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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젠더리스’ 완구가 필요해

크리스마스 장난감 선물 어떤 걸로 정하셨나요?



지난 10월 23일, 미국 IT 잡지 와이어드(Wired)에서는 ‘로봇 완구가 소녀들을 과학과 기술에 관심을 가지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까?’(Can Robots Help Get More Girls Into Science and Tech?)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기사는 미국 내 여성 엔지니어의 비율이 12% 밖에 되지 않는 점을 지적하며 실리콘밸리 내 성차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올해 실리콘밸리에서는 성차별 발언, 임금 불평등 문제들이 불거져 논란이 되었다. 실리콘밸리 내 여성 임원의 비율이 낮다는 점은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가 되어왔다.

 

왜 여성 엔지니어 비율은 이렇게 낮은 것일까? 여성들은 정말 과학, 수학, 기술 등의 분야에 관심이 없는 것일까? 와이어드의 보도에 따르면 이런 젠더 스테레오타입은 어렸을 때부터 사회와 부모에 의해서 형성된다고 한다. 어린 아이들에게 무심코 건네는 장난감부터 말이다.

 

여성, 남성의 능력은 과연 타고난 것일까?

 

BBC에서는 지난 8월 “실험: 당신은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을 젠더 스테레오 타입에 따라 선택하고 있진 않나요?”(The Experiment: Are you sure you don't gender-stereotype children in the toys you choose for them?)라는 작은 실험을 진행하고 그 결과를 공개했다.

 

▶ BBC의 실험 유튜브 영상  

 

이 실험에서는 아직 언어를 익히지 못한 유아인 마니(Marnie)와 에드워드(Edward)에게 각각 다른 성별의 옷을 입히고 Oliver(올리버)와 소피(Sophie)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그리고 성인들이 이 아이들과 놀면서 어떤 장난감을 건네는지 살펴본다. 성인들은 소피에게는 ‘인형’과 ‘부드러운 장난감’을 건넨다. 올리버에게는 ‘자동차’, ‘조립 장난감’ 등을 건넨다.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 장난감들을 가지고 논다. 또 성인들은 소피에게는 인형을 가지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반면, 올리버는 자동차 장난감에 태우는 등 육체적인 운동을 시킨다.

 

실험에 참가했던 성인들에게 사실 소피는 에드워드이고 올리버는 마니라는 사실을 알려주면, 이들은 놀라며 이렇게 말한다. ‘오. 그렇군요. 전 소피가 여자 아이니까 여자 아이의 물건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전 제가 오픈 마인드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저도 모르게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게 놀라워요’, ‘여자 아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핑크색의 장난감이나 인형에 손이 간 것 같아요.’

 

여성들은 조립 같은 걸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걸 해 볼 기회가 없었던 것일까? 실험에서 아이들은 건네 받은 장난감을 잘 가지고 논다. 사실은 마니였던 올리버는 자동차도, 조립 완구에도 거부감이 없다. 인형을 달라고 하지도 않았다. 사실 에드워드였던 소피도 마찬가지다. 핑크색 장난감이 싫다고 울지 않았다.

 

젠더 구분하는 완구를 비판하는 목소리들

 

캘리포니아 대학의 교수이자 사회학자인 엘리자베스 스위트(Elizabeth Sweet)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젠더별 완구가 아이들의 놀이 취향과 스타일을 형성하며, 이것이 아이들의 자신의 취향, 능력을 마음껏 펼치고 탐험하는데 제한을 주게 된다’고 한다.

 

젠더를 구분하는 완구는 ‘남성성’, ‘여성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그것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이다. 단순히 노는 시간이라고 생각되는 그 시간 동안 많은 아이들이 자아를 형성하고 있으며, 그것은 어른들이 건네는 장난감을 통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 “완구가 완구일 수 있게”(Let Toys Be Toys) 캠페인 (출처: lettoysbetoys.org.uk)

 

몇 년 전부터 이런 젠더별 완구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왔다. 그에 따라 미국의 가장 큰 유통업체 중 하나인 타겟(Target)은 쇼핑몰 내 완구 코너에서 ‘남아용 완구’, ‘여아용 완구’라는 말을 없애기도 했다. 영국에서는 여아용, 남아용 완구라는 말이 필요하지 않다는 뜻에서 “완구가 완구일 수 있게”(Let Toys Be Toys)라는 캠페인이 진행되기도 했다.

 

이런 움직임은 시장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하는 제조사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올해 여름, 세계적 완구 제조사인 하스브로(Hasbro)의 CEO는 ‘저희는 예전의 젠더별 완구를 없애고 있습니다’(We eliminated the old delineation of gender)라고 밝혔다. 또 하스브로의 대표작 중 하나이며 여아 대상의 완구로 불려온 ‘마이 리틀 포니’(My little Pony)의 이용자 중 30%가 남아라는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요즘 학부모 사이에서도 이슈인 ‘코딩’을 놀이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코딩 완구도 젠더리스(genderless)로 등장하고 있다. 남아용으로 강조되지 않고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색을 쓰기도 하고, 그 동안 인형을 가지고 놀던 여아들이 조금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차나 트럭처럼 보이지 않는 로봇 코딩 완구도 나왔다.

 

여아용, 남아용 테두리를 벗어나서

 

그러나 아직 국내에서는 젠더리스 완구와 관련한 움직임이 눈에 띄지 않는다. 여전히 여아용, 남아용 완구라는 말이 만연하게 사용되고 있다. 젠더리스(genderless), 젠더프리(genderfree)라는 용어가 사회 전반에 등장하기 시작했지만, 아직 완구 시장까지 그 영향을 미치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왜 여아를 위한 로봇 완구가 나오지 않는지, 왜 고려조차 되지 않는지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아이들이 많이 보는 애니메이션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분법적인 성역할이 강조되는 캐릭터가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에 대한 비판도 제기해볼 수 있다.

 

무엇보다 많은 이들이 사로잡혀 있는 ‘여자용’, ‘남자용’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 부지불식간에 한 사람을 그 존재가 아닌, 사회가 정해놓은 여성 혹은 남성으로 성장하게 만들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봐야 한다.

 

이제 곧 연말이고 크리스마스, 새해이다. 주변에 아이가 있어서 선물을 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선물을 고를 때 그 아이의 성별을 고려하는 대신 아이가 자신의 기호, 능력을 마음껏 탐험하고 도전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게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

 

그리고 그 선물을 전하면서 이런 메시지도 함께 전하자. ‘너의 성별이 뭐든 간에 네가 원하는 어떤 것이든 해볼 수 있고 될 수 있어.’ 우리는 이 말을 듣지 못하고 자랐을 수도 있지만, 이제 그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박주연)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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