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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을 착취한 사진, 정말 예술 맞아요?

한일 사진계 내 미투(#MeToo) 발화자들을 만나다




지난 4월 1일 일본 사회에서 미투(#MeToo) 외침이 나왔다.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사진작가 노부요시 아라키 씨의 행적에 대한 폭로와, 일본의 예술/사진계의 현실, 그리고 예술가의 명성에 가려진 폭력에 대한 긴 글을 쓴 건 오랜 기간 ‘아라키의 뮤즈’라 불렸던 엔도 카오리 씨다.


▶ 카오리 씨가 블로그를 통해 공개한 내용 일부. (출처: https://note.mu/kaori_la_danse/n/nb0b7c2a59b65)


사진작가 아라키의 모델 카오리씨가 밝힌 진실


카오리 씨는 3살 때부터 발레를 배워 온 댄서다. 고교 졸업 이틀 뒤에 암 투병을 하다 사망한 어머니의 뜻을 이어받아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하며 춤을 배웠다. 예술가의 도시 파리에서 발레를 배우며 자연스럽게 스튜디오를 찾아오는 화가들과 교류했고, 그들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그게 카오리 씨가 모델 일을 하게 된 계기였다. 점차로 사진작가들의 모델 요청도 받게 되었다. 다양한 몸의 표현을 하는 게 좋았던 카오리 씨는 사진모델로도 일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출판사를 통해 한 사진작가를 만나게 되었고, 모델로서 그와 사진 작업을 하게 된다. 그게 유명 사진작가 아라키 노부요시와 모델 카오리 씨의 관계의 시작이었다.


카오리씨는 “테리 리처드슨, 김기덕, 라스 폰 트리에, 우리 앨런, 타란티노까지 고발 당하는 시대에 뉴욕에서 아라키 전시회가 열리는 걸 보면서, 그리고 여전히 자신을 ‘그의 파트너 및 뮤즈’라고 부르는 언론 기사를 보는 게 괴롭기 때문에 무섭지만 이제 밝힌다”며 “그 지식, 정말 제대로 된 거 맞아요?”라는 제목의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거기엔 2001년부터 2016년까지, 16년 동안 모델로 일하면서 겪은 일들이 적혀 있다.


프랑스에서 모델을 할 때와 달리, 아라키와의 작업엔 계약서가 없었다. 이상하다 싶었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진작가니까 문제 없겠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원래 아라키 씨는 그런 거 안 해, 일본에선 그게 일반적이야’라는 주변인들의 말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후회로 시작하는 그의 글에는 여러 충격적인 사건들이 등장한다.


사전에 상의도 없이 <카오리의 섹스 다이어리>(KaoRi’s sex diary)라는 사진집이 출판되거나, 자신이 동의하지 않은 사진이 유포되는 건 예사였다. 일부러 과격한 포즈를 시키거나, 촬영을 한다고 불러선 외부인들이 보는데 누드 촬영을 강요한 일. 방송 등 미디어에 나가서 ‘내 여자’, ‘뮤즈가 있어서 못 죽는다’며 자신에게 굉장히 중요한 사람인 것처럼 말하거나 ‘창녀’, ‘집까지 사줄 정도는 아닌 여자’라고 표현하면서 멋대로 카오리 씨의 이미지를 재단한 일 등이다.


▶ 9월 8일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서 주최한 행사 <여성, 이미지 생산자> 팜플렛


세계적인 흐름이었던 미투(#MeToo)가 유독 조용했던 일본 사회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사진작가를 대상으로 이렇게 목소리를 낸 카오리 씨가 한국을 방문했다. 9월 8일 한국여성진흥원에서 주최한 <여성, 이미지 생산자> 포럼 참석 차 온 것인데, 모처럼의 기회에 그를 만났다. 그리고 국내에서 사진계 내 성폭력을 고발한 피해자 A씨, 2002년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아라키의 전시 <소설 서울, 이야기 도쿄>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시위를 하고 <안티 아라키전>을 기획했던 김소윤 작가도 함께 만났다.


