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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터운 마음의 코트를 벗게 하는 포토저널리즘

포토저널리스트 야스다 나츠키를 만나다



난민캠프 속에서 ‘빛나는 순간’을 기록하는 이유


포토저널리스트 야스다 나츠키 씨(1987년생)는 내전이 계속되는 시리아에서 전쟁을 피해 이웃나라인 요르단으로 건너가 난민이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 필리핀의 거리에서 생활하는 아이들, 캄보디아의 HIV에 감염된 마을 주민들 등 엄혹한 환경 속의 인물들을 사진으로 기록해왔다.


그러나 야스다 씨의 사진에는 요르단의 초등학교 교정을 힘껏 달리는 소녀들의 환한 얼굴과, 지뢰가 아직 남아있는 캄보디아에서 교실 칠판을 응시하며 공부하는 소녀 등 평범한 일상이 담겨있다.


▶ 포토저널리스트 야스다 나츠키 씨(1987년생)  ⓒ촬영: 오치아이 유리코


“난민 문제든, 분쟁 문제든, 참혹한 사진을 들이밀면 이러한 문제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접하고 싶지 않다’며 마음의 코트를 껴입죠. 그 마음의 코트를 벗게 하는 것은 ‘어, 이거 뭐지?’하고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는 일상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고통스러운 환경에 놓인 사람들이 자기와 마찬가지로 친구들과 즐겁게 놀거나, 가족을 걱정하고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들을 가까운 존재로 느끼기 시작하고 결국 그들이 사는 환경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야스다 씨는 “우리가 앞으로 어떤 사회를 만들어갈지 함께 생각하자”는 관심의 씨앗을 미래로 연결하는 방법이 무엇인지가, 포토저널리스트를 비롯해 표현하는 사람들에게 던져진 질문이라고 말한다.


국경이 없는 ‘나와 당신’이라는 관계성


야스다 씨가 ‘전하는 일’을 하기로 선택한 계기 중 하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국경 없는 어린이들’의 프로그램 중 ‘우정 리포터’로 캄보디아에 갔던 일이다. 초등학교 다닐 때 부모님이 이혼을 하고, 중학생 때는 헤어져 살던 아버지와 오빠가 차례로 세상을 떠나, 야스다 씨는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했었다고 한다. 자신과 다른 환경에 있는 아이들은 가족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야스다 씨가 갔던 곳은 내전 종결 후 가난한 캄보디아에서 인신매매 당한 아이들의 자립을 지원하는 시설. 거기에는 (부모가 돈을 받고) 팔려간 곳에서 학대를 당한 야스다 씨와 동년배인 십대들이 있었다.


이들을 만나게 된 것만도 충격적이었는데, 그 친구들이 자신들에겐 잘 곳과 먹을 것이 있지만, 자기 가족들은 먹을 것조차 없을지 모른다며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 더욱 큰 충격을 받았다. 야스다 씨는 이들을 통해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것을 배우게 되었다고 느꼈고, 자신이 보고 온 것을 세상에 전하는 일이 그들에게 은혜를 갚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 야스다 나츠키 씨의 책 <당신과 또, 그곳으로: 시리아 난민의 내일> 표지


그리고 대학 시절, 한 장의 사진이 야스다 씨의 인생을 결정지었다. 보도사진가인 시부야 케이시 씨가 찍은 앙고라 난민캠프의 모자-영양부족으로 축 처진 젖가슴을 삐쩍 마른 아기가 필사적으로 빨고 있는-모습이었는데, 한순간을 도려낸 사진에 사람의 마음을 붙들고 전하는 강력한 힘이 있었다.


학생 시절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한 야스다 씨는 자원봉사로 참여했던 고아 캠프에서 알게 된 이라크 소년이 이후 내전이 발발하기 전 시리아로 피난했다는 얘기를 듣고 걱정이 되어 시리아를 방문했다. 이러한 행보는 요르단의 시리아 난민캠프로 이어져 그녀의 취재의 폭은 넓고 깊어졌다. 일본에서 유학 중이던 AIDS 환자인 소녀와의 인연으로, 우간다로 취재를 간 적도 있다. 이렇게 알게 된 사람들과는 SNS 등으로 계속 연결되어 있다.


“취재 범위 자체를 크게 넓히지 않고, 같은 마을을 다니며 같은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만나고 있습니다. 제 스스로가 ‘나와 당신’이라는 관계성을 소중하게 여기고, 내 사진을 본 사람, 내 글을 읽은 사람도 ‘나와 당신’이라는 관계성을 맺을 수 있도록 전달할 생각입니다. 사진을 통해 누군가와 만나게 되는 느낌이 들었으면 해요.”


쓰나미의 아픔을 안다면 분쟁의 고통도 알 수 있다


야스다 씨의 남편도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다. 남편은 자신보다 요리도 잘 하고, 다방면에 재주가 좋아서 “집안일의 90%”를 맡고 있다고 한다. 가정에서의 성별 역할은 거의 없다고.


남편의 부모가 동일본대지진 이전부터 이와테현 리쿠젠타카다시(市)에 살았던 것을 계기로, 야스다 씨는 지진 직후의 리쿠젠타카다에 가서 그곳 사람들과 연을 맺었다. 그리고 그곳 어부를 테마로 한 사진 그림책 <그래도 바다로-리쿠젠타카다에 살다>를 펴냈다.


“어부들은 자연을 지배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바다에 대한 경외감과 바다가 주는 축복에 대한 경의를 갖고 있죠.”


▶ 야스다 나츠키 씨의 저서 <사진으로 전하는 일-세계의 아이들과 마주하며> 표지


지금까지 야스다 씨는 쓰나미라는 자연재해와 인위적인 전쟁 피해를 두루 봐왔다.


“당연한 듯 살던 마을이 어느 날 갑자기 파도에 휩쓸려버리거나, 이웃에 살던 사람들이 다음날 사라져버리는 일은 엄청난 슬픔입니다. 사람에 의해 일어난 엄청난 슬픔은 바로 전쟁이죠. 그 아픔이 얼마나 클지를 쓰나미를 아는 사람들은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양쪽을 관통하는 것이 생명의 무게입니다. 그것이 불합리한 이유로 상처입고 있다면 목소리를 낼 것이고, 반대로 그것이 빛나는 순간에는 기쁜 마음으로 셔터를 누를 것입니다.”


그 빛나는 순간, 찰나의 아름다움 때문에, 보는 이의 가슴에 오히려 사회적 불합리함이 더욱 날카롭게 파고드는 것이 야스다 씨의 사진이다.  (오카다 마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 <일다>와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고주영님이 번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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