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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속에 흘러온 금모래강의 기억을 찾다
[일다 특별기획] 내성천 트러스트 ‘우리가 강이 되어주자’ (1)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우리나라 자연하천의 전형으로 평가받고 있는 내성천을 대상으로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을 통한 습지 복원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내성천은 낙동강 상류와 합류하는  지류로 모래톱이 발달하여 강의 수질 정화능력이 극대화되어 주변의 생태계가 풍요롭고 다양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4대강 개발사업에 이어 지천 개발에 대규모 예산을 투입할 계획을 세움에 따라 내성천도 준설과 직강화로 강의 생명을 잃게 될 초미의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내성천 트러스트’는 내성천 주변 본래 강의 땅이었던 사유지를 확보하여 다시 강의 품으로 되돌려주기 위한 내셔널트러스트운동으로, 시민 한 사람이 1평씩의 땅을 사기 위한 금액을 기부하는 것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2011년 내, 강의 대리인으로 모금에 참여하는 1만 명을 모집하여 사유지 1만 평을 확보하는 것을 1차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어 2015년까지 10만 명이 참여하여 10만 평의 사유지를 확보, 강의 자연기능을 극대화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복원할 예정입니다.
 
<일다>www.ildaro.com는 내성천트러스트의 취지에 공감하며 내성천을 지키기 위한 특별기획을 진행합니다. 강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이해하고 느낀다면, 강은 우리 곁으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첫 글은 내성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낭미님의 기억을 통해 사람들의 삶 속에 흘러온 강의 의미에 대해 돌아봅니다.-편집자 주

내성천과 함께 했던 어린 시절

▲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모래강 내성천의 물은 얕고 맑다.     © 박용훈 
 
나는 어릴 때 내성천 가까이서 살았다.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은 소백산맥의 남쪽 기슭인 경북 봉화군에서부터 흐른다. 내성천은 영주시를 가로질러 안동과 문경을 흘러가다 예천의 남쪽에서 낙동강의 상류를 이룬다.
 
나는 봉화읍 포저리에 있는 기와집 셋방에서 태어났다. 단칸방에서 큰어머니와 외할머니가 나를 받아주었다. 태어난 집에서 칠 년을 살았다. 골목에서 나와 ‘첨방’(언덕)을 올라가면 흐르는 물줄기와 모래 벌이 내려다보였다.  
 
친구들과 둑 근방을 쏘다니며 애기똥풀, 제비꽃, 강아지풀을 꺾어 놀았다. 애기똥풀 줄기를 꺾어 나오는 노란 액을 매니큐어처럼 손톱에 바르기도 했다. 아버지와 같이 내성천에 가서 메뚜기를 잡아 강아지풀에 줄줄이 꿰어 흔들며 뛰놀기도 했다. 아버지가 방아깨비를 잡아 다리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여줄 땐 신기해했다. 아버지는 풀잎을 입에 대고 “삐이~” 소리를 내어 피리를 불어주기도 하고 바랭이로 우산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바랭이 윗가닥을 하나 뜯고 나머지 가닥들은 둥글게 굽혀 줄기가 갈라지는 자리에 닿게 한다. 그리고 윗가닥으로 꽁꽁 묶으면 우산이 완성된다. 그걸 머리 위에 쳐들고 우산이라고 뛰놀았다. 토끼풀 꽃을 꺾어 반지며 팔찌며 목걸이를 만들기도 했다. 메뚜기가 주렁주렁한 강아지풀은 집에 가져가 엄마한테 주고 볶아먹었다.
 
한여름에는 모래벌판에 텐트를 치고 놀았다. 내성천 물은 얕고 맑다. 튜브를 들고 들어가도 쪼그려 앉아서 놀 만한 깊이다. 나는 강은 다 그렇게 생긴 건 줄 알았다. 모래는 지천이었다. 범드리란 곳이 있었는데 넓고 넓은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어서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으레 소풍가는 곳이었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 이름은 내성국민학교였다. 운동회가 있을 때 유치원 아이들도 가서 노란 망토를 입고 병아리 춤을 추었다. 실에다 과자를 매달아놓고 학생과 어른 가리지 않고 마을 사람들이 같이 경주를 하기도 했다. 그땐 운동장도 아주 넓어보였고 사람들도 참 많았다.
 