각자 다른 시대, 다른 장소에서, 다른 경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세 여성들의 목소리는 겹쳐 있었다. 예술과 여성, 폭력이 만나는 그 세계. 누구도 좀처럼 이야기하지 않았던 바로 그 이야기를 시작했다.


예술이라는 이름에 가려진 ‘착취’


A씨는 카오리 씨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걸 털어놨다. 유포하지 말아 달라고 한 사진이 사진작가의 SNS에 의해 공개되었고, 삭제 요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모델 일을 할 때 누드 촬영에 사진작가가 친구들을 불러 구경시키는 등의 성추행을 겪었다고 했다.


“작가에게 사진 유포를 하지 말라는 것 외에 다른 액션을 취하진 않았냐”는 카오리 씨의 질문에, A씨는 “어떤 액션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냥 그렇구나’ 라고 포기해 버렸다”고 답했다. 카오리 씨도 사진 유포 금지와 관련해 어려움이 있었다고 밝혔다.


“재판을 하게 되게 되면 모든 사진을 하나하나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검증해야 하거든요. 근데 전 16년 동안 사진이 찍혔기 때문에 사진이 너무 많은 거죠. 돈도, 시간도 너무 오래 걸리니까 재판이나 고소를 할 수가 없었어요.”


심지어 카오리 씨는 “늘상 계속 사진이 찍혔기 때문에 정확히 어떤 사진이 찍혔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정말 공개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사진에 대해서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부탁을 해도 ‘그게 너의 본모습(본성)’이라는 대답만 돌아왔다”고 말했다.


그뿐 아니다. ‘뮤즈’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어 사진작가의 개인전 오프닝, 취재, 공식적인 행사에 동행하게 되면서 활동의 구속도 늘어났다. 제대로 된 임금을 받는 것도 아니었다. 생활이 힘들었지만 ‘아티스트가 돈 이야기를 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는 인식 때문에 말을 할 수도 없었다고 한다.


유명 사진작가의 ‘뮤즈’라고 불리는 반면, 대중들에게는 과격한 노출을 하는 이미지 때문에 ‘미스터리어스하고 뭐든 다 하는 여자’라는 인식이 더해져 갔고 실제 생활과의 간극이 깊어졌다. (아라키는 여성의 나체를 중심으로 성기, 훔쳐보기, 신체훼손과 절단, 노예 이미지 등을 표현하며 파격적인 성애와 금기를 묘사하는 작가로 명성을 얻었다.) 그런 이미지 때문에 생긴 스토커도 여럿이었다.


카오리씨가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아름답고 미스터리어스한 뮤즈인 여성’이라는 이미지에 갇히고 노동권과 인권을 보장 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괴로움을 겪었다면, A씨는 가해 사진작가로부터 성적인 도구로 이용당하며 성폭행을 당했다.


그런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 결과물인 사진. 대중에게 선보이고 예술이라 불리는 그 사진은 정말 예술이었을까? 카오리 씨는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밝히는 것뿐만 아니라 “예술이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는 취지”에서 블로그에 글을 썼다고 설명했다.


“예술은 고상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또한 예술엔 자극이나 쾌락 같은 고상한 것의 정반대의 요소들이 들어가 있어요. 그걸 추구하기도 하고, 또 그걸 예술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죠. 거기다 현대예술이라는 말이 생겨나면서 상업주의화 되고 거액의 돈이 붙게 되면서 지금 무엇이 예술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된 것 같아요.”


‘아라키 반대’가 아니라, 그게 예술인지 묻고 싶었다


김소윤 작가도 “두 분처럼 모델 활동을 한 건 아니지만 <안티 아라키전>을 하면서 느꼈던 감정이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말을 꺼냈다.


▶ 2003년의 <안티 아라키전> 자료가 남아있는 네오룩(neolook) 페이지 (출처: https://neolook.com/archives/20030224a)


“사실 <안티 아라키전>을 거창한 이유로 크게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그걸 했던 이유는 카오리 씨가 말한 거랑 같아요. 이게 정말 예술인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그냥 단순히 ‘일본에서 유명한 사진작가가 왔으니까 보러 가야지’라고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요. 그 때 국회의원들도 (아라키전을) 단체 관람하고 그랬거든요.”


