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만 번의 죽음을 애도하며[머리 짧은 여자, 조재] 얼굴을 가진 존재 아빠와 한 식탁에서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은 꽤 오랜만이었다. 같은 집에 살면서도 서로 생활 패턴이 약간씩 어긋나는 까닭이다. 작년 부산에서 먹었던 빨간 고기 생선구이가 갑자기 생각나 며칠 아빠를 보챘고, 그날은 바로 그 빨간 고기를 먹는 날이었다. 내가 빨간 고기의 가시를 발라 열심히 먹는데 집중하는 동안, 아빠는 TV를 틀었다. 계속된 실패에도 불구하고 끝없는 도전 끝에 억대 매출을 올리게 된 부부의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토하라는 민물새우의 양식에 성공했고 그게 꽤 값이 나가는 모양이었다. 나도 밥을 먹으며 아무 말 없이 관성처럼 TV를 시청했다. 양식에 성공한 토하를 잡아 다른 민물새우와 분류하고 그걸로 젓갈을 담그는 장면..
내가 불쌍해보이나요? 글을 쓰는 이유 나의 경험이 ‘자극적인 사연’으로 이야기될 때 글을 쓰는 게 괴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하나둘 기억을 꺼내다보면, 29년 동안 내가 가해온 폭력과 당했던 폭력이 빈 종이에 가득 찬다. 겪었던 일을 조각조각 모아놓으면 내가 봐도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주저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게 정말 내가 다 겪었던 일인가? 다 공개해도 되는 걸까? 내가 너무 우울한 사람으로 보이면 어떡하지? 말하고 싶은 나와 망설이는 나 사이에서 타협해가며 간신히 글을 추리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염려했던 것과 비슷하다. “이런 일을 겪다니…불쌍하다”, “막장이네”, “글로 쓰는 용기가 대단하다.” 언뜻 달라 보이는 반응 속에는 내가 ‘유별나게 불쌍한 여성’이라는 공통된 인식이 있다. 그런 다양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