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푸른들의 사진 에세이] 책상 위 씨앗이 담긴 병 어떤 겨울, 씨앗 보관을 잘한다고 마을에 소문난 농부들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소문난 분들은 매해 꼬박꼬박 씨앗들을 바지런하고 꼼꼼하게 갈무리해두고 있었다. 사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인터뷰를 하러 가니 농부들은 쑥스러워하면서 가을에 꽁꽁 싸매 집안 서늘한 곳 구석구석에 놓아둔 씨앗보따리를 풀어내며 씨앗에 얽힌 이야기를 함께 들려주었다. 친정엄마가 매해 받아쓰던 것을 50여 년 전 시집 올 때 한 줌 가져와 오늘까지 쓰고 있다던 할머니, 20년 전 시어머니한테서 받은 호랑이강낭콩과 옥수수…. 그 겨울은 씨앗들의 온갖 무늬들로 눈이 즐거웠더랬다. ▲ 사무실에 토종 씨앗이 담겨진 병들이 몇 개 생겼다. © 박푸른들 요즘 우리 사무..
[박푸른들의 사진 에세이] 집주인 할아버지와 나의 공유지 우리 집 앞마당은 집주인 할아버지가 요긴하게 쓰는 옥상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할아버지가 놓아둔 60여개 엇비슷한 화분들과 3개의 큰 빨래건조대로 빽빽하다. 도시농부인 할아버지는 한 해 동안 이 화분들에 상추, 토마토, 고추, 배추, 무를 차례로 길러낸다. 늦가을 무를 수확하고 나서, 그나마 겨울동안 이곳은 내 차지가 되었다. 추위가 가시자 화분 흙 사이로 지난 해 거두지 못한 대파 밑단에서 싹이 삐쭉 올라왔다. 아쉽지만 이제 할아버지와 나의 공유지로 바뀌게 되는 시기이다. 요새 할아버지는 옥상에 올라와 볕 좋은 날 빨래를 널기도 하고, 겨우내 눈과 바람을 맞아 지저분해진 화분을 닦아내고, 굳어버린 흙을 갈고, 동네 한약방에서 얻어온 한약찌꺼기와 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