쉬는 날이 되면 어른들은 더 깊은 산골로 놀러갔다. 봉화 물야면 오전리에 있는 오전약수터에 가면 약수에서 짜릿하고 달큰하고 비린 맛이 났다. 천연탄산수로 철이 많이 들어 있어서 그렇다고 했다. 매번 먹어보려다 맛이 너무 강해서 두 모금도 채 먹지 못했다. 몸에 좋다고 어른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한 얼굴로 벌컥벌컥 마셨다.

▲ 낙조가 드리운 금빛 내성천의 모습.     ©박용훈 
 
석천도 자주 소풍간 곳이었다. 석천계곡의 물이 봉화의 내성천으로 흘러간다. 그 계곡에는 큰 너럭바위와 소나무들이 많았다. 1535년에 지어졌다는 석천정사가 꼭대기 바위 위에 우뚝하니 서 있었다. 처마선이 고풍스럽고 단청이 알록달록한 정사 앞에서 사진을 찍곤 했다. 신혼부부인 젊은 엄마 아빠가 돌쟁이인 나를 안고 찍은 흑백사진이 있다. 다음해는 똑같은 자리에서 칼라사진을 찍었다. 스물 언저리의 젊은 엄마는 발을 덮는 긴 치마를 입고 목에 흰 리본을 매었다. 오동통한 나는 엄마 품에 안겨 나들이라고 모자를 귀까지 덮어쓰고 멜빵바지를 입고 있다.
 
조금 더 커서 가본 석천은 바위가 줄지어져 있고 푸르고 길찬 나무들이 우겨져 있는 곳이었다. 그늘은 서늘하고 깊어 푸른 기운이 일렁였고 넓고 평평한 큰 돌들이 물줄기를 따라 곳곳에 있어 아무 데나 주저앉아 더위를 잊고 종일 보내기 좋았다.
 
바닥에 깔린 넓적한 돌, 거친 돌, 조막만 한 돌들 사이로 맑고 시원한 물이 쿨렁거리며 흘렀다. 층층이 흘러내리는 물은 얕은 폭포를 이루기도 하고 나무 그늘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에 번쩍이기도 한다. 수영복을 입고 들어가 참방거리면 무릎 정도밖에 오지 않았다. 엎드리면 몸이 다 잠겼다. 학교 소풍 때도 석천에 가서 물속을 첨벙거리고 계곡을 오르내리면 아무도 모르게 인어가 된 기분이 들었다.
 
오토바이 사고로 남편을 잃은 외숙모가 아이들을 데리고 와 마음을 쉰 곳도 석천이었다. 산과 물이 어우러진 자리에서 물기를 머금은 공기는 시원했고, 젖은 돌들은 거무스름하게 보였다.
 
“샘을 소중히 여기고 함부로 헤집지 말라”

▲ 영주댐 건설로 수몰될 금강마을의 농민들은 올 봄 마지막이 될 씨를 뿌렸다.     ©박용훈 
 
1976년에 준공된 안동댐 때문에 큰집에서 조금 떨어진 길가에까지 물이 차올랐다. 아버지가 다니던 학교와 다리와 냇물도 다 댐 안에 잠겨버렸다. 언제가 신문에서 물이 빠진 댐 사진이 나왔을 때 아버지는 어릴 때 다니던 다리와 길과 집 들이 다 그대로 남아 있다며 짚어 보여주었다. 안동에 댐을 짓고 또 도로를 만들었다. 늘 오가던 흙길에 도로가 깔리고 코스모스가 길가에 줄지어 심어졌다. 어른들은 갑자기 생긴 도로에 사람이 다칠까봐 걱정하는 소리를 많이 했다. 우리 사촌언니는 대여섯 살 난 아들 둘을 도로의 교통사고로 차례로 잃었다. 남은 딸 하나를 데리고, 더 이상 이곳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언니는 떠나버렸다. 소리 없이 사람들이 죽고 하나둘씩 떠나갔다. 댐이 생기고 수몰민이 생기면서 안동이 변했다고들 했다.
 