2002년, 당시 미대생이었던 김소윤 작가는 아라키 전시를 보고 큰 충격을 받은 후, ‘언니네’라는 페미니스트 커뮤니티에 ‘함께 뭘 해보자’는 제안 글을 올렸다. 서로 알지 못하는 미대생들이 그렇게 모여 <안티 아라키전>을 기획하게 된 거다.


크게 무언가를 하려는 욕심도, 영향력에 대한 기대도 없었는데 오히려 반발이 거셌다다고 한다. “뭐냐 얘네? 라는 말이 나온 거죠. 누구길래 이 유명한 작가의 업적에 흠집을 내냐고. 마치 르네상스 미술에 이의를 제기한 것처럼 말이에요.”


김소윤 작가는 “‘아라키 반대’를 외치고자 했던 게 아니었다”고 말한다. “다른 담론들은 비판이나 대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받아주기도 하는데, 유독 여성을 대한 작품에 대해서는 한 가지 입장밖에 없는 거예요. 그리고 거기에 ‘혹시 여기에 학대가 있었던 건 아니냐? 정말 그렇게만(예술로만) 보는 게 맞냐?’고 의문을 가지면 굉장히 촌스러운, 아니면 뭘 좀 모르는 사람이 되는 거죠. 미술의 맥락에선 그렇지 않다고들 하는데, 미술도 사실 사회의 일부잖아요.”


예술 안에서 여성을 바라보고 그리는 시선이 왜 늘 고정적이고, 한정적이며, 왜 누군가에겐 폭력적으로 느껴지는지, 그 이야기를 해보자는 거였다. 그런데 언론 인터뷰 이후에 신상이 공개된 후로 학교에 항의 전화가 쏟아졌다고 한다. 그 때 김소윤 작가도 “미술에 회의감이 들었다”고 한다.


어느새 세 사람이 서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게 보였다. <안티 아라키전>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 오갔다. 예술계의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 지속되어 온 남성의 권력, 그리고 남성 작가와 여성 모델 사이의 위계, 여성의 주체성에 대한 고민 등을 털어놓았다.


김소윤 작가는 전시를 진행하면서 또 하나의 고민과 마주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게 정말 여성 모델들의 표현이면 어떻게 하지?’라는 물음. 단순히 여성의 누드나 노출 부위를 문제 삼는 게 아니라 어떤 환경에서, 어떤 시선으로 작업이 진행되었고, 다른 대안은 없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자 했는데, 그런 질문이 혹시라도 모델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게 되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카오리 씨는 “사진이라는 건, 찍는 순간 사진작가의 것이고 모델에겐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하며 모델이 주체적이기 어려운 환경을 지적했다. 단순히 모델이 피사체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작가와 모델, 남성과 여성이라는 위치가 불평등하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카오리 씨는 일본에서 1990년대 유명 사진작가로 인기를 얻었던 히로믹스(HIROMIX)의 경우에도 “사진작가가 아니라 ‘걸즈포토’로 분류되었다”는 이야기를 공유하며 업계 내 성차별을 꼬집었다.


한국에서도 사진학과에서 볼 수 있던 많은 여학생들을 작가로 만나긴 어렵다. 여성 사진작가에겐 기회가 많이 주어지지 않을뿐더러, 작품성을 인정해 주는 일도 드물다. 피해자 A씨는 “여성의 시선을 시선으로 보지 않는 것 같다”고 했고, 김소윤 작가도 “여성의 드라마적인 이야기나 시선이 담긴 작품은 ‘일기장’으로 부르기도 한다”며 여성의 작업을 평가 절하하는 환경을 비판했다. 어쩔 수 없이 여성작가들이 해외로 유학 가서 경력을 쌓은 뒤, 모국으로 돌아와 활동하는 것도 한국과 일본이 같은 상황이라고 입을 모았다.


