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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찮은 도시에서의 생태건축

[도시에서 자급자족 실험기] 박공지붕에 왕겨 단열


※ 필자 이민영님이 목공을 배우고 적정기술을 익히며, 동료들과 함께 전기와 화학물질 없는 도시를 꿈꾸면서 일상을 제작해나가는 과정을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 지붕 합판 치기. 지붕 위에 오르면 몸의 무게중심을 앞으로 두어야 낙하를 방지할 수 있다. ⓒ촬영: 홍정현


박공지붕을 얹은 비전화(非電化)카페


지붕은 지금까지의 건축과정 중에서 가장 긴 공기가 필요했다.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하기도 하고 설계가 까다로웠으며 세심하게 계산해야 할 작업이 많았다. 박공지붕(Gable Roof)과 모임지붕(Hip Roof) 중 어떤 형태로 할 지 긴 논의 끝에 상대적으로 일의 공정이 단순하고 빠른 편인 박공지붕으로 정했다.


가양주 빚는 방식이 집집마다 다르듯, 같은 박공 양식이라도 건축물의 여건에 따라 지붕을 구성하는 방법은 조금씩 다르다. 비전화카페는 직선으로 된 여러 개의 부재를 삼각형으로 얽어 짠 트러스(Truss)를 보로, 트러스를 수평으로 가로질러 결합한 목재를 도리로 사용해 구조를 고정하는 방식을 택했다.


지붕이 섬세한 작업인 만큼 예상치 못한 상황은 시시때때로 발생했다. 트러스를 윗깔도리 위에 얹을 때만 해도 이것만 올리면 빠르게 지붕을 덮을 수 있겠다 싶었는데, 얹는 시작점부터 눈에 거슬리는 상황이 등장했다.


트러스를 L자 철물로 보강하면서 90도 수직으로 서 있는지 정확하게 확인하지 않고 박았더니 마감 선에서 오차가 발생한 것이다. 급한 마음에 수직추로 확인하는 작업을 놓쳤기 때문이다. 수평자로 점검하기는 했지만 모든 목재가 수평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 휘어져있는 경우도 상당하므로 수직추를 이용하는 게 좀 더 확실하다.


▶ 지붕 발판 만들기. 번듯하게 건물부지에서 뚝딱거리는 일이 건축의 전부는 아니다. 눈길이 가는 화면 근처에서 누군가는 제작자들이 편안하게 작업할 수 있도록 부품과 공구를 챙기거나 지지대를 만들려 정신없이 목재를 자르고 박고 있다. ⓒ촬영: 신수미


지붕 위에 올라서는 희열과 두려움


트러스 조립이 끝난 후에는 트러스 위에 지붕의 벽체가 될 지붕합판을 덮기 위해 이를 고정할 가로목을 설치했다. 합판 1장을 가능한 절단하지 않고 쓰는 동시에 합판의 모서리를 박을 수 있을 만큼 여유 있게 못 박을 자리와 가로목의 위치를 고려하며 못을 두들겼다. 가장 아래쪽은 비계 위에서, 지붕 중반부부터는 가로목이 일종의 안전지지대가 되어 여기 걸터앉거나 밟아 몸을 지탱해가며 합판을 고정했다.


지붕에 올라가는 작업은 비계 위에 올라서는 것과는 다른 공포가 있다. 물론 계속 하다 보면 안전모를 쓰는 것도 잊은 채 후다닥 작업하기도 하지만(실상은 안전모가 흘러내리지 않게 쓰는 일이 쉽지 않다. 안전모가 앞으로 기울면 시야를 방해하고 뒤로 기울면 목을 조른다.) 다른 건 몰라도 지붕에 오르는 것만큼은 무섭다는 제작자도 있었다. 반대로 평소와는 다른 눈높이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 지붕 오르기를 가장 신나하는 제작자도 있다.


개인의 호불호와 별개로 지붕 작업은 상당히 위험해 안전을 최우선해야 하는 작업인지라, 지붕을 오를 때면 그 어느 때보다 체조도 꼼꼼하게 하고 제작자 중 한 명은 끊임없이 작업이 안전하게 되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일을 맡았다.


가로목 위에 지붕합판을 설치하는 일은 약간 더 겁이 났다. 지상에서 합판을 올려주면 비계 위에서 이를 잡아당겨 위로 끌어올리고, 다시 동일한 방식으로 비계에 서 있던 제작자가 지붕 위로 합판을 밀면 미리 트러스 위에 올라와 있던 제작자가 이를 받아 가로목과 합판이 결합되도록 못으로 박는다. 합판의 무게도 무게이거니와 서 있는 자리가 불안정해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하는 작업이다.


▶ 내부 시트 깔기. 왕겨가 틈 사이로 흘러내리지 않게 마찰력을 높이도록 합판 위에 부직포를 깔아 박았다. ⓒ촬영: 오수정


특히 건물 몸체 밖으로 뻗어있는 수평부재인 룩아웃(Lookout)이 생각보다 길어서 지붕외곽 선과 가까운 플라이래프터(Fly Rafter)에 근접해 작업할 때면, 망치질할 때 힘이 오롯이 전달되지 않고 합판이 출렁거려 무서웠다. 합판은 아래쪽부터 설치하기 때문에 합판을 붙임과 동시에 안전지지대를 계속 제작해 암장에 손잡이를 설치하듯 중간 중간 지붕합판에 박아주었다.