나는 큰집에 가면 아직 남아 있는 샘가에 자주 가서 놀았다. 그 샘은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고여서 이루어진 것이다. 검게 이끼가 낀 바위에 흘러내리는 물에 손을 대어보았다. 산에서 물이 괴어 흐르면서 낙엽도 지나치고 뱀 같은 동물들도 지나쳐올 텐데 맑디맑았다. 그 물이 고인 샘 안에는 송사리 몇 마리가 헤엄쳤다. 물속의 굵은 모래와 구석구석에 낀 검푸른 이끼가 투명하게 들여다보였다.
 
어른들은 샘을 소중히 여기고 함부로 헤집지 말라고 했다. 아버지와 큰집 식구들이 평생 먹고 살아온 샘물이다. 전쟁 때도 이 샘물을 먹고 살았다. 샘 바로 곁의 냇가에서 친척언니들이 빨래를 했다. 반짝이며 흐르는 냇가에 물고기들이 빠르게 헤엄치고, 풀로 만든 물레방아도 돌아가고, 청개구리도 팔딱였다. 샘물을 손으로 떠서 마시기도 한다. 아주 차고 달다. 그 속의 차돌멩이 하나를 건져 올렸다. 하얗고 동그랗고 빛나던 돌멩이. 집에 가 주머니에서 다시 꺼내보니 빛이 나지 않고 메말라 있었다.
 
지난 4월에 영주에 내려갈 일이 있었다. 4대강 사업으로 사라질 내성천을 기록하자고 몇몇 사람이 모였다. 지율스님은 예천시 용궁면에 기와집을 빌려 사는데 “이곳 상류를 지키면 낙동강을 살릴 수 있지만, 상류까지 망가지면 강은 완전히 끝나는 겁니다. 어떻게 해서든 내성천을 지켜내어야 해요.” 하고 말씀하셨다. 용궁은 내성천이 흘러 다른 물줄기와 만나 낙동강 상류가 되는 자리다. 내성천이 물줄기를 휘돌아 만들어놓은 명승지인 회룡포도 4대강 공사 때문에 사라질 운명이라 했다. 예천의 공무원과 농민들은 아직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있다. 이곳 출신인 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타지 사람처럼 내성천을 보러 간다. 철이 들고 서울로 올라가고 나서 한 번도 이 강가를 거닌 적이 없다.
 
4대강 사업 때문에 영주시 평은면에 거대한 댐이 들어선다. 안동을 물에 잠기게 한 그 댐이 바로 코앞인 이곳에 또 생긴다. 모래땅인 이곳에 왜 물을 가두냐고 어른들이 한숨을 쉰다. 댐이 생기면 이곳의 평은 초등학교도, 버스정류장도 눈앞의 송리원 휴게소도, 조금 더 내려가면 있는 사백 년이 넘은 금강마을도 잠긴다. 금강마을은 하회마을처럼 물돌이 마을이여서 금강하회라고 불린 곳이다. 그 아래에 있는 놋점마을을 재작년 12월에 보았는데 공사제단지구라 하더니 지금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그 자리에 거대한 모래더미와 중장비들만 오갈 뿐이다. 지금 눈앞에서 모래사장을 끼고 맑게 흐르는 내성천도 댐의 물속에 잠겨버린다. 저 산허리의 중턱까지 댐의 물이 차올라 그 아래에 있던 모든 것을 삼킬 것이다.
 
더 이상 잃고 싶지 않다

▲ 모래 위에 찍힌 수달 발자국.     © 박용훈
 
어른이 되어서 처음으로 내성천에 왔다. 그냥 기억이라고 생각했다. 서울에 나의 일이 있고 가족이 있으니까, 이곳에서 있었던 어린 시절의 물장난은 뒤돌아볼 일 없다고 여기며 살았다. 눈앞에 펼쳐진 모래밭을 걸어가니 발자국이 찍힌다. 사람이 밟지 않은 모래 위에 수달의 발자국도 곁에 점점이 찍혀 있다. 구두를 신은 내 발 속에 부드럽고 따뜻한 모래가 들어온다.
 