예술로 상처 입었지만, 예술을 사랑한다


이렇듯 예술의 어두운 이면과 폭력, 착취를 목격했음에도 세 사람은 여전히 예술계의 일원이다. 카오리 씨는 몇 년 전부터 발레 스튜디오를 열어 발레를 가르치는 댄서로 활동하고 있고, 김소윤 작가도 미술계에서 활동 중이며, A씨는 미술 공부를 해서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비록 안 좋은 일을 겪었고 어떤 사람들이 저를 성적으로 이용했다는 나쁜 기억이 남았지만, 저는 미술을 너무 좋아하고 예술을 너무 좋아한다”고 말하는 A씨의 목소리엔 그 무엇도 꺾지 못한 ‘꿈’이라는 힘이 느껴졌다.


카오리 씨는 자신에게 “사진과 무용은 다르다”고 했다. 모델이기 전에 댄서였고 “발레가 있었기 때문에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고도 했다.


“스토커에 시달려서 이사를 가려고 했던 때가 있었어요. 그 때 2011년 도쿄대지진이 났고… (중략) 정말 인생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그 일로 제 인생을 새로 다시 써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나한테 지금 뭐가 있나? 프랑스 유학을 했으니까 프랑스어를 할 줄 알고, 그리고 춤을 출 수 있었죠. 하지만 그 땐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춤을 출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어요. 그래도 뭐든 해야겠다 싶어서 프랑스어를 가르쳤어요. 항상 아라키씨 주변에서 휘둘리던 생활을 하면서 뭐가 ‘보통의 삶’인지 모르는 삶을 살다가 ‘일반 사회’ 사람들과 만나는 게 저한테 도움이 되더라고요. 그걸 계기로 발레를 가르쳐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저에게 춤이 있었다는 게 정말 다행이었죠.”


오랜 기간 믿고 따랐던 사람들에게 상처 받고 이용당했지만, 카오리 씨는 사람과 연결되는 작업인 ‘가르침’을 하고 있다. 예술 안에서 사람들과 만나 소통하는 방식이 그를 다시 살아가게 한 것이다.


<안티 아라키전>의 여파로 오랫동안 ‘패배감’에 시달렸다고 털어놓은 김소윤 작가도, 지금 돌이켜 봤을 때 “그 때의 저는 좀 똑똑하고 멋있었던 것 같아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미투(#MeToo)는 과연 ‘나도 당했다’인가?


카오리 씨는 사진계 성폭력 피해자 A씨에게 “절대 자신을 탓하지 말라”는 말을 전했다. 그리고 “분노하고 ‘복수해야지’라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으면, 시간은 점점 지나가 버리는데 세상은 바뀌지 않을지 모른다”며 “A씨가 할 수 있는 창작에 힘을 썼으면 좋겠다. 분명 좋은 창작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했다.


▶ 카오리 씨(우)와 김소윤 작가(좌)가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복도에서 멋진 포즈를 선사했다.  ⓒ일다(박주연)


피해의 경험을 토로하고 비난을 온 몸으로 받아낸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시작했지만, 단지 그것이 이 세 사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의 전부가 아니었다. 카오리 씨, A씨, 김소윤 작가, 세 사람은 분노만 한 게 아니라 상황을 분석하고 무엇이 문제인지 짚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움츠려 든 존재가 아니라 여전히 꿈을 꾸고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존재라는 것도 보여줬다. 다함께 웃으며 이야기를 마쳤다.


2003년에 <안티 아라키전>을 만들었던 젊은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가 15년이 지난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고 지금 상황과 겹쳐진다는 건, 절망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목소리는 사라진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계속 외치고 있었고, 이제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외치고 있다.


미투(#MeToo)를 ‘나도 당했다’고 표현하는 이들이 있지만, 그건 너무 협소한 해석이다. 미투(#MeToo)를 말하는 이들은 ‘내(우리)가 겪어야만 했던 피해와 상처를 좀 보고 들어라’는 이야기와 동시에 ‘나는(우리는) 정말 사회의 변화를 원한다’는 것을 말했다. 그리고 이제 ‘정말 아름다운 예술은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도 던졌다. (박주연)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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