태에서 나오는 ..그들은 정신성장의 교육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 2012.04.18 20:55
  • 프로필사진 가해자.. 그러게 말입니다. 왜? 라는 말은 가해자를 위한 변명제공이 될 구실일 뿐이지요.
    정말 그 사람은 아버지라는 표현보다 가해자를 표현이 더 어울리네요.
    정말 아버지 소리를 들은 사람이었다면 아이들이 매달렸을 때 그만 두는 사람입니다.
    에휴..
    그렇게 아내 구타하고 밖에서는 모범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은 정신질환자가 맞아요.
    2012.04.18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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