이 물이 낯익다. 반짝이며 흐르는 물. 손을 담그면 손목밖에 잠기지 않고, 신발을 벗고 들어가도 종아리밖에 차지 않는 물이다. 낙동강 전체에 모래를 반 이상 공급한다는 상류의 내성천, 물이 얕아 보여도 그 안의 모래 깊이는 6m에서 20m에 이른다. 이런 모래강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상류인 이곳에 남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내성천이 굽이굽이 휘도는 물길을 조금만 따라 내려가면 모래를 파헤쳐 톱니처럼 모래더미를 준설해놓은 것이 보인다.

강이 사라지듯 내년이면 사라질 금강마을 사람들은 굳은 얼굴로 봄날, 마지막 씨를 뿌리고 있었다. 몇 백 년을 양지바른 곳에 볕 쬐고 있던 무덤 앞에도 이장 공고가 붙어 있다. 조상의 묘를 파내 떠나야 하는 일흔, 여든의 수몰민들은 입을 다물고 있다. 국가의 폭력에 겁먹은 이들은 우리에게 아무 말을 해주지 않는다. 먼지를 휘날리며 영주댐은 바로 이들 코앞에서 쉬지 않고 공사 중이다. 산을 뚫어 물길을 돌리고 댐을 짓고 있다. 철책을 세워놓고 밤낮없이 공사를 하고 있다. 단지 14조 원의 돈을 건설업자에게 주기 위해서.
 
하지만 지금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싶지 않다. 어린 시절 보고 처음 보는 물 앞에 쭈그려 앉았다. 놀라워라, 그때 본 그 모습 그대로 흐르고 있다. 당연히 사라졌거나 변해버렸을 줄 알았다. 어린 시절 발을 담그며 놀던 그 모습 그대로 이렇게 오랜 시간을 흐르고 있을 줄 몰랐다. 손을 넣어 바닥을 짚으면 물살에 빠르게 흘러가는 모래가 손가락 사이로 흘러간다. 차갑고 맑은 물이다. 물에 들어간 사람들의 발이 하얗게 들여다보이는. 모래알 하나하나가 투명하게 보이는.
 
그동안 나는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물살 속에서 구르며 흘러가는 것들이 쉼 없다. 모래를 쥐었다가 편다. 춤추듯 모래알들이 흩어진다. 물속에서 작은 자갈을 주워올렸다. 하얗고 네모나고 단단한 것이다. 이런 순간이 있었다. 오래된 물속에서 둥근 돌을 주워 올린 적이 있다. 메말라진 돌을 버리고 나서 다시 물가로 돌아오지 않았다.

▲영주댐 공사현장. ©지율
 
지금 이곳에서 몇 걸음만 올라가면, 몇 걸음만 내려가면 포클레인이 할퀴고 간 헤쳐 놓은 강바닥이 보인다. 작년 한 해 만에 상주의 병성천에는 거대한 보가 들어섰다. 낙동강 제1비경이라던 경천대의 모래와 강도 사라져버렸다. 금강마을에서 조금 더 내려간 곳의 수도리 마을 교각은 영주댐 공사로 벌써 모래공급이 차단되어 다리 밑이 앙상하게 드러나고 있다. 내성천은 뭉텅뭉텅 잘리고 궁지에 몰려 이제 최상류에 이렇게 한 뼘만 남아 있다.

나는 가만히 있다. 이제 떠나고 싶지 않다. 손바닥 가운데 놓은 돌이 살아 있는 듯 물기를 머금고 반짝인다. 냇물도 숨 쉬듯 눈부시게 일렁이며 흐르고 있다. 오래 들여다보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이 돌은 오래전 누군가의 뼈가 아니었을까. 나도 나중에 이 물 속을 흘러가고 있지 않을까. 잃고 싶지 않다. 내성천이 댐의 물 때문에 바닥에 송두리째 잠기게 되거나 이곳에 놀던 내가 물에 잠기고 싶지 않다. 이제야 다시 만났는데, 이 돌을 다시는 잃고 싶지 않다. (낭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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