그래도 주머니 가득 못을 넣어서 망치로 일일이 박는 일은 경쾌하고 즐거웠다. 하다보면 각자의 요령이 생겨, 박는 소리를 들으면 어느 제작자가 못을 박고 있는지 알 수도 있을 것만 같다. 물론 현장에서는 여럿이 동시다발적으로 박기 때문에 정신없이 쿵쾅거린다. 각도가 어긋나면 못이 박히다가 휘어지고 손목을 사용해 망치질을 하면 손목관절이 금세 시큰거리므로, 중력을 이용하면서 망치질하는 손이 받는 충격이 분산될 수 있도록 지붕 위에서 정확한 자세가 나올 수 있게 자리를 잡고 망치질을 해야 한다.


이런 흥과 두려움 사이를 오가며 작업하는 과정과는 별개로 여럿이 몇 날 며칠을 못을 박고 있노라니 인근 주민들의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르는 듯했다. 사전에 소음이 발생할 수 있으니 양해해달라고 부탁을 하고 공사기간이 이 정도니 그 기간만 참아달라고 안내도 했지만, 예상보다 공사기간이 길어져 종일 쿵쾅거리는 소리를 듣는 이들은 고역이었을 것이다. 작업을 직접 하는 제작자들도 일을 마치고 나면 머리가 띵 하고 어지러울 정도였으니 주변 사람들의 고충이 이해가 됐다. 창문을 닫고 생활하는 시기에 못 박는 작업을 하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 방수포 위로 트럭이 쏟아놓고 간 왕겨에 뛰어들어 뒹굴며 놀았다. 그리고 그 왕겨를 털어내는데 한참이 더 걸렸다. ⓒ촬영: 이민영


왕겨로 단열한 지붕


지붕단열은 지붕합판 위에 세로상과 가로상을 쳐 네모난 칸을 만들고, 이 칸 안에 왕겨를 담은 비닐봉투를 채워 보온을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왕겨를 담은 비닐봉투가 중력을 받아 아래로 쳐지고 칸 위부분이 남는데, 여기에 왕겨를 추가로 부어도 온전히 채우기가 어려웠다.


결국은 가로상을 해체하고 틈으로 왕겨가 떨어질 것을 대비해 부직포를 깐 뒤 세로상 위에 합판을 덮어 일종의 나무상자를 만들어 꼭대기에서 왕겨를 붓는 방식으로 단열을 했다. 왕겨에는 쥐나 해충을 대비해 석회를 조금 섞었는데, 지붕에 올라 왕겨를 부을 때면 왕겨와 석회가 섞인 가루가 풀풀 날려 코와 목을 간지럽혔다.


왕겨를 단열재로 선택한 건, 왕겨가 쌀을 주식으로 하는 한국에선 상대적으로 쉽게 구할 수 있는 친환경 재료로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해 접근성이 높아서다. 과거 민가에서는 겨울에 식재료가 썩거나 얼지 않게 왕겨에 파묻었고 석빙고에서는 얼음이 녹지 않게 왕겨나 짚을 에워쌓아 보관했다는 기록이 있다. 실제 여러 연구논문을 살펴보면 난방에너지 소비가 적고 실내 습도조절에 이점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농촌에서 거의 무료이거나 싼값에 구할 수 있는 왕겨로 서울에 짓고 있는 건축물에 단열을 하려다보니 운송비가 적잖게 든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 합판 주머니 덮기. 위가 뚫린 평평한 나무상자를 만들어 아래에서부터 그 안에 왕겨를 채우며 작업한다. ⓒ촬영: 오수정


도시에서도 생태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며 건축을 하고 있지만, 막상 몸담아 시도하다보면 모순투성이다. 왕겨와 짚의 구매가보다 배송비가 훨씬 더 많이 들고, 고층건물에 둘러싸여 망치질을 하다 보니 소리가 퍼지지 못하고 더 높이까지 올라가 소음의 온상이 된다.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못을 박느니 타정기(nail gun)를 써서 공기를 줄이는 편이 이웃을 등지지 않는데 도움이 될는지도 모르겠다. 타성대로 하는 편이 돈도 적게 들고 몸도 덜 고되다.


왕겨는 단가가 낮고 이후 건축폐기물도 발생시키지 않는 단열재라 분명 합리적이라 여겼던 생각과 행동인데, 도시의 통상적인 건축방식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급기야 본질보다 거대하고 부담스러운 크기의 부연 설명이 필요해졌다.


비전화카페를 지으며 서울 안 수많은 건물 중 이 아담한 건물 하나 짓는 게 대체 뭐라고 싶다가도, 이 일이 우리 주변을 둘러싼 고착된 당위와 사회 조건에 작은 균열을 내는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미치니 정신이 번쩍 든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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